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나들이
어젯밤엔 왜그리도 잠자리가 뒤숭숭했는지 ...
꿈자리를 여럿거쳐 비몽사몽간 뒤척이다
이른 새벽녘에 부스스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기-인 하품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제 마신 소주 몇잔이 부담인 듯
푸석푸석한 얼굴을 씻는둥 마는둥 하고
로션을 몇 번 찍어바른채
주섬주섬 옷을 걸친채로
종종걸음으로 집앞 정거장에 나와
뽕짝이 구성지게 흐르는
덜컹거리는 마을버스를 타고
강남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작년부터 임실 선산을 관리하신분이
벌목을 하자고 하도 채근해서
내내 거절하다가 미안한 마음에 허락을 하고
필요한 서류를 챙겨 시골로 갈 참이다.
여느 외국 공항보다도 휘황찬란한
고속터미널 대합실 매표소에서
전주행 우등 버스표를 사려고 줄을 서 있는데
선 하품이 절로 나온다.
웬 키작은 희멀건 외국인 사내가
어젯밤 웬수같은 술을 얼마나 퍼부었는지
몸을 가누기도 힘든 모습으로
흐물흐물 곧 넘어질듯 말듯한 상태에서
겨우 한손을 벽에 기댄채
동공은 이미 초점을 잃었고
슬리퍼도 한짝만 발가락을 의지한채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때묻은 카키색 배낭은
대합실 바닥에 내동댕이 친채로
꽁지머리사내는 초라한 행색을 하고
뭘 그리 횡설수설 중얼거리고 있는지 ..
술취한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저렇듯 비슷한 모습인가 보다
금방 동행인 듯한 한 여인이 나타나 뭐라 내뱉고
양볼을 토닥거리더니 중얼거리면서
배낭을 주섬주섬 챙겨주며
한짝 슬리퍼를 겨우 신기더니
속사포처럼 알아들을수도 없는 말을 쏘아대는 꼴이란..
그러나 이게 또 무슨 우연인가
그들은 같은버스 내 뒷자리에 몸을 실었다.
허나 갈수록 태산이라 했던가 ..
최소한의 예의도 무시한채
한동안 큰소리로 지껄이는가 싶더니
싸늘한 손님들의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이내 잠잠해졌다.
외국 여행중에 한국인만 큰소리로 떠드는줄 알았는데
작취미성을 감안하드라도 정도가 지나쳐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가졌던 외국인에 대한 좋은 감정이
송두리째 뽑히는 순간이 되고 말았다.
어린이날과 연휴가 겹친관계로
나들이 가족이 많을텐데
아직 이른 아침이라 차량행렬은 그리 길지 않았고
차창밖으로 비친 오월의 모습은
벌써 푸르름으로 가득차 고도 남았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바쁜 회색도시
서울 하늘을 벗어나는 기쁨도 있지만
모처럼 혼자서의 나들이가
웬지 나를 들뜨게 하는가보다 .
저마다 고향가는 모습들이라 그런지
한껏 여유들이 있어보였고
가까운듯 먼듯 내보이는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은
한폭의 동양화 같았다
뻥뚤린 고속도로를
번듯하게 잘생긴 버스가
뒤도 안돌아보고 준마처럼 잘도 달린다
턱 !
이게 무슨소리...
산비둘기 한쌍이 공중에서 곡예 비행을하다
그중 한마리가 찰나의순간 중심을 잃고
버스 앞유리창에다 헤딩을 하고만다
그도 나처럼 밤잠을 설쳤는지
사랑 싸움을 했는지 알길이 없지만
흔적만남기고 장렬하게 사라졌다.
기사님은 흔히 있는 일인양 아랑곳하지않고
양손을 핸들위에 얹고 전방만 주시한채
쌩생 바람을 가른다.
이윽고
바람처럼 달려온 버스가
서울을 떠난지두시간 반 여만에
전주 터미널에다 나를 부려놓는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임실가는 완행버스를 타려고
시내 개천을 끼고돌아
그리 멀지않은 공용 터미널로 발길을 옮겼다.
전주시내 한 복판에다 강산이 변한지 벌써 얼마인데
대합실은 초라하다 못해
너무 허접해보여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수-임실행 완행버스는
승객 대여섯명을 듬성듬성 실은채
미끄럼타듯 주르르 내달린다.
그러나 허름한 차 분위기와는 영 딴 세상마냥
기사님은 친절함이 몸에 물씬 묻어나와
온화한 시골 성님처럼 승차한 손님마다
다정한 인사를 하는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다.
차창에 드리워진 커튼 색깔만큼이나
옛스런 완행버스는
시내를 십여분 달려
간이정류장에 잠시 정차를 하였고
한참만에 젊은이와 깡마른 촌부 한 사람이 차에 올랐다.
차문밖에 칠십이 훨씬 넘어보이는 꾸부정한 촌노가
“이차 남원가요?” 하고 큰소리로 외치니
기사님 왈 “저 앞에서 직행 타시요!”
“뭐라고 쌌소 시방”
“뭐요 ! 안가요-?” 차 엔진소리때문에 잘 안들리는지
할머니가 또 물으니 “직행을 타랑깨 라우 !"
음성은 높았지만 화난 목소리는 영 아니다.
말속에 정이 있다던가 구수한
시골 사투리가 그렇게 정겨울수가 ..
전주외곽을 한참 신나게 달리는 차창 너머로
낯익은 실개천이 흐르고
그 사이사이로 이름모를 들꽃들이
저마다 바람결에 손을흔들며 나를 반기고
나 어릴적 논두렁에서 꼴망태메고 풀베던
아련한 추억에 잠시 젖어도보며
지그시 눈을 감아 본다.
얼마나 달렸을까 ?
휴대전화 작은 진동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양생원이요?” “나 머시기요
"어디쯤 왔소 ! 나 알겠찌라이-- "
"다와서 전화 허시요이--”
내가 말할 틈도 없이
자기목소리만 길게 뺀다.
산 지기 아저씨가 이참에소개한
임목을 벌채할 사람인데
전화로만 두번째 듣는 컬컬한 목소리였다.
열한시쯤 임실 시외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미끄러지듯 솜씨좋게 섰다.
세월의 자국만큼이나 꾀죄죄한 대합실은
빛바랜 어둑한 형광등이 음침하기까지 했고
입구 처마는 울긋불긋 천막을 쳐놓은폼이
흡사 써커스장 외모 같았다.
그런데 웬 구경거리...
좁은입구에 엿판대기처럼 생긴 좌판에
빗이며, 머리핀, 라이터 등등
방물장수라 할만한
갖가지 일용 잡화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좌판 주인이 천하일색이라
내 두눈이 금방 휘둥그레졌다.
늘씬한 각선미에 꽉째인 청바지에다
화려한 블라우스에 진주색 목걸이까지..
여기가 압구정인가 했는데
웬걸 저 얼굴 쌍판때기 좀 보소!!
울퉁불퉁 하회탈인가
아랫도리하고는 영 딴판이라
실망이 이만저만...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이사람 저사람
힐끔힐끔 곁눈질한 폼이 가관일세.
오늘이 장날
시골 터미널치곤 제법 사람들이 북적 거리는데
사십대 초반의 제법 덩치큰 사내가
낮술을 독 채로 퍼 마셨는지
벌써 거나하게 취해
오가는 사람들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금방이라도 싸움을 걸 태세다.
나하고 눈이 마주친 순간
나또한 그쪽을 뚫어져라 맞 쳐다보았더니
갑자기 시선을바꾸고
흐느적 거리며 저쪽으로 걷다가
낡은 의자에 기대앉은 할배에게 다가가
치근대며 수작을 부리기 시작 하는데..
할아버지는 이사람 의 모든것을 꿰뚫은듯
일순 몇마디로 제압해 버린다.
세상에 술이뭔지 알다가도 모를일
오나가나 술타령에 술주정이니 말이다
"성님! 어디가시오?"
”오-수 가그마“
”왜 맨-날 오-수만 가요?“
”헐일있응개 가제이!“
”혹시 거기 애인놔뚱거 아니오?“
”이놈새끼 째깐응게 말이많어“
”아-니 저양반 애인이 한둘이 아니랑개“
”뭐-이 이 놈 !"
"언제 내가 틀린말 헝걸봤소?”
이러자 성님이 잽싸게 이놈에게 군밤을 하나 멕이며
하는 말 "어쯔냐 ! 밤맛이 꿀맛이제 ! "
두손으로 머리를감싸고 방어를 해보지만
순식간에 일어난일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웃음가운데 일어나는
정겨운 시골스런 풍경이라 시간 가는줄 몰랐다.
한참뒤 허름한 자전거를 타고온 이가 내곁에 오더니
‘혹시 양생원아니요?'하고 위아래를 훑은다.
구리빛으로 검게 그을린 얼굴에다
이마에 깊게패인 주름살 사이로
세월의 무게를 혼자 진듯한 이이는
초면인데도 직감으로 나를 알아보고는
퀴즈당첨된 사람처럼
만면에 활짝 미소를 띄며 좋아한다.
이미 약속된 얘기들을 대충 끝내고 나니
점심이나 한끼하고 가라며 소매끝을 붙잡았으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를 떠야했다.
오랜 지기처럼 살갑게 맞아준 고마운 사람들한테
묵은 된장맛처럼 구수한 인심만 갖고 나왔다.
뚜벅 뚜벅 수백보 발품을팔아
정류장에 방금들어온 남원행 완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꼬불꼬불 몇구비넘어 오수정류장
시장바닥처럼 왁짜지껄 소란스럽더니
할머니들이 예닐곱명이 더탔다.
한많은 세월속에
온갖 풍상을 가슴으로 안고
흐르는 세월만큼이나 굵고 깊게 패인
주름살을 훈장처럼 붙들고
섧고 한많은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머리에 이고 살아온
우리 어머님들의 모습이
이모습이 아니던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버스안은 삽시산에 시골장터..
”성님-! 이리오씨요?“
”여기가 최고 죤자리요“
불퉁한 손바닥으로 옆자리를 훔치며
눈짓으로 자리를 권한다
”어-이 동생은 멋샀능가?“
”나말이요 아무꺼이나 사부렀소!“
”아이고 다리야“
”워-메 허리가 끊어질라고 허네“
”아심찮허게 요걸 한봉 줘뿌네요, 성님!“
배즙 한봉지를 방금 시장에서 월산떡이 줬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니
틀니에다가 몇개 남은 앞니가 힘이없어
종착역이 다가와도 봉지는 결국 트지도 못한채
고쟁이 안주머니에 보물처럼 자리를 잡고만다.
”호랭이 물어가고 씨 판디서 제일 좋은것이라고 사다
넘새밭에 심은 모종이 다죽어 부렀어!“
하고 한숨이 끊어지게 깊은 시름을 털어놓은 소박한 시골아낙네...
가난한 남녁네를 만나 한오십년 뼈빠지게 고생만하다
날씨만 궂으면 관상대보다 더 정확하게
일기예보를 기막히게 맞히는 고향의 어머니...
등허리 다휘도록 일터를 벗삼아
오랜 논밭 일구느라 거북등처럼 휘고 굳어버린
군살박힌 손등을 훈장처럼 달고다닌 고단하신 어머니..
이런 어머님의 고생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처럼 잘사는게 아닌지 ..
갑자기 효자가 된것처럼 버스속의 어머님 모습에서
우리 어머님을 어렴풋이 그려본다.
”성님! 잘 가시오 이-“
”그래 자네도 잘가소-오 "
매일 만난 사람들인데도 저마다 헤어짐이 아쉬운듯
저멀리 사라질때까지 까만손을 흔든다.
“외산떠-억 ! 내일 중터떡집으로 오소이-”
“알았그마이라 거시기...”
파아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순식간에 소나기가 세찬 바람과 함께 몰아친다.
때이른 초여름 같은 휴일오후에
대지를 훑고간 한무리 소나기가
시원한 청량제처럼 가슴을 후련하게 타고 흐른다.
이렇게 고마운 단비가 내리다니..
나혼잣소리로 중얼거린다
이제 서울로 갈 시간..
점심을 먹은후 나른한 포만감에
긴- 하품을 하며
빗속을 총총히 뚫고
남원외곽인 고속터미널로 발길을 옮겼다.
후루루 내린 빗물이
듬성한 내 머리카락를 부여잡고
금새 뒷목을 타고 흐른다
촉촉한 이마를대충 손으로 훔치며
대합실로 들어서는데
"워-메 이게 누구요?"
하며 반기는 낯설지않은사람
선배 서한범교수가 아닌가
만난지 칠팔년은 됐을텐데
너무도 우연케 보게되다니..
우리나라 국악계의 보배인 그는
문외한인 나에게 단소를 가르쳐 주신분인데
남원춘향제 판소리 경연대회 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가 귀경하는 길이란다.
연휴라 귀경길 도로사정이 간단치 않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중에서
모처럼의 해후를 만끽하듯
그동안 못다한 얘기들을
실타래 풀듯 하다보니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주고 받는 얘기 가운데
그분도 나처럼
모든것에 대한 불만이 많은것같다
내 허물은 감춰진 채로..
우리는 새벽1시가 되어서야 터미널에 도착 했는데
아스팔트에 발을딛는순간
매캐한 냄새가 나를 맞는다.
내린순간 숨이 꽉 막히고
눈이 시린것 같다
싫다 ,정말싫다 서울이 밉다.
이래서
가끔 혼돈의 서울을 탈출하여
저멀리 시골로 나들이를 가련다.
가서 헝클어진 마음을 다잡은후
조금은 정리된 마음으로 살고프다
그래 나는 본디 촌놈이 아니더냐!
☆오늘이 마침 어버이날. 엊그제 시골을 다녀와
그날의 풍경을 두서없이 읖조리고나니 한없이 부끄럽네
친구! 내가 작가가 아니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게나 -
이천칠년 오월 팔일 봉 규 |
첫댓글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드뎌 반포대감이 행차하셨군![~](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 그려 이렇게 자주 글좀 올리게나... (근데 지금이 5월이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 ![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참 , 5월8일 끄적 끄적 했는데 이제야 올려놨네 너무 나무라지말게나 얼굴 빨개지게시리...
반포대감님!!!! 살아가는 삶속의아 름답고 멋있는 글이여......ㅎ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날짜를 고치면 되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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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 호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