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매일신문 2026년 10월 16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폐업의 시대
최경선
쓰지 못하는 우산*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공실이 점령군처럼 주둔하고 있는 골목
자고 일어나면 점포 임대 현수막이
투항하는 자세로 펄럭입니다
한때 네온사인 화려했던 자랑거리는 걱정거리가 되고
우산심벌이라 하지요
북적이던 사람들은 시나브로 줄어들고
폐업이 탈출구가 되어버린 어느 자영업자는
부러진 의자와 함께 어디론가 수거되어버렸습니다
어떤 이는 찢어진 우산을 쓰고
또 다른 이는 자루 빠진 우산을
어느 날엔
우산과 함께 통째로 날아가 버린 사람도 있지요
줄다리기를 하는지 자꾸만 뒷걸음치는 발길들
속을 게워낸 점포 몇 개는
거미줄에 걸린 하루살이처럼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네요
아웃도어 매장 점주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요
여름을 좋아하던 까무잡잡한 피부의 카페 사장은
돌아오지 못할 휴양지로 떠났는지 커피 머신만 덩그러니 남아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금은방 주인이
낡은 파리채로 적막만 탁, 탁, 내리치고 있습니다
녹슨 간판을 붙잡고 소소리바람이 덜컹거릴 때
쇼윈도우는 자꾸만 창백해져 가고
어둠살 내린 골목마다 고양이들이 갸르릉 폐허를 핥습니다
지금은 우산을 잃어버린 시대
소낙비를 맞으며 가로수들이 우의처럼 추적추적 젖습니다
* 노란우산공제.
♦ ㅡㅡㅡㅡㅡ 인공지능사회로 접어들면서 서민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노란 봉투법
이 노동의 권리를 강화한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의 경영 환경이 복잡해졌다. 한쪽만 옳고
틀린 문제가 아니다. 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매월 일정액을 정립해서 폐업, 질병, 사망, 퇴
임, 노후 등, 생활의 안전과 사업재기를 도모할 수 있는 제도라지만, 노란우산공제와 같은
사회복지제도가 오히려 많은 실업자들을 양산해내고 있다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
의 모순이 아닐까.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로 가는 길이 되었으면...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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