도쿄 지하철 긴자 선과 마루노우치 선이 지나는 아카사카-미쓰케 역 지하도에서 올라오면
좀전의 북적이던 인파와는 달리 고즈넉하게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운하가 흐른다.
바로 보이는 다리를 건너 도보 3분 거리에 '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쿄이초' 호텔이 위용을 자랑한다.
그 곳에서 멀지않은 곳에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왕 이은의 옛 저택이 있다.
현재는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Classic House at Akasaka Prince>라는 이름으로
음식과 디저트 등을 파는 일본인들의 영업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인 대한제국 마지막 왕의 공관이었던 이 저택이 일본인들의 영업집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왕가 영왕의 옛 도쿄 저택
<Akasaka Prince Hotel Old Building Former Lee Royal Residence>
“The Classic House at Akasaka Prince” decided for the “former residence of Yi Un”
previously loved as the former Grand Prince Hotel Akasaka Old Building
1930년 궁내성의 키타무라 코조, 콘도 요오키치가 영국 튜더양식으로 설계했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조선을 평화롭게 넘긴 댓가로 일제는,
순종의 뒤를 이어 황태자였던 이은을 조선의 왕으로 계승, 창덕궁 이왕(昌德宮 李王)이라 불렀다.
1930년 영왕의 일본 거처를 위해 궁내성은 도쿄의 중심지 치요다구 기오이초 1-2번지에 궁을 지어주었다.
궁내성의 키타무라 코조, 콘도 요오키치가 영국 튜더양식으로 설계해 지은 저택이다.
가까이에 운하가 흐르는 도쿄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영왕 부부는 이 저택에서 1930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생활했다.
대한황실문화원이 확보한 일본 등기부 등본 자료에 따르면 부부가 건물을 소유한 기간은
1924년 6월 ~ 1952년 6월까지다.
당시 영왕은 1910년부터 패전까지 일본제국에서 천황가 다음으로 높은 천용금 150만엔의 세비를 받았다.
옆 방향에서 본 저택
뒤로 보이는 '더 프린스 갤러리 도쿄 쿄이초' 호텔
패전 후 일본은 화족제도를 폐지했다.
영왕도 왕족신분이 박탈되어 가산을 팔아 생활비를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저택을 일본 참의원의장 관저로 빌려주고 부부는 하녀방으로 옮겨 생활했다.
이후 저택은 일본 세이부그룹으로 넘어갔다.
영왕은 도쿄 저택을 비롯 일본에서 소유했던 부동산이 40건 정도 더 있었다고 한다.
영왕비 이방자여사는 회고록 '세월이여 왕조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도쿄 우리 집을 빼앗으라고 했다’며
일본 정부가 아닌 개인에게 팔 수 밖에 없었고, 중개인 농간으로 사기까지 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랜드 프린스호텔 아카사카(1955~2011)
세이부그룹은 이 건물을 4천만 엔에 매입한 뒤,
1955년부터 40층 짜리 신관을 증축해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로 활용했고, 구 저택은 건물 내외를 수리해
객실 35실을 정비 레스토랑과 결혼식장으로 사용하는 프린스호텔 구관으로 개업했다.
이 저택에서 태어난 영왕의 아들 왕세손 이구씨가 2005년 이 호텔의 한 객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마지막 왕세손 이구(1931~2005.7.16. The Last Prince of the Choson Dynasty)와 줄리아 비
영왕의 외아들 이구는 MIT를 나온 총명하고 패기만만한 청년 건축가였다
경영부진으로 호텔영업이 종료되어 폐관되던 그해 2011년 '옛 이왕가 도쿄 저택'
(舊李王家東京邸,Old Building Former Lee Royal Residence)은 도쿄도 유형문화재가 되었다.
하지만 도쿄 지정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마지막 왕가 저택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타국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마지막 왕가가 56년간 일본인들의 숙박시설로 이용된 것도 모자라 현재는
술 등을 파는 영업장이 되었다.
프린스호텔 측은 소유권을 내세워 2013년 2월 20일 증축 수리에 들어갔다.
옛 저택에서 45m 떨어진 곳으로 옮겨져 보수 공사를 거쳐 현대적 튜더 양식으로 수리했다.
이 건물(총 건평 3007㎡)에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라는 간판을 걸고 2015년 7월 16일,
프랑스식 레스토랑, 바, 카페, 예식장 등을 갖춘 프린스호텔의 상징적인 영업시설로 재단장 개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자취가 음식점이라니...???
2023.3.15. 우리가 이 저택을 찾았을 때 화단에는 노란색 양귀비가 봄 바람에 하늘거리고,
정원의 목련이 봉우리를 터트리고 있었다.
이른 오전이라 오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집의 내력을 알고 왔는지 간간히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저택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었다.
런치 예약을 놓친 우리는 케익과 후식이 좋다는 평으로 아쉬운 대로 ‘에프터눈 티’를 주문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맥아더 사령부의 미군정 통치가 시작되었다.
이은은 서둘러 환국을 준비했으나 이승만정부는 영왕의 입국을 거부했다.
이승만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해 친일파라는 이유로 이은의 귀국을 끝내 거절했다.
대한제국의 왕이 한국국적 마저 얻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해방은 되었지만 오갈 곳 없는 이은의 일본생활은 계속될 수 밖에 없었다.
화족제도 폐지로 당장 생활이 곤란해진 이은은 살던 집을 일본국회 참의원 의장공관으로 빌려주고
집세를 받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면서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렸다.
결국 저택은 1952년 세이브그룹에 넘어갔다.
대한제국 마지막 역사와 더불어 우리의 한과 애환이 새겨진 살아 있는 역사관이고 문화재인 이 저택이,
일본인들의 영업장으로 운영되는 이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
저택은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타국에 남아있는 단 하나의 역사적 건물이고 뼈아픈 우리 역사의 현장이다.
언제까지 일본인들에게 음식과 술을 파는 영업장으로 방치 될 것인가... 착잡했다.
Exterior of the Akasaka Prince Hotel, c. 1960.
Later called the “Classic House” after expansion of the hotel grounds in the early 1980s,
it was on the grounds of the former Kitashirakawa estate of Prince Yi Un, the last crown prince of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