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1. 아싸
    2. 우렁각시
    3. 푸른바다
    4. 고국원왕
    5. 은꽃비
    1. 김용만
  • 가입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김월회
    2. 인권연대1
    3. 권혁수
    4. 강서구
    5. 과거와 미래
    1. 지리능선
    2. dbrltkd
    3. 숲가치플러스
    4. 하라발가순
    5. edev
 
 
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왜왕 무의 국서로 본 백제-왜의 관계
청골 추천 0 조회 917 13.07.01 15:01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3.07.01 19:45

    첫댓글 475년 개로왕 사후 백제는 없어지고 남부여로 국명을 바꿉니다.
    공주로 천도한 후에 남부여의 국력은 상당히 약해져서 그 당시 모한과 가라 신라를 점령한 왜가 남부여를 속국으로 거느리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것이 왜왕 무가 7개국 사지절 도독이 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개로왕의 여러왕자중 하나인 무가 왜국의 왕인 흥을 제거하고 왜국 왕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높다고 보여집니다만 개로왕과 문주왕이 왜의 제와 흥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않나 생각됩니다.

  • 13.07.01 19:51

    1. 찬(贊)이 죽자 아우 진(珍)이 임금이 되었다. (贊死弟珍立)
    2. 제(濟)가 죽자 세자 흥(興)이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濟死世子興遣使貢獻)
    3. 흥(興)이 죽자 아우 무(武)가 임금이 됐다. (興死弟武立)
    ==
    2번은 제대로된 왕위계승을...
    1번과 3번은 왕위찬탈이나 제대로된 왕위계승이 아닌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작성자 13.07.02 09:32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기에 '국왕과 태후, 왕자 등이 모두 적의 손에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475년에 살아남은 왕자는 문주왕과 무령왕이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왕 무의 사망한 부형 중에 형이 문주왕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과 제의 관계가 모호한 점으로 볼 때 1-2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13.07.02 09:05

    매우 개연성 높은 추론이라고 생각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