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동은 복사나무가 많고 봄철이 되면 복사꽃이 피어 경치가 좋았으므로 「복사골」이라 부르던 데에서 유래된 동명(洞名)이다.
옛날 우리나라는 봄철이 되면 진달래, 개나리꽃과 함께 살구꽃이 유명하였다. 특히 복사꽃은 살구꽃과 함께 유실수의 꽃이기 때문에 집 주위에 많이 심어서 친근한 꽃이 되었다. 따라서 거의 마을마다 집마다 복사·살구꽃이 인가 주위에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봄철이 되면 그 복사꽃에서 풍겨나는 향기,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사람의 정신을 황홀하게까지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복사꽃이 많은 마을을 흔히 도화동이라 부르고 또 상춘객들의 유상(遊賞)하는 장소가 되어 유명해졌는데, 고대소설 심청전에 나오는 황주 도화동(黃州 挑花洞)은 널리 알려진 것이며, 서울지역에도 마포 도화동 외에 다시 북악 아래의 도화동, 혜화문 밖의 도화동 등을 볼 수 있다.
북악 아래 있는 도화동의 풍경에 대하여는 정조조의 문인 유득공(柳得恭)의 아래와 같은 시에서도 볼 수 있다.
바람불고 비오니 시냇물 불어나는 것이
이 봄이 가기전에 도화동 구경가세나
동중의 복사나무 천 그루나 되는데,
사람은 나비따라 가고 나비는 사람따라 오네.
모두 도화동의 옛날 승경 승사(勝事)를 잘 말하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두 도화동은 산하곡한(山下谷閑)에 위치한 도화동이었지만 마포의 도화동은 산을 등지고 강에 임한 도화동으로서 그 경치는 좀 호화롭고 바람을 따라 나는 꽃과 향기는 좀더 멀리 퍼졌을 것이니 이곳 도화동의 풍경은 특별히 색다른 바가 있었을 것이다.
이 도화동의 동명을 가져오게 한 복사골은 지금도 도화제1동 경사진 곳에 마을 이름을 남겨 전하는데, 여기에는 또 다음과 같은 전설이 함께 남아 다시금 그 옛날 이곳의 도화풍경의 신비경을 상상하게 된다.
아득한 옛날 옛적, 이곳 복사골에는 마음씨 착한 김성(金姓)의 노인이 아름다운 무남독녀 도화낭자(挑花娘子)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도화낭자의 아리따운 모습과 마음씨는 천궁(天宮)에까지 알려지게 되어 옥황상제의 며느리로 하늘에 올라가게 되었다.
김노인은 딸이 천궁으로 출가하는 것이 기쁘기는 하지만 외딸을 영영 이별하게 되니 서운한 마음이 이를 데 없었다. 김노인은 그 선관이 주고 간 씨를 집 근처에 심고 얼마 후에 복사나무가 자라 꽃이 피는 것을 즐겁게 구경하며 지냈다. 그리고 김노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복사나무는 번성하고 마을 사람들 또한 김노인과 도화낭자를 생각하며 복사나무를 많이 심어 일대가 모두 복사꽃밭을 이루기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이적(神異的)인 전설, 선경을 방불케 하는 도화풍경(挑花風景)과 함께 이 복사골을 중심으로 한 일대를 도화동으로 부르게 된 것은 퍽 오랜 옛날부터의 일로 고종조 초기에 편찬된 육전조례(六典條例)에 의하면 서부 용산방(龍山坊)에 도화동(挑花洞)의 내계(內契), 외계(外契)가 갈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구역이 넓기 때문에 동을 내동·외동으로 함은 물론 계도 내동계·외동계로 갈라 편성하였던 것이다.
지나다니며 도화동에 복사골이라고 써있는 음식점 간판들을 많이 봤었는데
이런 이유로 이름을 지었는지 처음 알았어요~
도화동의 복사나무도 유심히 살펴볼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ㅋㅋㅋ
< 출처 - 넘쳐나는 지식인 네이버^^ >
- 2학년 3반 22번 이순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