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1,토요漫筆/ 뒷간변천사 /김용원
참 오래 살았다는 게 실감난다. 옛날 어렸을 때 머리 허연 할아버지가 지나갈라치면 누군가가 묻고, 대답한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셨시유?”
“환갑 지났어. 갈 날 받아놨지.”
“별말씀을요. 아직 정정하셔서 십 년은 더 사시겠구먼.”
그러면 노인이 이렇게 받아친다.
“십 년 더 살라고? 나한테 욕하는 거여.”
그 환갑을 치룬 지가 벌써 몇 년 전인가. 그런데도 아직 운전을 하고 실력도 없으면서 잘난 척 강의를 하고 삼시세때 한 끼도 거르지 않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있다. 그런데도 욕심은 앞으로 이십 년은 더 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저러한 생각을 하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짝꿍이 식사를 하다 말고 화장실로 향했다. 소변을 봤다면 올 시간인데, 소식이 없다. 왜 그러지? 신경을 돋우며 그쪽으로 귀를 열자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변기통 물 내려가는 소리가 뒤따랐다. 이어 윙윙대는 변기통 비데 기곗소리가 울렸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갑자기 뒷간변천사가 그려졌다.
어렸을 때 화장실은 똥숫간, 또는 뒷간이라 해서 마당 귀퉁이에 있었다. 뒷간과 사돈댁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의 실현장소다. 우리집에는 안뒷간과 바깥뒷간이 있었는데, 바깥뒷간은 대체로 낮에 남자들이 사용했고 안뒷간은 여자들이 사용했으며 밤에는 특별히 남자도 사용할 수 있었다.
뒷간은 큰 오지독을 묻고 그 위에 서까레 굵기의 나무를 걸쳐놓은 게 다였다. 따라서 똥통이 많이 찼을 경우에는 변을 보는 데 상당한 주의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변이 떨어지자마자 고여 있는 변수(똥물)가 튀어올라 엉덩이가 더렵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나름 관찰의 재미도 있었다. 구더기들이 기어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그 하나였다. 당시 세심한 관찰을 한 바에 의하면 대체로 통통한 구더기는 제대로 변기통을 기어오르지 못했다. 나름 잘 오르는 녀석은 대체로 날씬한 구더기였다. 그들에게도 뚱뚱한 녀석은 호리호리한 녀석보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간처럼.
모기하고의 게임도 재미있었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팔 한 짝을 내놓고 가만히 기다린다. 마침내 모기가 내 배려를 알아차리고 팔뚝에 앉아서 팔가죽 숨구멍을 찾아 바늘입을 꽂는다. 모기의 투명한 뱃속으로 찐 자주색의 핏물이 고인다. 순간 나는 팔뚝에 힘을 준다. 그러면 웬만큼 피로 배를 채운 모기가 주둥이를 빼려고 버등거린다. 그제부터 내 팔뚝 근력과 모기의 모가지 근육힘과의 대결이 시작된다. 대개는 내 팔뚝근력이 우월하여 내 재밋거리가 되었다가 결국 내 손바닥 폭력에 처절하게 핏배가 터지고 만다.
그러다 국민소득 천달러 시대쯤 되자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꼴 분뇨수거차를 불러 온동네에 구린내를 풍기는 과정만 거치면 똥물피하기동작도 필요없고 폐 속에 구린내를 채우며 볼일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구더기 움직임 관찰이라든가 모기와의 겨루기 재미는 맛볼 수 없는 게 아쉽지만 말이다. 철푸데기 앉아서 볼일을 볼 수는 없어 변비와의 전투가 지구전으로 이어질 때는 오금이 저리는 흠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하긴 그런 과정을 거쳤으므로 카투사로 있을 때 사격장에서 GI들이 부러워하는 쪼그려쏴(Squat down) 자세를 폼나게 해낼 수 있었지만.
그러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퍼질러앉아 볼일을 보는 것을 지나 이제는 버튼만 누르면 항문청소까지 해주고 있다. 되돌아보면 똥숫간 시대부터 비데 시대까지의 경험과정은 민주화 과정도 그러하였고,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정보사회로의 변천사와도 나란하다. 참으로 다양한 시대변천사를 거치면서 그만큼 추억거리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많으니 그런 과정을 거치더라도 다시 태어나고 싶냐 물으면 고개가 가로저어지지만, 그런대로 한살이 생으로는 좋았지 않았느냐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겠다.
/어슬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