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가지산(迦智山)에서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다.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里와 장평면 병동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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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이 지난 지 삼일이나 되었다.
올 대한은 햇살이 유난히 곱고 날씨가 포근해서 마치 봄날 같았다.
그제는 봄비처럼 촉촉한 비가 내렸고, 어제도 기온은 상승하면서 성급하게 봄을
기다리게 만들고 있었다.
대한이지나면 입춘인데 우리들의 봄은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날까?
절기상 대한(大寒)은
소한(小寒) 뒤부터 입춘(立春) 전까지의 절기로 가장 추운 때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대한의 마지막 날을 겨울을 매듭짓는 날로 보고 절분
(節分)이라 하여 계절적 연말일(年末日)로 여겼다.
대한은 그 말뜻으로 보면 가장 추운 때를 의미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경이므로 사정이 다소 다르다.
따라서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 얼어 죽었다.”거나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
는 이야기가 생겼다.
풍속에서는 이 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었다.
아침부터 짙은 안개가 하늘을 덮고 있어도 이 안개가 걷히면 하늘은 맑고 해맑은
날이 될 것 같다.
나는 어제 점심때부터 갑자기 목이 칼칼하며 가래가 생기고 감기 기운이 돌았으나
오늘 산행 때문에 오후 늦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왔지만 완전하지가 못하다.
광주역에 도착해보니 팔순의 윤례매씨가 1시간을 앞당겨 왔다며 “늙으면 죽어야지”
하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 나이에도 산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대단한 분이다.
오늘도 38명의 남녀회원들이 장흥 가지산산행에 동참했다.
장흥에 도착 할 무렵 이미 아침 안개는 걷히고 날씨는 해맑은 날이 되어있었다.
가지산(迦智山)은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里와 장평면 병동里의 경계에 있는 높이 511m 산이다.
산세가 좋고 돌을 깎아 세운 듯 정상에 큰 바위 4개가 높이 솟아 있다.
꼭대기에 높이 솟아 있는 네 개의 큰 바위 때문에 니바우산이라고 부르는데
골이 깊고 수석(樹石)이 아름답다. (니바우=바위 넷의 전라도사투리)
가지산 산행은 화순과 장흥을 넘나드는 고갯길 웅치에서 출발 820번 지방도상의
피재고개에서 마감하는 12km의 거리로 가지산이 최고봉이다.
이번 코스 전반부는 무성한 산죽 군락지로 형성되어 지리산 속을 해매는 기분이고,
후반부엔 청미래 덩굴이 무성하지만 웃자란 억새들 너머로 유장한 탐진강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무척이나 서정적인 분위기가 날것이다.
크게 세 개의 봉우리로 형성된 가지산 정상은 삼각점도 없는 육산이고,
그보다는 정맥 길에서 살짝 비껴 앉은 보림사(寶林寺)가 위치한 암봉(岩峰)으로
형성된 480m峰이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달마(達磨)의 선법(禪法)을 처음으로 전한 통일신라의 헌덕왕 때 도의국사(道義國師)
가 개산(開山)한 신라고찰 보림사(寶林寺)가 있다.
보림사는 구산문(九山門=선법에서 절을 뜻함)의 하나인데 고려 말기 구산문이
모두 쇠운(衰運)에 빠졌을 때 이 산문의 태고화상(太古和尙)이 (공민왕: 5년)에
왕사(王師)로 있으면서 구산문을 통합하여 일가를 이루었으며,
그 후 문풍(門風)을 전하였다고 한다.
오늘산행은,
곰치에서 출발 -국사峰 -깃대峰 -노적봉 -삼계峰 -장고목재 -가지산 -보림사로
내려오는(약 12km) 산행 1팀과,
보림사입구에서 출발 -망원岩 -정상 -삼거리 -가지산산림욕장 -봉덕松 -보림사로
내려오는 (약 7km) 산행 2팀으로 운영했다.
하산시간은 오후 3시로 정했다.
나는 감기 기운도 있고 해서 산행 2팀에 합류했다.
산행은 오전 9시 40분부터 시작되었으며 申법무사, 羅교장, 기氏자매와 5명이 함께
조를 이루어 산행을 시작했다.
기온이 올라가고 힘이 들어가자 점퍼상의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산길은 험하지는 않았으며 자갈길로 편한 길은 아니었다.
정상까지는 1시간 10분정도 소요시간으로 우리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산을 올랐다.
보림사스님들이 자주 올라와 마음을 다스리며 멀리 바라본다는 바위인 망원암
(望遠岩)이 나왔다.
멀리 마을이 보이고, 탐진강 푸른 물줄기가 보이며, 겹겹이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물결친다.
대 자유인이 되겠다고 / 속가 부모 형제를 버렸다 /
승가의 사형 사제 스승마저 버렸다 / 부처마저 버리고나니--- /
모두 본래 제자리에 있었다.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 (석 용산스님 에세이에서)
가지산 정상은 네 개의 큰 봉우리와 작은 봉우리들로 이루어졌다.
바위 틈새로 길이 나 있는데 시간을 보니 1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점심시간이 어중간해 삼계峰이 있는 방향으로 북峰까지 걸었다.
북峰에서 가지산을 바라보니 10여명의 회원들이 맨몸으로 정상에 서 있다.
아마도 보림사주차장에서 보림사경내를 구경하고 빈 몸으로 올라 온 모양이다.
산행1팀은 어디 쯤 오고 있을까? 궁금하다.
북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젊은 “죽공”이 혼자서 오고 있다.
젊음은 대단하다.
점심도 먹지 않고 산행 1팀을 뒤로하고 온다는 것이다.
지난 월류봉산행 때도 겨울 찬 강물을 팬티바람으로 건너오지 않았던가!
“죽공”이 가지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겠다고 해서 우리는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羅 교장과 둘이서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농고(農高)에서 교장을 지내고 퇴임한 사람으로 취미로 유기농을 하고 있단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나무들의 이름과 특성을 세세하게 알려준다.
서어나무숲과 소나무 숲길을 지나 비자林과 녹차 밭이 조성된 보림사 뒤쪽으로
내려왔다.
오는 도중에 봉덕송(鳳德松)이란 소나무를 보았다.
6,25전란 때 이곳 숲이 모두 불타버렸으나 이 소나무 한 그루만 살아남아 있어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산선문 종찰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로 내려왔다.
보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가지(迦智)란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모든 생명이 본래 부처라는 차별 없는 지혜를 말한다.
보림(寶林)이란 이러한 본래 지혜를 믿고 깨달아 잘 보호해서 모든 중생들에게
걸림 없는 자비를 실천하는 보살행을 말한다.
보림사는 동양 삼보림의 하나로 신라 말 원표대사가 창건했다.
보림사삼층석탑 및 석등(국보: 제44호),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국보: 제117호)
보조선사 창성탑비(보물: 제157호), 보조선사 창성塔(보물: 제158호),
보림사 사천왕상(보물 ; 제1254호), 보림사 동부도(보물: 제155호),
보림사 서부도(보물: 제156호),
장흥전의상암지석불입상(전남유형문화제; 제191호) 등이 있었다.
보림사 경내(境內0에는 종무소를 중심으로 외호문, 사천문, 대광적전, 삼성각,
조사전, 미타전, 선방, 선열당, 명부전, 종각이 있고 중앙에 대웅보전이 있었다.
산행이사가 산행코스를 잡는데 착오가 생겨 산행 1팀이 오후 3시 40분이 넘어서
도착했으며 정작 산행이사는 몸에 무리가 생겨 1시간이 넘어서 겨우 도착했다.
그래도 큰 무리가 없이 산행이 종료되어 다행이었다.
오늘 하산 주는 돼지김치찌개였는데 보림사주차장에서 끊여먹었다.
햇살도 좋고 날씨도 춥지 않아 하산 주는 안성맞춤이었다.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 햇빛처럼, 꽃잎처럼 /
또는 기도처럼 왔는가. /
행복이 반짝이며 하늘에서 몰려와 날개를 거두고 /
꽃피는 내 가슴에 걸려온 것을--- / (중략)
밤은 은빛 빛나는 옷을 입고 한 움큼의 꿈을 뿌린다. /
꿈은 속속들이 마음 속 깊이 스며들고 /
어린아이들이 불빛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보듯 /
나는 본다. 깊은 밤 어둠속에서 / 꽃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입 맞추고 있는 것을
(릴게의 작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에서)
(2015년 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