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間은 모든 사건의 근본적 자산이다. 시간은 움직임과 변화를 요구하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 그 자체는 역사가 없으며 변화도 없지만, 그것이 가진 규칙성을 통해 우리는 변화의 표상을 감지한다. 시간은 움직임을 필요로 하고 움직임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둘 다 대상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물리적 거리로서 시간의 최대치는 바로 광년이다. 측정 가능한 가장 최대치의 광년은 140억 년 전에 이루어진 빅뱅의 시기까지다. 공간의 끝이 시간의 시작이다.” 시간과 공간의 끝에 빅뱅이 있다. 《시간의 탄생》 알렉산더 데만트 지음❘이덕임 옮김
사실 공간도 시간만큼 모호한 존재다. 시공간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로 1년 365일 회전하는 지구와 1년에 36일 회전하는 時空間 구조는 전혀 다르다. 둘을 비교하면, 시공간의 특징을 규정하는 것은 회전속도처럼 보인다. 비교대상이 없을 때에는 불변의 진리처럼 보였던 시공간이 두 개를 비교하는 순간, 恒常의 원리가 아님을 깨닫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時間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었다.
道德經에는 時間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넘쳐난다. 전지전능해 보이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계속 등장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던 神의 태도와 전혀 다르다. 神은 극히 능동적이다. 무엇이라도 원하는 일은 쉽게 해내고 필요한 것은 바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老子의 神은 매우 수동적이고 내성적이어서 뒤로 숨으려고만 한다. 老子가 즐기는 표현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이보만물지자연이불감위)
따라서 聖人은 만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에 보조를 맞출 뿐 감히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주어는 聖人으로 道를 뜻한다. 이렇게 老子의 神은 감히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히 못하는 神이다. 신비로운 것은 수동적이면서도 이루지 못하는 것도 없다. 그것이 老子가 주장하는 道, 聖人, 無爲의 정체다. 이런 이유로 老子의 생각을 따라잡기 어렵다. 老子는 왜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알 수 없다. 聖人은 만물을 아이처럼 다루는 존재인데 왜 감히 못할까(不敢爲)? 전지전능하기에 원하는 것을 뚝딱 만들면 그만인데 왜 뒤로 물러설까?
우리는 이것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老子가 주장하는 道, 無爲, 聖人을 만날 수 있다. 지금부터 道德經에 나오는 독특한 표현들을 살펴보면서 時間과의 연관성을 찾아볼 것이다. 거의 30章에 걸쳐 등장하는 老子의 표현에 익숙해지면 道德經 문장을 쉽게 이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道德經의 표현들 중에서 時間의 특징과 가장 유사한 것은 無爲로 보인다. 無爲는 억지로 하지 않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는 이상한 존재다. 다양한 표현들 속에서 聖人은 “의인화된 時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2章.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부유불거 시이불거) 生하면서 소유하지 않고, 이루면서도 집착하지 않고, 공을 이루면 머무르지 않는다. 머물지 않기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시간은 순차적으로 흐를 뿐 作爲가 없다. 物이 생겨나고 이루면 자연스럽게 사그라졌다가 순환하기를 반복한다. 이런 이치를 머물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고 표현했다. 움직이고 변하지만 끝없이 순환하는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
3章. 爲無爲 則無不治(위무위 즉무불치)
無爲로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시간은 만물의 창조자이자 살인자라는 표현과 다를 바 없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에 無爲라 부른다. 세상에서 無爲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오로지 時間뿐이다.
5章.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천지는 不仁하여 만물을 지푸라기처럼 여기고, 聖人도 불인하여 생명체를 지푸라기처럼 여긴다. 천지와 성인을 시간으로 규정하면 이해가 쉽다. 不仁은 특정한 움직임과 변화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로, 현재의 시간이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올해 1억을 벌어서 매우 좋다거나, 1억을 잃어서 매우 나쁘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시간은 정지하고 만다.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老子가 주장하는 不仁이다.
6章. 綿綿若存 用之不勤(면면약존 용지불근)
이어지고 이어져 마치 존재하는 것과 같구나. 사용하고 사용해도 작용력은 끝이 없구나. 이런 능력을 가진 자는 神을 제외하면 오로지 時間뿐이다. 老子는 시간이 영원히 이어져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7章.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부자생 고능장생) 천지가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생하려 하지 않기에 오래도록 장생한다. 이 문장의 주체도 時間이며 영원한 순환을 뜻한다. 시간은 흘러갈 뿐이기에 스스로 생하지 않는다. 老子는 시간의 특징을 의인화시켜서 인간이 행동하는 것처럼 표현한다.
8章. 夫唯不爭 故無尤(부유부쟁 고무우)
다툴 일이 없으니 탓할 일도 허물도 없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다투지 않는 것은 時間 밖에 없다. 老子는 시간과 가장 유사한 물질을 물로 보았다.
9章. 功遂身退 天之道(공수신퇴 천지도)
공을 이루었으면 몸을 물리는 것이 하늘의 도다. 老子의 표현은 독특하다. 시간이 흘러 필요로 하는 바가 이루어지면 스스로 몸을 뒤로 물린다. 시간의 움직임을 인간의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老子의 독특한 표현에 익숙해지면 道德經이 편해진다.
10章.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生하면서 소유하지 않고, 이루면서도 집착하지 않고, 기르면서도 지배하지 않는다. 인간이 할 수 없는 행위다. 聖人을 “道를 깊게 체득한 사람”으로 해석하는 순간 전체 맥락이 이상해진다. 老子의 화려한 문장들이 “시간의 순환”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어렵다. 시간은 生하지만 소유하지 않고, 시간은 모든 것을 이루지만 그냥 흘러갈 뿐이고, 시간은 영원히 이어지지만 인간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天地와 聖人이 不仁한 이유다.
14章.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영지불견기수 수지불견기후)
이어지고 이어져 시작이 어디인지, 끝이 어디인지 볼 수 없다.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듯 영원한 시간을 상징한다.
15章.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숙능탁이정지서청 숙능안이구동지서생)누가 탁한 상태로 조용함을 유지하면서 천천히(徐) 청하게 만들고, 누가 안둔의 상태로 조용함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생기를 만들 수 있는가? 오로지 시간뿐이다. 빅뱅 이전에서 이후로의 변화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夫唯不盈 故能蔽不新成(부유불영 고능폐불신성)
가득 채우려하지 않기에 낡아도 새로워질 필요가 없다. 물질은 낡으면 반드시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바꿔야하지만 시간은 흘러갈 뿐 아무리 낡아도 새로워지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이런 묘한 표현들 때문에 道德經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 표현들은 팽창하는 우주를 설명하고 있다. 138억 년이 지난 현재도 우주는 팽창을 멈추지 않으며 그것이 不盈이다.
17章. 功成事遂 百姓皆謂 我自然(공성사수 백성개위 아자연)
공을 이루고 일이 성사되면 백성들은 모두 내가 그렇게 한 것이라 한다. 이런 표현들은 정치를 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을 표현한다. 모든 것들은 인위적일 필요가 없기에 정치가 백성의 삶에 개입하지만 않는다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왕이 뒤로 물러나면 세상은 學, 知, 智, 賢, 貴難得之貨(귀난득지화)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22章.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長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불자현고명 불자시고창 불자벌고유공 불자긍고장 부유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스스로 보지 않기에 밝으며,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에 널리 드러내고, 자랑하지 않기에 공을 이루며, 교만하지 않기에 오래 지속된다. 다투지 않기에 천하에 다툴 자가 없다. 이 모든 표현들은 시간의 특징을 표현한다. 시간만이 이런 행위들을 자연스럽게 해내기 때문이다.
23章.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고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 숙위차자 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폭풍도 아침이 지나면 그치고, 폭우도 종일 내리지 않는다. 누가 이것을 행하는가? 하늘과 땅이다. 천지도 꾸준함을 오래 유지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임에랴! 이 모든 표현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과 변화를 설명한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변하기에 동일한 상태나 현상을 지속할 수 없다. 오로지 인간만 현재의 상태에 집착하고 버리지 못하여 문제를 만들어낸다. 시간을 거스르는 행위에서 번뇌가 생겨난다.
24章. 故有道者不處(고유도자불처)
道가 있으면 머무르지 않는다. 시간은 절대로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재의 상황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중력으로 집착하여 번뇌로 고통 받는다.
29章.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천하의 신비한 기물은 억지로 할 수 없다. 억지로 하면 패하고, 집착하면 잃는다. 이런 작용은 時間만이 행한다. 이런 시간의 특징을 老子는 無爲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33章.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불실기소자구 사이불망자수)
근본을 잃지 않는 자 오래 간다. 죽어도 죽지 않는 자는 영원할 것이다. 이런 표현도 시간을 상징한다. 모든 만물은 사라져도 시간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34章. 萬物恃之以生而不辭 功成不名有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불명유 이기종부자위대 고능성기대) 만물은 大道에 의지하여 생겨남에도 자랑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소유하지 않는다. 스스로 크다고 하지 않기에 크게 이룬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주체는 오로지 時間뿐이다. 老子는 聖人, 無爲, 道 등으로 표현하고, 종교에서는 神이라 부른다.
47章.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시이성인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 따라서 성인은 행하지 않고도 근본을 깨달으며, 보지 않아도 이치에 밝으며, 억지로 하지 않아도 이룬다. 시간만이 가능한 행위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老子가 표현한 聖人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이룰 수 없는 행위들이기 때문이다.
48章.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취천하 상이무사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천하를 얻음에 항상 無爲로 하라. 有爲로 함은 천하를 얻기에 부족하다. 천하를 취하기에 부족하다는 의미는 시간을 거스르는 행위를 뜻한다. 人爲이자 作爲다.
51章.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10章과 동일한 문장이다. 생하지만 소유하지 않으며 이루지만 공을 누리지 않는다. 기르지만 통치하지 않는다. 이 행위의 주체도 시간이다. 道라 불러도, 神이라 불러도, 無爲라 불러도 좋다. 전지전능한 주체가 道다.
73章. 天之道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천지도 부쟁이선승 불언이선응 불소이자래 천연이선모) 하늘의 道는 다투지 않고도 선하게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선하게 호응하며, 찾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며 스스로 적절하게 도모한다. 이 모든 문장도 시간을 지칭한다. 시간이 공간에 방사한 에너지 특징으로 물형이 결정된다.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그러하다.
77章.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시이성인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현현) 성인은 이루어도 의지하지 않으며(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도 머물지 않으며, 공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행위를 하는 자는 시간뿐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老子의 독특한 표현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올 것이다. 聖人을 道를 깊이 깨달은 자로 해석한 후 전체 문장을 살피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절대로 할 수 없는 행위들을 聖人은 매우 자연스럽게 해낸다. 老子는 전지전능한 존재를 聖人으로 의인화한 것이고 그 정체가 무엇이든 각자의 판단에 달렸다.
조물주, 하느님, 神, 부처님, 道, 谷神, 有物混成, 암흑에너지, 원자, 소스필드 등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전지전능하기에 인간이 부를 수 있는 모든 명칭을 포괄한 존재다. 이렇게 정리하고 넘어가는 이유는 본문을 쉽게 이해하기 위함이고 기존의 해설서에서 聖人을 인간으로 해석하는 오류가 너무도 많아서 주의를 요하기 때문이다. 90% 이상의 책에서 聖人을 道를 잘 닦은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