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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가 고苦임을 명확히 보세요. 6월 13일 일요법회 법문 중에서 불교는 중생이 살아가는 이 세계를 고통의 세계라고 합니다. 아무리 행복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육도윤회六道輪廻라는 분명하고도 필연적인 고苦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잘 닦아서 마음속에 집착과 번뇌를 소멸해야만 이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세계, 영원한 대 안락의 세계로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불교가 말하는 대체적인 이야기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고통의 세계라고 하는데, 그러면 불교는 허무주의 아닌가?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불교는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 현실주의입니다. 부처님은 여실지견如實知見하라고 했습니다. 실상을 여실히 관하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명확히 보라는 겁니다. 실상을 여실히 관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고통의 세계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실상을 관하라고 하는데 그럼 실상이 뭣이냐? 실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세상의 이치인데 부처님은 이것을 삼법인三法印으로 말씀하셨어요. 삼법인, 세 가지 불변의 진리,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제행무상의 제행은 만나서 이루어진 모든 것, 인연따라 생긴 모든 것을 말하는 데 모든 우주만물이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그냥 있던 것이 없고 누가 생겨나라고 해서 갑자기 생겨난 것도 없고 모든 우주만물이 인연 따라 생긴 것입니다. 그렇게 만나서 이루어진 모든 것, 인연따라 생긴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이죠. 변한다는 겁니다. 인간과 같은 생명은 생노병사生老病死, 사물은 생주이멸生住異滅, 은하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 한다는 것이죠. 한번 태어나고 만들어진 다음에 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인데 마치 그것이 영원할 듯 그것에 집착하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면 ‘생로병사’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것이 ‘고’인 것이죠. 태어나는 것도 고요, 병들고 늙는 것도 고요, 죽는 것도 고라고 하는 것이죠. 태어나는 것도 고다, 생각해 보세요. 태어나면서 웃는 애기 봤어요? 출발부터가 고인 겁니다. 열 달 동안 갇혀있어야 할 것이고 열 달이 되어서 밀려나오는 데도 나오는 곳이 크지 않은 고로 억지로 비집고 나오려니까 힘든 겁니다. 나와 가지고 웃는 애기가 없어요. 다 찡그리고 울어요. 그래 나오고 보니까 지 맘대로 되는 게 없어. 똥오줌을 싸면 애기가 울잖아요. 지 맘대로 되면 울 일이 뭐 있겠어요. 애기는 똥오줌도 지 맘대로 못합니다.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하는데 밥 먹는 것도 지 맘대로 못합니다. 아무 것도 지 맘대로 못합니다. 그래서 우는 거예요. 고예요, 고. 그래 인제 그거 벗어나면 공부해야 될 것이고 출세해 보겠다고 박 터지게 공부하는데 공부하는 것도 고요. 좋은 대학교 들어갔다고 해서 거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나와 봤자 결국 취직해서 악착같이 돈 벌어야 되고, 악착같이 박 터지게 경쟁해서 돈벌어봤자 누구 좋은 일시키냐. 마누라 좋은 일 시킨다. 그 마누라도 처음엔 아구! 예쁘고 늘씬하고 쭉쭉빵빵해. 내가 저 여자하고 살면 평생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래서 몸 바쳐 마음 바쳐, 있는 재산 다 바쳐 결혼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게 얼마 안가요.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고란 겁니다. 살아가는 것이 전부 고입니다. 악착같이 돈 벌고 자식 키우고 가정 일구고 나면 어느새 세월이 훅 가버려서 인제 회사에서는 나가라그러고 나가면 기운 떨어지고 기운 떨어지면 할 일이 없어요. 할 일이 없으면 날만 받아놓은 것인데, 이게 고예요. 병들고 늙는 것도 고요, 죽는 것 또한 당연히 고요, 고 아닌 게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은 ‘아구! 스님, 고라니요, 저는 어제 노래방 가서 실컷 재밌게 놀았네요. 그런데 왜 고라고 말씀하십니까?’할 텐데, 재미가 계속돼야지. 변하지 않아야지. 그게 얼마 못 간다니까. 우리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냐면 사랑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래서 사랑하고 결혼하는데, 이게 얼마 못가. 사랑하던 마음이 변해요. 사람들 몽땅 있는데서 축의금도 받고 약속도 하고, ‘평생 살아가겠느냐?’ ‘예!’ 대답도 했고 애도 생겼고 지키긴 지켜야 되겠는데 그 마음이 변한단 말이에요. 변하니까 고고, 그런데도 지키려니까 고고, 눈 돌아가니까 고고, 못 얻으니까 고예요. 행복이 계속돼야하는데 오래 못가요. 그런고로 재행무상, 우주만물이 무상하다고 하는 거예요. 사랑이든, 돈이든, 나무든, 사람이든 모든 우주만물이 인연 따라 잠시 머물렀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고로 일체개고, 일체 모두가 고라는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생노병사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내용 아니겠어.’ 하는데 그냥 피상적으로 알아가지고는 소용이 없어요.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죽는 것이 나의 문제고 병들고 늙는 것이 나의 문제라는 것을 절실히 느껴야 합니다. 말기 암환자들이 모여서 임종을 맞이하는 정토마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능인스님이란 비구니 스님이 운영하는 곳인데 거기에 오는 모든 말기암환자, 죽음을 앞둔 양반들의 백프로, 구십구프로도 아니고 백프로 다 똑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고 해요. 그 얘기가 뭐냐면,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는 거야. 우리 주변에 널린 게 죽음인데 부모도 돌아가시고 그 위에 조상님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친구도 죽고, 교통사고로도 죽고 암으로도 죽고… 그런데도 나한테는 이 일이 있을 줄 몰랐다고, 전부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아무리 부처님께서 처음부터 끝가지 인생은 고다, 재행諸行은 무상無常이요 제법諸法은 무아無我다. 그런고로 일체一切는 개고皆苦가 진리이니라. 이렇게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달통을 해버렸어요.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서 깨끗이 잊고 사는 거예요. 근데 그게 아니고 죽음이 나의 문제고 늙는 게 나의문제고 병드는 게 나의 문제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에 연세 드신 분들 계시는데 연세 드신 분들한테 물어보세요. 물어보시면 그 양반들이 ‘아구! 난 진작 알았네! 이렇게 늙을 줄 진작 알았네!’ 이런 사람 아무도 없어요. 세월을 보내다보니 한방에 훅 가가지고 사진 찍기도 싫고 거울보기도 싫더라, 이렇게 나오지 나 이렇게 늙을 줄 진작 알았네. 이런 사람 없어요. 생로병사에 대한 느낌과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는 겁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이 지고지순한 진리를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은 헛된 세월을 보낼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행복할 것이냐. 어떻게 하면 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냐. 어떻게 하면 내세來世를 준비할 것이냐. 육도윤회를 벗어날 것이냐. 여기에 천착을 해서 그냥 부단히 수행하고 기도하고 관조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지, 조그만 거가지고 안달복달하고 사네 못사네, 저놈의 원수만 없으면 내가 잘 살겠다, 그러고 이럴 일이 없다니까요. 시비 부릴 일이 없어요. 능행스님 정토마을에 있는 그 사람들이 다 후회하는 것이. 내가 왜 그때 그렇게 살았던가 하는 거예요. 그리고 가장 후회하는 것이 원수 지은 것을 그렇게 후회한다드만,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싸우고 미워하고… 이걸 그렇게 후회한다드만…. 그 양반들 가는 마당에 철든 것이죠. 근데 그게 그 양반의 문제가 아니고 여러분들의 문제입니다. 여러분들 부처님 믿는다하고 부처님 말씀을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된 것인지 오토여 오토, 나가기만 하면 별거 아닌 거가지고 인상을 쓰고 그러니 아니니 시시비비를 가리고…. 보살菩薩이, 깨달음을 얻은 보살이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다만 분별이 없고, 평등한 마음을 내면 보살입니다, 기가 막힌 얘깁니다. 여러분들이 좋네, 싫네, 이렇게 하는 것들이 전부 분별이거든요. 분별, 좋으면 끌어않고 싫으면 밀어내고 하는 분별. 무얼 중심해서? 자신을 중심해서…. 이것만 없으면 보살이라는 거야. 이것만 없으면 깨달았다는 거예요. 이렇게 살아야 되는데 이게 잘 안돼야. 그러니까 여러분이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실상을 여실히 깊이 관하려면 ‘정定’을 갖춰야하는 거예요. 정을 갖추면 혜慧가 저절로 되는 거예요. 계정혜戒定慧를 닦아야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기도하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수행에서 가장 기본적인 수행이 사념처관四念處觀입니다. 사념처, 네 가지 대상을 관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신수심법身受心法, 몸, 느낌, 마음, 법, 이 네 가지를 관해야한다는 겁니다. 이 네 가지를 깊이 관하면 모든 것이 무상無常한 이치, 변하는 이치, 무아無我인 이치, 고苦인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모든 것이 고인 것을 분명히 본다면 집착과 분별을 벗어나 부처님세계로 가게 된다는 겁니다. 신身, 이 몸뚱이를 낱낱이 살펴보면 그렇게 애착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몸뚱이를 아무리 애지중지해봐야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애지중지할 만큼 좋고 깨끗한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이미숙인가 있잖아요, 그 탤런트 이미숙. 나이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지만, 한 오십 됐을걸요. 그 양반이 하는 얘기가. 왜 대한민국에서는 이십년, 삼십년 나이가 차이나서 연애하는 것을 왜 이상하게 생각하느냐는 거야. 불법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 그 양반이 불법을 몰라서 그래. 생각을 해보세요. 아무리 젊음을 유지하려고 한들 그 양반도 얼마 안가서 한방에 훅 가. 지금은 의학기술을 빌려가지고 오십대가 한 삼십대처럼 돼가지고 왜 한 삼십년 연하의 남자하고 연애하는 것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느냐, 하는데 한 칠십 돼서도 그 소리 나오는 지 봐봐. 지금은 자신 있다는 거지. 늙는 것 별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뚱이를 가만히 보면 좋고 깨끗할 것이 없어요. 깨끗한 것처럼 착각시키는 것이 현대문명이예요. 자꾸 좋은 거 예쁜 거 둘러서 착각하게 하고 화장을 넘어서 분장이 되고 분장을 넘어서 변장을 해서 착각하게 만드는 거예요. 이 몸에서 냄새나니까 뭐합니까. 몸에서 자연스럽게 좋은 냄새가 나면 뭐한다고 뿌려요. 얼굴이 본바탕이 예쁘고 깨끗하면 뭐한다고 그려요. 날씬하고 예쁘고 하면 뭐한다고 가려요, 훌렁훌렁 벗지…. 그러니까 자꾸 좋은 것으로 가리고, 좋은 것으로 그리고, 좋은 냄새 나라고 뿌리고 하는 것들이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겁니다. 현대사회가 그런 거예요. 몸뚱이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데 거기에서 하나라도 좋은 것이 나오는가 보세요. 땀, 침, 고름, 똥, 오줌… 여러분들 엉덩이에서는 좋은 냄새가 납니까? 낱낱이 보면 몸뚱이라는 것은 애지중지할 만큼 좋은 게 못돼요. 이 여름에, 죽어서 삼일만 지나면 냉동실에 안들어간 이상 썩은 냄새가 펄펄나고 벌레가 득실득실 거리고 푸르딩딩 변하는 것이니 몸뚱이라는 것은 애착할 대상이 못된다는 것이죠. 수受, 느낌 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무상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다는 느낌 혹은 싫다는 느낌에 항상 사로잡혀서 집착하고 갈등하지만 느낌이란 것도 무상한 것이니 그럴 일이 아니에요. 좋다고 결혼했지만 그것 얼마 못 가요. 그래가지고 이 사람이 아닌가 보다하고 또 다른 사람 찾아보아도 역시 오래 못 가긴 마찬가지에요.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나의 이 느낌이란 것이 문제입니다. 이 느낌이란 것은 믿을 수가 없어요. 그냥 좋아서 ‘내가 정말 너 없으면 못산다. 너를 위해 평생 희생하고 살 것이다.’ 뭔 소린들 못하겠어. ‘행복하게 해주께. 내가 평생 너의 종이 되마. 딸랑 딸랑…’ 그 때는 정말 그 기분이지 거짓말이 아니에요. 여러분들 해봤잖아. 그런데 삼년을 못 간다니까. ‘당신 왜 달라졌어. 당신이 결혼 전에는 그러지 않았잖아!’ 그럼 서방님들이 하는 이야기가, ‘야. 결혼 전하고 같냐? 내 것 됐는데 뭐할라고 그러냐?’ 이것이 실상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변한다는 겁니다. 사랑이 좋은 것 같지만 그 놈의 느낌 때문에 결혼해가지고 그냥 평생 묶여 사는 겁니다. 애 키우고 평생 세월 보내는 거여. 보세요. 현대 사회라는 건 전부 느낌을 자극시키는 겁니다. 이 화장품을 바르면 오십대가 이십대가 되는 듯 광고를 하죠. 이 옷을 걸치면 무슨 그냥 이렇게 배나온 팔개월짜리도 날씬한 쭉쭉빵빵이 될 것처럼 그러죠. 이 집을 가지면 이 차를 가지면 행복할 거라 하죠. 광고를 보면 전부 가지고 싶도록 하는데 그래서 그 느낌대로 가졌어요. 가지고 난 다음에는 그게 별것이 없어. 정말 좋은 차를 타고 운전하는 사람이 좋은차를 타고 다니니까 정말 행복하다. 헤헤헤. 웃는 사람 못 봤어요, 인상 팍 쓰고 다니는 사람 내 봤어도…. 이 느낌이 문젭니다. 심心, 마음 또한 항상 변하니 그것에 집착하면 괴로울 뿐이다. 법法, 법이 뭐냐면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존재하는 모든 이치, 이법理法이에요. 이것을 보면 자아自我가 없다는 것이죠. 우주만물이 모두 무아無我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 그것에 집착한들 ‘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무상이, 고가 여러분들에게 분명하게 뼛속깊이 다가오지 않더라도 머릿속만이라도 분명하게 아! 모든 것이 무상하구나, 고구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에 매여 살지 않고 부지런히 닦아서 벗어나야 되겠구나! 해야 한다는 것이죠. 고에서 벗어나는 것은 두 가지가 있어요. 먼저 하나는 고를 완화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복을 받는 겁니다. 배고픔에 시달리고 아파도 약도 못 쓰는 곳에 태어나면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잖아요. 그런 곳에 안 태어나고 풍족한 환경에 태어나 자라려면 복을 받아야 하는데 복을 받으려면 먼저 복을 쌓아야죠.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복을 쌓아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을 내야합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고를 완전히 벗어나려면, 삼계육도윤회를 벗어나서 내가 깨달아야 되겠구나하는 출리심出離心내고 원력을 세워야한다. 라고 하는 겁니다. 사람몸 받기가 어렵고 부처님법 만나기가 정말 어려운데 여러분은 사람몸 받고 이 귀한 법을 알았으니 부디 시비분별에 매이지 말고 이 우주에 모든 공간을 내 마음 안에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자재自在한 마음을 가지고 일체의 고를 여의는 여러분들이 돼야합니다. 이 길을 향해서 닦아가고자 하는 원력을 세워야 한다는 겁니다. 성불하십시오. |
첫댓글 석현스님께서 많이 수고 해 주셨습니다. 녹음으로 들을때는 플레리-온 해서 들어야 내용을 알수 있었는데 글로 보니 한눈에 다 보이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