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7 아시아문화전당 관람

[범고개]

중머리재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탔다.

버스안은 낮술에 반쯤 거나해진 노년들의 소리로 은성하다.

문화전당 역에서 내려 문화창조원쪽으로 내려간다.

평화원쪽은 조용해 들어가 보지 못한다.

제복을 입은 여성이 다가 와 배낭을 사물함에 넣으란다.

100원짜리가 없어 다른 사물함을 찾는데 거기엔 배낭이 들어가지 않아

데스크에 보관증을 쓰고 맡긴다.

통로인가 앞쪽은 '아시아의 책'전시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사본들이 여러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파주시에서 펴낸 만화와 전시회 팜플렛을 챙겨든다.

해설사인가 나이 지긋한 여성 제복자들이 다가와 말을 건네는데

난 조용히 보겠다고 한다.

한 여성이 차분히 보시라며 하루가 지나가도 다 못 볼 내용이 많다고 하고 간다.

일본인이 수집해 전시한 잡동사니들은 배와 집에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지나 온 물건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지나온 집이나 창고에는 어떤 것들이 날 비켜보고 있을까?

망태? 지게, 무딘 낫 몇 자루, 문행기 공사장에서 훔쳐 온 몇개의 판재?

표지없는 세로줄 무협지, 벙어리 오빠시가 만든 죽석, 책보자기, 떨어진 탁구 빠다---

동남아인 누군가가 책을 열 모양으로 들고서 '공간'이라고 한다.

넓은 공간엔 알 수 없는 조각? 작품이 서 있는데 여성이 다가 와

건축 외장재라고 한다. 세글자로 뭐라 말하는데 또 묻지 못한다.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 나온 작품 중 8개인가가 와 있댄다.

난 모르겠다. 그 여성은 제복을 입은 단체관람자들을 여러번 안내한다.

유규승의 문화전당 설계에 관한 이야기 모니터 앞에서

그 여성의 해설을 대엿번 듣는다. 같은 말을 시간에 맞춰 반복하는 일이라니.

두개의 모니터에 전당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 화면에 유규승이 나와

설계 의도를 설명한다.

5월 광주, 민주와 소통, 광장, 빛 이런 이야기들이 언듯 들린다.

아시아문화전당이 광주의 랜드마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들은 적이 있는 듯한데

지하로 들어가며 광장을 만들고 빛을 끌여들였다는 설명을 들으니 그런갑다 해진다.

문화전당 모형을 내려다보고 장서대 사이를 걷는다.

동아시아에 관한 책들이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있다.

사진에는 나와 내 누이 모습같은 사진도 있다.

내가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했더라면 어디서 구두통을 매고 있을지 연탄실은 리어카를 끌고 있을지 

어느 양복점이나 안경집의 시다를 했겠지.

지나간 잡지와 신문, 레코드 그리고 전시 등에 대한 기획전을 둘러만 본다.

나의 직업에서 떨어진다면 여기 한구석에 앉아 책을 보다가

바깥 대나무 앞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공간을 헤매다가 배낭을 찾는다. 몇번을 더 와야 동선을 헤매지 않을 것 같다.

계단을 올라 5.18민주광장으로 올라오니 석조물 속에 두 그루 나무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