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소그림
임병식
짐승 가운데 자기 감정을 이토록 선연하게 드러내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 악어의 눈물처럼 생리적인 반응이 아니라, 마음속의 떨림이 몸 밖으로 고스란히 흘러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소는 그런 존재 가운데 하나다.
그 감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새끼와 이별할 때다. 목을 길게 빼고 울부짖는 소의 울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온몸이 찢어지듯 터져 나오는 비애에 가깝다. 새끼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핥아 주는 모습에서 ‘지독지정(舐犢之情)’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것도 그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소는 오래전부터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농사를 짓고 가족의 생계를 떠받치는 존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를 ‘우공(牛公)’이라 부르며 예를 갖추기도 했다. 소의 등에 기대어 살아온 시간이 그만큼 길었던 것이다.
그런 소의 모습이 한 점의 그림에 응축되어 있다. 이중섭의 「흰 소」 앞에 서면 소는 더 이상 평범한 가축으로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낮추고 몸을 팽팽하게 세운 형상에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한 힘과 끝내 삼킨 감정이 함께 들어 있다.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은 소라기보다 버티고 선 하나의 생처럼 다가온다.
그림 앞에 서면 어린 시절의 소가 떠오른다.
소는 풀을 뜯을 때도 서두르지 않았다. 혀를 길게 내밀어 풀을 감아 올리고, 앞발이 디딘 자리를 뒷발이 정확히 되짚으며 걸었다. 느렸지만 흐트러짐이 없었다. 묵직하면서도 한 치의 허투루 움직임이 없는 그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때 보았던 소와 그림 속의 흰 소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화가가 그려낸 것은 소의 겉모습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말없이 일하고 견디며 살아온 시간, 그 시간 속에 눌려 있던 숨결까지 함께 그려낸 듯하다.
그래서인지 「흰 소」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한 마리 짐승이 아니라 오래된 시대가 눈앞에 서 있는 듯하다. 고단했지만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의 삶과, 그 삶을 말없이 지탱했던 소의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그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 같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흰 소의 굵은 몸과 낮은 머리 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소는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오래된 시간을 견디듯 천천히 숨을 쉬고 있다.
.(2026)
첫댓글 우리 겨레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불굴의 투혼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불후의 명작 흰소를 다시 감상해 봅니다
저도 소의 우직함과 충성심에 어미소의 모성애를 겪어보았기에 선생님의 글에 100% 공감합니다
사람과 함께하는 동뭃중에 무한 희생을 바치는 동물이 소 이외에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는 우리민족의 심성을 닯아 이중섭화백은 줄기차게 소그림을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소에 대하여 이 토록 잘 묘사한 작품도 드뭅니다.
사람 못된 것들은 본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순천 지검 앞에 자녀를 학대하여 죽인 母를 엄벌하라고 시위를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이세상에 태어나 인간에게 충직하게 봉사하고 종국에는 살을내주며 아낌없이
주고가는 동물이 소말고 또 있을까 싶습니다.
수에게 牛公이라는 칭흐를 내려줌은 그에 대한 헌사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