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중동의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무기 확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마주한 북한만 보더라도 백성들의 안위는 뒤로한 채, 국가 안보를 명분 삼아 핵무기 개발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타국을 파괴하고 살상해도 무방하다는 이기적인 논리는 결국 모두를 파멸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죽이는 능력’이 아닌 ‘살리는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존하고 풍요롭게 하시는 은혜의 복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 속에서 단 한 번도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승리한 적이 없는 약소국이었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많았음에도, 오늘날 우리나라는 놀라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 나라의 강한 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은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 이 나라를 다스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판단’ (8199 샤파트 CW.VQAMZS) 심판하다. 다스리다. 변론하다.
인류가 전쟁을 도모하는 이유는 서로의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인간의 갈등을 다스릴 공정한 기준이 없기에, 분쟁과 다툼의 악순환이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이러한 갈등의 구실로 평화를 완성하겠다는 값싼 변론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만든 율법을 앞세워 전쟁으로 쟁취하는 평화도 아닙니다. 진정한 갈등의 해결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우리를 다스려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시나, 복음을 거부하는 이들은 심판하여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하나님의 심판이 가진 의미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최후의 심판을 내리시기에 앞서, 모든 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다스림을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기회'를 끊임없이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의 중동 전쟁이 속히 종식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무력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 질서 아래 복음에 의한 진정한 평안과 안정이 이 땅에 깃들기를 함께 간구해야 합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미, 이란전 하루 1.5조 원씩 퍼부어….’ 최근 한 신문 기사의 내용입니다. 이를 복음과 선교를 위해 사용하였으면 어떠하였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이토록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며 전쟁을 치르는 근본적인 요인은 인간의 탐욕, 자원 확보를 위한 영토 확장, 사상과 종교적 갈등이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무기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무장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의 삶과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사 2:4...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보습’ (855 에트 P.NMP) 농기구. 삽
베트남 전쟁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폭탄이 쏟아졌던 곳은 지금의 ‘라오스’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가난했던 마을 사람들은 땅속에 박힌 포탄 파편들을 수거하여 숟가락과 그릇, 그리고 삽과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잔혹한 무기들이 사람의 굶주림을 해결하고 생명을 살리는 기구로 거듭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상대를 원망하여 미워했던 미움의 칼을 쳐서, 서로를 도우며 살리는 ‘평안의 농기구’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쟁과 압제로 고통받던 이 나라를 해방하시고 삶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농기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뜻을 이어받은 성령의 충만으로,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농기구가 되어야 합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갔고, 감옥에서 온갖 시련과 고초를 겪었습니다.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형들을 심판할 막강한 권력을 가졌지만, 복수의 칼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용서의 농기구’가 되어 형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가족을 살립니다. 우리도 자신의 욕망과 탐심의 칼을 휘두르기보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생명을 살리고 이웃을 돕는 '사랑의 농기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뉴스를 통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목격합니다. 택시 기사를 폭행하는 승객, 아이를 학대하는 보육교사, 직원에게 가혹행위를 일삼는 직장 상사 등, 저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결국 폭력에 지배당해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모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파괴적인 본성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폭력에 길들어지면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기에 폭력의 악순환이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우리는 폭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길들어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길들어져야 합니다.
사 2:4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연습’ (3925 라마드 VQIMZP) 응징하다. 가르치다. 길들이다.
우리나라는 휴전선이라는 경계를 사이에 두고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의 상태 속에 놓여 있습니다. 전쟁은 우리나라뿐 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현실입니다. 각국은 전쟁시 상대를 효과적으로 응징하기 위해 고도의 전략을 세우고, 파괴적인 무기 체계를 구축하며 끊임없이 ‘전쟁 연습’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성경 역시 전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세상을 뒤덮을지라도, 모든 역사의 흐름을 통제하고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에 전쟁과 같은 고난과 시련이 닥칠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칼의 논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길들어지는 것입니다. 삶의 진정한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세상이 파괴의 전술을 펼칠 때 우리는 사랑과 용서의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길들여진 우리의 참된 모습이어야 합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어린 다윗은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양 떼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힘을 길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지켜준 것은 칼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어마어마한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다윗은 세상의 무기가 아닌, 평생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길들어진 ‘여호와의 이름’을 나아갑니다. 이는 전쟁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하는 믿음의 발걸음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칼을 쳐서 보습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함으로써,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