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구례에서 바라본 지리산– 정길(鄭吉) 화백의 유화
심미안(審美眼)이 남보다 뛰어난 분들이 그림을 잘 그린다.
그러고 보니 화가는 거의가 미남이다.
준수한 이목구비에 잔잔한 미소, 날렵한 몸매와 단정한 옷차림,
정 화백은 향토색이 짙은 농촌 풍경을 감칠 맛 나게 잘 그린다.
국립공원 지리산
지리산 범위는 남원 장수, 곡성 구례, 하동 산청, 함양, 7개 시 군에 이른다.
지리산은 여의도면적의 530 배로, 경남, 전남, 전북 3개 도(道)를 아우른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받기 위한 노력
큰 산 아래 물이 모여 강을 이룬다. 지리산과 섬진강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빚어낸 자연산수는, 강산무진(江山無盡)이다.
지리산은 영남과 호남의 지붕인데, 이런 영산(靈山) 아름드리나무가 무단 벌목으로, 좋았던 경관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
그러니 황폐한 상태를 그냥 볼 수 없어, “연하반”이란 모임이 결성되었다.
민족의 영산을 지키자!
구례군 1만2000 가구 중 무려 1만 가구가,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냈다.
군민들은 지리산 주변의 정화작업에 정성을 쏟았다. 아마 최초의 새마을운동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달라는 민원을, 주기적으로 관계기관에 제출했다. 얼마나 집요했으면 기관장이 직접 찾아와 만류했다고 한다.
국회의원도 발 벗고 나셨다.
흥선대원군이 호남지방을 ‘팔불여(八不如)’라고 했다.
벌교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
여수에 가서 돈 자랑하지 마라
진도에 가서 소리 자랑하지 마라
장성에 가서 학문 자랑하지 마라
고흥에 가서 돈(錢) 자랑하지 마라
국립공원 지정 욕구와 뒷받침 노력이 얼마나 지극하던지, 구례에 가서 열성과 집념을 자랑하지마라는 말을, 가장 위에 넣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엘로우스톤은 규모가 크다. 버팔로와 늑대가 산다.
한국의 지리산은 아담하다. 반달곰과 산양이 산다.
국립공원의 자격은 국가나 인류가 간직해야할 가치에 있는 것이다.
군민들의 염원이 하늘에 도달했는지, 5년만인 1967년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었다. 이것이 자연보호운동의 효시(嚆矢)였다.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자, 한라산과 설악산도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국립공원은 현재 21개가 되었고, 방문자 수도 연 인원이 47000,000명에 이른다.
지리산의 추억
옛날 60년대, 정부에서는 국토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 위한 자료(동물, 식물, 지질)를 수집했다.
이에 서울대학교 조사팀이 지리산 등반길에 나섰다.
선발대는 하루 전에, 주 부식과 솥, 냄비 등 취사도구를 가지고, 천왕봉에 도착해야 한다.
운봉까지는 차로 갈수 있으나 그 후부터는 지루한 도보등정이다.
요즘 말하는 포터인 지게로 짐을 져 줄 사람을 수소문했는데. 농한기인데도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배짱부리지는 않은 것을 보아,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듯 했다.
산청 읍내에서 품삯을 두 배 주기로 하고 흥정을 끝냈다.
산행에서는 무거운 짐을 나르는 사람을 먼저 올려 보내는 법이라, 짐꾼에게 앞장서라고 하면, 먼저 가시래요 한다. 자기는 뒤따르겠다는 것이다.
6,25때, 공비들은 길을 가리켜 주었다고 죽이고, 밥을 주었다고 죽였다. 그런데 공비 중에 일부는 마을 사람이라, 그들은 주로 등 뒤에서 몹쓸 질을 했다.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난 당시에도,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물으면, 동태를 살피면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불의의 사고
천왕봉에 있던 일행 중 하나가, 후속 부대인 짐꾼을 안내하려고, 산에서 내려오다 사고를 당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한사람이 다니기에도 비좁았다.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2.2.8 전화선 철사로 만든, 멧돼지 사냥용 올개미가 설치되어있다.
스프링 탄력으로 발목을 조이는 울무와 달리, 공중에 메달아 놓는 기능이다.
주로 멧돼지 사냥에 사용된다.
절벽에서 내려오다가 갑자기 몸이 하늘로 솓구쳤다. 그리고 철사가 발목으로 파고들었다. 상의가 내려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죽을 고생을 하고서야 올개미에서 벋어났다.
땅거미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는데 비까지 와서, 한 겨울같이 추웠다.
칠흑 같은 어둠속을 한참 동안이나 헤맨 끝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구르고 넘어지고 만신창이가 되어서 그 집에 도착했다.
방안에서는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시오’ 하자, 등잔불이 꺼지고, 문고리를 잠그는지 달그락 소리가 났다.
그래서 큰 소리로 불러보고,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생각을 마꾸어 독백(獨白)을 하기로 했다.
나는 아무개이고 나이가 몇이다. 여기 온 목적은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에 앞서, 지질조사를 하러왔다. 내가 맡은 구역은 천왕봉 일대다.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덕을 쌓으면 극락왕생(極樂往生)합니다. 방안에 계신 어르신에게 노래 한곡 부르지요 하며,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불렀다.
밤중에 생쥐 같은 몰골로, 남의 집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니,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 할 것이다.
마침내 방문이 열렸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언 몸을 녹이고, 석청 한 대접으로 허기를 때웠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은
삼대 째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라.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 없는
이슬 눈으로 보시고
안개 눈으로 오시라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는 아이 손바닥처럼 퍼렇게 오시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시려면
뼈마디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원래 인간들은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언제나 초심이다.
행여 견딜만하면 분은 오지 마시고
기댈 곳이 없는 분만 오시라
시인 이원규
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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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7COwHRb0g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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