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쉬 라이프, 재즈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는 시간여행
세월의 때가 배어있는 오래된 장 전축에 LP를 올려놓는 느낌,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구부렁한 나팔관 아래로 SP레코드가 돌아가던 그 옛날의 축음기로부터 흘러나오던 재즈, 러쉬 라이프의 음악은 바로 그렇게 원초적인 재즈 사운드를 그 방식 그대로 재현하는 밴드이다. 미국남부 뉴올리언스의 거리에서 생겨난 재즈가 미시시피 강을 건너 시카고로, 캔사스와 뉴욕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전파되던 그 찬란했던 순간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러쉬 라이프와의 만남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듯,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한국재즈 1세대의 명맥을 잇는 'Post-딕시랜드' 밴드의 탄생
‘대한민국의 재즈 1세대’의 현존 최고령 재즈 트럼펫터인 강대관 선생은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재즈로의 길을 열어준 은사로 기록되고 있다. 그의 제자는 수도 없이 많지만 대표적으로는 색소포니스트 이정식과 피아니스트 임인건, 보컬리스트 웅산,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러쉬 라이프의 트롬본 연주자인 이한진과 트럼펫터 김예중이 있다. 러쉬 라이프 재즈밴드는 바로 강대관 선생이 이끌었던 ‘딕시랜드 재즈밴드’의 어린 멤버이자 제자였던 트롬보니스트 이한진이 결성한 우리시대의 새로운 딕시랜드 밴드이다.
“그때 저는 강대관 선생의 ‘딕시랜드 재즈밴드’에서 2년 반 정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강대관 선생님 밑에서 재즈를 배운 셈이지요. 저한테는 정말 그런 좋은 기회가 없었습니다. 재즈의 클래식이라고 하는 ‘딕시랜드재즈’를 처음부터 탄탄히 접할 수 있었습니다.” - 이한진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재즈 트롬보니스트 이한진
이한진은 자타공인 한국 재즈계 최고의 트롬본 연주자로, 재즈뿐만 아니라 가요, 클래식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동하고 있으며 일반 대중들 보다는 뮤지션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세션맨이다. 트롬본은 일반적으로 앞으로 나서는 솔로보다는 주로 사운드를 받쳐주거나 미묘한 효과를 유도하는 배음 위주의 파트이지만 재즈 앙상블에서는 독자적인 솔리스트의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이한진의 등장으로 브라스가 중심이 된 정통 딕시랜드 사운드뿐만 아니라 1950~60년대 모던재즈 시대에 유행했던 3관 편성을 축으로 한 6중주, 나아가 그 이상의 빅밴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협주가 가능해졌다는 점은 분명 한국재즈사에 기록될 수확이라 할만하다.
“러쉬 라이프는 결성초기에 3관(색소폰, 트럼펫, 트롬본)이 포함된 6중주였습니다. 이러한 편성은 당시만 해도 국내에 전무했고 우리는 브라스 밴드의 강점을 살려 정통재즈인 뉴올리언스 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한진
결성 7년차 베테랑 신인밴드가 선보이는 1집 앨범
러쉬 라이프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6년이었다. 말하자면 이 팀은 오랜 경력을 쌓아온 뮤지션들이 때로는 뭉치고 때로는 각자 활동하면서 음악적 역량을 키워온 베테랑 신인밴드인 셈이다. 결성 초기의 오리지널 멤버는 이한진과 김예중(트럼펫) 두 사람 뿐이지만 처음 목표했던 음악의 지향점 만큼은 변하지 않고 재즈의 클래식이라 불리는 ‘뉴올리언즈 재즈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이 점이 바로 러쉬 라이프의 첫 앨범이 시선을 모으는 가장 큰 이유다. 본류재즈를 시도하는 젊은 밴드가 전무한 상황 속에서 발표되는 이들의 앨범 [Songs of New Orleans] 속에는 말 그대로 흑백영화 같은 시대를 풍미한 주옥같은 재즈 클래식들과 재기발랄한 오리지널 스코어에 이르기까지, 진하디 진한 재즈의 향취로 꽉 채워져 있다.
“그때 강대관 선생님께서 사주신 플렌져 뮤트를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강대관 딕시랜드재즈밴드’ 가 정규 공연을 하던 대학로의 ‘천년동안동안도’에서 막을 내리게 되면서 대신 저는 친구들과 함께 러쉬 라이프 재즈밴드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재즈 1세대 선생님들의 뒤를 잇는 다는 심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운드를 대한민국에서 들을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한진
"이 음반의 데모버전을 처음 듣는 순간, 나는 그 농염하게 엉켜 붙은 취주(吹奏)사운드와 위트 넘치는 싱커페이션의 세계로 단숨에 빠져들었다. 시골장터 같은 소란스러움과 달콤한 버번위스키 같은 노래들, 리듬과 멜로디 사이사이를 유연하게 굴러다니는 달빛 같은 피아노에 밤새워 흠뻑 취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젊은 딕시랜드 밴드는 어디서 나타난 걸까!”
- 남무성(재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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