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푸른사상>, 2026년 가을호
박인환의 시에 나타난 세계 평화의 인식
맹문재
1. 들어가는 말
박인환의 시작품들이 세계의 평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의 시 세계에 대해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존의 평가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인환의 시작품을 전면적이면서도 새로운 관점으로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인환이 살아가던 20세기에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그런데 박인환이 살지 않은 21세기에도 전쟁은 지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얼룩진 지난 세기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과학 기술의 발전, 이성의 증대, 종교의 힘 등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기대했지만, 그 희망은 신기루에 불과했다.
2003년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9․11테러 일으킨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략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고, 2026년 미국과 이스라엘이 합세해서 이란을 침략했다. 영토 분쟁, 종교 및 민족 갈등, 에너지 분쟁 등으로 전쟁의 양상은 복잡하지만, 20세기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국가의 약소국가에 대한 식민지 전쟁으로 규정할 수 있다.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약소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식민 정책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약소국 국민들은 막대하게 희생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세계의 평화를 추구한 박인환의 시들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박인환은 시 외에도 산문, 평론, 영화평론, 번역 등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세계의 평화를 추구했다. 이 글에서는 지면 관계상 나머지 분야는 다음의 과제로 남겨둔다.
2. 시작품의 세계 평화 인식
1)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항전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세계사의 영향 관계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한국은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간섭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박인환은 새로운 식민지 지배를 시도하는 제국주의 국가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를 모색했다. 그 결과 완전한 독립 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일제 잔재의 청산, 봉건 잔재의 극복 등과 마찬가지로 민중이 나서야 한다고 보았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홍콩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의 상황을 간파하고 그들과의 연대를 추구한 것도 그 모습이었다.
박인환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를 받는 약소 민족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민족 자결주의의 확대, 러시아 혁명의 성공, 세계대전 이후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의 약화, 일본 제국주의 붕괴 등 세계사의 흐름을 간파했다. 그 결과 식민 지배를 받는 약소국가들의 민중이 단결하여 항전하면 민족의 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다.
동양의 오케스트라
가믈란의 반주악이 들려온다
오 약소민족
우리와 같은 식민지의 인도네시아
300년 동안 너희 자원은
구미 자본주의 국가에 빼앗기고
반면 비참한 희생을 받지 않으면
구라파의 반이나 되는 넓은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가믈란은 미칠 듯이 울었다
홀란드의 58배나 되는 면적에
홀란드인은 조금도 갖지 않은 슬픔을
밀림처럼 지니고
7천73만 인(人) 중 한 사람도
빛나는 남십자성은 쳐다보지도 못하며 살아왔다
수도 족자카르타
상업항(商業港) 수라바야
고원 분지의 중심지 반둥의 시민이여
너희들의 습성이 용서하지 않는
남을 때리지 못하는 것은
회교(回敎) 정신에서 온 것만이 아니라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가 붕괴한 다음
홀란드의 식민 정책 밑에
모든 힘까지도 빼앗긴 것이다
사나이는 일할 곳이 없었다 그러므로
약한 여자들이 백인 아래 눈물 흘렸다
수만의 혼혈아는
살길을 잃어 애비를 찾았으나
수라바야를 떠나는 상선(商船)은
벌써 기적을 울렸다
홀란드인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처럼
사원(寺院)을 만들지 않았다
영국인처럼 은행도 세우지 않았다
토인(土人)은 저축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저축할 여유란 도무지 없었다
홀란드인은 옛말처럼 도로를 닦고
아세아의 창고에서 임자 없는 사이
자원을 본국으로 끌고만 갔다
주거와 의식은 최저도(最低度)
노예적 지위는 더욱 심하고
옛과 같은 창조적 혈액은 완전히 부패하였으나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생의 광영은 홀란드의 소유만이 아니다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인민의 해방
세워야 할 늬들의 나라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성립하였다 그런데
연립 임시정부란 또다시 박해다
지배권을 회복하려는 모략을 부숴라
이제는 식민지의 고아가 되면 못쓴다
전 인민은 일치단결하여 스콜처럼 부서져라
국가 방위와 인민 전선을 위해 피를 뿌려라
300년 동안 받아온
눈물겨운 박해의 반응으로
너희 조상이 남겨놓은
야자나무의 노래를 부르며
홀란드군의 기관총 진지에 뛰어들어라
제국주의의 야만적 제재는
너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욕
힘 있는 대로 영웅되어 싸워라
자유와 자기 보존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야욕과 폭압과 비민주적인
식민 정책을
지구에서 부숴내기 위해
반항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라
참혹한 몇 달이 지나면
피 흘린 자바섬(島)에는
붉은 칸나의 꽃이 피려니
죽음의 보람이 남해의 태양처럼
조선에 사는 우리에게도 빛이려니
해류가 부딪치는 모든 육지에선
거룩한 인도네시아 인민의
내일을 축복하리라
사랑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고대문화의 대유적(大遺蹟) 보로부두르의 밤
평화를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가믈란에 맞추어 스림피로
새로운 나라를 맞이하여라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전문(『신천지』, 1948. 2)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인도네시아는 1942년부터 지배받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전의 지배국이던 네덜란드가 다시 식민 통치를 시도했다. 박인환은 그와 같은 상황에 맞서 “제국주의의 야만적 제재는/너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욕”이라고 진단하고, “반항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라”라고 항전을 촉구했다.
박인환이 제시한 민중 항전은 식민지 지배를 받는 국가가 해방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배받는 국가의 입장으로 보면 제국주의 국가의 정부는 인정될 수 없다. 식민지의 국가에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이었고, 식민지의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민지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와 화해하든가 타협해서는 완전한 해방을 이룰 수 없다. 박인환은 그 사실을 간파하고 인도네시아 민중들에게 투쟁할 것을 역설한 것이다.
위의 작품에 나오는 가믈란(gamelan)은 인도네시아의 민속 합주 음악 또는 그 악기들이고, 홀란드(Holland)는 네덜란드의 영어 이름이며, 남십자성(南十字星)은 남쪽 하늘의 은하수 가운데에 위치하여 ‘十’ 자 모양을 이루는 네 개의 별이다. 족자카르타(Djokjakarta)는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에 위치하는 도시로 전통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수라바야(Surabaya)는 인도네시아의 자바섬 중북부에 있는 항구 도시이며, 반둥(Bandung)은 인도네시아의 서부 자바섬에 위치한다. 보로부두르(Borobudur)는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 욕야카르타 북쪽에 있는 불교 유적이고, 스림피(Srimpi)는 인도네시아 자바의 고전 춤이다.
거북이처럼 괴로운 세월이
바다에서 올라온다
일찍이 의복을 빼앗긴 토민(土民)
태양 없는 마레
너의 사랑이 백인의 고무원(園)에서
소형(素馨)처럼 곱게 시들어졌다
민족의 운명이
크메르 신(神)의 영광과 함께 사는
앙코르와트의 나라
월남 인민군
멀리 이 땅에도 들려오는
너희들의 항쟁의 총소리
가슴 부서질 듯 남풍이 분다
계절이 바뀌면 태풍은 온다
아세아 모든 위도(緯度)
잠든 사람이여
귀를 기울여라
눈을 뜨면
남방(南方)의 향기가
가난한 가슴팍으로 스며든다
―「남풍」 전문(『신천지』, 1947. 7)
위의 작품에서 박인환은 “일찍이 의복을 빼앗긴 토민(土民)/태양 없는 마레”인 말레이시아, “민족의 운명이/크메르 신(神)의 영광과 함께 사는/앙코르와트의 나라”인 캄보디아, 그리고 오늘날의 베트남인 “월남”, 그 나라들의 민중들이 외치는 “항쟁의 총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1941년부터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받은 말레이시아는 해방되었지만, 이전의 지배국이던 영국이 다시 식민지로 전환하려고 했다. 1942년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은 캄보디아와 1940년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은 베트남(월남)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해방되었지만, 이전의 지배국인 프랑스가 다시 식민지 통치를 시도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민중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항전했다. 박인환은 그들의 외침이 한국 땅에도 들려오기를 기대했다. 오랫동안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 뒤 해방되었지만, 진정한 민족 국가를 이루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민중들의 항전을 희망한 것이다.
사진잡지에서 본 향항(香港) 야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중일전쟁 때
상해 부두를 슬퍼했다
서울에서 30킬로를 떨어진 곳에
모든 해안선과 공통되어 있는
인천항이 있다
가난한 조선의 프로필을
여실히 표현한 인천 항구에는
상관(商館)도 없고
영사관(領事館)도 없다
따뜻한 황해의 바람이
생활의 도움이 되고자
냅킨 같은 만내(灣內)에 뛰어들었다
해외에서 동포들이 고국을 찾아들 때
그들이 처음 상륙한 곳이
인천 항구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은주(銀酒)와 아편과 호콩이 밀선(密船)에 실려오고
태평양을 건너 무역풍(貿易風)을 탄 칠면조가
인천항으로 나침(羅針)을 돌렸다
서울에서 모여든 모리배는
중국서 온 헐벗은 동포의 보따리같이
화폐의 큰 뭉치를 등지고
황혼의 부두를 방황했다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宿舍)와
주둔소의 네온사인은 붉고
정크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언 잭이 날리던
식민지 향항(香港)의 야경을 닮아간다
조선의 해항(海港)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간다
―「인천항」 전문(『신조선』, 1947. 4)
박인환은 “조선의 해항(海港) 인천의 부두가/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간다”라고 우려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홍콩의 지배권이 일본에서 다시 영국으로 넘어갔는데, “인천항”으로 상징되는 한국 역시 새로운 식민지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인천항은 “해외에서 동포들이 고국을 찾아들 때/그들이 처음 상륙한 곳”일 정도로 역사적인 장소였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상관(商館)도 없고/영사관(領事館)도 없”을 정도로 위상과 그 역사성이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은주(銀酒)와 아편과 호콩이 밀선(密船)에 실려”오는 상황이었다. 밀선을 타고 국내에 마약인 아편이 들어오는 것은 심각한 사태이다. 박인환은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 벌어지는 그와 같은 식민지 통치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는 것이다.
2) 한국전쟁으로 인한 반전(反戰) 의식
박인환이 세계의 평화를 추구한 데는 한국전쟁의 영향이 컸다. 박인환에게 한국전쟁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성장해온 그 어떠한 시대보다 혼란하였으며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 것이었다”(『선시집』 후기). 실제로 3년 1개월간 지속된 한국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국군 621,479명(전사/사망 137,899명, 부상 450,742명, 실종 24,495명, 포로 8,343명), 유엔군 154,878명(전사/사망 40,667명, 부상 104,280명, 실종 4,116명, 포로 5,815명), 북한군(중공군 포함) 366,000여 명(전사 116,000여, 부상 220,000여, 실종/포로 29,000여)이나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옥, 교통, 체신, 병원 시설, 공장 등 사회적 기반이 파괴되었고, 천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박인환은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나의 재산과 친우가 떠났다./인간의 이지를 위한 서적 그것은 잿더미가 되고/지난날의 영광도 날아가 버렸다”(「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 슬픔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새벽에 돌아가는 길 나는 내 친우가/전사한 통지를 받았”(「무도회」)고, “여러 차례의 살육에 복종한 생명보다도/더한 복수와 고독을”(「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희생당한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를 추모하기도 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목마와 숙녀」 부분(『시작』, 1955. 10)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는 1941년 3월 28일 남편에게 애정 깊은 편지를 남기고 우즈강에 투신자살했다. 편지의 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에 맞서 전쟁에 반대하며 작가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쟁의 폭력, 추행, 성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였다.
울프는 1912년 블룸즈버리 그룹의 구성원이자 정치평론가인 레너드 시드니 울프(Leonard Sidney Woolf)와 결혼했다. 남편은 울프가 작품 활동하는데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 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자 울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남편인 레너드는 유태인이었고 정치평론가였기에 독일군에 잡히면 잔혹한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울프는 나치스의 자비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박인환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공포감과 불안감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희생당한 버지니아 울프와 연결하면서 전쟁의 폭력성을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인류적인 차원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상실감과 허무함을 극복하려고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려고 했다.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 것이다.
박인환이 한국전쟁을 세계사적인 차원으로 인식한 것은 미국 여행에서도 확인된다. 박인환은 1955년 3월 5일 대한해운공사의 상선 남해호를 타고 부산항을 출발해 일본을 거쳐 미국 여행을 했다. 3월 22일 미국 워싱턴주 올림피아항에 입항해서 필요한 수속절차를 거친 뒤 올림피아, 터코마, 시애틀, 에버렛, 아나코테스, 포트엔젤레스, 포틀랜드 등을 다녔다. 그러는 동안 미국인들을 만나 한국전쟁을 공유했다. “한국에서 전사한 중위의 어머니는/이제 처음 보는 한국 사람이라고 내 손을 잡고/시애틀 시가를 구경시킨다./많은 사람이 살고/많은 사람이 울어야 하는/아메리카의 하늘에 흰구름”(「어느 날」)을 바라보며 한국전쟁의 아픔을 함께 품은 것이다.
3. 세계 시문학의 창조적 수용
1) 엘리엇 시론의 영향
박인환은 모더니즘 시를 추구하기 위해 영미 시인들의 시론을 적극적으로 탐색했는데, 그중에서도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의 시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박인환의 엘리엇에 대한 관심은 “어느 날 다방에서 T. S. 엘리엇의 「황무지」의 번역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분을 쳐다보았더니 그는 내가 잘 아는 C씨의 친우인 김경희(金景熹) 씨라는 것을”(『신시론』 후기) 알고, 그 즉시 『신시론』의 동인으로 영입할 정도로 지대했다.
엘리엇은 20세기의 모더니즘 문학을 이끌었는데, 1922년 『크라이테리언』(The Criterion)에 발표한 뒤 간행한 『황무지』(The Waste Land)가 그 대표적인 시집이다. 엘리엇은 시인의 작품은 한 개인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라고 인식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한 유럽 문명의 붕괴와 그에 따른 정신적인 위기감을 담았다.
『황무지』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죽은 자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d), 제2부는 체스 게임(A Game of Chess), 제3부는 불의 설교(The Fire sermon), 제4부는 익사(Death by Water), 제5부는 천둥이 말한 것(What the Thunder Said) 등이다. 『황무지』는 고대의 성배 전설과 프레이저의 원형의 신화, 『성서』, 『우파니샤드』 등을 참고하고 단테, 보들레르, 셰익스피어 등을 인용하면서 유럽의 암울한 상황을 그렸다. 그러면서도 유럽 문명의 위기에 함몰되지 않는 생명의 부활을 추구했다.
박인환은 “‘후반기’에 속하는 시인의 대부분은 1920년대에 이 불안의 세계에 태어났다”(「현대시의 불행한 단면」)라고 진단했다. 모더니즘 시를 쓰는 후반기 동인 시인들이 겪은 한국전쟁의 상황을 엘리엇이 「황무지」를 발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유럽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그 결과 박인환은 복잡한 사회를 반영하려면 시가 난해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 엘리엇의 시론을 수용해서 창작했다.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거의 모두가 미래의 시간 속에 나타난다
(T. S. 엘리엇)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 차례의 살육에 복종한 생명보다도
더한 복수와 고독을 아는
고뇌와 저항일지도 모른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허물어지는
정적과 초연(硝煙)의 도시 그 암흑 속으로……
명상과 또다시 오지 않을 영원한 내일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유형(流刑)의 애인처럼 손잡기 위하여
이미 소멸된 청춘의 반역을 회상하면서
회의와 불안만이 다정스러운
모멸의 오늘을 살아나간다.
…… 아 최후로 이 성자의 세계에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속죄의 회화 속의 나녀(裸女)와
회상도 고뇌도 이제는 망령에게 판
철없는 시인
나의 눈감지 못한
단순한 상태의 시체일 것이다……
― 박인환,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전문(『수험생』, 1952. 11)
박인환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거의 모두가 미래의 시간 속에 나타난다”라는 엘리엇의 말을 인용하면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더한 냉혹하고 절실한/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라고 토로한다. 사는 일이 죽는 일보다 냉혹하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전쟁으로 인한 삶의 조건이 힘들다는 것을 나타낸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여러 차례의 살육에 복종한 생명보다도/더한 복수와 고독을 아는/고뇌와 저항일지도 모른다”라고 토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박인환은 “성자의 세계”를 찾는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그것은 속죄의 회화 속의 나녀(裸女)와” 같다고 말한다. 또한 “회상도 고뇌도 이제는 망령에게 판/철없는 시인”으로서 “단순한 상태의 시체”라고 토로한다. 어떠한 의지도 갖지 못하고 어떠한 탈출구도 마련하지 못하는 자신을 신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존재인 인간이 신 앞에서 무릎을 꿇는 행동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있는 존재로서 신을 찾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한국전쟁은 인간의 이성과 존엄성을 파괴한 것이다. 따라서 화자가 “성자”를 찾은 것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생존하려는 절박한 행동이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신과 함께하려는 것이다. 곧 제1차 세계대전 후 서구의 타락한 상황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생명을 살리려고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추구한 주제의식과 상통하는 것이다.
2) 스펜더 시론의 영향
박인환은 엘리엇의 세계 인식을 수용하면서 한층 더 한국의 상황을 인식하기 위해 스티븐 스펜더(Sir Stephen Spender, 1909∼1995)의 시론을 수용했다. 엘리엇이 분열된 현대인들을 통합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는 힘을 문학과 종교 차원으로 모색했다면, 스펜더는 “엘리어트의 종교적 구원이라는 해결책에 회의적이었고, 그것이 사회의 의미들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엘리어트의 종교적 구원이 극히 개인적이”어서 “그 해결책을 개인이 아닌 집단에서, 그리고 막시즘에서” 찾으려고 했다. 박인환은 스펜더가 제시한 그 ‘집단’을 발견하고 모더니즘 시를 추구했다.
스펜더는 박인환의 시 세계에 가장 영향을 끼친 시인이자 비평가였다. “나는 오래 전부터 S. 스펜더 씨의 시 작품과 그 문예 비평 또한 그의 시인으로서의 사회적 참가에 크게 공명한 나머지 해외의 시인으로서는 그의 오랜 친우인 W. H. 오든과 아울러 가장 존경했고 건방진 표현이긴 하나 크게 영향을 받은 바 있다”(「S. 스펜더 별견(瞥見)」)라고 밝힌 데서 확인된다. “처음 이 시집은 ‘검은 준열의 시대’라고 제(題)하려고 했던 것을 지금과 같이 고치고 4부로 나누었다”(『선시집』 후기)라고 밝힌 데서도 볼 수 있다. 박인환은 자신의 시집 제목을 처음에는 『검은 준열의 시대』로 정했는데, 스펜더가 『선시집』을 출간하자 곧바로 그를 따라 시집 제목을 『선시집』으로 바꾼 것이다.
박인환은 스펜더를 「S. 스펜더 별견(瞥見)」(1953)을 통해 상세하게 소개했다. 이 글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1933년 런던에서 출간된 사화집 뉴컨트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성장한 젊은 시인 집단인 뉴컨트리파의 최초 엔솔로지로서 현대시의 기반이 되었다. 스펜더는 이 사화집에 「시와 혁명」이란 에세이를 발표했다. 뉴컨트리파 시인들의 입장을 대표하는 성명서이자 사회주의 시인으로서 시를 쓰게 된 뒤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었다. 이 글에서 스펜더는 시를 쓴다는 행위가 순수한 개인의 문제였던 시대는 떠나갔다고 단언하면서 시의 사회적 효용성을 주장했다. 그의 선배인 엘리엇이나 파운드(Ezra Loomis Pound) 등의 시 세계와 단절하고 오든 등과 불안한 시대를 정신적인 배경으로 믿고 사회주의적인 시를 쓴 것이다. 엘리엇과 파운드가 붕괴해 가는 세계를 종교적인 방법으로 구하려고 한 것에 반해, 스펜더는 정치적인 방법을 추구했다. 시인이란 그 사회를 계몽하여 인도하는 특별한 임무를 지닌 존재라고 인식했다. 그뿐만 아니라 뉴컨트리파의 시인들과 함께 스페인에 의용군으로 진출하는 등 정세의 변동에도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이와 같은 스펜더의 모더니즘 운동은 전 세계에 공감을 주어 “일본에 있어서의 ‘신영토(新領土)’ 이후의 현대로 전개되었고 한국에 있어서는 김기림 이후의 새로운 시로써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박인환의 스펜더에 대한 소개는 「현대시의 불행한 단면」에 이어 「현대시의 변모」로 이어졌다. 엘리엇 이후 뉴컨트리파의 운동을 소개하면서 “현대의 정치와 사회의 심연에서 허덕이는 인간의 정신과 행위를 노래한 이들이 훨씬 오늘의 시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현대시의 변모」)라고 밝혔다. 한국전쟁을 겪은 박인환은 스펜더의 세계 인식을 자신이 추구하는 모더니즘 시의 거울로 삼았다. 문학은 시대와 분리될 수 없다는 스펜더의 주장을 수용하고 평화의 세계를 지향한 것이다.
After the first powerful, plain manifesto
The black statement of pistons, without more fuss
But gliding like a queen, she leaves the station.
Without bowing and with restrained unconcern
She passes the houses which humbly crowd outside,
The gasworks, and at last the heavy page
Of death, printed by gravestones in the cemetery.
Beyond the town, there lies the open country
Where, gathering speed, she acquires mystery,
The luminous self-possession of ships on ocean.
It is now she begins to sing— at first quite low
Then loud, and at last with a jazzy madness—
The song of her whistle screaming at curves,
Of deafening tunnels, brakes, innumerable bolts.
And always light, aerial, underneath,
Retreats the elate metre of her wheels.
Streaming through metal landscapes on her lines,
She plunges new eras of white happiness,
Where speed throws up strange shapes, broad curves
And parallels clean like trajectories from guns.
At last, further than Edinburgh or Rome,
Beyond the crest of the world, she reaches night
Where only a low stream-line brightness
Of phosphorus on the tossing hills is light.
Ah, like a comet through flame, she moves entranced,
Wrapt in her music no bird song, no, nor bough
Breaking with honey buds, shall ever equal.
― Stephen Spender, 「The Express」
궤도 위에 철(鐵)의 풍경을 질주하면서
그는 야생(野生)한 신시대의 행복을 전개한다—스티븐 스펜더
폭풍이 머문 정거장 거기가 출발점
정욕과 새로운 의욕 아래
열차는 움직인다
격동의 시간
꽃의 질서를 버리고
공규(空閨)한 나의 운명처럼
열차는 떠난다
검은 기억은 전원(田園)에 흘러가고
속력은 서슴없이 죽음의 경사(傾斜)를 지난다
청춘의 북받침을
나의 시야에 던진 채
미래에의 외접선(外接線)을 눈부시게 그으며
배경은 핑크빛 향기로운 대화
깨진 유리창 밖 황폐한 도시의 잡음을 차고
율동하는 풍경으로
활주하는 열차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관습과
봉건의 터널 특권의 장막을 뚫고
피비린 언덕 너머 곧
광선의 진로를 따른다
다음 헐벗은 수목(樹木)의 집단 바람의 호흡을 안고
눈이 타오르는 처음의 녹지대
거기엔 우리들의 황홀한 영원의 거리가 있고
밤이면 열차가 지나온
커다란 고난과 노동의 불이 빛난다
혜성보다도
아름다운 새날보담도 밝게
—박인환, 「열차」 전문(개벽, 1949. 3)
위의 작품은 스티븐 스펜더의 「급행열차」에 나오는 “궤도 위에 철(鐵)의 풍경을 질주하면서/그는 야생(野生)한 신시대의 행복을 전개한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듯이 스펜더의 영향을 받았다. 아울러 스펜더의 작품과 동일하게 27행으로 구성했고, 유사한 시어들을 활용했다. “정거장”, “열차”, “속력”, “죽음”, “도시”, “전원”, “밤”, “혜성” 등과 같은 시어들은 스펜더의 작품에서 주요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스펜더가 「급행열차」에서 어두움을 극복하려고 제시한 밝은 이미지 역시 위의 작품에서 발견된다. “폭풍이 머문 정거장 거기가 출발점/정욕과 새로운 의욕 아래/열차는 움직인다”라고 한 데서 확인되듯이 화자는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열차를 타고 있다. “격동의 시간”은 진정한 민족 국가 건설을 위한 열망이 넘친 해방기를 가리킨다. 그 시기는 “꽃의 질서”마저 무시될 정도로 혼란하였고, 오랫동안 남편 없이 지내는 아내의 “공규(空閨)한” 운명처럼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화자는 그와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열차에 승차했다. 그리하여 “검은 기억은 전원(田園)에 흘러가고/속력은 서슴없이 죽음의 경사(傾斜)를 지”나고 있다. 화자가 탄 열차는 암울한 기억을 떨쳐버리고, 죽음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탈출한다. 열차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날 만큼 속력을 내는데, 화자가 해방기의 혼란한 상황을 회피하거나 소극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자신이 겪는 상황을 일종의 과도기로 보고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화자가 탄 열차는 “미래에의 외접선(外接線)을 눈부시게 그으며” 달려나간다. 그 “배경은 핑크빛 향기로운 대화”가 이루어진다. 내면에는 “청춘의 북받침”이 있고, 외면에는 “깨진 유리창 밖 황폐한 도시의 잡음”이 있지만, 화자는 “시야에 던진 채” “율동하는 풍경으로/활주”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관습과/봉건의 터널 특권의 장막을 뚫”는 것은 물론 “피비린 언덕 너머”로 달려가는 것이다. “광선의 진로를 따”라 달려간 열차가 다다른 곳엔 “황홀한 영원의 거리가 있”다. “열차가 지나온” “밤”에 이르면 “커다란 고난과 노동의 불이 빛”나는 것이다. “혜성보다도” 밝고 “아름다운 새날보담도 밝”은 그곳은 스펜더가 추구하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4. 번역 시 나타난 세계의 평화
박인환은 반전운동과 반핵운동을 이끈 알렉스 컴포트(Alex Comfort)의 「도시의 여자들을 위한 노래」를 번역했다. 박인환이 세계의 평화를 추구한 관심과 열정이 상당히 넓은 것을 알 수 있다.
오 눈(雪)과 불타는 포화의 세계여
밤과 요동하는 램프의 국토여
오 동포와 적의 밤이여
나는 그대와 만났다 그대는 또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대의 손은 고독에 빠져 있는 애인들과
모든 노래와 아직 출생하지 않은 어린애에의
복수에 빛나는 별로서 가득 차 있다
포화 속의‘애애(哀愛)로운 공주’여
그 여자의 애인은 전사했다
그 여자의 애인은 전사했다―
모든 공동(空洞)의 자궁을 위해 해어진 손가락을 위하여
복수는 불꽃이 되어 저편 별들을 향하여 비상한다
그 여자를 위해 불은 눈과 같이 차광(光)의 바람 속에서 나르는 흰 새와 같이
또다시 내려올 것이다
그 여자를 위해 포화는 바람에 섞여 거리거리는
뛰어가는 발과 불의 흐름을 동반하고 빛나고 있다
그 여자의 애인은 전선에서 죽었다
그 여자를 위하여 눈(雪)은 흰 하늘에
조용하게 흐르면서 합치는 개울처럼 사랑의 사람이 된다
소녀들이 유행하는 조용한 노래를 부르는 들판에서
그들의 손가락과
불타는 지붕과 뛰어가는 발은
그 여자의 상부(喪夫)에 복수하려고 친한 형제들모양 그 여자를 뒤를 따른다
그러면 높이 날아가는 포화는 지금 또다시 그 여자를 뒤따를 것이다
이러한 ‘유다’들에 대한 여자들의 분노여
오 저 창백한 신부는 그 여자의 뒤를 따르고
그 여자의 눈물로 빛나는 머리를 빨 것이다!
― 알렉스 컴포트, 「도시의 여자들을 위한 노래」(『시작』, 1954. 7)
위의 작품의 화자가 마주한 상황은“오 눈(雪)과 불타는 포화의 세계여/밤과 요동하는 램프의 국토여/오 동포와 적의 밤이여”라고 노래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전쟁이다. 포화로 세계가 불타고 국토가 요동치고 동포와 적의 밤이 놓여 있다. 그리하여 “포화 속의 ‘애애(哀愛)로운 공주’”의 “손”에는 “복수에 빛나는 별로서 가득 차 있다”. “복수는 불꽃이 되어 저편 별들을 향하여 비상”하는데, 그 이유는 “그 여자의 애인”이 “전사했”기 때문이다. 알렉스 컴포트의 1940년대 반전운동은 1950∼60년대의 반핵운동으로 이어졌다. 궁극적으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연으로부터 오는 죽음에 대항하기 위해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인간의 노화에 대해 연구하며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가에 매달렸다. 사회로부터 오는 죽음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자 및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했다. 그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빠져들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전쟁을 지목했다.
5. 나오는 말
박인환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제국주의 국가들의 새로운 식민지 지배 침략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중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와 같은 세계 인식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홍콩 등의 민중 투쟁을 응원하며 그들과의 연대를 추구한 데서 확인된다.
또한 박인환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전쟁의 잔인함과 거대한 폭력성을 고발했다.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고통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었고, 허무함과 상실감을 노래했다. 아울러 한국전쟁의 문제를 세계사적인 관점으로 인식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희생당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애도하며 노래한 「목마와 숙녀」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박인환은 엘리엇과 스펜더의 시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모더니즘 시를 추구했다.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 뒤 황폐화된 유럽 사회를 새로운 시 형식으로 반영했고, 종교적인 차원을 조합해 인간의 구원을 모색했다. 박인환은 엘리엇의 시론을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의 문제를 정치적인 차원으로 극복하려고 한 스펜더의 시론을 받아들였다. 스펜더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 국가들의 상황이 악화되자 시인의 사회적인 역할을 제시했는데,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은 박인환은 자신의 시 창작에 전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박인환은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었다. 나는 지도자도 아니며 정치가도 아닌 것을 잘 알면서 사회와 싸웠다.”(「『선시집』 후기」)라는 자세로 세계의 평화를 추구했다. 21세기에도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침략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에 박인환이 추구한 시 정신은 현재진행형을 띤다.
맹문재
시론 및 평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 『여성성의 시론』 『시와 정치』 『현대시의 가족애』 등. 엮은책으로 『박인환 번역 전집』『박인환 시 전집』『박인환 영화평론 전집』『박인환 평론 전집』『박인환 산문 전집』 등. 안양대 국문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