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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무도' 양익 스님 좌탈입망(2006.5.6)
범어사 원로이며 한국 불교무도(佛敎武道)의 수장인 양익(兩翼) 스님이
지난 6일 오전 1시 20분께 앉은 채로 입적했다. 세수 72세,법랍 44세.
1934년 강원도 홍천 출생인 스님은 서울 법대 출신으로 사시 1차 시험에 합격한 뒤 범어사에 고시 공부를 하러 왔다가 동산 스님을 두 번째로 만나 오랜 인연을 느끼고 이듬해인 1962년 출가했다.
스님은 불교무도에서 한국 최고의 전설적인 인물이었으며 그 원조 격이었다. 젊은 시절 범어사 일주문을 쉽게 뛰어넘었다고 하며,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은 양익 스님이 결가부좌한 채로 공중부양하여 천장의 못을 빼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스님이 집대성한 불교무도는 '불교금강영관(佛敎金剛靈觀)'. 고려시대까지 전수되다가 중국 선종이 들어오면서 맥이 끊긴 즉신성불(卽身成佛,현재의 몸이 그대로 부처가 됨)의 밀교수행법을 체계화한 것이었다. 스님은 출가 전에 이미 고수였는데 서울 청도관의 허사범(스님의 속명은 허남익)이라면 명동의 깡패들도 겁을 냈다고 한다. 출가 직후 동화사 불국사 봉훈사에서 주요 직책을 맡은 뒤 71년 범어사에 돌아가 40년 가까이 줄곧 후학을 지도했는데 선무도를 펴고 있는 골굴사 주지 적운 스님을 비롯해 수백 명에 이르는 출가 재가의 고수 제자들이 있다.
몸과 마음의 하나됨을 설파했던 스님은 무엇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철저하게 지키도록 했다. 또한 "자기의 복을 비는 기도라고 해도 헛되지 않다. 마음을 모으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기도는 멀리 있는 인연을 앞당길 수 있다"며 불교 연기법을 불자들이 생활 속에서 알기 쉽게 얘기했다. 제자 안도 스님은 "입적 하루 전날인 부처님오신날에도 스님께서는 통도사 적멸보궁을 참배하셨다. 당신께서는 제자들 모르게 입적을 준비하셨다"고 했다. 범어사 주지 대성 스님은 "스님은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는데 아무런 법문도 남기시지 않고 고요히 앉은 채 원적(圓寂)에 드셨다"고 했다. 장례는 범어사 다비장으로 치러진다. (2006.05.08 부산일보)
양익(兩翼)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섬에서 병마를 이기려 수행을 할 때, 밤에는 심심하여서 그 동안 재미로 가끔씩 수련하던 미군용 단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게 수련법을 체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다각도로 생각을 했지! 처음에는 앞에다 나무를 세워 던지니 잘못 하다가는 단검이 나무에 튕겨서 나에게 직접 날아오는 바람에 몸이 다치겠더라고. 그래서 이거 안 되겠다 싶어 다데미를 세워서 칼날을 잡고는 회전하며 던졌지!
이때는 목표물과 던지는 지점과의 거리를 직접 단검을 손으로 돌리면서 회전거리를 정확히 재서 연습을 했더니 정확히 꽂히는 거야! 오른손으로 완벽하게 되면 왼손으로 연습을 했지! 즉 한쪽만 수련하는 것은 절반만 수련하는 것이지! 양손을 자유롭게 써야 조화가 맞는 것 아니겠어? 하지만 단검 날을 잡고 던지는 것은 좋기는 한데, 손도 자주 다치고 목표 거리와 회전력이 맞아 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실수가 많이 나는 거야! 그래서 거리 감각을 키우며 거리에 관계없이 잘 던지는 방법이 없을까 관(觀)했지!"
"이제 칼날을 잡고 마음먹은 대로 잘 꽂히자, 나는 생각했지. 왜 꼭 칼날을 잡고 던져야만 할까? 손잡이 부분을 잡고 던질 수는 없을까? 생각하고 손잡이 부분을 잡고서 연습을 했지! 이때 나는 단검을 위에서 아래로 던지듯 연습을 했는데, 이제는 단검을 옆으로 던지듯 연습을 했지! 될 때까지 계속 연습을 했더니 잘되는 거야! 그래서 또 관(觀)했지! 이제는 단검을 회전하지 않고 똑바로 직선으로 날아가서 꽂히는 방법이 없을까? 단검이 회전을 하지 않고 날아오면 회전하는 것이 없어지니 단검이 눈앞에 다가와서야 단검 끝이 보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피할 시간이 없는 거야! 그래서 좌우 손을 번갈아 가며 마음먹은 대로 단검이 정확히 목표지점에 꽂힐 때까지 연습을 했지!"
"그 다음에는 단검을 잡고 던지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바로 바로 던지는 방법이 없을까? 즉 단검을 빼자마자 어느 상황에서도 바로 던질 수 있는 방법을 관(觀)했지! 이 방법도 오랜 시간을 연습하니 내 마음대로 단검을 쓸 수 있게 체득이 됐어! 이번에는 꼭 단검을 손으로 잡고 던져야 하나 생각이 드는 거야! 손등에다 올려놓고 바로 던지는 방법은 안 될까? 생각한 후 손등에 단검을 올려놓고 바로 던지는 연습을 했지! 이 방법도 오래도록 연습하니 체득이 되는 거야. 단검 쓰는 방법이 계속 발전하자 몸에 감각기능도 더욱 발달되는 거야! 그래서 더욱 더 연습하며 감각기능을 기르니 자신감이 더욱 강해지고 이제 단검에 마음의 힘이 실리는 거야! 단검에 마음의 힘이 실리니 내 마음먹은대로 단검이 정확히 원하는 목표로 날아가는 거야!"
"그래서 이번에는 단검 두개를 하나씩 양손에 지고는 왼손으로 먼저 던지고 목표에 꽂힌 단검부분을 오른손으로 던져서 두개의 단검 끝이 정확히 만나도록 오랜 기간을 집중적으로 연습했지! 이것도 오랜 기간을 수련하니 정확히 좌우 번갈아 자유롭게 던져서 단검 끝이 정확히 모아지도록 체득했지! 그리고 또 관(觀)했어! 그러면 이번엔 우측 단검을 먼저 던진 후에 좌측단검으로 목표물에 꽃 쳐 있는 단검손잡이 끝 모서리 부분을 정확히 맞추어서 꽂힌 단검이 더욱 깊게 들어가게 할 수는 없을까? 관하며 체득될 때까지 계속 단검을 던지는 수련을 했더니 마음먹은 대로 체득이 되었지!"
"그 다음에는 단검을 빠르게 몸에 숨기는 방법을 연습했지! 즉 우측 손으로 단검을 숨기고는 좌측으로 빠르게 받아서 바로 던지는 방법을 다각도로 연구하며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오랜 기간을 연습하여 체득했지! 즉 어디로든 사방으로 내 마음대로 단검이 날아가도록 연습한 후에는 상대방이 내게 단검을 던질 때 받는 연습을 했는데 날아오는 단검을 정확히 손잡이 부분을 탁탁 잡아 낼 때까지 오랜 기간을 정신을 집중하며 연습하여 체득했지!"
"마음먹은 대로 단검을 잡고 던지는 연습을 하다가 단검이 마음먹은 대로 마음의 힘을 실어 이제는 은행나무를 세워 놓고는 단검을 밑둥치에다 던져서 목표지점에서 90도 방향을 위로 틀어서 은행나무 윗가지에다 꽂는 연습을 했지! 생각을 해봐! 이건 이론이나 과학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방법이지. 기존의 관념을 부수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 거야! 하지만 힘이라는 것은 몸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나오지 ! 하루는 내 수련을 몰래 훔쳐보던 사람이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한 거야? 저기 어떤 사람이 귀신같이 단검을 잘 던지는데, 못된 짓을 하는 사람 같다고 말이야? 그래서 경찰서에 가서 이야기를 했지! 이건 내 스스로 수행 삼아서 연습하는 단검술이지, 절대 나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더니 순순히 알았다며 풀어주더라고."
"마음의 힘을 실어 90도로 꺾이며 던지는 방법이 체득되자, 이번에는 꼭 눈을 뜨고 해야 하나? 눈을 감고 할 수는 없을까? 생각을 했지! 그래서 눈을 감고 머리 위로 단검을 던져서 내려오는 것을 몸의 감각기능으로 손잡이 부분을 척척 잡아냈지! 날이 날카롭게 선 상태라 조금만 방심해도 죽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거나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라 고도의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지!"
"아마 나는 이때에도 불보살님이 나를 도와주신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또 하나 느낀 것은 몸의 힘과 마음의 힘을 알 수 있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주의 힘을 스스로 체험하고 체득하는 경험을 했지! 항상 보통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우주의 힘이 존재하거든! 눈을 감고 마음먹은 대로 연습하여 체득한 후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것을 목표 삼아 나뭇잎이 관통할 수 있도록 연습을 했는데, 이 방법은 체득하기까지 아주 힘들었지!"
"다음에는 단검을 잡고서 밤에 상대방과 함께 단검을 들고 대련 연습했는데, 단검이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일어날 정도로 스스로 열심히 수련하고 제자들도 가르쳤지! 하지만 단검이라는 것은 위험한 거야! 그래서 출가 후에는 몇 명 가르치다가 병기술은 가르쳐 주지 않고 권법만 가르쳤지 ! 최 법사도 영동행관 승형을 하며 단검이나 봉을 들고 해보면 알 수가 있을 거야? 모든 무기는 손의 연장선에서 있는 거야! 그리고 꼭 무기, 특히 칼은 갖고 다니지 말아야 해! 사람이란 자기도 모르게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무기를 들거든! 무술은 사람을 살리는 거지, 꼭 죽이려는 짓은 올바른 무술인이라 할 수 없고 올바른 무술이라고 할 수 없어!"
"출가하여 금강연수원에서 승려로 수행할 때, 하루는 어떤 검도인이 대중들 앞에서 검 자랑을 지나치게 하기에, 내가 의자를 멀리 앞에다 두고서 그 당시에 출가 전에 쓰던 미군 단검이 있기에 단검을 쥐고서 내가 이 검으로 저 의자다리를 몇 개나 맞출 수 있겠냐고 물어 봤더니, 단검 하나면 다리 한 개를 맞추면 잘 맞추는 것이지, 별 싱거운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기에 한 번에 세 개의 다리를 깊게 베듯이 지나가게 해 버렸더니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리는 거야. 나는 오랫동안 출가 후에는 단검을 잡지 않았고, 이번처럼 의자 다리 맞추는 연습은 하지 않았지만 밀교 경전에 나와 있듯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는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굳은 믿음이 있었거든! 내가 말했지! 나는 한 번에 세 네 명을 자유롭게 세워놓고 단 한번으로 모든 사람을 다 단검으로 던져서 맞출 수 있다고 했더니 다시는 검 자랑을 하지 않았지!"
내가 질문했다.
"큰스님은 현생에 스승 없이 스스로 관(觀)하시며 단검을 마음먹은 대로 자유롭게 다루셨지만 전생에 미리 단검술을 익히고 오신 것은 아닙니까?"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모르지! 하지만 전생에 미리 안 닦았다고는 말 할 수는 없지!”
무술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그릇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되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이나 현재나 무술은 함부로 공개를 하지 않으며, 올바른 제자를 만나지 못하면 사람을 해할 수 있는 무술은 전수를 하지 않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다. 하물며 병기를 배제한 체술도 무서운 파괴력을 구사하는데, 쓰기 따라서 살상용으로 바로 쓰이는 단검술을 공개한다는 것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만약 양익 큰스님이 단검술을 수련했던 방법 중에 마음의 힘을 전달시키는 고차원적인 수행내용이 들어가지 않고, 단순한 몸의 힘과 기술만으로 이루어진 단검술을 나에게 말씀했다면 결코 글로 많은 이들에게 전달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음의 힘이란 나를 앞세우는 사사로운 욕심이 가득 찬 경계 안에선 절대 나오질 않는 법이다. 즉, 보통사람이 바라보는 견해로 보통사람이 절대 불가항력적인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무심의 경지에 들어가서 가끔 나타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이해 할 수도 없는 초능력의 세계가 마음의 힘, 우주의 힘을 조금이라도 실증시키는 경계라고 난 받아들인다.
나 홀로 마음에 새겨두지 않고 양익 큰스님의 단 검술을 공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어떤 위험한 병기를 수련해 몸에 체득되었다 하더라도 마음의 힘을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병기는 한 낱 흔한 몸을 지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직 무서운 것은 마음의 힘, 우주의 힘을 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병기술을, 심신을 닦는 성인의 가르침을 겸손한 구도자 마음으로 배워서 승화시키지 못하는 무인의 어리석음이 불쌍할 뿐이다.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1950년대는 가난하던 시절이었지! 시골에는 하는 일이 없이 심심하잖아? 특히 그 당시에는 무법천지였지! 동네마다 청년들이 자기 구역이라 정해 놓고 다른 동네청년들이 자기 동네 구역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서 싸움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때였어! 하지만 문제는 타동네를 지나서 장가를 가야 하는데, 장가가는 사람도 못 지나가게 할 정도였으니 뭐, 주먹질이라도 못하면 큰일나는 세상이라! 그 당시 이 근방은 내 무술실력이 소문이 쫙 나 있었고, 내가 전부 휘어잡고 있는 상황이라, 타 지역을 지나갈 때는 내 이름을 대며 내 제자라고만 하면 무사통과였지! 그 당시에는 인연되는 제자들을 속가무술인 당수도와 내가 터득한 단검술을 지도했는데, 그 당시 이 근방 청년들이 150명 이상 밤에 나에게 무술 배우겠다고 몰려들었고 참 열심히 수련했지!"
"요즘도 나에게 젊을 때 무술 배웠다고 인사 오는 어른들이 있지만 나는 전혀 기억을 못하겠는데,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컴컴한 밤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뭐, 얼굴이나 제대로 볼 수 있겠어?"
"나는 20대 때에는 길을 걸으면 몸이 붕붕 뜰 정도로 몸이 가벼웠지! 웬만한 천정은 마음먹은 대로 다 발로 찰 수 있었고 장작을 팰 정도로 수도가 단련되어 있었지! 또한 이 당시에는 철이 없어서 실력을 시험해볼 요량으로 길거리 청년들 40여명이 지나가는 것을 괜히 시비 걸어서 싸움질을 하곤 했지! 이때 싸움은 완전히 마구잡이 아니겠어? 몽둥이 드는 것은 다반사고 하지만 내가 한번 앉았다 하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지! 싸움이 끝나면 미안한 마음이 내가 드는 거야 ? 그래서 막걸리 두말을 사다주곤 했지!"
"저 건너 높은 산(시방원 맞은 편 산)에 내 친구 주만이가 살았는데 다 클 때까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친구였는데, 아버지는 대처승이였는데,이 친구는 아주 순수한 친구였어! 지게를 지고 다니며 틈틈이 수도로 지게를 치면서 다녔고 그 덕분에 수도가 강하게 단련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들이 이 친구를 골려줄 생각으로 옹이가 안 박힌 나무를 이 친구 앞에서 수도로 쳐서 자르고는 옹이가 박힌 나무를 이 친구에게 알려주지 않고 너도 나처럼 이 나무를 수도로 쳐서 자를 수 있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겁도 없는 이 친구가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수도로 내려 쳤는데 옹이 박힌 나무가 잘 잘라질 리가 있겠어? 아주 세게 수도로 쳤는데, 나무는 안 잘리고 수도부위만 엄청난 통증이 오거든! 그래서 친구들이 놀렸지! 우리는 하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고? 이 친구가 이런 일을 겪고 나서부터 얼마나 화가 나고 약이 올랐던지, 산을 오고 가며 나뭇가지를 치는 연습을 엄청나게 해버린 거야!"
"나중에 다른 친구들이 보니까 이 친구가 옹이가 박혔던 안 박혔던, 수도로 치는 대로 나뭇가지가 잘라져 나가는 거야! 그 당시에 요 앞 초등학교에서 내가 두 번에 걸쳐서 무술 연무대회를 개최했었어! 이 당시 동네사람들 호응이 대단했지! 그때 이 친구 격파솜씨를 잘 알고 있던 내가 구경꾼들 흥을 돋우려고 돌 격파를 보여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친구한테 가서 돌 격파 할 수 있는 것을 갖고 오라고 시켰지! 잠시 후에 이 친구가 돌을 가져 왔는데 야? 이거 격파 할 수 있는 길고 좀 얇은 것을 가져올 줄 알았는데 잘 깨지지도 않는 차돌멩이처럼 강한 크고 둥글둥글 한 돌 3개를 들고 온 거야! 그래서 큰일났다 생각하고 내가 물었지? “야, 주만이! 너 저 돌멩이 격파 할 수 있는 거야?” 했더니 이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자기는 저 돌을 격파할 수 있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할 수 없이 한번 돌을 격파해보라고 시켰더니, 이 친구가 수도를 위로 번쩍 들고 기운을 모으며 마음의 힘을 싣고 있더라고! 즉, 마음속으로 이 돌은 깨진다! 깨진다! 하면서 한참동안 기운을 집중하더니 “이얍!” 하며 수도로 내려쳤는데?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나 버린 거야? 지탱하는 돌까지 3개가 박살이 나 버린 거야!"
"나도 놀라고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 모두 놀랐어! 이게 말이 돼? 이건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지탱하는 돌은 힘을 크게 받지 않는 것이거든! 마음의 힘이 강하면 이렇게 무서운 거야! 또 이 친구는 항상 맨발로 다녔어! 이 당시에 6.25전쟁 후라 가난하니 운동화도 없었고 헝겊이나 발에 뚤뚤 말아서 신처럼 신고 다니던 참 어려운 시절이었지! 이 친구는 발바닥이 얼마나 강하게 단련되었던지 친구들한테 장돌을 자기에게 던지라고 해놓고는 껑충껑충 뛰면서 발바닥으로 돌을 다 막아내는 거야!"
"이 친구가 하루는 자기 아버지 친구 스님이 금강산에서 도를 닦는 스님이 있는데, 금강산 스님이라고 부르는 이분이 자기한테 문창호지에 난 작은 구멍을 집중하여 보고 있으면 황소가 들어온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이때 나는 순수한 이 친구의 마음을 다치게 하기가 싫어서 황소가 들어오지 않는다라고 대답을 하지 못하고 “나는 모르겠다!” 라고 말을 한 뒤에 집에 와서는 생각을 한 거야! 내가 직접 해보지 않고 모르는 일이니 문창호지에다 작은 구멍을 뚫어 놓고는 눈의 초점을 더욱 강하게 할 요량으로 양손을 둥굴게 원을 그려서 망원경 보듯이 온 몸에 힘을 주고 뚫어지게 눈으로 쳐다보는 연습을 했지!"
"이때 몸에 힘을 빼고 해야 했는데, 너무 온 몸에 힘을 주고 손을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하는 바람에 손도 굳어져서 마비돼 버리고 피똥을 싸면서 고생을 심하게 한 적이 있었지! 시간이 지나며 몸이 정상으로 돌아 왔지만 이때가 되서야 “야! 내가 직접 해보니 황소가 들어오질 않아!”하고 주만이에게 답변을 해주고는 오랫동안 그때 일을 잊어 버렸었지! 하지만 출가를 하여서 스님이 된 후에 산신당 안에서 오래 전에 해봤던 그때 일이 생각나서 벽을 바라보고 깊은 명상에 들어갔지! 그런데 어느 순간에 눈을 감으면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눈을 뜨면 벽이 보이는 거야!"
"이상하다 생각하고 다시 눈을 감으면 사람도 보이고 귀신도 보이고 눈을 뜨면 벽이 보이고 하여서 산신당 문을 확 열어 버렸더니 그날 절에서 49재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오늘 누구 제사를 지내느냐고 제주에게 물어보았더니 어머니라고 하시는 게 아니겠어! 그래서 내가 물어보았지! 어머니가 이런 옷을 입고 얼굴이 이렇게 생기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이 사람이 우리 어머니가 확실한대 스님께서 어떻게 우리 어머니를 아시냐며 깜짝 놀라며 물어봤지!"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어! 오래 전 내 친구가 들었던 금강산스님이 친구한테 하는 그 경계가 바로 지금 이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만약 그때 내가 그 친구의 말을 한쪽 귀로 듣고 무심이 흘려버리고 말았다면 이런 경계를 만나지 못했겠지! 최법사도 명심해야 돼! 하찮은 어린 아이가 무심코 말을 하는 것을 직접 행하여 보지 않고 함부로 속단해서 답변을 해선 안 되는 거야! 항상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무술로 친다면 누가 검을 허황되게 이렇게 저렇게 쓴다고 한다면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하지 말고 그렇게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야 돼! 그 사람이 비록 사기꾼이라고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행하여 보고 긍정적으로 믿고 연습한다면 그 사람과는 관계없이 최 법사는 다른 수행경계로 들어가는 것이야! 알겠지?"
무술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수행하는 후배들은 양익 큰스님의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즉, 양익 큰스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것은 옛날 선배들도 사람이고 지금 현재 나도 사람이니 똑 같은 사람이라면 옛날에 유명한 이들이 행했던 모든 일도 현재 사람이 똑같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즉, 책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무조건 행해 보지 않고 마음의 힘을 막는 어리석은 부정적 시각을 놓아버려야 하며, 눈으로 보던지 책을 통해서 보고 알고 있던지, 귀를 통해서 듣고 알고 있던지, 만약 이 상황에서 직접 몸으로 행하여 실천적으로 체득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자기가 확인해보지 못하고 답변을 하는 행동은 어리석은 짓이라 하신다.
즉, 실천적으로 수행을 하지 않는 것은 시작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아무리 음식이 눈앞에 많이 있는 것을 보아야 무엇 하는가?
직접 스스로 먹어 보고서야 확실한 경계를 체득 할 수 있다고 양익 큰스님께서는 자비롭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도(道)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
자칭 머리로만 뛰어난 행하지 않는 이들은 자기배운 지식에 도리어 현혹되어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고, 즉, 스스로 행할 수 없으니 거짓으로라도 행한다 말하고 있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몸으로 실천적으로 행하는 이들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거짓을 말하지 않았고, 만고의 성인인 공자님도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 분명히 말씀을 하셨다.
자기에게 조금만 손해가 간다고 생각하는 속된 인간들은 거짓을 ‘방편’이라는 허울로 합리적으로 정당화시키려 노력한다.
1974년도 인혁당 사건이란 죄목으로 8명의 고귀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정치공작이 결국은 거짓으로 억울하게 죄 없는 생명들을 정치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29년이 지난 어제서야 정규 공영 tv뉴스시간과 신문지면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온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을 보며, 거짓은 여러 사람을 악의 굴레로 몰아넣는 못된 짓이라 자각한다.
그래서 부처님도 거짓을 말하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경전에 분명히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깨달음의 길로 가는 수행자는 방편과 거짓이 분명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즉, 방편은 악한 것에서 선한 것을 살리는 목적에서 필요한 거짓을 말하는 것이니, 훗날 손자에게 물어보고 자기의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한 박문수가 암행어사 시절에 두고두고 한이 맺혔던 악한 이에게 쫓겨서 도망가던 한 소년을 순간적인 칼 위협에 방편적으로 눈먼 소경 짓으로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숨은 곳을 시선으로 알려주는 바람에 소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예는 방편이 부족한 바른 행동이 아닌 것을 뜻한다.
박문수의 이야기처럼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살리는 목적에서 하는 거짓말은 방편이고, 아닌 것은 거짓이라 부르는 것이니, 거짓을 따르는 이들은 첫째 자기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악한 짓을 행한다. 항상 반목, 배신, 이간질, 의심, 파벌조장, 이용 등 악한 행동에 꼭 필요한 못된 짓은 다하는 것이다.
양익 큰스님은 그 누가 오더라도 편견 없이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 당신의 견해에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신다. 책을 하나 펴내더라도 책임감이 들어야 하며 자기가 체득된 경계에서 명확히 써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책을 안 내신다고 하셨다.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출가를 아주 늦게 했거든! 젊을 때 고향마을에 그 당시론 불치병이고 전염병인 폐병이 돌았는데, 고향친구에게 나도 전염되고 말았지!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지! 나 또한 집에 어린 조카들도 있으니 폐병을 옮겨서는 안 되잖아? 그래서 정신들 섬으로 들어갔어! 움막을 치고 자며, 낮에는 옷을 다 벗고 일광욕을 하고, 밤에는 무술을 닦았지! 이 당시 폐병에 걸린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고 나만 살아났지만, 몸이 얼마나 아픈지, 혓바닥은 백태가 하얗게 끼고, 잇몸은 냄새가 지독하게 나며, 통증이 심하게 오고, 위장은 음식을 소화도 못 시킬 정도로 악화되어 있고, 폐는 망가지고, 그 당시 의사가 나를 진찰해 보고는 도저히 현재 의술로는 못 고치고 조만간 죽을 것이니 집에 가서 편히 죽음을 맞이하라고 했지!"
"그 당시 나는 나이도 젊어서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억울한 거야! 그래서 작심을 했지! 죽을 때 죽더라도 단 3일만이라도 제대로 실컷 수행이라도 하고 죽으리라 생각했지! 최법사! 어때? 결혼하니까? 수행하기가 쉽지 않지? 일반 사람들은 결혼하여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먹고 사느라 평생을 지극 정성으로 3일만이라도 수행을 해보고 죽는 이가 드물거든! 그래서 나도 죽을 때 죽더라도 3일만이라도 지극 정성으로 수행하다 죽으리라! 죽음을 기다리며 지극 정성으로 수행을 했어!"
'사람은 왜 태어나는가?'
'왜 죽는가?'
'왜 남자로 태어나는가?'
'남자는 무엇인가?'
'여자로 왜 태어나는가?'
'무엇을 여자라 하는가?'
“그 동안 궁금했던 모든 상황을 설정해서 글씨로 써서 눈앞에 쭉 붙여 놓고는 눈을 감고는 지극 정성으로 관(觀)하는 공부를 했더니, 불교를 믿지는 않았지만 몸이 아파서 오는 엄청난 고통을 이길 수 있었고, 모든 궁금했던 상황들이 환하게 알 수 있는 경계가 열리는 거야! 몸 또한 완벽하지는 않지만 점점 나아지더라고! 이때 나는 생각했지! 신비한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몸이 완벽히 회복되지 않는 아픈 몸으로 불교수행을 하고 싶어서 범어사 동산스님 문하로 출가를 한 거야!"
"이때 스스로 관하면서 자문자답한 수행경지를 노트에다가 꼼꼼히 기록하여 나중에 책으로 내려고 출판사를 알아보다가 우연히 밀교 경전을 보는 계기로 그만두었지! 지금도 내방 어느 구석에 돌아다닐 거야? 나중에 내가 스스로 터득한 가르침의 뼈대를 밀교 경전을 보면서 부처님 가르침 안에 다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준을 잡으려고 생각했지!"
이때 양익 큰스님께 끊임없이 질문하고 큰스님의 말씀을 머리로 기록하면서 딱 두 가지를 못 물어 본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내 마음 속의 욕심나는 외침인 '양익 큰스님이 관하면서 깨우쳐서 기록했던 그 노트 저 주세요!' 이 한마디가 안 떨어지고 입안에서 우물우물 거리다가 양익 큰스님이 해우소(화장실) 가는 바람에(양익 큰스님이 해우소 간다는 것은 곧 말씀을 다하셨다는 뜻이라는 걸 운력하시는 거사님의 말로 알아차림!). 또 하나는 양익 큰스님께서 서울 명문대학교 법대졸업생으로 사법시험을 1차 합격한 뒤 정확히 몇 살에 출가하신 것인지? 계속 질문하려다가 수행과 관련 없는 것을 질문했다가 내 인생에 한번 올까말까 하는 시간에 좋은 말씀을 듣지 못하고 혼이 날까봐 질문하지 못하였다.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강원도 홍천에서 2년 동안 초등학교를 다니고는 나머지는 춘천에서 학교를 다녔지! 아버님이 공무원이셨거든! 아버지가 공무원이라 이사를 자주 가는 바람에 사람을 사귈 시간이 없었어! 하지만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어릴 때 친구들이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아! 워낙 내가 독특하게 생활했기 때문이지! 나는 몸이 아픈 상태에서 아주 늦게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시작했지! 그래도 갓 출가하여 스님 생활 할 때에도 몸은 아프면서도 자존심이 아주 강했거든!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 때문에 수행하시는 다른 스님들에게 신세지며 피해를 주기가 싫어서 주지스님에게 제 자신이 몸이 너무 아파서 대중스님들 수행하시는데 장애가 될 수 있으니, 대중들과 떨어져서 홀로 수행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고 허락을 받아냈지!"
"특히 이때에 절은 크고 작은 건물을 짓는 불사하는 일꾼들이 많았는데, 나는 일꾼들 공양시간에 찾아가서 공양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스님생활을 시작한 거야? 그래서 공양시간 외에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 찾아 들어가 몸에서 오는 통증을 치료하느라 호흡수련을 했어!"
내가 여쭈었다 .
"큰스님께서는 따로 스승님을 모시고 호흡수련을 전문적으로 배우셨나요?"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그것이 말이여. 지금 그 당시를 뒤돌아보면 부처님이 나를 수행하게끔 이끌어 오시는 하나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해! 몸이 아플 때 얼마나 통증이 심하던지! 하루는 위장에 통증이 올 때 배로 가득 숨을 들이쉬고는 숨을 참았더니 통증이 없는 거여. 아! 그래서 생각을 했지! 숨을 가득 배로 들어 마셔서 참으면 몸 안에 가득 공간이 생기므로 통증이 오지 않는 것이다 라고 생각한 후에 오로지 통증을 멀리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 숨을 가득 들이쉬고 참는 연습을 했더니 통증이 오지 않고 아픈 몸이 점점 나아지더라 이거여! 그래서 호흡의 이치를 다각도로 원리를 관(觀)하며 오랜 기간 반복하여 다각도로 수련을 하여서 터득해 버렸지! 이후에 나는 척추 속을 따라 큰 대나무 통로만큼 큰 공간으로 뜨거운 불줄기가 지나갈 정도로 열감을 느꼈지!"
"특히 이때 공양시간에 맞추어서 일꾼들 공양하는 곳에 가보면 어느 때는 일꾼들이 밥만 조금 남기고 반찬은 다 먹어 버려서 밥만 먹고 온 적이 있었고, 어떤 때는 밥을 다 먹어버려 조금 남은 반찬만 먹고 오고, 어느 때는 밥과 반찬 모두 일꾼들이 먹어 버려 물만 먹고 오고 그랬는데, 그 당시 나는 내가 지은 복이 없어서 현재 이런 과보를 받는다 생각하고 절대 화를 내지 않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고 했는데, 그런 내 모습을 일꾼들이 보고는 내 뒤에서 혀를 끌 끌차면서 "중이 되려면 일찍 젊어서 건강할 때 출가를 해야 돼!" 라고 말하곤 했지! 일꾼들이 보기에는 내가 몹시 불쌍한 듯이 보였나 봐! 아무튼 몸이 아픈 나이가 들은 스님인 나를 두고 말들이 많았어!"
"특히 절 대중스님들도 내가 공양만 하면 사찰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으니 별의별 소문이 다 났었지! 하기야 이때는 몸이 너무 아파서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들어가 오로지 정신을 집중하여 호흡 수련만 했거든! 당장 몸이 아파서 죽겠는데 내 스스로 다른 잡된 생각이 날수가 없었거든!"
양익 큰스님께서는 항상 수행하는 이들은 공부만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깨달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불교에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원만구족한데서 온다고. 즉, 남모르게 공덕을 쌓지 않는 수행자는 원만구족 복덕상을 갖추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며, 항상 수행자는 자비심을 기르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공덕을 많이 쌓으며 실천적으로 수행하여야 꼭 성불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얼마나 명확한 말씀인가?
동서고금을 통하여 성인. 현인들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해서 살다간 분들이시며, 불교의 석가모니 부처님도 6년간을 고행하여 무상정등정각을 이룬 후 돌아가실 때까지 45년 간 한 명이라도 인연되는 중생들에게 삶의 고통에서 벗어 날수 있도록 맨발고행을 하면서 하루 일종식을 하시고, 오로지 가사 한 벌 발우 하나만 갖추고 무소유로 법을 설파하며 청정하게 살다가셨다.
현재의 수행자들은 얼마나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가? 수행자가 풍족한 것은 지혜의 법이 풍족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수행을 열심히 올바로 행하는 선지식에게는 항상 물질적으로도 풍족함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나 결코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풍족함을 사사로이 쓰지를 않는 것이 올바른 수행자들의 공통점이다. 주변을 한번 돌아보라! 수행자가 행하는 언행에서 우리는 올바른 수행자를 바로 볼 수 있다. 다만 올바르게 생활하지 않는 수행자가 보이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자기수행을 돌아보는 경책으로 삼는다면 이 또한 나에게는 스승같은 존재로 다가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도를 통한 선지식들은 때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일하면서 검소하게 살다 가는 이야기가 옛 시절이나 현재에도 널리 알려지는 예가 많이 있다. 이런 수행자들은 내 것이다! 네 것이다! 라는 분별심이 없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분이라 할 수 있으니, 하나라도 풍족한 삶을 사는 재가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거룩하게 수행하고 있는 덕 높고 자비심이 넓은 수행자들을 위해서는 적은 것이라도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남자 재가불자인 우바새, 여자 재가불자인 우바이가 구족계를 수지한 남자스님인 비구, 여자스님인 비구니 수행자들이 수행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항상 뒤에서 공양 드리는 습관이 지금도 남방불교에서는 그대로 행하고 있다. 불교교단에서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사부대중이라 한다.
또한 양익큰스님이 병이 난 몸을 고치기 위하여 행한 호흡법은 분명 단전으로 숨을 가득 들이쉬며 틈틈이 지식(止息)이 들어간 호흡법을 강조하고 있으며, 특히 불교 금강영관에 나오는 수행법은 양익 큰스님께서 직접 수행하여 체득한 경지에서 나온 것이기에 양익 큰스님 가르침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절로 감탄한다.
내 스스로도 공양 후에 충분한 휴식을 주지 않고 달리기를 하면 아랫배에 통증이 오면서 배가 아픈 적이 많이 있었는데, 3년 전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아랫배로 숨을 가득 들이쉬고 참았더니 통증이 오지 않고, 숨을 내쉬면 통증이 오고 하여 참 희한한 일이다! 라고 생각하며 수행하던 지난날이 있었다.
심신을 강건하게 하기 위하여 무술수행이나 전문적인 선도호흡수련을 행하는 분들도 오늘 직접 한번 체험해 보시길 바란다. 밥을 잔뜩 먹고 바로 뛰어 보라! 분명히 소화가 안 된 상태라 배가 아플 것이다. 그때 숨을 가득 들이쉬고 참아보면 양익 큰스님의 체험담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이런 이치를 터득하신 후 양익 큰스님께서는 불교금강영관 수행법 안에 있는 영동입관, 영정행관, 영정좌관, 영동좌관, 안에 숨을 멈추는 호흡법이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몸을 치료하는 효과가 따르며, 나중에는 기력이 강대해지는 효과가 여기에 숨어있다. 더욱 더 세밀히 말하면 양익 큰스님이 스스로 터득한 경지에다 밀교 경전을 들여다보고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직접 행하여 보시고 더욱 더 한 차원 높게 들어가서 새롭게 틀을 잡아 나온 것이 불교 금강영관 수행법인 것이다.
불교 금강영관을 수련하는 후배들이여! 불교 금강영관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지금 바로 주변의 대형서점으로 찾아가라! 그곳에 가면 불교서적 안에 밀교에 관한 여러 전문서적이 많이 나와 있다. 그것을 모두 다 사서 두런두런 읽어 보라! 불교 금강영관을 통하여 수행하고, 또한 수련원을 내서 남을 지도하는 위치에 서 있는 자칭 지도자가 밀교경전을 최소한 한 두 번 읽어서 그 깊은 비로자나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 사범, 법사, 원장이란 말을 함부로 쓸 수 있으리오! 지금 바로 서점으로 가길 간곡히 선배로써 부탁드리는 바이다.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공군에서 군복무를 했어! 이때 기계의 원리를 다 알아 버렸지! 하루는 공군 군복무 시절에 꿈을 꾸었는데, 다른 한 군인과 처음 보는 어느 이름 모를 절에 올라갔는데, 나이 드신 노인이 나에게 다가와서 하는 말이 "자네가 허남익 아닌가?" 하며 내 이름을 물어보고 확인을 하더니, "자네는 앞으로 훌륭한 도인이 될 터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하면 내가 자네 옆에서 어려운 일이 없도록 도와주겠네?" 하길래,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천둥소리처럼 큰 목소리로, "비로자나불!'하고 큰소리가 들리며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꾸고 나서부터는 희한하게도 군대시절에 어렵고 힘든 상황이 오면 나는 쏙쏙 내 차례 전에 일이 풀리던지, 전 대원이 무슨 큰일이 날 때에는 나만 다른 구역으로 불러나가서 위기를 넘기는 등 아주 모든 일이 쉽게 풀리는데, 느낌으로 누군가 지금 나를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 당시에 나는 불교를 믿지 않았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승려가 되고 나서야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 비로자나불이고, 또한 모든 일을 할 때마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피력을 내가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에 가면 양익 큰스님께서 손수 앵글과 기계 부속품을 조립하여 현재 헬스클럽에서 쓰는 운동기구보다 20년 먼저 개발해 놓은 운동기구가 많이 있다. 특히 공군시절에 비행기를 많이 점검하면서 그 기계원리를 터득하셨다고 했으며, 내가 보아도 기가 막히게 운동기계를 발명하여 놓으셨다.
양익 큰스님은 발명가로도 손색이 없는 한마디로 다방면의 천재가 틀림없다.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출가하여 범어사 극락암에서 수행중일 때 하루는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는 툇마루에 무엇을 싼 보자기를 두고 갔거든! 그래서 1년간 물건을 싼 보자기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내가 보관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이 오질 않는 거야? 그래서 1년이 지난 후 이 보자기 안에 있는 물건이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거야? 그래서 보자기를 풀어 보았더니 아주 두꺼운 밀교 경전이 들어 있는 거야?"
"그래서 후에 나에게 절집 사형이 되는 광덕스님(1927~1999)에게 이일을 말씀 드렸더니, 광덕스님께서 무릎을 탁 치시며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 밀교 경전은 양익스님 꺼야! 바로 필요한 사람에게 올바로 찾아온 인연이니, 양익스님이 이제부터는 밀교경전 주인이구먼!" 하셨지!"
"공군시절에 꿈속에서 노인이 나타나서 "비로자나불!" 했지만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지! 이 당시 국내 불교집안에서 밀교경전이라는 것이 잘못 알려졌었거든! 나 또한 밀교라는 것이 성적인 쾌락적 수행요소가 가미된 못된 수행법인줄 생각하고 있었는데 직접 밀교경전을 쭉 읽어 보니,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잘못된 가르침이 아닌 거야."
"그래서 아! 이 밀교경전 안에 교주로 계시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여지껏 내가 알지 못하던 분명한 무엇이 있다 생각하고는 정성을 다하여 정독을 하며 수행하면서 일본에서 더욱 더 많이 나와 있는 밀교경전을 많이 구해와서 공부를 깊게 더 해보니, 내가 불교입문 전에 스스로 관(觀)하면서 터득한 수행결과가 밀교경전 안에 다 적혀있는 것이 아니겠어?"
"결국은 밀교경전을 보면서 비로자나불을 알았고, 불교를 모를 때부터 나를 수행으로 이끌어주신 분이 비로자나불이기 때문에, 나는 부산 범어사 청련암과 이곳 강원도 홍천 시방원에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수행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말이야! 여지껏 비로자나 부처님이 내 코를 꽉 메어서 아주 조금씩 나를 수행의 세계로 끌고 오면서 가르침을 조금씩 조금씩 주시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 한 번에 많이 가르침을 주면 내가 말을 안 듣거든! 지금도 나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는 모르고 있지만, 누구나 부처님 손아귀에 이끌려 코에 구멍이 뚫린 채 부처님이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고 생각하지!"
훌륭한 동서고금을 통한 선각자들은 자기 자신과 국가를 위하여 하늘에 기도하든가, 자기가 믿는 신에게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여 전지전능한 가피력을 입고 혁혁한 전공을 올리든지, 이름을 역사에 찬란히 남기는 숱한 일화들을 보아왔다.
또한 불교 세계 안에 이름을 날린 대 선지식들은 하나같이 꿈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아주 또렷하게 부처님을 친견하며 부처님께 계를 받고 부처님 가르침을 전수받고는 한다.
이런 경지는 특히 수행이 사무치지 않는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4차원적인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양익 큰스님 또한 당신은 오로지 비로자나불의 가르침을 따라서 여기까지 왔음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내 스스로도 왜 석가모니부처님을 교주로 모시는 불교이면서 큰스님이 상주하시는 사찰 큰 법당에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지 않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었다.
그리고, 사람인 이상 모르는 사람이 놓고 간 물건을 하루 이틀 아니면 두세달 동안에 풀어 보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1년이 넘도록 모르는 사람이 놓고 간 물건을 손대지 않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은 하기 힘든 일이 분명한 것이다. 그 당시 호기심 많은 나라면 며칠이나 기다렸을까? 한 2~3일은 기다렸을까?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내 사형이 광덕스님(1927~1999. 불광회를 이끄신 이 시대 수행의 사표라 할 만큼 대 선지식이셨다)이셨는데, 나는 출가하여 절에 들어와서 광덕스님께 초발심 자경문(행자님이 스님이 되기 전 절에서 배우는 가장 기본 된 가르침)을 배운 것 밖에는 다른 불교경전을 배운 것이 없어! 스스로 밀교 경전을 만나서 공부한 것은 있지만, 승가에서 널리 가르침을 주고 있는, 즉,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 관법(觀法)으로 터득한 경계에서 나에게 궁금하게 불교 경전에 대하여 물어오는 이가 있다면 내가 아는 경계에서 답을 주면 모두 다 나를 미친놈이라 생각하고 상종을 하지 않는 거야. 그래서 내가 광덕스님에게 이런 일이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스님께서 저에게 부처님이 말씀하신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을 질문해 보세요!" 하면서 정중히 부탁을 드렸어!"
"그랬더니 광덕스님께서 나를 세워 놓고 체계적으로 세밀하게 팔만대장경에 들어 있는 부처님 말씀을 단계적으로 물어 보셨지! 그랬더니 대장경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내가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척척 답변을 했더니, 광덕스님께서 놀라시면서 말씀하시길 "이제부터 범어사 주인은 양익스님이시네!" 내일 당장 법좌에 올라서 부처님 가르침을 깨우친 경지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사부대중들을 위하여 법문을 하라고 하시는 거야! 하지만 내가 다 쓸데없는 번거로운 짓이라 오르지 않았지!"
양익 큰스님께서는 불교 안에서 깨달음을 이룬 경지를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견성성불법을 100% 다르게 해석하고 계신 것을 청련암에서 큰스님께 들은 기억이 난다.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항상 나는 내가 수행한 경지에서 내 견해로 국내불교를 다르게 바라보거든!"
하시면서 색다른 불교관을 설파하시곤 하셨다.
양익 큰스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이 확철하게 깨쳐서 부처를 이루셨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단지 확실히 깨쳐서 부처를 이룬다면 살아생전에 32상 80종호를 갖춘 부처의 상호로 몸 자체가 바뀌어야 진정한 부처라 했습니다.
정말 부처님의 상승경전을 접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파격적인 말씀이라 할만하다.
하긴 경전에 부처님 말고도 전륜성왕 또한 32상 80종호를 갖추고 태어난다고 적혀있지만, 분명한 것은 32상 80종호의 구족한 상호를 갖추어야 부처가 되든지 전륜성왕이 되든지 하는 것이니, 살아생전에 밀교 수행법을 닦아 궁극적으로 즉신성불(卽身成佛)이 된다면, 살아서 이 몸이 거룩한 부처님 상호처럼 바뀌어야 진정한 부처라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런 양익 큰스님의 견해는 내가 읽은 불교경전인 법화경 속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섭존자를 비롯한 아난존자 등 십대제자들에게 미래에 완벽한 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를 주실 때에도 분명히 말씀한 기록이 법화경에 나온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아라한 이상의 경지를 터득한 십대제자들에게 완벽한 부처를 이루려면 32상80종호의 구족한 상호를 갖추고,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위대한 부처님, 즉 여래가 된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또한 불교 금강영관을 수행하는 사람은 초발심자경문을 서점 불교 코너에 가서 꼭 사서 읽어 보길 권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탄허스님이 해석한 책과 일타스님이 해석한 초발심자경문 책을 권한다. 구구절절이 수행자가 행해야 할 좋은 가르침이 가득 들어 있는 보배로운 책이다.
불교라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과거칠불이 강조한 "항상 악한 짓을 하지 말고 선한 것을 받들어 행하고,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즉 세 살 먹은 아이도 알고 있지만, 여든 살 먹은 어른도 행하기 어려운 것이 불교이기 때문이다. 선한 남모르는 좋은 일을 하면 이것이 공덕을 쌓는 상승법이니, 먼 훗날 거룩한 32상 80종호의 신체를 갖추는 일이니, 어찌 가볍게 해석하여 한쪽 귀로 흘려보낼 수 있겠는가! 명심하고 또 명심할 지어다! 이 만큼 몸으로 마음으로 실천적으로 행하지 못하는 가르침은 불교가 아니다.
양익 큰스님의 가르침을 보라! 얼마나 순수한가? 때로는 마치 하찮은 것도 바보같이 몸으로 하나라도 행하시며 체득해가는 과정을 올바른 성인의 정법을 따르려는 후학들은 배워야 된다.
양익 큰스님의 감동적인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나는 누가 말을 하든지, 설사 아이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도 지나가는 식으로 듣지를 않아! 항상 그럴 수도 있겠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설사 누가 어디 검을 황당하게 거짓말같이 쓰는 사람이 비록 사기치는 사람일지라도 그 말을 난 전적으로 긍정하지! 그러면 마음의 힘을 얻어 결국에는 그 사람과는 관계없이 더 뛰어난 세계를 터득하기 때문이지!"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나이 45살에 범어사 부속암자인 청련암으로 들어갔지! 처음 출가하여 스님이 된 나에게 은사스님인 동산큰스님께서는 승려는 열심히 목탁치며 염불만 열심히 해도 부처님께서 다 알아서 도와주시니,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서 기억하며 승려생활을 하라고 말씀을 하셨거든! 범어사에 있다가 청련암으로 갔을 때에는 청련암은 다 쓰러져 가는 암자였지!"
"나는 청련암에 가서도 동산큰스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말씀해 주신 것을 잊지 않고 굳게 믿고는 오로지 염불기도로 열심히 수행하며 살리라 생각하고는 그 당시 청련암 법당에 주불로 모셔진 갓을 쓴 돌로 만든 보살님이 관세음 보살님인줄 알고 열심히 관음기도를 했는데, 어느 날 기도 중에 꿈을 꿨는데, 한참 목탁을 치며 염불기도를 하고 있는데, 지장보살님이 들어 오셔서 않아 있는 관세음보살상을 확 밀치고 딱 자리에 앉는 꿈을 꾸고는 깨어났는데, 비몽사몽간 현몽한 지장보살님 행동이 이상하다 싶어서 관세음보살님 복장을 들쳐보니, 여지 것 갓을 쓴 관세음보살님이라 알고 있던 보살상이 지장보살님이 아니겠어? 지장보살님을 앉혀 놓고 열심히 관세음보살 염불기도를 했으니 이상하게도 신도가 모이지를 않았지!"
"그 다음부터 지장보살 염불기도를 열심히 해서 신도가 기도하러 많이 오면서 지금의 청련암으로 바뀌게 된 것이지! 하지만 오래 전에 범어사에 있을 때부터 어떻게 속가에서 행하던 내 무술실력을 듣고서 속가에서 태권도를 했다는 스님 한분이 찾아 와서는 나에게 하는 말이 범어사에서 스님들을 모아놓고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은데 허락을 해달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허락을 해 주었는데, 이 스님이 무술 배우겠다는 스님들만 많이 모아 두고는 온다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져 버린 거야! 그래서 할 수없이 모인 대중들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고는 다들 다른 사찰로 돌아들 가서 수행들 하라고 말을 해 주었는데, 이 대중스님들이 2년 동안 가지를 않고 나에게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하는 거야!"
"그래서 처음에는 태권도나 중국무술교본을 가지고 무술을 지도해주려고 교본을 쭉 읽어 보았더니 이런! 속가무술은 상대방이 서 있었을 경우를 가정하여 공격이 통할 수 있는 자세로 일관되게 그려져 있는 거야! 언제나 공방이 이루어지면 사람은 움직이게 되어 있는데 나는 기존의 태권도나 중국무술교본이 무언가 잘못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했어! 또한 틀이 한쪽으로만 시작하여 끝나는 공격기법으로 되어 있어서 양쪽으로 조화가 맞지 않았어! 즉, 내가 원하는 무술은 좌우와 수족이 조화가 맞지 않는 것은 형이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
"특히 전에 최홍희씨가 만든 태권도틀은 무술의 원리가 들어간 올바른 형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 다음에 나온 태권도 형은 한마디로 말이 안 되게 만들어져 있었어! 그 틀을 아마 대학교수가 만들었다고 하지! 무술원리도 모르는 사람이 대학교수면 교수지, 자기가 뭘 안다고 무술형을 만들어? 그래서 일반에 공개된 세상에 나온 무술을 가르쳐주려고 한 생각을 싹 덮어버렸어! 그리고 명색이 출가를 한 승려들에게 출가 전에 세속에서 배운 무술을 가르쳐 준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를 않았지! 그래서 이왕 스님들에게 무술을 지도할 바에는 세상에 공개가 안 된 조화로운 수행무술을 전수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관법을 하면서 깊은 명상을 했지!"
"그때부터 조용히 눈을 감고 깊은 관법명상을 하면 상단전에서 형을 하는 영상이 빠르게 지나가는데, 그 당시에는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노트에다 빠르게 그림을 그려서 부자연스러운 부분은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몸으로 직접 행하고 관(觀)하면서 형을 만들었지!"
내가 큰스님께 여쭈었다.
"큰스님 그때 상단전에서 부처님이 나와서 형을 가르쳐 주신 겁니까? 아니면 스님이 나와서 형을 가르쳐 주신 겁니까?"
하고 질문을 드리니 양익큰스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치 영화 필름처럼 아주 빠르게 형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가 있지! 어떤 대상이 나왔다 하기 보다 아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빠른 영상이 지나가는 거야! 형이란 한번 나온 동작이 반복되어서는 형이라 할 수 없는 거야! 최법사! 영동행관 승형에 반복된 동작이 들어간 것을 본적이 있나? 단지 좌우 반복적 조화로운 수련을 위해서 중복된 것이 있지, 반복적으로 나오는 동작은 없잖아? 4승형에서도 앉아서 결가부좌나 누워서 행하는 동작이 백미이지! 앉은 이가 서있는 상대방을 공격하려고 일어나려고 해서는 방어나 공격이 상대방보다 한 박자나 반 박자가 늦어서 위험한 상황을 만들고 마는 거야! 언제든지 그 상황에서 바로 공격이나 방어가 들어가야 올바른 무술이고 형이라 할 수 있지!"
"요새 무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일격필살을 주장 하지만 나는 꼭 그렇다고 생각을 하지 않아! 일격필살이 통할수도 있지만 그건 매우 위험한 짓이라 할 수 있지! 살아 있는 상대방은 언제든지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움직이게 되어 있거든! 상대방이 움직이기에 일격이라는 것은 잘 통하지 않는 거야? 내가 공격을 했으면 상대방이 피하거나 막고서 나에게 다시 공격해 들어오는 다음 수까지 미리 알고 대처하면서 움직여야 진정한 무술이라고 나는 생각해!"
내가 질문했다.
"큰스님께서 1971년에 영동행관 승형을 5승형까지 만드셨습니까?"
양익큰스님이 말씀하신다.
"1승형~10승형 , 1~10지까지 만들었어! 하지만 많이 배운다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를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단 말이지!"
내가 질문했다.
"큰스님, 불교금강영관에 들어있는 불교적 용어를 특별히 넣은 이유가 있습니까?"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밀교 경전에 보면 다 나와 있는 비로자나불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름으로 표현한 것이지! 세상 많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알겠어! 다만 스스로 관법으로 터득한 세상에 공개 안 된 수련법을 만들고 밀교 경전을 보니까 내가 스스로 터득한 무술과 수행법이 밀교경전 안에 적혀 있는 비로자나불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 것을 알았지! 그래서 밀교경전에 나타난 비로자나불의 가르침을 금강영관 수행법 안에 기초 뼈대로 세운 것이지! 나보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내세우면 더욱 더 많은 이들에게 전수할 수도 있으니 좋잖아?"
"지금도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오신 분은 비로자나부처님 덕분이니, 최법사도 내가 알려준 대로 열심히 수련해야 하고 실력 있는 제자들을 많이 키워야 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내 공명을 드날리려고 무술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세상에 공개되어 있는 무술수련법보다 세상에 공개가 안 된, 더욱 더 조화롭고 고차원적인 완벽한 무술기법과 비로자나부처님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수련하여 체득될 수 있는 수행법을 전수해 줄 목적으로 범어사에 금강연수원을 개설하였지!"
내가 질문했다.
"큰스님께서 불교금강영관이란 이름을 제자 분들께 못 쓰게 하셨는지요?"
양익큰스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그렇게 말한 일 없어! 다만 내가 불교금강영관이란 이름을 알리려고 제자들을 가르쳐 준 게 아니거든! 다만 이름을 붙인다면 '불교금강영관이고, 이중에 영(靈)은 새롭게 신령스럽게 태어남을 뜻하고, 관(觀)은 부처님 즉 지혜를 뜻하는 것이야! 문파이름은 대금강승문(大金剛乘門)이고, 다만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불무도, 선무도, 선관무보다는 관선무라고 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지! 즉, 관(觀)은 부처님이, 선(禪)은 조사스님이니, 부처님이 앞에 붙고 조사스님이 뒤에 붙는 것이 옳다 이 말이지!"
내가 질문했다.
"큰스님! 하지만 여러 제자스님들이 제각각 불무도, 선무도, 선관무, 관선무라고 다르게 이름하니, 일반 불교금강영관을 배우는 많은 회원분들이 헷갈리고 어려워합니다. 앞으로 단일된 이름으로 통일되어야 하고, 역사문제도 큰스님이 체계를 잡은 대로 사실 그대로 통일되게 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양익 큰스님이 말씀하신다.
"자꾸 분열하다보면 나중에는 불교금강영관을 배우는 이들의 마음에서 서로 간에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하나의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통일이 될 거야? 그리고 처음부터 내가 불교금강영관을 일반인에게 보급을 시키려는 목적이 아니었거든! 만약 내가 사찰을 증축하는 불사만 아니었다면 또한 처음부터 세상에 널리 알릴 목적이었다면 지금쯤 굉장하게 발전했겠지! 하지만, 나를 알린다는 아상이 수행하는 승려의 마음에 들어간다는 것은 수행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이야! 즉, 수행하는 스님이 내가 최고다! 라고 생각하면 큰일이지!"
1971년에 범어사에 금강연수원을 처음으로 개설했을 때에는 일반재가자는 제자로 받지를 않으셨다고 했다.
이유는 여지껏 일반에 공개가 되지 않은 양익 큰스님이 불조(佛祖) 이래(以來)의 전통적인 영내일체(靈內一體)의 고도(高度)한 수행방법을 참구(參究)하면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무상(無常)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인간 능력 무한력(無限力)의 우주적(宇宙的) 대아(大我)를 개현(開顯) 완성함을 주지(主旨)로 이제 불교금강영관(佛敎金剛靈觀) 규약(規約)을 제정하신 것처럼, 오로지 즉신성불(卽身成佛)하는 출가 승려의 본분을 위한 방편적 수행법으로만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범어사 청련암으로 1977년에 금강연수원을 옮긴 후에야 기수별로 나누어서 승속을 불문하고 제자를 받아 영동행관3승형 기본과정까지 지도한 후 수료첩을 주어서 산문 밖으로 제자들을 내 보내셨다고 하셨다.
지금도 양익 큰스님께서는 일체 산문 밖 속세 일에 관여하지 않으시며, 일체 방송이나 언론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로지 승려의 본분인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위한 수행만 하신다.
그러면 불교금강영관을 어떻게 수련하여야 즉신성불(卽身成佛)이 되는가 우리는 깊게 한번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이루려면 바로 양익큰스님처럼 자신이 잘못한 언행을 진실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참회기도를 하고, 남을 위해서 힘들고 어려운 모든 일을 스스로 남모르게 하고서도 바라지 않는 보시공덕을 짓고, 사심 없이 부처님 가르침대로 모든 일을 실천하는 용기와 끊임없이 청정하게 비로자나 부처님 가르침대로 독신자 수행을 하며, 대승적 가르침을 일반 인연되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자비심으로 베풀어야 즉신성불( 卽身成佛)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즉 금강영관을 수행적으로 바라보고 깊게 관하면서 우주의 이치를 통달할 수 있도록 지극정성으로 양익 큰스님처럼 실천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겉으로 보이는 불교금강영관 동작은 신체를 단련하는 건강법이나 단순한 자기 몸을 지키는 무술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양익 큰스님을 모시고 수행도 해보고 틈틈이 찾아뵙고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아보면, 확실히 내 스스로 몸이나 마음으로 느낌이 강하게 전달되어 오는 것이 있다.
즉, 항상 양익 큰스님은 출세간 위치에서 말씀을 하신다. 도무지 부귀공명을 내세우는 세상살이와는 조화가 안 되는 항상 손해보는 세상살이를 사신다. 비록 찾아오는 인연되는 신도나 수행자들에게 상담을 통하여 세간 일을 지혜롭게 조언해 주시지만, 요즘 세상처럼 순수성이 결여된 자기 이익만 좇는 세상살이 이야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심신을 수행할 수 있는 순수한 조언을 해주시기 때문이다. 즉, 양익큰스님은 몸과 마음이 확실히 출가한 승려요, 일반세속에서 살아가는 나 같은 보통사람의 눈에는 도인이요, 진정한 부처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항상 나를 내세우시는 상이 없으니, 마치 거울에 비치는 사물을 그대로 반영하여 되돌려 비추듯이 큰스님을 찾아와서 질문하는 당사자의 근기에 맞추어서 현명하게 답변을 주시니, 청련암에 20년이 넘게 신도로 계시는 노 보살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나는요 ! 양익 큰스님이 부처님이라 생각해요! 또한 청련암은 바로 영산회상이라고 생각해요
범어사 청련암과 홍천 시방원 불사가 원만히 이루어지는 인연법의 이유.]
양익큰스님이 말씀하신다.
"수행하는 사람은 우주의 힘을 알아야 해! 세상사 모든 일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불가능한 것은 없지! 다 쓰러져 가는 범어사 청련암에 처음 들어갈 때 은사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열심히 염불기도한 덕분에 지금의 청련암으로 중창불사를 해 왔고, 지금 이곳 강원도 시방원도 비로자나불의 가르침대로 불사를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약식으로 적게 시작하고 끝내려 했지만, 내가 워낙 사심이 없으니 나도 모르게 점점 불사를 크게 벌리고 말지! 전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불사를 할 큰 계약금도 없으면서 나도 모르게 엄청난 불사금이 들어가는 불사 자재인 석재를 처음에는 한번 구경해 볼 요량으로 석재재료 보러 갔다가 나 자신도 모르게 덜컥 불사계약을 하고 마는 거야!"
"계약을 해놓고서야 '어이쿠! 내가 지금 계약할 돈 지불할 것도 전혀 없으면서 왜 계약을 했지? 큰일 났네?' 하며 걱정을 하고 마음속 깊이 관(觀)하면, 나하고 인연 맺은 신도들이나 인연도 별로 없는 신도들, 또한 나도 모르는 불자들이 찾아와서는 불사금을 보시하면서 이상하게 불가능한 것 같은 불사가 술술 풀리며 정확히 척척 순서대로 이루어지거든!"
양익 큰스님께서는 천부적으로 관(觀)하는 수행법을 터득하고 나오신 분이 분명함을 이번에 강원도 홍천 시방원에서 찾아뵙고 알 수 있었으며, 모든 대소사 일을 비로자나불의 가르침대로 행하시고는 절대 나(我)를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모든 공이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피라고 말씀하신다.
한 마디로 말해 양익 큰스님은 타고난 천부적인 무술인이며, 항상 새롭게 모든 것을 한 단계 진일보하여 창조할 수 있는 발명가요, 모든 일을 비로자나불의 가르침대로 변함없이 충실히 실천하여 수행하는 밀교승려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양익큰스님의 은혜를 입어서 양익 큰스님의 가르침을 양익 큰스님 살아계신 생전에 나하고 인연 있는 이들을 위해서 양익 큰스님의 진실한, 순수한 수행의 세계를 널리 알려주는 것이 조금이라도 양익 큰스님께 은혜를 입은 것을 갚을 수 있는 작은 불연의 씨앗을 나는 나와 인연되는 많은 이들의 마음에 뿌렸다고 생각된다.
이제 이 작은 씨앗에서 싹이 돋아나는 책임은 오로지 마음의 문을 열고 순수하게 양익 큰스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후배들의 근기에 있다.
양익 큰스님을 강원도 시방원에 가서 7월28일에 찾아뵙고, 잠을 자지 않고 밤새워 큰스님의 말씀을 기록하며 생각하길, 다른 사람의 편에서 큰스님의 수행세계를 들었다면 이렇게 만인이 들어오는 인터넷에 수행록으로 공개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 1년 8개월 동안 내 자신이 오로지 큰스님의 가르침을 나처럼 젊은 시절에 정법을 닦기 위해 대 선지식을 찾아서 방황하는 나를 닮은 많은 후배들을 위해서 청련암에 올라서 매일 큰스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금강연수원이 문을 연 40년간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양익 큰스님의 가르침을 과감히 기록하여 수행록으로 인터넷에 공개를 하여 같이 공유하려 나름대로 애를 썼다.
나는 단순하고 딱딱한 공지사항이나 올라오는 국내무술 게시판에 무술 수련기나 무술이론 등을 올려서 대중화시킨 장본인은 나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유명한 큰 무술단체 공식 홈페이지나 큰 본사 홈페이지도 게시판 조회건수가 일일에 겨우 몇 십 명만 방문할 정도로 빈약하였으나, 내 개인 홈페이지 게시판은 하루 적게는 평균 150명 많게는 350명이 방문하는, 처음 글 올리던 2001년 당시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많은 네티즌들이 실명으로 무술수련기를 올리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에 국내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 치고는 굉장한 반응을 일으켰었다. 이렇게 반응을 일으킨 정점에는 양익 큰스님과 허주 큰스님 같은 큰 스승님들의 은혜로운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피력이 있다!
이제 나도 몸으로 증명시켜야 하는 무술세계에서는 노년기라 할 수 있는 30대 중반을 넘어 서고 있으며, 사람의 일생에서 불혹의 나이를 앞에 둔 인생의 중요한 황금기에 와 있고, 또한 결혼하여 두 아이를 둔 아빠이다! 이제 내 아이들에게는 아빠는 비록 겉으로 보이는 풍족한 재물을 모을 생각은 하지 않고, 돈 안 되는 무(武)의 길과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정도(正道)의 길만을 추구하여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당당히 내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다. 고집스런 너희들 아빠는 비록 스스로 하고 싶은 무술수행과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어 이기적이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무술을 위해서 젊은 나날을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정진했으며 이 시대에 한번 만날까 하는 위대한 무술 스승님들을 모시고 성인의 올바른 가르침을 받는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항상 내 스스로 추구하는 무술을 배우기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몸으로 실천적으로 수련했으며, 그래서 나는 나를 진정한 무인(武人)이라 생각했고, 훌륭한 대선지식을 만나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서 지혜를 이루어 올바른 수행자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부처님께 항상 기도한 덕분에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훌륭한 스승님들을 모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도 나 자신이 어쩌다 거짓을 마음 안에 조금이라도 두고 있으면 심장에서 불이 나고 스스로에게 꾸짖는다.
'야! 너 인간이 왜 이래? 이러고도 네가 무인(武人)이라 자칭할 수 있으며, 정법(正法)을 따라 수행한다고 부처님께 기도할 수 있어?'
부산에서 불법과 침술을 강의하시는 천법사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악마도 8지 보살의 경계입니다. 세상에는 선(善)이든 악(惡)이든 다 자기스승입니다. 즉 악한 이를 보면 스스로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선을 향해 분발할 수 있는 동기 부여를 해주니 스승이요, 선을 보면 나도 저렇게 돼야지! 하고 분발하니 스승이라 이겁니다"
내가 쓴 글을 읽은 나와 인연되는 후배들은 선배가 이 글을 쓴 이유를 잘 되새겨 보시고, 오로지 올바른 무술과 올바른 수행을 위하는 것 외에 쓸데없는 시시비비에 놀아나는 어리석음을 행하지 말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강원도 홍천에서 밤 9시30분에 출발하여 대전 집에 새벽3시에 도착하여, 잠을 자지 않고 인터넷에 보배로운 가르침을 되새기며 핵심적인 가르침을 기록한다. 현재 내 수행경계로는 큰스님의 말씀하신 보배로운 가르침을 일반인들에게 직접 눈앞에서 확인시킬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고로, 잘못하다가는 큰스님의 진실한 수행세계를 거짓으로 일방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이 한편으로는 두렵다.
현재의 내 개인적 수행견해에서 바라보는 양익 큰스님은,
첫째, 입으로 거짓을 말하지 않으시며,
둘째, 그 누구에게라도 편견 되게 가르침을 주지 않으시며,
셋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행하시며,
넷째, 정법대로 수행하시는 제자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시며, 정법을 지키지 않은 이에게는 상상을 뛰어 넘을 정도로 무서우신 스님이시며,
다섯째, 나에게 부처님의 살림살이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시는 분이 바로 양익 큰스님이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첫댓글 _()_
나무 아미타불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