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도와 검
그 위력적인 ‘조선세법’을 우연한 기회에 이중부가 얻은 것이다.
천부장 이중부는 긴 묵도 墨刀를 책사 박지형에게 의뢰하여 특별 제작하였다.
이중부는 천 부장의 책사로 눈치 빠른 가마우지를 원했으나,
을지담열 소왕은 굳이 박지형을 책사 策士로 활용하라고,
엄한 군령 軍令을 내리는 바람에 박지형이 중부의 책사 역을 맡고 있었다.
박지형은 남 달리 뛰어난 무예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아직도 오백 부장 직책이었다.
박지형이 가르친 제자들 즉, 사로국 출신 삼백 부장들과 별 차이가 없는 신분이다.
호탕한 성격의 이중부와는 달리 타고난 심성 心性이 조용하고,
남 앞에 나서길 꺼리는 성품이기에 평소에는 주위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 잘 모른다.
그러니 '일선의 지휘자보다는 막후 幕後에서 작전을 수립하는 책사가 더 어울릴 수도 있다.'라고도 이중부는 생각하고 있었다.
보통 도검은 삼, 사 척 尺에 불과하나, 중부가 주문한 묵도는 다섯 자가 넘는 길고 무거운 도 刀다.
도 刀는 등이 두꺼운 한쪽 날을 가진 칼을 가리키며,
검 劍은 양날이 날카로운 칼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검은 가볍고 예리 銳利하며, 도는 크고 무겁다.
따라서 검술 劍術은 날렵하고 화려하지만, 도법 刀法은 단순 묵직하다.
검술은 아기자기하고 날카로운 여성스러운 기법이 나타나지만,
도법 刀法은 사내 다운 힘을 앞세운 기세 氣勢를 중하게 여긴다.
도는 검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무겁다 보니 대부분은 칼집(刀집)이 없다.
따라서 체격이 작은 사람은 검이 어울리고, 신체가 크고 힘이 센 인물은 도가 더 자신에게 알맞을 수 있다.
* 사진 - 검 劍
* 사진 - 도 刀
* 언월도 偃月刀
도 刀에 긴 자루를 부착 附着시키면 언월도가 된다.
언월 偃月이란 ‘날이 반달 모양’이라는 뜻이니, 달을 가릴 만큼 도면이 크고 넓은 칼을 의미한다.
도면 刀面이 크고 넓은 만큼 무겁고, 그 무게만큼이나 위력이 강하고 억셀 것은 당연하다.
도면 刀面 앞쪽 갈라지는 부분에 여의주 모양의 구슬을 물리고,
자루에 푸른 용 모양을 새겨넣으면 청룡 언월도가 된다.
도 날의 갈라진 곳에 범의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끼워 넣고,
긴 자루에 흰 범을 새기면 백호 白虎 언월도가 될 것이다.
을지담열 소왕의 비밀 막사에서 우문청아도 중부와 같이 ‘조선세법’의 구결 口訣을 외우고 수련하였으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고, 일반 여성과 달리 뛰어난 용력을 갖춘 여장부라 하더라도,
여성의 타고난 신체적인 한계점을 깨닫고는 두 달 후에는 포기하고 만다.
‘조선세법’은 아무나 함부로 배울 수 있는 도법이 아니었다.
신체조건이 맞아야 하며, 기공을 연마하여 내공을 사용하여야, 그 위력이 배가되는 도법이었다.
도법 자체도 초식이 현란하거나 많이 복잡하지는 않았다.
단, 7초 식에 불과했다.
초식들이 하나같이 파천황 破天荒의 엄청난 파괴적인 위력을 갖추었고, 워낙 위맹스러우니 많은 초식이 불필요하다.
한 초식, 한 초식이 엄청난 패도 覇道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세법을 펼칠 때에는 도 刀 자체가 크고 무거워 많은 내력 內力을 소비해야 하므로,
정심 正心한 깊은 내공이 필요하였다.
정심 精深한 내공 內功을 운용하여야만 그 위력을 십분 十分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여성인 우문청아는 차라리 일반검법이나 창술이 자신에게 더 어울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선세법은 신체가 크고 체력이 튼튼한 내공이 심후한 장정들만 수련할 수 있는 무예였다.
배울 수 있는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이나, 그 위력은 경천동지 驚天動地 할 가공 可恐스러운 결과를 보여준다.
보름 전,
나름 창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우문청아는 일반적인 창술로는 한준을 대적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는 중부에게 ‘조선세법’을 상기 想起시키며
“그 도법으로 대항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본다.
그동안 한준의 창술을 지켜보며, 분석한 이중부도 조선세법으로 상대해 볼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도 刀는 창과 비교해 길이가 무척 짧다.
그러니 지상에서는 장창의 창날이 미치는 그 세력범위 안쪽으로 파고들어,
접근전을 펼친다면 도검 刀劍이라도 승산이 있을지 몰라도,
달리는 마상에서는 상대방과의 거리가 멀고 또, 거리 장단 長短 조절을 마음대로 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마상무예 馬上 武藝는 대부분이 자루가 긴 창술로 우열을 가린다.
기다란 장창 長槍은 상대방과의 거리의 원근 遠近을 순간적으로 조절 調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창의 절반에도 미치지 아니하는 도를 사용할 엄두를 감히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사흘 전, 팽이가 무거운 철퇴를 들고, 설태누차를 도와 한준을 협공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팽이가 휘두르는 철퇴의 위력을 보고 나름, 깨달음이 있었다.
듬직한 철퇴의 무게에 비해 창은 길고 가볍다.
묵직한 철퇴를 가벼운 창으로 감히 맞서 막지 못하고,
내려치는 철퇴를 피하고자 시전하던 창술을 어쩔 수 없이 얼른 거두어들이며,
순간적으로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한준의 모습을 지켜보았던 것이었다.
그러니 모든 무기나 무예도 절대 완전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
팽이가 휘두르는 철퇴를 이리저리 몸을 돌려 피해 가며, 싸우는 한준의 모습을 중부는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래서 심사숙고 深思熟考 끝에 도의 길이를 길게 제작하여,
사용해 보기로 하고 특수한 도를 박지형에게 의뢰하였다.
한편,
사제인 한준에게 도전장을 던진 기혁린.
그러나 불과 사 합 만에 수세에 몰리고 만다.
이를 본 우문청아가 전장에 가담하여 기혁린과 연합한다.
천강선 우문청아가 합세하니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간다.
사제지간이 연합하니 손발이 척척 맞다.
자신이 알고 있는 창술을 사부가 펼치면 상대가 어떻게 막고,
몸을 어느 방향으로 피한다는 것을 대략 예측할 수 있고,
그때 제자가 적절한 공격 초식을 펼치면 상대는 진퇴양난의 곤란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보통은 당연히 그렇게 진행되어야 마땅하나, 막북무쌍 한준의 창술은 달랐다.
수비가 곧바로 공격으로 전환되고 공격이 즉시 방어술로 바뀌는 현란한 창술에 두 사람이 오히려 땀을 흘리고 있다.
이를 지켜보던 담비와 최장한, 배중서가 결투장으로 다가가니, 적 진영에서도 세 명의 장수들이 말을 몰아 나온다.
사로국의 투망 전법을 아예 사전에 봉쇄해 버린다.
이제 결투장은 9명의 장수가 어울려 어지럽게 싸우고 있었다.
그러자 보육고 천부장이 선봉대 5천을 이끌고 선우 진영을 쳐들어간다.
장수들이 모두 결투장으로 나가, 병사를 이끌 장수가 없어진 선우측의 선봉대가 맥없이 무너진다.
후방에서 지켜보던 우문무특 천부장이 재빨리 지원하여 다행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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