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Success, But Service – 성공이 아니라 섬김” - 서서평 선교사 간증문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는 한 분의 이름을 여러분께 전하고자 합니다.
그 이름은 바로 서서평 선교사,
본명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Elisabeth Johanna Shepping) 입니다.
그녀의 좌우명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삶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Not Success, But Service.”
1. 버림받은 아이에서 ‘조선의 어머니’로
1880년, 독일의 휴양도시 비스바덴.
그곳에서 서서평은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고,
어머니는 세 살배기 아이를 조부모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녀는 9세 때 할머니를 잃고,
주소 적힌 쪽지 한 장을 들고 어머니를 찾아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장로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소녀,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그녀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그녀는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습니다.
2. 조선으로의 부르심
1911년, 그녀는 미국 남장로교의 간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 무렵, 조선 땅에서 들려온 한 통의 선교 보고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가난과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조선 사람들을 위해
의료 선교사가 필요합니다.”
그녀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를 사용하소서.”
그 길은 명예의 길이 아니라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1912년 2월,
그녀는 32세의 나이로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의 간호선교사로 파송받아 조선으로 향했습니다.
그 길은, 그녀의 전 생애를 주님께 드리는 순례의 길이었습니다.
3. 조선에서의 헌신
조선에 도착한 서서평은 이름부터 새로 지었습니다.
급한 성격을 다스리고자 ‘천천히’라는 뜻의 서(徐),
그리고 평화로울 평(平) 자를 붙여 서서평이라 했습니다.
그녀는 조선의 언어를 배우고,
옥양목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고,
보리밥과 된장국을 즐겨 먹었습니다.
그녀는 조선인처럼 산 것이 아니라, 조선인으로 살았습니다.
광주, 군산, 전주, 제주, 추자도—
의료 혜택이 닿지 않던 곳마다 그녀의 발걸음이 닿았습니다.
한 달 이상 말을 타고 270킬로미터를 순회하며
환자들을 돌보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특히 버림받은 자들을 품었습니다.
한센병자, 미혼모, 고아, 과부, 거리의 아이들.
그녀는 14명의 고아를 자신의 양자·양녀로 삼았고,
38명의 과부와 함께 살며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습니다.
그녀의 삶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짐으로 열매를 맺는 여정이었습니다.
4. 조선 여성의 이름을 찾아주다
그녀가 쓴 편지 속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500명 넘는 여성을 만났지만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열 명도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돼지 할머니’, ‘개똥 엄마’로 불렸습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글을 가르쳐주는 것이
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여성의 인권과 교육을 위해
한국 최초의 여성신학교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 전신)를 세웠습니다.
붉은 벽돌로 3층 교사를 지었고,
여학생들이 자수를 놓아 만든 수예품을 미국으로 보내
그 수익을 학비로 사용했습니다.
그녀는 배운 대로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삶으로 복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푸른 눈의 어머니’라 불렀습니다.
5. 나병환자와 함께 걷다
1933년,
서서평은 한센병자 50여 명과 함께 서울까지 걸었습니다.
당시 일제는 그들을 격리하고 강제 거세까지 시행했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위해 싸웠고,
결국 일제 총독부는 소록도 나환자 시설을 허락했습니다.
그 길은 눈물의 행진이었고,
섬김의 승리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임금 대부분을 나환자와 고아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다른 선교사들이 하루 식비로 3원을 쓸 때,
그녀는 단 10전으로 하루를 버텼습니다.
결국 영양실조에 걸렸지만,
그녀는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6. 마지막 순간까지 ‘섬김’
1934년 6월 26일 새벽,
그녀는 광주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54세의 나이,
그녀 곁에 남은 것은 담요 반 장, 쌀 두 홉, 그리고 현금 27전.
그녀는 장기까지 의학용으로 기증했고,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수백 명의 거지와 나환자, 제자들이 “어머니!”를 부르며 통곡했습니다.
그들의 울음은 하늘을 울렸습니다.
7. 섬김으로 완성된 성공
서서평 선교사의 책상 위에는
언제나 한 문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성공이 아니라 섬김.”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가장 낮은 자의 자리에서 예수의 사랑을 살았습니다.
그녀의 삶은 신앙이란 논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랑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녀는 오늘도 광주 양림동 언덕에 묻혀 있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빛납니다.
8. 우리의 결단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교회는 종종 크기와 숫자를 자랑하지만,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입니다.
서서평 선교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스럽지 못한 자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그녀는 버림받은 아이에서
수많은 조선의 딸들을 품은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생애는 한 알의 밀알처럼 썩어져
지금 우리의 가슴 속에 생명을 틔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 있습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
명예가 아니라 헌신,
이익이 아니라 사랑.
그것이 바로 서서평 선교사가 남긴 복음의 유산이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길입니다.
“삶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오늘, 그 문장이 우리 가슴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그 길을 우리도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