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들은
제주 해녀까지 손을 뻗쳤다!
예부터 제주 해녀는 잠녀(潛女)라고도 불렸다.
그리고 해녀의 활동은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시작한 원시시대때 부터였다.
1105년 고려 숙종때 탐라군의 '구당사(勾當使)'로 부임한 윤응균이 보기 민망함을 들어
"해녀들의 나체 조업을 금한다" 는 금지령을 내린 기록이 있고
조선 인조때 제주 목사가 "남녀가 어울려 바다에서 조업하는 것을 금한다"는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는 '해녀'는 물론 '해남'까지 존재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해녀, 세계적 공식 '해녀'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에
당연히 우리 제주 해녀가 되어야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과연 그럴까? 한마디로 천만에다 지금 일본은 한창 자기네 해녀인 '아마'를
세계무형유산에 올리려 일본 정부까지 직접 나서며 열을 올리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일본은 우리에게서 전해진 '해녀'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일본이 최근에 그들의 '아마짱'이라는 일본 드라마가 큰 히트를 치면서
아마가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고 이 영향으로 일본 정부까지 나서서 아예
자기네 문화로 홍보하며 유네스코에까지 등재 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일본의 의도대로 '아마'가 세계무형유산에 공식 해녀로 등재된다면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존재하는 '해녀'이기에 우리가 반사적으로 '해녀'들의
그 권리나 전통 등 모든 면에서 불이익한 일이 발생될 수 있으며 어떤 큰 피해가 올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도 지난 2006년 '해녀 박물관'을 건립하며 세계무형유산에
등재하기 위하여 노력을 해 오고 있다. 단지 제주도 차원에서만 움직이고 있어 미흡하기 짝이 없다.
만약 이대로라면 현재로선 일본의 '아마'가 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우리나라 통계에 따르면 해녀 평균 연령은 2009년 67세에서 2012년 70세로 매년
1세씩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고령화 추세와 수산물 고갈로 경제성이 떨어지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이다보니 점차 그 숫자가 감소하여 1965년에 2만3천여명에 달했던
제주 해녀는 현재 4천여명으로 급감했고 이 추세대로라면 약20년 뒤에는 천명 미만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제주 해녀의 전통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국민적 지혜와 단결이 필요하며 이는 더이상 지체 할 수가 없는 일이 된 것이다.
특히 제주 해녀들이 일본에 그 지위를 빼았겨서는 않되는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수탈을 일삼던 일제에 분연히 들고 일어나 그들과 맞섰던 제주 해녀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떠나 어떤 누구보다도 애국의 마음을 가졌던 그들이 바로 제주 해녀였다.
민족의 자존심이 무너진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에도 해녀들은 목숨을 걸고 침략자 일본에
대항하며 항일운동을 펼쳤으며, 1932년 약 3개월에 걸쳐 연인원 1만7천여 명이 궐기한
해녀들이 주도한 제주항일운동이 그것이다.
일제의 억압과 그들의 강제 수탈에 항거하며 싸웠던 우리의 제주'해녀'였다.
하물며 지금에 와서 손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그 지위를 일본에 뺏긴다는건 말이 않된다.
제주 해녀의 자존심, 더 나아가서는 민족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국민적 관심과 참여속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적어도 우리 제주 해녀의 전통적 권위와 가치를 잃게 해서는 않될 것이다.
전 문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등재 추진 촉구 대정부 건의안
2014년 1월 27일, 제주도는 스위스 '글랑'에 있는 ) IUCN(세계자연보전연맹)본부에서
제주 해녀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추진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로써 제주도는 오는 3월에 등재 신청서를 내고 2015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 시키는 일에 탄력을 받게 되었다.
제주 해녀들의 모습
-묵은지 생각- (일부자료제공:제주해녀문화보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