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고 싶다
허 열 웅
나이가 들어가면 기억과 관심에서 멀어지는 외로운 섬이 된다
섬! 불러보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름이다. 왠지 마음을 부풀게 만들고 우리를 황홀한 사고에 빠지는 상상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욕망, 또는 막연한 신비감과 기대감에 휩싸이게 하는 장소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섬’을 행복 또는 문학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알베르 까뮈가 알제리에서 ‘장 그르니에’의 <섬>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스무 살이었다고 고백을 했다. 이 책에 영향을 받아 문학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고 실존주의 중심인 부조리不條理 문학 선구자가 되어 소설 전락, 페스트, 이방인 등을 발표하여 노벨문학상사상 최연소 수상자가 되었다. 지금도 그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바다에 있는 섬은 육도(陸島)와 양도(洋島)로 나누어진다. 육도는 지질적으로 대륙과 같은 구성 물질로 되었으며, 육지의 일부가 대륙이나 또는 대륙에 가까운 큰 섬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섬이다. 양도는 육지와 관계없이 생성된 것으로서 화산섬과 산호섬이 여기에 속한다. 지각운동에 의하여 해저의 일부가 융기하거나, 해안산맥의 일부가 침수되어 높은 땅의 일부가 해면 위에 남아 있거나, 또는 육지의 일부가 침강하여 그곳에 해수가 들어와서 섬이 형성된다. 해저화산이 분출하여 만들어진 화산도(火山島), 해안 지역의 일부가 파도나 빙하의 침식을 받아 육지와 분리되어 만들어진 섬도 있다.
나는 부모로부터 분리된 섬이고 아들들 역시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두 개의 섬인 셈이다. 추석을 일주일 쯤 앞 둔 날, 두 번째 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번 추석은 친가에는 못 오고 대구 처가로 가야할 것 같다는 일방적인 알림이었다. 이유인즉 아들 하나 뿐인 처가엔 아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두 노인들만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형편이 비슷한 큰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우물쭈물한다. 이번 추석은 두 아들을 대구와 목포 사돈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잘 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이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 많은 아들만이 내 아들이라는 유머가 있다. 잘 날것도 못날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 아들이기에 별로 부담은 없었다. 이참에 아내와 여행이나 떠날 심산으로 추석계획을 통보해주며 여행 가방을 꾸렸다. 추석에 두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가 오면 자고 갈 집안 청소며 이부자리까지 햇볕에 털어 말린 것을 아쉬운 듯 바라보며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 동안 설날이나 추석은 자녀들이 부모가 계시는 고향을 찾아 차례를 지내며 그 동안 소원했던 마음을 풀어놓는 날이다. 대화가 부족해 쌓인 오해도 풀어 끈끈한 가족애가 확인되기도 했다. 때로는 후유증도 생기지만 다음 명절 만남에서 해명되기도 한다.
섬!! 늘 닿고 싶은 대상이며 아름다운 섬에 들어서면 한 권의 시집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으로 마음이 설렜다. 보길도, 청산도, 증도, 소매물도, 욕지도, 백령도,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최남단의 마라도가 그러했다. 이번에 찾은 신비의 섬 울릉도와 독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암절벽과 천연동굴의 곁을 따라 때로는 바위와 바위사이를 잇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며 도동 포구와 해변을 발끝으로 디뎌 걸었다. 제 가슴을 깎아 첩첩 절벽을 만들고 이따금씩 제 살을 바다에 던져 만든 거북바위, 주상절리로 된 코끼리바위 등이 흩어져 있다. 햇볕과 바닷바람의 생기가 넘치는 해변마을의 덕장에선 오징어가 꾸덕꾸덕 마르면서 쫄깃한 맛으로 변하고 있었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동남쪽 뱃길 따라 200백리쯤에 있다. 항상 높은 파도와 바위들 때문에 접안이 어려워 상륙이 절반도 안 되었다지만 마침 날씨도 맑고 파도가 미미해 30분이 넘도록 머물다 왔다. 섬은 동도, 서도를 비롯해 80개가 넘는 부속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도는 남쪽 비탈을 제외하고는 60도가 넘는 벼랑으로 그 아찔한 기세가 절경이다. 특히 한반도 바위는 독도의 국적을 드러내는 자연의 상징물이다. 천연자원의 보고이자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는 독도는 수려한 자연자원을 그대로 보존,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이 섬에는 일반주민을 비롯한 독도 경비대원, 등대원, 울릉군 공무원 등 40 여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섬은 3,000여개가 넘는다. 우리 인간들의 삶도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섬이 되어간다. 도시 속에 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고 가벼운 부대낌도 필요한 인정人情에서 멀어지는 섬이 되어가고 있다. 요즘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손쉽게 소식을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현대인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예전보다 더 힘들어하고 고독감을 자주 느끼며 우울해지는 것 같다. 새로운 고독의 섬이 되어가는 오늘 날이다. 즉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 상태와 같은 것이다.
수천 년 동안 파도가 섬의 옆구리에 달려든 흔적이 절벽으로 남아 있어 풍란이 꽃을 피우고 괭이갈매기가 새끼를 품고 있었다. 사람마다의 옆구리에도 세상사가 할퀴고 간 절벽이 있다. 태풍이 몰려와 파도의 부피가 크고 경사가 가파를수록 꽃향기는 짙어지고 우리의 삶도 일상이 주고 간 아픔이 깊을수록 의지가 더 견고해지는 것 같다. 3박 4일의 여행에서 “독도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의지로 조국을 수호하는 모습을 보았다. 더불어 마음이 울렁이는 자연미의 극치를 관람하고 역사문화를 터득했지만 여행 내내 뭔가 아쉬움에 가슴 한 쪽에 빈 터가 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 아파트의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지난해 올망졸망 쿵쾅거리며 뛰어놀던 손자손녀들의 영상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에 흔들리고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거실에 앉으니 멀리 마포대교의 졸고 있는 가로등이 아득한 등대 불빛이다. 12층 높이에 뜬 섬 속에서 나는 또 하나의 섬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적막이 도둑처럼 슬며시 창을 넘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