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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사례를 작성하시는 분의 기본 정보를 작성해주세요.
· 연령 : 30세
· 성별 : 여자
· 직업 : 전) 유치원교사 전) 각종 웨이트리스· 통증부위 : 목, 양쪽 어깨(특히 오른쪽), 허리(특히 오른쪽), 골반(특히 왼쪽)
· 통증 원인 : 과업무, 과노동, 잘못된 생활습관
· 병명/수술여부 : 일자목, 일자허리, 척추협착 / 수술 X· 처음 SNPE하게 된 계기 :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SNS를 통하여 SNPE를 알게됨· 운동 참여 기간 : 운동 기간만 합치면 6개월
· 1주 평균 운동횟수(일) : 처음~3개월 주2~3회 / 3개월~6개월 주6~7회· 운동목표 : 통증없는 삶, 주체로운 삶, 건강한 삶, 아름다운 삶을 살며 다른이들에게도 건강을 선물하는 것!
SNPE 글로벌을 꿈꾸며..!
안녕하세요 저는 95기 지도사 과정을 마친 이지선(Selina)입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SNPE를 만나
통증에서 벗어나 뷰티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체험사례를 이야기 해보려합니다. (긴글주의)
<위 사진은 제가 유치원에서 근무할때의 사진입니다. 일할 때의 자세습관을 중점으로 봐주세요>
1. 직업병 그것은 고질병
저의 직업은 ‘유치원 교사’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현장에 나가 유치원 교사 생활을 시작 하였습니다.
항상 작은 책상, 아이들의 몸에 맞는 의자에 아이들과 함께 앉아 아이들을 가르치며 오전오후 수업을 하였고,
아이들이 하교를 하고 난 후엔 각종 서류와 유치원 업무를 마치느라 10시, 11시 퇴근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치원 교사 특성상 몸은 항상 앞으로 기울어 있었고
(사진을 보면 자세가 모두 앞으로 쏠려있고 목, 어깨, 허리가 업무내내 굽혀져있는 상태,
아이들과 바닥에서 하는 활동이 많아 바닥에서 좌식생활을 기본적으로 많이 함)
아이들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춰야 했기 때문에 목과 허리를 항상 굽혀야 했습니다.
그렇게 4년을 하루에 14시간~16시간을 일하며 하나씩 몸이 망가지고 힘들어하는 것을 느꼈지만
모두가 그렇듯 ‘다들 이 정도는 아프고 힘들겠지’ 하며
허리가 아플 때면 가끔씩 물리치료를 받기도 하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기도 하며 4년을 버텼습니다.
2.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다!
교사생활 4년차..
저는 스스로 저의 인생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4년차 유치원 교사 생활은 꽤나 안정적이였고, 사회생활에 익숙해 져갔지만,
매일 하는 야근, 과업무로 인해 점점 지쳐가는 하루하루에
학생시절부터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외국 생활을 다시금 꿈꾸게 됩니다.
그렇게 외국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호주, 캐나다, 영국, 미국 등의 영어권 나라에 관심을 가지면서
비교적 비자를 발급받기 쉬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위 사진은 호주 시드니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펍과 차일드케어에서 일했던 사진입니다.>
3. 내 나이 꽃다운 27! 호주에서의 새로운 인생의 개막
호주의 시드니로 온 저는 무작정 일을 찾아 하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물가, 비싼 방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당장에라도 일자리를 구해야 했고
오지잡(호주잡)을 가지고 싶었지만 처음엔 영어를 한 문장도 구사할 수 없어서 한인 레스토랑에서 서빙 일을 했습니다.
한 달 뒤 영어를 조금씩 말할 수 있게 되어 아주 운이 좋게 오지잡(호주잡)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저는 학교를 다니며 호주 차일드 케어(childcare) 자격증을 따게 되었고,
낮에는 차일드케어센터(어린이집) 저녁에는 시티에 있는 펍에서 투잡을 하며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수하며 필사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4. 통증의 시작..
낮에는 차일드 케어에서 아이들과 바닥에서 좌식생활을 하며 일을 하고,
저녁에는 무겁고 셀 수 없이 많은 잔을 나르는 서빙일과 수 천 잔의 칵테일을 만드는 일을 하며
어깨와 목, 허리, 골반, 엉덩이 쪽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일은 원래 힘든 거지' 하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저는 만성 피로에 항상 힘들어 했지만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가끔씩 너무 피곤할 때면 받는 마사지로 위로하며
저 스스로 호주에서의 워킹홀리데이를 멋지게 실현해 나가는 거라 믿고 스스로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눈을 떴는데,
어깨와 오른쪽 허리에 담이 크게 오면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바닥을 기어 차일드케어 원장님께
출근을 못하겠다는 전화를 남기고 하루 종일 움직이지도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 후로부터 통증의 심각성을 조금씩 알게 되고 치료를 받기위해
카이로프랙틱, 물리치료, 필라테스 운동치료, 마사지를 다니며 치료를 다녔고
그 후 부터 병원을 가기위해 일을 하고, 일을해서 번 돈을 병원에 모두 쓰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목, 어깨, 허리 통증으로 여러군데의 병원을 다녔던 치료 영수증입니다.>
5. 지독한 통증과 일시적인 치료의 반복
저는 살인적인 노동량으로 인해 어깨통증이 심하였고 승모근이 엄청 쏟아 있었습니다.
일자목, 거북목이 된 상태라 목도 짧아진 상태였지요.
매일 허리를 숙이며 일을 하며 오랜 좌식생활로 인해 허리는 일자허리에
왼쪽 골반에서는 뚝뚝 소리가 나고 누울 때마다 엄청난 통증이 있다가 사라지곤 했었어요.
왼쪽 엉덩이에서는 저림 현상이 있었고, 침 치료를 받으면 나아졌다가 다시 재발하곤 했었습니다.
뒷목은 항상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 같은 통증이 항상 있었고, 정말 짜증나고 고통스러웠어요.
성격이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민하고 짜증이 많은 사람으로요.
그렇게 저는 통증으로 눈을 뜨고 통증으로 눈을 감는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감기는 일년 내내 달고 살았습니다. 겨울, 여름 가리지 않고 그냥 매일 아팠어요.
계속되는 치료에도 몸이 나아지지 않아서 제 몸에 암이 자라고 있는 건 아닌지,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지 걱정 되서 피검사도 해보고 건강검진도 했습니다.
결과는 모두 정상.
허무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왜 아픈 이유도 모르고, 고치지도 못하는 걸까.
호주에서 한국 물리치료사와 한의사에게 묻기도 하였고
호주, 중국, 베트남, 인도 물리치료사와 카이로프랙틱 치료사등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만나는 의료진들마다 통증의 이유와 치료방법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럴 때 마다 그들은
‘몸이 틀어져서 그런다’, ‘일을 많이 해서 그런다’, ‘목이 일자목이다’, ‘쉬어라.. 일을 하지 말아라..’,
‘몸이 선천적으로 허하다. 약하다’, ‘계속 마사지를 다녀라, 계속 치료를 다녀라.’ 이런 얘기만 해주었습니다.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라구요.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합니까???
이렇게 사지가 멀쩡 한대! 29살 한창 청춘을 즐기고 있어야 할 나이인데
이렇게 90대 노인처럼
하루살이 인생처럼 남에게 의존하며 병자같이 살아야 하는 겁니까?!’ 너무 억울하고 서러웠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온게 죄라면 죄라고 생각했어요.
왜 나는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나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고
마음은 점점 병들어 갔습니다.
병원을 다녀보신 분을은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병원을 다니려면 돈이 필요했고
병원을 갈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했기때문에 통증이 있어도 쉴 수가 없었어요.
저에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캄캄한 터널을 걷는 듯 한 정말 힘든 하루하루였습니다.
사진 속 영수증에도 보면 알겠지만 병원비,, 정말 한 두푼 아니에요.
제가 첨부한 영수증 말고도 온갖 마사지, 치료들도 정말 훨씬 많습니다.
퇴근 후 집에가는 길에 맞은 침들, 부황치료들.. 매주 1회에서 2회는 꼭 마사지를 가야만 했어요.
한국, 중국, 태국, 호주 마사지사.. 다른 나라문화에선 이 통증을 해결해 줄 답이 있을까
여러 인종의 병원, 마사지를 모두 다녀봤습니다.
정말 할수 있는데까진 다 해봤어요. 병원에 몇 천만원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호주 와서 투잡, 쓰리잡을 하며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 돈을 병원비에 다 썼습니다.
6. 내 인생의 암흑기
치료를 매주 다니고 있음에도 통증이 나아지지 않았고..
일이 너무 힘들어서 아픈것이라고 판단 한 저는 차일드케어와 펍 일을 그만뒀습니다.
하지만 병원을 가려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일 보다는 편할 것이라고 생각한 카페잡을 구하게 되는데
하필이면 취업한 카페가 오전에만 몇천잔의 커피가 팔리는 시티 중앙에 있는 카페였고,
바리스타로 일한 저는 하루에 수 천 잔의 커피를 만들며 극심한 어깨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극심한 통증으로 제가 하던 모든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렇게 일하는 것을 좋아하던 제가, 통증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되었어요.
인생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없다는게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저는
성격은 점점 더 암울해지고 신경질 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아파서 누워있는 제 자신이 너무 싫어 스스로 자책하고 원망도 하고
이 답답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나고 싶을 때 마다 계속 오는 통증에 다시 무너지고
매일 찾아오는 무기력과 우울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에요.
몸의 통증으로 인한 마음의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저는 그렇게 하루하루 병들어가고 시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밝았던 셩격도 변하기 시작했고, 평일에는 매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는데 매일 똑같은 너무 우울한 생활에
주말이 되면 억지로라도 파티에 가서 술을 마셨습니다. 제가 원래 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땐 정말 술을 많이 마셨어요.
그때 당시는 누워있어도 아프고 앉아있어도 아프고 서있어도 아팠는데
술을 먹으면 술김에 통증을 잊을 수 있었거든요.
또 매일 무기력하고 병들어 있는 모습에서 파티에 갈 때면 화려하게 하고 나가는 제 모습이
마치 옛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파티를 더욱 열심히 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건강한 내 모습을 그리워하며 통증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술에 쩔어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하면요.
사람들은 몰랐어요.
주말마다 파티에 나가서 사람들과 즐기는 화려한 제 모습과
SNS에 비춰지는 즐거운 모습 때문에 아무도 아프다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도 아픈것을 티내고 보여주고 싶진 않았지만
한편으론 제가 아픈것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아무도 몰라주는 것에 서럽고 외로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몸이 아프니까 마음도 아팠고 정신도 건강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때 당시 하루하루가 슬프고 괴로워서 상담을 알아보기도 하고, 종교에 매달려 매일 울기도 했거든요.
7. 내 인생의 빛줄기 SNPE
그 후로도 계속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사지, 카이로프랙틱, 물리치료, 침 치료, 수영, 개인PT 도 계속 하고 있는 상태에서
저는 그렇게 쳇바퀴 돌 듯 일시적이고 의존적인 치료에만 목을 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살아야 했거든요. 아픈데 병원은 가야겠고. 병원을 가려면 일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일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지요.
‘이대로 집에(한국) 가야하나’, ‘한국에는 보험이 있으니까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나.’
매일을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저는 SNS에서 우연히 SNPE를 알게 되었고 그 순간 정말 제 온몸에 전율이 왔어요.
(아직도 저는 그 첫 느낌을 잊지 못합니다. 벼랑끝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였어요.)
‘그래. 바로 이 운동이다! 이 운동이 나를 살려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저는 SNPE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SNPE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SNPE를 제대로 알고 만나기 위해 곧바로 비행기표를 끊고 한국에 와서 개인지도를 받았지만
그 당시 SNPE를 배웠던 센터에서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SNPE의 대한 실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지도자의 역할과 가르침의 중요함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8. Self Natural Posture Exercise
그렇게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혼자라도 해볼 마음으로,
모든 도구와 책을 가지고 호주로 돌아와 혼자 SNPE를 하게 됩니다.
물론 SNPE가 SELF운동이긴하지만 많이 아쉬웠습니다.
개인지도를 10회까지 받았는데 결국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어이도 없었구요.
이때 저는 지도자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지도자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렇게 혼자 ‘척바건’과 ‘SNPE운동책’을 보며 SNPE의 진가를 알게 되었었습니다. <!--[endif]-->
SNPE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굳어질 때로 굳어지고 망가진 몸이였기에 처음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도구 위에서 울기도 하고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 ‘이게 정말 맞는 걸까.’ 하며 웨이브 베게 위에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뚝뚝 흘렀어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심각한 몸생태 였던것 같아요.)
하지만 거짓말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통 속에서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니
조금씩 몸이 나아지는 것을 느끼고 그렇게 정말 조금씩 조금씩... SNPE를 하며 통증이 줄어들었습니다!!
9. Before-> After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번째, 어깨통증 -> 사라졌어요!
두 번째, 허리통증 -> 사라졌어요!
세 번째, 목통증 -> 매일 목통증 7~8에서 감소하는 중이에요. 지금은 목 통증 1~2입니다.
네 번째, 골반통증 -> 소리는 가끔 나지만 횟수가 현저히 줄었고, 통증은 없고, 각종 부인과 질환이 사라였어요!
<위 사진은 제가 펍에서 일할 당시 펍의 사진기사님께서 찍어준 것이며 핸드폰이 아닌 DSLR 카메라로 찍은 것입니다. '자르기' 기능만 활용하여 편집한 사진입니다. 포토샵, 보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클릭 시 크게 보입니다.>
<위 사진은 모두 핸드폰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며 어떠한 보정과 필터, 포토샵 편집을 하지 않았습니다.
에프터 사진 중 윤지유 교수님과 찍은 사진과, 95기 풍선과 함께찍은 사진은
카메라 어플인 '푸디'로 찍은것이며 카메라 렌즈 색깔만 다를뿐 보정의 기능이 없습니다.>
* 어깨통증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어깨라인이 좋아지고 극심했던 어깨 통증이 사라졌어요!
저는 통증이 너무 심했던 사람이라 뷰티는 정말 꿈에도 못 꿨어요.
물론 저도 여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뷰티에 욕심이 없지는 않지요.
하지만 생활 속에서 직접 느끼는 살인적인 통증으로 저에게 뷰티는 사치일 뿐이였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SNPE를 하고 그렇게 안 빠졌던 팔뚝살이 정리되고 승모근이 내려오고 목이 길어졌어요.
통증이 없어지니 몸의 라인과 뷰티는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저는 어깨가 아프지 않기 위해서, 진짜 살기 위해 T무브를 한건데
어깨통증도 없어지고 라인도 좋아진 것을 보면
SNPE에서의 뷰티는 열심히 하면 그냥 당연히 따라오는 1+1 보너스인 것 같아요.
사진으로 보니 제 어깨라인 정말 좋아졌네요. 순환이 안 되어 지방이 쌓였던 자리가 많이 정리 되었습니다.
참고로 저 사진 때와 지금 몸무게가 같습니다.
<위 사진은 '자르기'만 사용하여 편집했고, 길이와 넓이 등의 보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 허리통증
유치원 교사였던 시절부터 저는 허리통증으로 물리치료를 자주 다녔고, 그때부터 허리에 통증은 항상 있었어요.
(그냥 매일 뻐근한 느낌?) 몸이 안 좋아지고 나서는 특히 오른쪽 허리가 아파서 침치료, 마사지, 물리치료를 다녔어요.
의사선생님 말로는 저는 '일자허리'이고 제가 코어에 힘이 없어서 허리를 과사용 하는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운동치료사와 열심히 코어 운동을 했지만 그럴수록 허리 통증은 더 심해져만 갔어요.
SNPE를 시작하고 나서는 도구를 이용하여 허리를 많이 풀어주고, L무브, 동작 1,2,3 등 집중적으로 했고
그 결과 허리통증이 사라졌고 통증은 0입니다. 지금은 내가 허리가 아팠던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팔, 다리는 비교적 얇은 편인데 항상 배만 ET처럼 나와서 뱃살이 콤플렉스였습니다.
20대 초반에는 뱃살을 빼기위해 음식 다이어트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하면 배는 그대로고 다리와 엉덩이 살만 빠졌어요.
저는 엉덩이에 살이 없고 다리가 너무 얇아서 그것또한 저에게는 콤플렉스이기 때문에
이젠 절대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요. (물론 이제는 건강에도 안좋은 것을 알기때문에)
허리와 뱃살 에프터는 기대하지도 않았었어요. 그냥 저는 평생 내 허리는 통짜구나 하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개인PT, 수영, 필라테스를 꾸준히 했었지만 절대 빠지지 않던 허릿살과 뱃살이였죠.
평생 통자 허리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아주 조금씩 라인이 들어간 모습입니다.
통증이 없어진 것도 감격스러운데 라인까지 좋아지다니..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저 스스로 굉장히 만족합니다.
앞으로의 에프터가 더욱 기대됩니다.
<위의 사진 중 X-RAY는 지도자 과정 시작 후 과제로 제출한 제 엑스레이 사진입니다.>
<위의 사진 속의 상처난 등은 저의 등이 맞습니다. 밝기나 색감의 보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 목통증
그렇게 어깨와 허리의 통증은 사라졌지만.. 대망의 목통증!(현재진행형)
저에게 목통증이란.. 생각만해도 지긋지긋합니다.
비교적 어깨와 목은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목통증은 저를 지겹게도 따라다녔습니다.
엑스레이 사진입니다. 엑스레이를 보고 나서 목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이 일자목을 넘어 역 C자의 형태로 변형이 되었기 때문이죠.
수면 시 웨이브베게, 미니베게, 바른자세베게, 타원도자기, 투레일... 사용해봤습니다.
정말 모든 걸 다 해봤지만 계속 목은 아팠고
몇 시간 C무브를 하고 나면 잠시 동안 통증을 못 느끼다가 통증이 다시 시작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도자 과정 중에도 지겹게도 저를 따라다녔던 목통증을 안고 수련을 하고 있었는데
지도자 과정 중 경지혜 선생님의 격려와 조언에 힘을 얻어 맨바닥 구르기를 도전하게 되었어요.
지도자 과정하면서도 계속 찔렸던 것이 바로 ‘맨바닥 구르기’입니다.
맨바닥을 구르기를 처음 시도했을 때 정말 악 소리 나게 너무너무 아파서 항상 피해만 왔었어요.
목과 등에 상처가 나는 것도 너무 싫었습니다.
하지만 경지혜 선생님께서 구르기의 중요성을 저에게 다시한번 강조해 주셨고, 선생님 덕분에 용기를 얻어
맨바닥 구르기를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기적같이 목통증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어요!(지금은 통증 1~2)
그 후로 ‘아 이래서 사람들이 피가 나고 멍이 들어도 맨바닥 구르기를 하는 구나’ 싶었답니다.
그 외로 좋아진 점들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게 많습니다.
SNPE가 저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정리해서 짧게 나열하겠습니다. (쓰다보니 짧지 않았네요...)
* 생리통
네달째 아예 통증 1도 없어요. 지도자 시작하는 그날로 바로 생리통은 사라졌습니다. 당연히 약복용은 없습니다.
* 생리불순, 생리중단
한달에 한번 꼬박(이번달로 네달째) 달력에 쓰여 진 날짜 그대로 하고 있어요.
* 생리 혈
정말 신기합니다. 항상 탁하고 뭉쳤던 생리 혈이 맑아지고 일반인인 제가 보기에도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 냉
항상 냉이 너무 많아서 밖에 있다가도 집에 가서 속옷을 갈아입었던 적이 많아요.
지금은 정상적인 냉으로 바뀌었고, 양도 많이 줄었어요.
* 질염
여성의 감기라고 하죠. 지금 기억해보면 저는 365일 여성감기인 '질염'을 달고 살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다시 질염, 약을 먹기도 하고 약을 넣기도 했지만 또 다시 질염.
지금은 지긋지긋한 악순환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SNPE 시작 후 산부인과는 한번도 가지않았습니다.
* 두통
저는 가끔 측두골 쪽 관자놀이가 너무너무 지끈거려서 머리를 손바닥으로 탕탕 치기도 하고 약도 먹고 했었어요.
칼로 쑤시는 듯한 통증에 답답해서 두통이 올때면 술을 마셔서 통증을 누르기도 하고 진통제도 복용했었습니다.
지금은 두통이 아예 없어요. 머리가 조금 무겁다는 기분이 들 때면 바로 SNPE도구로 달려가 C무브를 진행합니다.
그럼 두통으로 이어지지 않고 거짓말처럼 머리가 가벼워지곤 합니다.
* 발목
저의 발은 칼 발에 평발, 아치는 완전히 무너지다 못해 아치가 안쪽으로 내려앉는 형태로 변형된
전형적인 평발이에요. SNPE를 하게 되면서 왼쪽 발의 아치무너짐 더욱 심각하다는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왼쪽 발목이 항상 접지르고 삐었어요. 힐을 신은 날은 항상 삐었어요.
근데 그게 저는 그냥 너무나 당연한 줄만 알았어요. 그렇게 유리알 같은 발목으로 살아가며
심하게 삔 날은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으며, 깁스를 두 번이나 했고,
그냥 참을 만 한 날은 며칠 절뚝거리면 낫고 했었어요.
저의 무지.. 이젠 무섭기까지 합니다.
SNPE를 공부하기 시작한 후 모든 시작은 ‘발’ 에서부터라는 것을 깨닫고,
족궁보조구를 착용하고 다니고 있답니다. 처음 보조구 착용한 후 30분도 못 걸어 발바닥이 까지고 아팠지만,
정말 이 악물고 참았어요.
지금은 족궁보조구가 너무 편해요. 오히려 다른 신발을 신고 많이 걸으면 발바닥이 찌릿찌릿합니다.
* 감기
직장을 가지고 나서 부터 저는 항상 감기에 걸렸습니다.
계절에 상관없이 사계절 내내 감기에 걸렸고, 딱히 이유는 없었어요. 그냥 감기에 쉽게 걸렸고, 병원을 자주 갔습니다.
출근을 하기 위해 주사를 맞고, 항생제를 먹었습니다. 몸이 안좋아지기 시작하고 호주에서는 열년 내내 감기였어요.
친구들이 "왜 너는 맨날 아파?" 하고 물을 정도로 진짜 맨날 감기였어요.
그런데 한국에 오고나서 지금까지(약 4개월) 감기에 걸린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병원도 가본적이 없습니다.
* 수족냉증
저는 한여름에도 손과 발이 차가웠어요. 특히 발은 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운 정도입니다.
겨울에는 말할것도 없고요. 지금은 손발이 차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지금이 여름이라 그런가 싶었는데 에어컨이 빵빵한 지하철이나 건물을 가도 추운느낌은 들었지만
손발이 차가워 지진 않는것을 보고 수족냉증이 정말 좋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 땀배출
저는 정말 땀이 안나요. 그 어떤 운동을 해도 사우나를 가도 땀이 주룩주룩 흘러본적이 없습니다.
예전에 개인PT를 할때에도 선생님들이 항상 땀이 나지 않는것을 신기해 했고, 힘들지 않아서 그런거라 생각해서
더 운동을 시키곤 했었는데 그래도 땀이 잘 나지 않았었어요.
지금은 SNPE를 하며 '내가 이렇게 땀이 나는 사람이였나..?' 싶을 정도입니다.
중학생때 이후로 이렇게 땀흘려본적이 처음인것 같아요. 특히 SNPE1번, 4번 자세를 할때 땀이 많이 나고,
SNPE를 한 후 냉했던 몸이 확실히 몸에 열기가 느껴지고 순환이 잘되는 느낌이 듭니다.
* 장 트러블
더이상 스트레스성 장염이 발병되지 않으며, 항상 설사기가 있는 변이 많이 좋아졌어요. 항상 설사를 하는 사람은
복부와 장에 찬 기운이 많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몸이 항상 냉한것도 이유였던것 같아요.
(생식의 효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피부
SNPE하면 '생식'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생식에 대해선 할말이 너무 많아서 생략합니다.
생식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건강한 몸을 생각한다면 기본적으로 나의 몸 안에 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부가 맑아지고 밝아졌어요. 피부에서 광이나고 빤짝빤짝 합니다.
친구들이 화장품 뭐쓰냐고 많이 물어봤어요. 호주 친구들도 제가 쓰는 화장품에 대해 많이 물어봅니다. (K뷰티의 영향)
그때마다 제 대답은 '생식' 입니다.
피부가 하애진게 아니고 그냥 형광등을 켠 것처럼 탁!
SNPE운동과 SNPE생식의 시너지지와 효과는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 정신, 마음의 안정
전 그 어떤 에프터 보다도 저의 정신과 마음이 건강해진 것에 대해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성격이 다시 아프기 전처럼 밝아지고, 아니 그전보다 더욱 좋아진 것 같아요.
아팠던 시기에는 내가 인생을 잘 못살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고,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는 고통 속에 살아야 하나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며
정신과 마음이 불안정하고 부정적인 제 자신이 한심하고 싫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를 사랑해주지 못하고 미워만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자신이 너무 대견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특히 SNPE를 시작한 제 자신을 칭찬해주고싶어요.)
이제는 어떠한 상황에도 긍정적인 생각이 머리에 돌고, 그런 생각이 드니 말이나 행동도 그렇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몸이 좋아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말이 있어요.
‘ 너를 만나면 내 자존감이 올라간다. 즐겁다. 힘이 난다. 격려해줘서 고맙다.’ 등등
제 몸이 건강해 지니 제 마음도 건강해지고,
저에게 나오는 건강한 에너지로 다른 사람들까지 건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것 같습니다.
10. 올바른 지도자를 꿈꾸다!
SNPE를 혼자 시작하고 나서 몸이 점점 나아지면서
호주에서 차일드케어를 다시 다닐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재취업을 하여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어요.
그 후로 스스로 SNPE를 통해 제 몸을 고쳐보니 운동과 통증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SNPE에 대한 확신, SNPE의 대한 무한한 사랑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저는 SNPE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어
지도자 과정을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한국에 오게되었습니다.
이렇게 지도자과정을 잘 마치고 성공적인 체험사례를 공유할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고 감격스럽습니다.
11. 앞으로의 포부
저의 꿈은 제 2의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6년 동안은 어린 아이들의 선생님이였다면
지금부터는 근골격계 통증으로 몸이 아픈 사람들, 저처럼 몸의 통증으로 인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호주에서 힘들게 자리를 잡아야 했던 시절,
돈을 벌기위해 살인적인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호주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민자들에게 SNPE를 알려주어 근골격계의 통증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습니다.
또한 제 궁극적 목표는 SNPE가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다양한 인종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호주에서도 사람들에게 SNPE의 진가를 알리고,
글로벌로 가는 SNPE가 될 수 있도록 글로벌 SNPE의 중심에 제가 서있는 것입니다.
남에게 의존하여 통증을 치료하고 전전긍긍 살아야 했던 지난날의 삶을 돌이켜 보면
스스로 건강한 몸을 만들고 통증을 다스릴 수 있는 SNPE의 위력이 세계에서도 통할거라 믿습니다.
앞으로 더 변화될 제 모습이 정말 기대되고 설레입니다. 그 변화될 미래에 SNPE가 함께하길 소망합니다.
12. 감사한 마음
이 글을 통해 이 엄청난 운동을 만들어 주신 최중기 교수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교수님이 만들어 주신 SNPE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저는 아직도 고통 속에 살기위해 일을 하며 몸을 망가뜨리고 그렇게 번 돈을 몸을 고치는데 쓰며
평생 쳇바퀴처럼 억지로억지로 살다가 죽었을지도 몰라요..
저를 암흑에서 구해주시고 다시 밝은 인생을 되찾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교수님은 교느님입니다. (교수님+하느님)
저를 낳아주신 건 부모님이시지만 교수님은 저를 재창조 하셨으니까요!
(지난 저의 암울했던 일기장과 에프터사진을 볼때마다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SNPE를 널리 알리시고 발전에 힘쓰시는 윤지유 교수님 존경합니다.
윤지유 교수님을 보며 SNPE 의 강사를 꿈꾸게 되었고, 교수님의 똑똑하고 당당한 모습에 반했어요.
교수님처럼 몸매 짱! 얼굴 짱! 지식 짱!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SNPE지도자로 꼭 성장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경지혜선생님과 신관선생님들의 자세한 가르침과 다양한 꿀팁으로
혼자 SNPE 했을 때는 놓치고 몰랐던 부분을 잘 알게 되었고
그전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번 제게 동기부여가 되어 주었고, 선배 선생님들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도자 과정 기간 동안 서로 힘이 되어주고 도움이 되어준 95기 동기 선생님들 고맙고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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