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찬송으로 나아가자
성령강림주일을 앞두고 절기 동안 부를 ‘예배를 여는 찬송’을 고민하였다. ‘바이블 25’와 ‘당당뉴스’에서 토요일마다 교회음악을 주제로 칼럼을 쓰는 조진호 목사에게 부탁하였다. 꽤 오래 망설인 모양인 듯, 거의 임박하여 응답이 왔다. 미국 찬송 ‘성령이여 지금 여기 오셔서’(Dottie Rambo and David Huntsinger)를 번역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연주를 들을 수 있었고, 직접 부른 육성 찬송도 받아냈다. 색동교회에서 악보를 재구성하여, 당장 1부 예배부터 부른다.
성령이여, 지금 여기 오셔서
성령이여, 우릴 다스리소서
자유의 영이여, 기다리오니 지금 강림하소서
색동교회는 7년째 주일예배를 시작하면서 묵상을 위한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계기가 있었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NCC가 주관한 음악회에 참석했는데, ‘깊은 탄식 속에서’란 주제가 성공회대성당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독일 드레스덴대학에서 온 성악가들이 어려운 한국어를 익혀 시를 낭독하고 찬송을 불렀다. 마지막 코랄 중에 합창단과 회중이 함께 참여하는 시편 150편이 있었는데, 그때 부른 것이 ‘할렐루야 송’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찬송이란 의미가 붙었다. 만국공통어인 단 두 개의 단어로만 구성된 찬송은 영혼에 스며드는 매력이 있었다. 500년을 기념하는 찬양곡인 만큼 누군가 기억하고 역사적으로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배를 여는 찬송’으로 삼은 것이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
색동교회는 창립정신으로 ‘삶과 신앙을 개혁하는 개신교회’를 고백한 바 있다. “초대 교회를 따르며 세계교회와 호흡하는 교회이고자 합니다. 교회의 전통을 사랑하되, 복음이 지닌 자유와 정의의 정신을 지키겠습니다.” ‘할렐루야 송’에 익숙해지면서 찬양이야말로 세계교회와 호흡하는 가장 친근한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듬해 부활절 찬송을 발견하였다. 2018년에 군포지방 교역자들은 성지순례를 떠나기 앞서 동방정교회의 전통을 미리 배우기 위해 한국정교회대성당을 방문하였다. 예배에 참석하였고, 동방교회의 성 예술을 학습하였다. 마침 부활주일 다음 월요일이었다. 한 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그날 드린 예배 형식이 5세기부터 전해오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찬예배라고 하였다. 그때 부른 ‘부활찬양 송’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네
죽음으로 죽음을 멸하시고
무덤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베푸셨나이다
한국정교회를 종종 방문할 기회가 있는데, 경내 작은 서점에서 정교회의 예술과 영성신학, 그리고 소소한 성물과 이콘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성당 주임인 임종훈 신부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들의 진지한 속내도 엿들을 수 있었다. 엊그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 이취임식에서 기도를 맡은 임 신부는 개신교회의 기도가 얼마나 상투적인지 깨닫게 하였다.
“지금 시대가 옛 시대의 악몽을 다시 꾸지 않도록 저희에게, 깨어있는 예언자의 눈과 목소리를 돌려주시옵소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평화의 땅에 젖과 꿀이 넘치도록, 저희가 게으르지 않은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포도밭을 키워갈 수 있도록, 저희에게 사랑의 매를 주시옵소서. 의인들이 주님의 사랑의 매를 들 수 있도록 그들의 두 팔에 힘을 주시옵소서”(임종훈).
연중 내내 ‘할렐루야 송’을 부르다가 부활절 7주간 동안에는 ‘부활찬양 송’을 불렀다. ‘예배를 여는 찬송’에는 깊은 매력이 있다. 예배를 시작하면서 굳이 묵상을 유도하지 않아도, 찬양대가 나서지 않아도 종소리와 함께 모두가 익숙한 찬송을 부르는 것은 경건한 일이다. 아주 짧고 단순하기에 누구든 쉽게 따라 부르고, 어느새 몸에 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마음으로 일곱 절기에 두루 적용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올해부터 사순절에는 프랑스 떼제 찬송 <십자가로>(Per Crucem)를 부른다. 앞서 말했듯이 부활절에 이어 성령강림주일 예배 찬송을 찾은 배경이다.
십자가로 주님의 수난으로 구원하여주소서 구원하여주소서 구원하여주소서 주님
십자가로 주님의 수난으로 구원하여주소서 구원하여주소서 구원하여주소서 주님
우리 주님 거룩하신 부활로서 구원하여주소서 구원하여주소서 구원하여주소서 주님
대림절 찬송은 이미 정하였고, 미리 교회에도 소개한 바 있다. 남북평화재단의 팔레스타인위원회에 참석하면서 배웠다. 올리브나무를 보내는 캠페인과 관련한 세미나에서 이환진 교수가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의 찬송을 불렀다. ‘평화의 하나님’(알라이나 쌀람)은 2013년 WCC 부산총회 에큐메니칼 노래집 <SARANAM 사라남, 살아남>에 실린 것이었다. 결국 악보를 찾아냈다.
평화의 하나님 평화를 내리소서
평화의 하나님 평화를 내리소서
야랍바 쌀라미 암테르 알라이나 쌀람
야랍바 쌀라미 임 라 쿠쿠바나 쌀람
평화의 하나님 평화를 내리소서
평화의 하나님 평화를 내리소서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불안한’ 평화 그 자체이다. 그들 아랍인 역시 히브리어 ‘샬롬’과 같은 어원의 발음으로 인사한다. 순간순간 평화가 절실한 그들은 여리고와 베들레헴 그리고 가자 일대에 살고 있다.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대림절 찬송으로 이보다 더 간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교회 찬송이 빠질 수는 없다. 당당한 세계교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주현의 의미를 찾는 ‘예수님은 누구신가’(박성원 시, 문성모 곡)는 그 물음과 대답으로 적절하였다. 1990년에 열린 세계 JPIC 서울대회에서 불렸는데, 중모리 가락으로 부르는 우리 얼과 호흡이 담긴 찬송임에 분명하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억압의 골짜기에 자유의 꽃 가난한 백성의 친구시라
예수님은 누구신가 절망의 그늘 속에 희망의 꽃 길잃은 백성의 목자시라
예수님은 누구신가 전쟁의 역사 속에 평화의 꽃 숨앗긴 백성의 생명이라
이제 성탄절과 창조절(왕국절)만 남았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겟세마네를 향해 나아가셨다. 마지막 만찬에서 결의를 다진 후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복음서에 전한다.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니라”(막 14:26). 예수님은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아마 절절한, 다만 승리를 부르는 노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