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정래님은 태백산맥을 통하여 한국전쟁(6.25)이 우리 민족 간의 전쟁이 아니라 외부 세력에 의한 철저한 대리전쟁이었고 민족 분열의 원인이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작품 속 대표적 인물인 김범우를 통해 작가는 간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는 순수한 민족 세력과 외세에 업힌 반민족세력과의 싸움인데 말이지,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기네 자유 민주주의와 세계 공산주의와의 싸움 아닌가. 그들이 이 전쟁에서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이겠나? 자기네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입증하는 것이었네. 그 첫번째 작업이, 그들이 북쪽에서 후퇴를 하면서 북쪽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남쪽으로 이동시킨 피난민 작전 아닌가. 원자폭탄을 투하할 거라는 소문을 들은 북쪽 사람들은 어째야 되겠는가? 원자 폭탄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짐을 쌀 수 밖에. 그런데, 그 많은 피난민들은 곧 전 세계를 향해서 공산주의 체제가 싫어서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한 것으로 선전되고, 또한 그 선전을 입증하는 좋은 자료가 되었지. 체제 우월을 세계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잃게 하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지. 그 일과 마찬가지로 포로는 그자들이 노리는 체제 우월을 내세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재료 아니겠나."(175)
" 서로 싸우는 입장에서 상대방 지역의 사람들을 모병하거나 징병했다는 게 이 세상 어떤 전쟁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겠나. 그런 특이한 현상이 벌어진 건 이번 전쟁의 성격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네. 적대 국가가간의 전쟁이 아니라 동일 민족간의 전쟁이라는 점 말이네."
작가 조정래는 한국 전쟁의 발발하게 된 계기도 우리 민족의 잘못이 아니라 체제 우월을 내세운 거대한 강대국들이었음을 직시하고 있다. 체제 우월을 입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의 나라 땅에서 마음대로 폭력을 휘두른 강대국들의 잘못은 그 어느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빨치산(유격대)들의 처절한 산 중 생활을 기록한 부분을 읽다보니 지금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그들이 그토록 바랬던 것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따뜻한 밥 한 그릇, 시원한 김치 한 조각, 따뜻한 공기가 맴도는 방 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들. 토벌대에 쫓겨 겨우 내내 지리산에서 투쟁해 온 빨치산들은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그들이 그토록 혹독한 환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투쟁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작은 소망이었다.
소작농, 백정 등 못 배우고 천시 받았던 이들이 대부분 빨치산에 자원 입산하여 오래동안 무장 투쟁을 해 왔다. 그들이 찾고자 한 세상은 지주와 소작농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었다. 염상진, 안창민, 이지숙, 하대치, 조원제, 천점바구, 강동기, 외서댁 등 작품 등장인물들이 소작농의 편이 되어 바른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대원들은 눈 위에 잠을 자기 전에 각단지게 눈들을 뭉쳐 눈밥을 먹고 있었다.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 길이 이다지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인가"(165)
"동상의 고통은 혹독했다. 살을 찢어대거나 뜯어 내는 것 같은 그 고통은 견뎌내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손발에 동상이 걸리지 않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고, 다소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동상은 손가락 발가락이 푸르죽죽하게 얼어 풀어 오르다가, 더 가무칙칙한 색깔로 변하며 피와 진물이 흘러 내리고, 그 피고름이 또 얼어붙어 손가락 발가락들이 하나로 떡 덩어리가 되고, 그러면서 검붉은 색깔로 변해 썩어들기 시작해서 마치 문둥병을 앓는 것처럼 손가락 발가락이 매듭매듭 떨어져 나갔다. 동상은 도저히 막아낼 길이 없는 또 하나의 적이었다."(168)
"겨울 보투에서는 여간해서 방에 들어 앉는 일이 없었고, 안전하다고 해서 밥을 해 먹고 떠나는 일도 드물었다. 한 끼라도 더 벌자고 밥을 시켜 먹게 되면 그 동안에 방에 들어앉게 되고, 방에 들어 앉으면 몸만 녹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녹아내려 탈이 생길 위험이 그만큼 커졌던 것이다."(157)
작가 조정래님은 태백산맥을 출판하면서 많은 고초를 당했다고 한다. 그럴 수 밖에. 지금 이 시대에 읽어도 의심 받을 수 있겠다 싶다. 반공이 국가 분위기를 장악했을 시절 <태백산맥>은 거의 불온서적 취급 당했을 것이다.
살아 생전 꼭 읽어야 할 우리나라 대표 작품 중 하나가 <태백산맥>이라고 한다. 오늘로써 긴 긴 시간을 보내며 전 권을 다 읽게 되어 흐뭇하고 묘한 감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