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성사는 가톨릭 신자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제와 두 증인 앞에서 자유로이 사랑의 원의를 드러냄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 성사는 다른 성사와는 달리 부부 자신이 성사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연 상태로 두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혼인을 성사의 차원으로 높이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부부 자신이 성사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혼인성사로 이루어진 부부의 결합은 사랑의 표지이고 주님께서는 이 결합에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으로 부부의 사랑을 길러주십니다.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비신자일 때는 비록 성당에서 혼인예식을 거행하더라도 혼인성사는 아닙니다(관면혼일 뿐입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을 하다가 세례성사를 받으면 바로 그날 자동으로 혼인성사의 은총을 덤으로 받게 됩니다.
한편, 관면혼인을 받는 경우에도 교회법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채워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성사생활이 금지되며 혼인장애(조당)에 걸리게 됩니다.
혼인의 주요 목적
부부는 하느님 사랑의 증거자로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세상과 교회는 부부를 통해서 더 부유해지며, 부부간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자녀들은 부부의 사랑에 의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
혼인성사는 이렇게 항구적인 성사로서 혼인 당일뿐만 아니라 영구적인 계약으로 남아있고, 예수님이 당신 피로 맺으신 새 계약(마태 26,28)을 통해 당신이 교회의 신랑이 되신 것과 같은 관계를 상징하고 나타냅니다.
부부의 사랑은 예수님과 교회의 사랑을 상징하는 만큼(에페 5,32) 새로운 생명의 창조를 지향합니다.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내어주시려고(요한 10,10) 구원이라는 사랑의 결실을 맺으셨듯이, 서로에게 헌신하는 부부의 사랑도 새로운 생명(자녀 출산)이라는 사랑의 결실과 그 성장을 지향해야 합니다.
혼인면담을 할 때 “자녀를 낳을 의향이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면 가끔 “신부님, 애들 키우는 것 힘들고 하니 자녀는 낳지 않고 우리 부부만 잘 살려고 합니다.” 하고 대답하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예, 그러세요.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성당에서 혼인예식을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혼인성사는 부부 사이에만 은총을 주는 것이 아니고 부부가 자녀를 낳아 기르는 데 필요한 은총까지도 줍니다. 그러므로 결혼생활은 자기 한 사람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관련 있는 모든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므로 창조주의 목적에 맞도록 자신들과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완성으로 이끌고 나가야 합니다.
혼인의 특성
· 유일성(혼인의 단일성) :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기 때문에 일부다처제 또는 일처다부제는 안 됩니다.
· 불가해소성(혼인의 연속성) : 배우자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연법상으로 그 계약을 풀지 못함을 말합니다. 합법적 예식을 치르고 부부관계가 이루어졌을 때 완결된 혼인이라고 하는데, 이 완결된 혼인은 연속성을 갖게 됩니다. 곧 배우자의 죽음으로써만 그 인연이 풀린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서는 안 된다.”(마태 19,6)고 하시면서 인간은 풀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이혼이 쉽게 된다고 하면 혼인의 신성성과 신비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배우자의 부족함을 이해하기보다는 더 나은 사람만을 찾아 나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인성사의 은총은 서로 용서하고 일치를 위해 노력할 때 더 깊은 친밀감을 맛보게 해줍니다.
제주도의 혼인잔치
우리 선조들은 혼인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하였습니다. 곧 사람이 무리 지어 살아가는 일 가운데 혼인이 가장 큰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주도에서는 혼인잔치를 사흘 동안 계속했습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이틀 전에는 도새기(돼지) 잡는 날로, 동네 사람들과 친지, 친구들이 모여 돼지를 잡고 음식을 장만합니다. 이른바 ‘동네잔치’입니다.
다음날은 전날 마련한 음식으로 친지와 하객들을 대접하는 날인데 결혼 당일보다 하객들이 더 많이 찾아옵니다. 이날을 ‘가문 잔칫날’이라고도 하는데 성편(부계)과 외편(모계)친지들이 모두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함께 모인 친지들은 다음날 결혼 예식과 관련하여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없는지 다시 살펴보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결혼식 당일에는, 전날 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이 찾아와 신랑과 신부, 혼주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함께 기쁨을 나눕니다.
이처럼 잔치가 열리는 사흘 동안은 온 동네가 축제 분위기로 흥겨웠는데, 이웃들이 자진해서 음식을 마련하는 것을 돕고 자신들의 집을 하객 접대장소로 내어놓는 등 훈훈한 상부상조의 미덕이 살아있었습니다.
특히 잔치 때 도감(돼지고기 등 음식을 비롯하여 모든 의식의 총감독)은 고기가 모자라 혼주가 난처하지 않도록 골고루 배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습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성모님께서 예수님께 부탁드렸던 일을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포도주가 많이 소비되는 것이 손님이 많은 것을 뜻하듯, 제주도에서는 그 잔치 주인이 돼지 몇 마리를 잡았는지가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이웃과의 나눔’이라는 아름다운 풍속이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됐습니다.
혼인, 가정교회의 시작
러시아 속담에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로 항해를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며,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결혼해서 평생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이런 속담까지 있겠습니까?
우리 시대에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가 결혼을 하여 함께 평생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혼인성사를 세우시고 성사의 은총을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신자들의 가정은 ‘가정교회’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받게 되었고(교회헌장, 11항 참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도 ‘작은 교회’ 또는 ‘가정교회’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가정은 교회처럼 예언자직, 사제직, 왕직을 수행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가 하나인 것처럼, 거룩한 것처럼, 보편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직무에 참여하고 교회의 특성을 드러낼 때 그 가정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행복을 다짐하는 요람이 될 것입니다.
“가정은 교회처럼 복음이 전달되는 곳이요, 거기서 복음이 빛나는 곳이기도 합니다”(요한 바오로 2세, 「가정 공동체」, 52항).
2. 성품성사
성품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를 결속시키고자 특별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에게 성직을 수여하고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봉사하게 함으로써, 구원의 은총을 전하고 다른 사람을 성화시키는 데 필요한 은총을 주는 성사입니다.
성품되는 사제직
성품성사로 받는 사제직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모든 신자가 받는 일반사제직과 구분됩니다.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는 성직 사제단의 일원으로 입적되고 봉사자로서 맞갖은 삶을 살도록 성화됩니다.
따라서 사제는 기도와 전례를 행할 때, 말씀을 선교할 때, 성체의 제사를 봉헌할 때, 다른 성사를 거행할 때, 또는 사람들을 위한 그 밖의 직무를 수행할 때에 하느님의 생명 안에 진보시키는 데 기여하게 됩니다.
- 사제는 미사를 집전합니다(히브 5,1). - 사제는 복음을 전합니다(2티모 4,2). - 사제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사제는 개인의 성화와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날마다 성무일도를 바칩니다. - 사제는 결혼생활을 포기합니다. 신자들과 함께 살고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교회에 더 잘 봉사하고자 가정을 포기합니다. - 사제는 영적인 아버지입니다. 신자들을 세례로 낳고, 고해로 치유하고, 성체로 먹여주고, 혼인으로 결혼시키고, 병자성사로 위로하며, 신자들을 가르치고 지도합니다. - 교계적 사제직은 주교, 사제, 부제로 나뉩니다. 주교는 자기 교구 안의 본 목자로서 성직 전반에 걸쳐 권한을 가지며 온 세계의 주교들과 함께 전 세계 교회를 다스립니다.
사제는 주교에 속하며 주교와 함께 교구 사제단의 일원으로, 주교의 협조자입니다. 교구에 속하는 사제를 교구사제 또는 재속사제라 하고, 수도회에 속한 사제를 수도사제라 합니다. 본당을 맡은 사제를 본당신부라 하고, 주임신부를 보필하는 신부를 보좌신부라 칭합니다. 부제는 사제의 위임을 받아 말씀전례와 세례성사를 거행하고, 성체를 분배할 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곧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로마 1,6)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백성을 위하여 따로 제자들을 부르시어 특별한 이름과 권능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두 살 위의 누나가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는 사제가 되어 매일 누나를 위해 미사를 드려야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사제의 길을 선택하고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제생활 30년을 돌이켜보면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나를 선택하신 것이며 성령께서 함께하심을 느낍니다. 이 모든 것에 주님께 감사, 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사제도 나약한 인간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기에 사제직을 수행해 나갈 수 있음을 절감합니다. 사제들을 위해, 성소자들을 위해 신자 여러분이 많이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