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환의 풀어 쓴 한자 이야기 - 018. 침묵(沈默)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날, 아이와 할아버지 사이에 나누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들었다. “저는 말하고 나서 후회할 때가 많아요. 이때는 어떡해야 하죠? 말을 제대로 못 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면, 침묵을 지키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백 번이라도 후회해야 한단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제가 아는 게 없어 보일 것 같아요.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말하기를 좋아하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침묵을 지키는 법이란다. 근데 제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면, 저를 무시하지 않을까요? 살다 보면,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단지 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강하고 과묵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많단다. 말을 하는 것 보다 말하지 않을 때, 힘이 있어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이군요. 앞으로는 때와 장소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말만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어요.” 소개한 대화에서 침묵의 중요성이라는 교훈을 받으며 침묵(沈默: 잠잠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음)을 이루고 있는 한자를 들여다본다.
가라앉을 침(沈)은 물 수(氵=氺)에 머뭇거릴 유(冘)가 더해진 글자다. 물 수(水=氺)는 끊임없이 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자이다. 물 수(水)는 한자의 구성에서 변으로 쓰일 때의 자형은‘氵’로 삼수변이라 하며 독립된 자로는 쓰이지 않는다. 발로 쓰일 때의 자형은‘氺’로 역시 독립자로 쓰이지 않는다. 泰(클 태)자와 같은 경우다. 물 수는 시간이 지나면서‘물’에서‘평평하다’,‘고르다’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수륙(水陸:물과 뭍), 수평(水平:기울지 않고 평평한 상태), 수준(水準:사물의 가치나 질 따위의 기준이 되는 고른 표준이나 정도)이 좋은 용례이다.
머뭇거릴 유(冘)는 덮을 멱(冖:민갓머리)에 사람 인(人)이 결합 된 한자이다. 덮을 멱(冖)은‘덮다’나‘덮어 가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冖자에는‘민갓머리’라는 뜻도 있는데, 이는 갓의 모습을 닮았으나 윗부분이‘밋밋하다’라는 뜻이다. 덧붙여 冖자는 보자기와 같은 것으로 물건을 덮어 가리는 것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이 글자는‘덮다’나‘가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단순히 모양자 역할만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 인(人)은 사람이 팔을 뻗치고 서 있는 옆모습을 본뜬 글자로 사람, 인품, 남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인간(人間: 사람), 인품(人品: 사람의 됨됨이)이 좋은 용례이다. 즉, 머뭇거릴 유(冘)는 사람에게 보자기를 덮으면 앞을 볼 수 없어 무서워 발걸음이 망설어지고, 머뭇거리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가라앉을 침(沈)을 종합적으로 설명해 보면 물의 흐름이 머뭇거리거나 고여 있다 하여 장맛비에 잠긴 진흙을 뜻하나 대체로 물에 잠긴다는 뜻이다. 또한 갑골문을 보면 강물에 떠내려가는 소가 그려져 있었다. 홍수로 소가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소전체(小篆體)로 넘어오면서 소 대신 목에 칼을 차고 있은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 목에 칼을 찬 사람은 죄수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침(沈)자는 강물에 죄수를 수장시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조금은 섬뜩한 글자라 할 수 있다. 침잠(沈潛: 깊이 가라앉아 잠김), 침몰(沈沒: 물에 가라앉음, 망함)이 좋은 용례이다.
조용할 묵(默)은 검을 흑(黑)에 개 견(犬)이 결합 된 한자이다. 검을 흑(黑)은 굴뚝 창(罒=窓), 흙 토(土), 불 화(灬=火)로 이루어진 글자로 금문에서는 火자 위로 연기가 빠져나가는 흙 굴뚝이 그려져 있는데, 불을 지피는 용도인 아궁이는 주위가 꺼멓게 거슬리게 된다. 옛날 흙으로 만들어진 초가집에 있는 굴뚝과 아궁이가 늘 연기로 검정색으로 거슬려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가 빠르다. 흑막(黑幕: 검은 장막), 흑심(黑心: 시커먼 욕심을 품은 마음)이 좋은 용례이다.
개 견(犬)은 개가 옆으로, 서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한자의 구성에서 변으로 쓰일 때는 犭자인데 이를 개사슴록 변이라 한다. 견원(犬猿: 개와 원숭이, 사이가 나쁜 것을 비유하는 말)이 좋은 용례이다. 조용할 묵(黙)을 종합적으로 풀이해 보면, 밤이 칠흑같이 깊이 어두워져도 개 한 마리 짖지 않고 고요가 깔려 조용하다는 뜻이다. 묵념(默念: 잠잠이 생각함), 묵비(默祕: 물어도 입을 열지 않음)가 좋은 용례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말을 많이 하지 말며 격하게 화내지 않음과 흥분해서 자제력을 잃는다면 결코 그릇이 큰 사람이 되지 못하다.”라는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왜 침묵하고 냉정하게 살아야 하는가? 바다를 생각해 보자. 표면의 물결은 바람이 불 때마다 요동치고 흔들린다. 파도가 일고 물보라가 튄다. 그러나 그 깊은 곳의 물은 어떠한가?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불어 흔들 수 있는 것은 표면의 물결뿐이다. 그 깊은 물 속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 첫눈이 내리는 계절에 다산(茶山)의 말씀을 곱씹어 본다.
| 沈 | = | 氵= 氺 | + | 冘(冖+人) |
| 가라앉을 침 |
| 물 수 |
| 머뭇거릴 유(덮을 멱, 사람 인) |
| 默 | = | 黑(罒+土+灬) | + | 犬=犭 |
| 조용할 묵 |
| 검을 흑(굴뚝 창, 흙 토, 불 화) |
| 개 견 (개사슴록 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