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총사
임병식
나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두 벗이 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승우다. 나까지 셋, 우리는 오래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삼총사’로 불린다. 자주 어울리고 먼 길도 함께 다니며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이야기를 꺼내자니 문득 ‘팔불출’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전을 보니 친구 자랑도 팔불출에 든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친구 자랑 대신, 그 친구들을 길러낸 어머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 셋은 모두 1946년생 개띠 동갑이고 문필 활동을 한다. 송 선생은 고흥, 김 선생은 곡성, 나는 보성 사람이다. 두 친구는 평생 교단에 섰고, 나는 경찰 생활을 했다. 문학 모임에서 가까워진 우리에게는 남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세 사람 모두 훌륭한 어머니를 두었고, 세 분 모두 ‘장한 어머니상’을 받으셨다는 점이다.
송 선생의 어머니는 논 한 배미 없는 살림에 7남 1녀를 키웠다. 새벽 바닷가 선창에서 갯것을 받아 장에 내다 팔며 자식들을 건사했고, 고된 살림 속에서도 자식 공부만은 놓지 않았다.
김 선생의 어머니 역시 농사일과 길쌈을 하고 먼 장길을 오가며 집안을 일으켰다. 검소한 삶 속에서도 자식 교육에 마음을 쏟았고, 자녀들은 교육자로, 손주들은 의사와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나의 어머니는 1915년생으로 아흔넷까지 사셨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기울어진 집안을 떠받치며 재봉틀 앞에서 밤늦도록 옷을 지어 팔고 작은 농토를 일구어 자식들을 키웠다. 문중 대종회 최초로 장한 어머니상을 받으셨다.
우리 삼총사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된 풍경이 있다. 어머니 산소 앞에 세워진 표창비다.
처음에는 송 선생 어머니 산소에서 그 비석을 보았다. 표창장이 새겨진 비석 앞에 한동안 서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어머니도 평생 저렇게 사셨는데…….’
그 길로 어머니 산소 앞에도 표창비를 세웠다. 뒤이어 김 선생도 같은 일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어머니 무덤 앞에 삶의 훈장을 하나씩 남겼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 그중에서도 험한 시대를 견디며 자식들을 일으켜 세운 세 분의 삶은 우리에게 각별하다. 어쩌면 우리 우정의 뿌리에도 서로의 어머니가 있었는지 모른다. 친구뿐 아니라 그 친구를 길러낸 삶의 내력까지 존경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세 벗이 있으면 그 가운데 스승이 있다고 말한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에게 배우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함석헌 선생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먼 길을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살아갈수록 그런 벗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새삼 깨닫는다. 우리 삼총사의 우정도 오래도록 그러하기를 조용히 바란다.
(2025)
첫댓글 삼총사는 드라마, 영화, 뮤지컬, 달타냥, 가수, 미녀도 있지만
Un pour tous, tous pour un
All for One, One for All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 삼총사의 구호도 있습니다.
우리 셋이 우연히 만나 의기 투합으로 말년을 함께 함이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글을 쓰고, 셋이 어머니들께서 ‘장한어머니’ 아들들이 되었으니 큰 기쁨이라 생각합니다.
청석님의 유려(流麗)한 필력은 감탄이고 글은 표상(表象)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칫 자랑이 될수도 있어서 최대한 자제를 하면서 담담한 심정으로 써보았습니다.
세 사람의 모친께서 똑같이 '장한 어머니상'을 받으셨다는 건 특별한 인연이고
그래서 만남이 필연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익장 삼총사의 깊어가는 우정의 주유천하가 참으로 좋아보입니다 진정 노년의 홍복이 올시다 세 분께서 공히 공직자로서 오랜 세월 모범으로 봉사하신 건 아무래도 공히 훌륭하신 어머님의 가르침과 덕행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아무쪼록 세 분 모두 오래오래 건강하신 가운데 아름다운 우정 가꾸어가시기 바랍니다
인생 노년기에 삼인이 의기투합하여 주기적인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행복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공통점을 찾아보니 의외로 닮은 구석이 많이 흠칫 놀라게 됩니다.
변함없는 우정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