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만물은 시간의 흐름 속에 생성되어 소멸하고 있습니다. 무생물은 단지 이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상징물에 지나지 않지만 생물은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중단 없이 삶을 이어가며 끊임없이 경쟁과 진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생명체 중에서 유일하게도 유독 지적생명체인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시간의 흐름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구분해 삶의 지혜로 쓰고 있지 않은가 생각 됩니다.
<아이슈타인 /center>
선악의 양면성을 가진 사람은 지난 일을 거울삼아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를 대비하는 슬기로움이 있는가 하면 도리어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종종 있었습니다.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 한 사람이 살다 간 그 기간은 비록 짧지만 때로는 인류에게 위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추에 씻지 못 할 오명과 해악을 끼친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흔히 인생의 목숨을 초로와 같다는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풀잎에 내린 아침 이슬은 햇빛에 보석같이 영롱하게 빤짝이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얼마간 있다가 슬며시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일찍이 공자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말을 했습니다. 제일 먼저 자기 몸을 바르게 닦고 집안을 잘 추스른 후에야 비로소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제일 먼저 할 일은 최선을 다해 자기 몸을 잘 닦고 집안을 잘 다스리는 일 입니다. 정치인 중에는 자기 몸과 가정을 잘 다스리지도 못하면서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설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공자상
일찍이 영국의 극작가였던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 07. 26 - 1950. 11. 02)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으로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r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고 묘비에 써놓았습니다. 버나드 쇼의 해학적인 묘비명은 우물쭈물, 어영부영하다가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경고이며 권면입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사람들은 자칫 자신의 여생을 반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보는 비관적 인생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아직도 반이나 남아 있는 여생을 여유를 가지고 어영부영하지 말고 산다면 후회 없는 값진 인생을 살게 될 것 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애송시 (Douglas MacArthur's favorite poems) 젊음에서, 젊음이란 인생의 한 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즉 젊음이란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와 안일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
인생의 삶의 흐름 속에 지나간 과거는 역사를 만들고 닥아 오는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현재는 확실하지요. 마음먹기에 따라 한 인생의 삶속에서 현재는 남은 생의 첫 날(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ife)이 되기도 하지만 마지막 날(Today is the la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현재는 비록 짧은 찰나의 한 삶의 흐름에 지나지 않지만 이 확실한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 합니다.
이순신 장군 초상화
현재를 시의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불가사의, 오늘은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오늘을 선물(present)이라고 애써 부르지요(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that's why we call it, The Pres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