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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공헌하는 인재 육성, 정선전씨 필구公 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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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welcome everybody) 스크랩 특별한 만남
한강의 언덕 추천 0 조회 7 15.05.11 21: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특별한 만남

[번역문]

  천지에는 빼어나고 맑은 기운이 있는데, 그 기운은 사물에 모이기도 하고 사람에게 모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기운이 모인 곳에는 서기가 가득 서려 기이하고 빼어난 재목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 기운은 가까운 곳에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먼 곳에도 모이며, 사물에 주어지기도 하고 사람에게 부여되기도 한다.
  내 들으니, 교지(交趾 지금의 베트남 북부)는 남쪽 끝에 위치한 나라로 주기(珠璣), 금옥(金玉), 임랑(琳琅) 같은 보석과 상아나 무소뿔 같은 기이한 물건이 많이 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는 참으로 빼어나고 맑은 기운이 특별히 그곳에 모인 것이니, 비범한 인물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어찌 기이한 보석으로만 그치겠는가?
  이번에 사신으로 온 풍공(馮公)은 머리는 하얗고 몸은 말랐다. 일흔의 나이에도 얼굴은 여전히 아름답고 머나먼 여정임에도 탈 없이 도착하여 중국의 예악을 구경하고 천자에게 조회하였다. 그가 지은 『만수경하시(萬壽慶賀詩)』 31편은 천자의 성절(聖節)을 기린 내용으로 문사와 함의가 혼후하여 말마다 주옥이요 소리마다 금옥이니, 어찌 비범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중략) 나는 동방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그대와 대화를 나누고 그대의 시를 접해 보니 구름 수레를 탄 듯 황홀하여 정신은 화해(火海)의 지역에서 노닐고 발은 안남(安南)의 지경을 밟는 듯하니 크나큰 행운이다. 어찌 감히 졸문을 핑계대어 사양하겠는가? 이에 서문을 쓴다.

[원문]

夫天地有精英淸淑之氣, 或鍾於物, 或鍾於人. 故氣之所鍾, 扶輿磅?, 必生?奇秀異之材, 不專乎近而在乎遠, 不稟於物則在於人焉. 吾聞交州, 南極也. 多珠璣ㆍ金玉ㆍ琳琅?象犀之奇寶, 是固精英淸淑之氣, 特鍾於彼, 而宜有異人者出於其間, 豈獨奇寶乎哉? 今使臣馮公?然其髮, ?然其形. 年七十而?尙韶, 譯重三而足不繭, 觀禮明庭, 利賓王國. 其所著萬壽慶賀詩三十一篇, 揄揚敍述, 詞意渾厚, 足以唾珠璣而聲金玉, 亦豈所謂異人者哉? (中略) 不?生在東方, 得接子之話觀子之詞, ?然?車雲馭, 神遊火海之鄕, 足涉銅柱之境, 幸亦大矣. 其敢以不文辭? 是爲序.

- 이수광(李?光, 1563~1628), 「안남 사신의 만수성절경하시집에 쓴 서문[安南使臣萬壽聖節慶賀詩集序]」, 『지봉집(芝峯集)』 권8

  
  윗글은 지봉 이수광이 1597년 겨울 진위사(陳慰使)로 연경(燕京)에 갔다가 만난 안남국(安南國 베트남의 옛 이름) 사신 풍극관(馮克寬)의 『만수성절경하시집』에 붙인 서문이다. 풍극관(1528~1613)은 안남국 후려조(後黎朝) 때의 정치가이며 문학가로 호부 상서(戶部?書)를 지냈으며 『언지시집(言志詩集)』, 『다식집(多識集)』 등의 한문 저술을 남긴 분이다.

  두 사람이 만났을 당시 풍극관은 일흔의 나이였고 지봉은 35세였으니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난다. 조선에서 연경까지는 5천 리이고 안남에서 연경까지는 무려 1만 3천 리나 된다. 바람난 마소도 서로 미치지 못할 만큼 떨어져 있는데도 두 나라의 사신이 연경의 같은 객관에서 만났다. 그리고 시문으로 수창(酬唱)하면서 나이와 국경을 초월하여 사귀었으니 여간한 인연이 아니다.

  얼마 전 한국고전번역원이 우리 고전 해외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제3회 ‘한국 고전 해외 강연’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다. 베트남은 그야말로 ‘화해(火海)의 고향’이었다. 한여름도 아닌 4월에 한낮 기온이 36도를 훌쩍 넘겼다. 후한의 마원(馬援)이 교지를 두고 “찌는 듯한 무더위에 솔개도 떨어진다”고 했던 탄식이 괜한 말은 아니지 싶었다.
 
  성균관대학교가 해외의 한국어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성균 한글 백일장’ 행사와 함께 진행된 이 강연회에는 베트남,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의 한국어과 학생 및 교수 70여 명이 참석하였다. 한국 고전을 활용한 한국어 교육, 조선 시대 한양도성과 궁궐, 화폐로 보는 한국 문화와 인물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진행된 강연은 현지의 학생과 교수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한국 고전 해외 강연과 성균 한글 백일장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의 확인이었다.

  인도차이나의 4개국은 기후, 풍토, 역사와 문화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나름의 공통점도 있다. 중국의 변두리에 위치하여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이 우선 같다. 우리가 일제의 압제를 받았던 것처럼 태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 나라 역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독립하는 과정에서 이래저래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근현대의 아픈 역사도 같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왠지 모르게 베트남과 그 이웃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동병상련 때문일까?

  지봉과 풍극관이 서로 수창할 수 있었던 매개는 중국과 한문이었다. 안남이나 조선 모두 중국을 종주국으로 받들고 한문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동아시아적 특수성이 오히려 소통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런데 이번 강연과 백일장은 이역만리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한글’을 매개로 지역과 역사, 문화를 넘어 소통하는 자리였다. 지봉과 풍극관이 만났던 인연과는 또 다른 인연이었고 그들의 소통 방식과는 참으로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김낙철 글쓴이 : 김낙철
  •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 주요 번역서
    - 인조/ 영조/ 고종대 『승정원일기』
    - 정조대 『일성록』
    - 『명재유고』, 『서계집』, 『성호집』 등의 번역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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