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총사
임병식rbs1144@daum.net
삼총사를 떠올리면서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다. 뭐냐 하면 이것이 혹여 ‘팔불출(八不出)’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부모님 자랑은 팔불출에 해당하지 않는 반면에 친구 자랑은 포함이 되어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친구자랑은 다른 팔불출 중 자기자랑, 아내자랑, 자식자랑, 학벌자랑, 가문자랑, 재산자랑, 형제자랑과 함께 이것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 만큼 화제를 풀어나가면서 최대한으로 자제하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삼총사는 시쳇말로 삼인이 의기투합하여 친하게 지내는 것을 이른다. 친하게 지내는 만큼 자연스레 만나는 횟수가 잦고 특별한 체험을 위해 먼 곳으로 함께 나들이도 떠나게 된다.
세 사람은 송 선생과 김 선생 그리고 나다. 삼총사라는 별호는 스스로 붙인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우정을 지켜봐온 지인들이 붙여주었다. 이름에 걸맞게 서로를 배려하며 쌓아온 친분을 대접해준 것이다. 함께한 세월이 얼추 10년이 되어간다.
우리 세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1946년생 개띠로 동갑내기 갑장이며, 함께 문필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향은 각각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판이하다.
송선생 고향은 고흥이다. 그리고 김선생은 곡성이고 나는 보성 출신이다. 다른 두 사람은 젊은 시절 교직에 몸담았고 나는 경찰직에 있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 함께 수필문학모임을 결성하고부터였다. 전에도 안면을 트고 살았지만 급속히 가까워진 것은 모임을 함께하고부터다.
그렇기는 해도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은 다른 계기가 있었다. 세 사람이 다 훌륭한 어머니를 둔 점이다. 하면, 팔불출에도 예외적으로 부모님의 자랑만큼은 제외시키고 있으니 어머니의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한다.
세 분의 어머니들은 한국의 격변기를 살다 가신 분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고 해방정국을 거쳤으며 우리나라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난 시기를 사셨다. 1910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시차를 두고 사시다 가셨다.
세분 어머니는 살아생전 관청과 대 문중에서 ‘장한어머니 상’을 받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산소 앞에는 수상하신 상장이 석물로 제작되어 있다.
송선생 모친의 삶을 들어보면 눈물겹다. 슬하에 7남1녀, 자손을 55명을 두었는데 집에는 논 한배미가 없었다고 한다. 그 신산한 살림은 온전히 당신 혼자서 감당했단다. 바닷가 선창에서 갯것을 받아 완행열차를 타고 남 광주시장까지 가서 내다 팔았단다. 그런 외벌이로 가족을 건사했단다.
그러한 자식들은 어머니의 고생하신 모습을 가슴에 새겼다. 하나같이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사회인이 되었다. 교장이며 교수며 수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그러니 장한 어머니상을 수여하지 않았겠는가. 슬하에 45명의 자손을 두었는데 마지막은 늘 흐뭇해하셨단다.
김 선생의 모친은 모범적인 가정을 이끌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농사짓고 길쌈하여 이십 여릿길을 이고나가 가용을 벌었다. 근검 성실함으로 살림을 일구었다. 인근 주민에게 인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았다. 아들은 교장이 되었으며 손자손녀들은 서울에서 명문대를 나와 의사와 유명기업체의 일원이 되었다. 인덕이 인근에 널리 알져서 3개 시군이 합동으로 표창한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슬하에 2남 3녀, 자손을 38명을 두었다.
나의 모친은 두 분에 비해 연배가 한 10년쯤 올라간다. 1915년인데 94세까지 장수하시다 1989년에 작고하셨다. 어머니는 여장부셨다. 몸이 아픈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책임지셨다. 재봉틀을 가지고 옷을 지어 놉을 얻고 작은 농토의 농사를 지어나갔다.
어머니는 문중 대종회에서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이 상은 어머니가 최초이면서 지금도 그 상을 받은 사람이 없다. 자식은 작가와 의사를 만들고 손자와 손녀는 각각 변호사와 유명첼로 음악가를 만들었다. 당신은 슬하에 자손을 31명을 두었다.
이분의 무덤 앞에 장한어머니의 석비가 세워진 것은 어떤 계기가 있었다. 송 선생의 안내로 집안 산소를 들러보게 되었는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낯선 비석이 있었던 것이다. 다가가서 보니 표창장을 새긴 석물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느낀 것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도 받으신 것이 있는데.”
해서 서둘러 세워놓게 되었다. 내용은 어려운 가정을 건사해온 가운데 노구에도 불구하고 아픈 며느리를 십 수 년 간 간병을 했다고 적혀있다. 이것을 볼 때 나는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90이 넘은 노모를 고생시켜드린 일 때문이다.
내가 장한어머니 표창비를 세우자 김 선생이 이어서 세우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삼총사는 어머니 무덤 앞에 세기의 표창비를 세우는 이색적인 일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어느 어머니가 가장을 잘 이끌고 자식을 잘 건사하지 않았을까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세분의 어머니는 좀 특별하지 않았는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우리 세 사람 삼총사는 닮은 내력이 있으며 이런 인연 때문에도 우정을 이어가지 않을까 한다. 세분의 어머니 때문에 팔불출의 하나인 친구자랑을 한 셈이지만 크게 험은 아니지 않는가 한다. 흔히 세 사람의 벗 중에는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서로 교류하며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는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일찍이 함석헌선생은 당신의 시에서 “먼 길을 나서는 길 / 처자를 내맡기며 /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이하생략)“말했다.
삼총사의 끈끈한 우정을 생각하면서 우정이 무르익어 그런 경지에 이르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2025)
첫댓글 삼총사는 드라마, 영화, 뮤지컬, 달타냥, 가수, 미녀도 있지만
Un pour tous, tous pour un
All for One, One for All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 삼총사의 구호도 있습니다.
우리 셋이 우연히 만나 의기 투합으로 말년을 함께 함이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글을 쓰고, 셋이 어머니들께서 ‘장한어머니’ 아들들이 되었으니 큰 기쁨이라 생각합니다.
청석님의 유려(流麗)한 필력은 감탄이고 글은 표상(表象)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칫 자랑이 될수도 있어서 최대한 자제를 하면서 담담한 심정으로 써보았습니다.
세 사람의 모친께서 똑같이 '장한 어머니상'을 받으셨다는 건 특별한 인연이고
그래서 만남이 필연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익장 삼총사의 깊어가는 우정의 주유천하가 참으로 좋아보입니다 진정 노년의 홍복이 올시다 세 분께서 공히 공직자로서 오랜 세월 모범으로 봉사하신 건 아무래도 공히 훌륭하신 어머님의 가르침과 덕행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아무쪼록 세 분 모두 오래오래 건강하신 가운데 아름다운 우정 가꾸어가시기 바랍니다
인생 노년기에 삼인이 의기투합하여 주기적인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행복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공통점을 찾아보니 의외로 닮은 구석이 많이 흠칫 놀라게 됩니다.
변함없는 우정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