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희금성 구씨 허씨네 두 집안의 아름다운 3대 동업
구자경(具滋暻)
생몰 1925년 4월 24일 (경남 진주시) ~ 2019년 12월 14일 (향년 94세)
https://news.v.daum.net/v/20191214175149424
오늘 2019년 12월 14일 구자경 LG그룹 명회 회장의 별세로 구씨와 허씨의 3대에 걸친 아름다운 동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두 사돈 집안끼리 길게 이어졌던 그 아름다운 행적들이 새삼 부각되어 더욱 크게 보인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에서 자란 고(故) 연암(蓮庵) 구인회(具仁會, 1907~1969) LG 창업주는 1931년 7월 부친으로부터 받은 종자돈과 동생 구철회의 자금으로 진주에 ‘구인회포목상점’을 열었다.
그리고 진주의 유지 지신정(止愼亭) 허준(許駿·1844~1932)에게는 차남 효주(曉州) 허만정(許萬正·1897~1952)이 있었다. 지신정과 효주 부자(父子)는 일제강점기와 6·25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준 바 있다. 영남의 만석꾼이던 지신정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뒤 인근 농부들에게 땅 200평씩을 공짜로 나눠 줬으며 안희제가 백산상회를 열 때 경주 최 부자로 알려진 최준과 함께 돈을 댔다.
호가 백산(白山)인 안희제(安熙濟, 1885∼1943)는 백범 김구, 백야 김좌진과 함께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삼백(三白) 중 한 분이다. 그의 백산상회가 상해 임시정부의 자금줄이었으니 지신정의 행동은 당시 부자들이 가장 꺼렸던 독립운동과 다름없었다. 지신정의 아들 효주는 더 담대했다. 그는 진주여고의 전신인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를 세웠으며 지금의 남해대교 부근에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충렬사를 세울 때 돈을 댔고 백정(白丁)들 해방에도 앞장섰다. 이때 부자가 나눴던 대화가 전해진다.
아버지 지신정이 물었다. "돈을 어떻게 썼느냐." 효주가 답했다. "학교 세우는 데 한 번에 털어 넣었습니다." 지신정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다시는 돈의 용처를 묻지 않았다. "잘했다. 돈은 그렇게 써야 한다."
그리고 해방 이후 연암(蓮庵)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효주(曉州) 허만정 GS그룹 창업주를 만나게 된다. 허만정 창업주는 구인회 창업주 장인의 6촌이니 둘은 사돈지간이었다. 그때 허 창업주가 구 창업주를 직접 찾아갔다고 한다. 자신의 아들(허준구 전 LG건설 명예회장)을 구인회 창업주에게 맡겨 일종의 경영수업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만난 구인회·허만정 두 사람은 1947년 LG그룹의 모체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창립, '인화 경영'의 씨앗을 틔웠다. 이후 구 창업주는 허준구 전 명예회장에게 영업담당 이사를 맡기고 그의 형제들도 경영에 합류시켰다.
그의 장남이 구자경 명예회장으로, 원래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가업에 참여하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경영을 시작했다. 구 창업주가 세상을 떠나면서 1970년 당시 사명 럭키금성그룹 회장을 맡게 됐다.
이처럼 구씨가(家)와 허씨가의 동업은 '구인회-허만정'에서 '구자경-허준구'로 이어진 뒤 이후 3대인 '구본무-허창수(LG건설 회장)'로 내려왔다.
3대까지 이어졌던 두 집안 동업은 이후 몇 차례 계열분리로 마침표를 찍었다. 1999년에 구인회 창업주 첫째 동생 구철회 명예회장의 자손들이 LG화재를 그룹에서 독립시켜 LIG그룹을 만들었다.
이후 2003년에는 구인회 창업주의 또 다른 동생들인 구태회·구평회·구두회씨가 계열 분리로 LS그룹을 세웠고, 2005년에 허씨 가문의 GS그룹이 LG그룹에서 법적으로 계열 분리되면서 두 집안의 3대에 걸친 동업이 아무런 잡음도 없이 잘 끝났다.
같은 진주 지수초등학교 출신인 돈병철의 아들들은 한 형제들 간에도 일찍부터 남보다 못 한 적이 되어 지금까지도 그렇고, 모모 회장의 집안도 왕자의 난이 어떻고, 돈 좀 있는 집안의 자식들은 작으나 크나 형제간에 재산 다툼이 그야말로 피 튀기는 요즘 세상 가운데에서
이 구씨 허씨 양 집안의 3대에 걸친 아름다운 동업과 아름다운 분리는 그야말로 귀감이 되면서, 작년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례식과 이번 구자경 명회 회장의 장례식 또한 따뜻한 인간의 참 모습을 느끼게 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한편 GS그룹 창업주 허만정도 독립자금을 대고 진주여고의 전신인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를 세웠지만 세간에 12대(300년) 만석꾼, 9대 진사의 명문가 경주 최 부잣집 가훈과 철학으로 저 유명한 집안의 문파(汶坡) 최준(崔浚, 1884~1970)은 독립투사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1885∼1943)와 함께 백산상회를 만들어 독립군 군자금을 대주다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살고 있던 경주와 대구의 집과 장서류 8천 권까지 몽땅 털어 대구대학교와 계림학숙을 세웠는데, 이것이 현재 영남대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300년을 이어오던 최 부자 가문의 모든 재산은 실로 조국과 우리 사회에 모두 물려주고서 끝났는데 흔히들 영남대학교를 박정희가 세운 학교로 알고 있지만 그 내막을 보자면, 최준 이 이병철(삼성 이건희 회장 아버지)에게 한 푼도 안 받고 희사하면서 운영권을 넘겨 줬는데, 소위 한비사건(이병철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면서 박정희에게 경영권이 넘어가게 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