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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총무가 된 요셉
창 39: 4-5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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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자기 친구에게 자기 가정이 그렇게 평화롭고 행복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몇 년이 가도 부부싸움 한 번을 한 적이 없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비결이 있지”
“그 비결이 뭔데?”
“우리는 사사로운 일들은 아내에게 다 결정권을 주고 나는 큰 일만 결정 한다네”
그럼 도대체 사사로운 일이 무엇이냐?
‘월급을 관리하는 것’ 사사로운 것은 부인에게 맡긴다는 거예요.
‘적금을 깰 것인가 계속 넣을 것인지, 이사를 어디로 갈 것인지, 집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아이들 학교는 어디로 보낼 것인지, 차를 사면 무슨 차를 살 것인지, 추석 명절에 시댁에 갈 것인지 친정에 갈 것인지, 외식을 하면 메뉴를 무엇으로 결정할지’
이런 모든 것은 시시한 일들은 아내가 결정한다는 거예요.
“어~~ 그런가? 그럼 중요한 일들은 자네가 결정하는가?”
“그럼 그것은 내가 결정하지!”
“그럼 중요한 일은 뭔데?“
”내가 결정하는 중요한 일은 말야! 남북통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지구 온난화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UN사무 총장을 누구를 뽑아야 하는지, 외계인의 공격에 어떻게 지구가 막아야 하는지. 나는 이렇게 큰일들만 결정한다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무덥고 습기 차고 이럴 때 부부싸움 하기 쉬워요.
작은 일들은 아내에게 맡기고 우리 남편들은 큰일들만 결정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남북통일을 위해 우리 남신도들이 기도하세요.
UN사무총장 반기문 이후에 누가 될는지 말이에요.
여러분 이렇게 평화란 중요한 거예요.
요셉의 가정에도 평화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형제들 간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팔아 버리게 된 거예요.
여러분 막내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했기 때문에 그를 냉정하게 팔아 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요셉의 생애는 어떻습니까?
그는 노예가 되어서 애굽으로 끌려 왔고 보디발의 집에, 그 당시 애굽의 최고의 권력자인 바로의 경호실장인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이 그 때부터 요셉을 주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는 것을 보디발이 보게 되었어요.
또 여호와께서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는 것을 그가 보게 되었어요.
요셉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고 호의를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보디발은 요셉을 자기 집의 가정 총무로 삼았어요.
그것만이 아니예요.
자기 집의 모든 재산을 다 관리 할 수 있도록 요셉의 손에 위탁해 주었어요.
이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가 얼른 생각하면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나이 이제 20살이 아직 안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수백 명의 노예가 있는데 이제 갓 끌려온 신참 노예입니다.
여러분 노예도 계급이 있는 것을 아시죠?
군대 가면 남자들은요, 하루 먼저 들어오고 하루 늦게 들어가는 것이 3년 동안 그것이 질서예요.
하루 먼저 입대한 사람이 언제든지 상관이에요.
그런데 요셉보다 몇 년을 앞서 왔고 몇 십 년을 그 집에 거하던 사람도 있었을 거예요.
또 거기에는 이미 가정 총무로 일하던 자도 있었을 것이고 또 가정 총무 후보 물망에 오르던 자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갓 들어온 신병과 같은 햇병아리 같은 요셉을 보디발이 좋게 보아서 자기 집의 가정 총무로 삼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냥 일반적인 노예들과 가정 총무는 신분이 확연히 다른 거예요.
마치 노예가 이등병과 같다면 가정 총무는 그 가정의 군 사령관, 합창 의장과 같다고 여러분은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제 더 이상 노예가 아닌 것입니다.
그는 주인대신 해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경호 실장이라는 직분이 얼마나 큰 권력인 줄 아시죠?
우리가 지나간 한국의 불행한 역사를 살펴보면 경호 실장이 때로는 국방부 장관을 능가해요.
안기부 장관을 능가하는 월권을 행사하는 것을 보세요.
왜? 늘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시니까요.
대통령은 경호 실장을 신임합니다.
자기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이에요.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경호 실장의 집에 얼마나 많은 수 백 명의 경호원들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이 경호 실장의 가족에 모든 재산의 관리인이 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권력에 오르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요셉의 생애에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요셉은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 4절 말씀 한 번 다시 읽어 볼까요?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었다!
이 은혜를 입었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다시 말하면 호의를 입었다! 사랑을 받았다! 혹은 선택을 받았다! 이런 뜻으로 보면 됩니다.
‘은혜’라는 말은 참 좋은 말이죠. ‘선물’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어디서 난 거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은혜’란 말은 선물로 주어지는 거예요.
내가 일해 열심히 돈을 벌었으면 그건 ‘은혜’가 아니에요.
나는 열심히 일도 못했고 일할 건강도 안 되고 일할 자격도 없는데 내게 엄청난 선물이 주어졌다 하는 거예요.
여러분 요셉은 가정총무가 될 만한 자격이 없어요.
그는 인맥을 쌓을 기회도 없어요.
또 그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보디발이 바보가 아닌 한 자기 집에 전 재산을 관리하는 가정총무의 자리에 때로는 자기의 생명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가정총무의 자리에 어린 요셉을 앉힐 수 있겠느냐.
여러분 보디발이 마음이 좋은 사람이래서 ‘저 유대에서 끌려온 저 불쌍한 소년 안 됐다. 고생하기 전에 쟤를 가정총무로’ 이런 주인이 어디 있어요.
보디발은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이고 까칠한 사람이고 깐깐한 사람이고 냉정한 사람입니다.
냉정하지 않으면 경호실장할 수 없어요.
그런 사람이 물러서 아무나 가정총무로 세울 것 같아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에요.
그는 요셉을 유심히 주목해 보았을 거예요.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을 발견했어.
요셉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마다 잘되는 것을 보고 ‘아 저 친구는 뭔가 다르구나.’
‘저 성실함을 보고 저 정직함을 보니 저 친구에게 내 모든 재산을 맡겨도 괜찮겠구나.’
이런 마음이 든 거예요.
그러면 보디발의 마음에 그런 마음을 주신 분은 누굴까. 누구예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보디발의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감동을 주셨어요.
요셉을 주목해서 보게 했어요.
눈 여겨 보게 했습니다.
많은 가정총무 후보들이 있지만 경험 많고 머리 좋고 똑똑한 노예들이 많이 있지만 그는 요셉을 자기 집에 가정총무로 세웠다는 거예요.
또 거기다가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아니면 자기 재산을 맡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너무너무 믿을 수 있었어요.
그가 마음에 감동이 돼서 그를 자기 집에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위탁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분명히 기록돼 있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가정총무라고 다 위탁하는 게 아니에요.
가정총무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거예요.
제가 어느 성도님 심방하다 보니까 성도님이 조선족이신데 남의 집에 가서 일생동안 그 집 일도 해주고 도와주는데 어릴 때부터 그 아이들을 다 키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집에서 나오고 싶어도 그 애들이 못 가게 한다는 거예요. 엄마 가면 안 된다고 엄마라고 불러요.
한 10년을 돌봐주니까 엄마보다 더 친해요.
참 놀라운 거예요.
그 집사님 아들이 결혼하는데 그 집에서 축의금으로 몇 백 만원을 내놓고 중국의 교회 건축한다고 그러니까 그분이 장로님 댁인데 3000만원을 그 교회에 헌금했어요.
자기가 전혀 모르는 곳에, 그게 뭐예요?
집사님은 그 집에서 은혜를 입으신 거예요.
그 주인이 볼 때 ‘이 분은 정말 믿을 수 있는 분이야. 오히려 뭘 맡겨도 돈을 맡기든 집안을 맡기든 아이들을 맡기든 책임질 수 있는 분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어찌 보면 요셉은 보디발에게 그런 은혜를 입었을까?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거예요.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감동시켜주신 거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역사예요.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감히 은혜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은혜를 베푸신 거예요.
여러분 보디발은 무능한 자에게 은혜를 베푼 게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가 이런 추측을 해볼 수 있어요.
요셉이 정말 무능하고 숫자도 하나 셀 수 없는 그런 사람한테 어떻게 가정총무를 맡기겠어요.
수백 명의 거친 노예들을 관리해야 하는 일인데. 그런데 우리가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요셉은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많이 받았잖아요.
그런데 가끔 성경에 보면 그 형들이 가끔 양을 팔아먹고 돈을 빼먹을 때도 있고 술을 사 먹을 때도 있고 아마 그런 것 같아요.
그러면 정직한 요셉은 아버지한테 와서 얘기했어요.
그는 정직하니까.
형을 고자질 하려는 게 아니라 정직하니까.
“아버지, 이런 일을 하면 안 되는데 형들이 양을 팔아먹어서 술을 사먹고 어제는 도박하는 것 제가 봤어요.”
정직하게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형들은 미워해요.
그러나 아버지는 요셉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요셉을 가까이 두고 적어도 야곱의 집안도 엄청난 가족 아닙니까.
수천 마리의 양떼가 있었고 수백 명의 노예가 있었을 거예요.
그 노예들을 관리하는 일을 요셉에게 맡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회계 장부를 관리하는 일을 요셉에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노예들을 관리하는 인사 관리법, 그리고 리더십을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배웠을 거예요.
왜? 아버지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양치기한 경험이 있거든요.
어마어마한 거부가 되기까지 그의 리더십이 필요했을 거예요.
그는 요셉에게 친절하게 잘 알려줬어요.
그러니까 어찌 보면 요셉은 노예를 다루는 법, 양을 관리하는 법,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법 아주 익숙한 사람이에요.
이런 준비된 능력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까 결국 보디발은 스물 도 안 된 요셉을 그 집에 가정총무로 삼고 그의 모든 재산을 그의 손에 다 위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로 끌려간 요셉의 생애를 그냥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니라 보디발의 눈에 들게 하시고 가정총무로 삼고 그의 모든 손에 재산을 위탁하게 하고 그리고 국무총리를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게 하십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역사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가정총무로 삼기위해서 보디발의 마음을 감동 시키는 은혜의 하나님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란 선물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내리는 단비요 선물 같은 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렇게 비가 오는 것도 은혜입니다.
날씨가 어제 얼마나 더웠어요?
하나님이 비를 뿌리니까 날씨가 많이 선선해지잖아요.
이거 에어컨 틀어서 이렇게 시원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에어컨이 필요하겠어요.
하나님이 비 한번 내리시니까 시원해지잖아요.
농작물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데는 비를 적당히 주시는 거예요.
비를 너무 많이 주시 면은 홍수가 나서 다 떠내려가잖아요.
그런데 어떤 때는 비가 안주시기 때문에 사막이 되어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다 그 땅을 살지 못하고 이주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은혜에요.
은혜란 단비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또 은혜란 감히 꿈꿀 수 없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란 꿈꿀 수 없는 것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아 지금 주머니에 지갑에 돈 만원도 없어 오늘 점심때 스타벅스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제발 그 친구가 내 줬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이 뭔가 꿈을 꾼다면 야 너 허황된 꿈을 버려라 너 돈 만원도 없으면서 그래, 꿈이란 게 좋은 거예요. 돈 만원도 없어도요 여의도의 빌딩 몇 개 정도는 가질 수 있거든요.
꿈으로.
그런데 하나님은 그 꿈을 현실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노예로 끌러온 요셉이 어떻게 그 집의 가정 총무가 되고 주인을 대신해서 모든 재산을 관리하고 노예의 인사를 관리하고 이거 여러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아 군대 들어간 위에 병장, 하사, 중사 등이 많은 데 어디 그런 꿈을 꾸겠어요.
근데 하나님은 이 꿈을 현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은혜예요.
요셉의 능력과 인맥과 자격이 충분해서 총무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면 그건 은혜가 아니 예요.
그는 그럴 자격도 그런 경험도 없어요.
그것과 무관하게 하나님 역사하셔서 총무가 되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은혜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셉은 어떻게 하나님을 받았을까?
요셉은요 자기의 모든 미래, 생명, 인생을 누구에게 위탁했을까요?
하나님께 위탁했어요. 하나님께 맡겼어요.
여러분 우리 같으면 사랑받던 아들이 갑자기 노예로 끌려가고 연락도 없고 생사가 오락가락 하면 절망하고 우울증에 빠지고 인생을 비관하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그렇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아니까. 그의 매일, 그의 미래를 하나님의 손에 다 위탁했다고요.
여러분도 마찬가지.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위해한 것을 맡기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맡길 수 있어야 되요.
내가 하나님을 붙들까, 돈을 붙들까. 내가 하나님이 없어도 돈은 있어야 버티지 아이고 나는 돈을 포기 못해. 이러면 안돼요.
내 통장에 돈이 없어도 하나님이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재우시는 줄나는 믿어. 하나님께 내 생명을 맡기고 의식주, 재산, 자녀를 맡기는 것이 위탁이에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손에 위대한 것을 위탁할 줄로 믿습니다.
요셉이 그런 거예요.
노예의 삶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니 보디발의 모든 재산을 요셉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은 그를 보디발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가정총무가 되게 하고 모든 재산을 위탁받게 하시고 같은 노예들에게 존경받게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이 되게 하고 이게 바로 요셉의 인생이에요.
또 뭐 이렇게 계속가면 좋겠지만, 그러다보니까 또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갖히는 일도 경험하게 되지요.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란 자신의 인맥이나 경험이나 어떤 끈을 붙들고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가 성도인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 받는 자리에 서야 돼요.
예배의 자리, 기도 받는 자리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사람들 쫒아 다니고 누구 좀 도움을 받을까, 누구에게 잘 보이고 살아남을까, 이런 시간 있으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세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지, 우리가 잘 되고 번성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지, 사람을 의지해서는 결국 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이스라엘 군대에 말들은 그 힘줄을 베어버려라. 말이 많으면 교만하게 된다. 우리는 군사력이 세니까 하나님 의지할 필요 없어. 아니라는 거예요.
모든 말의 그 힘줄을 다 끊어 버려라. 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 하나님만 의지해야지 너희가 군사들이나 말들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리석은 자들은 그렇습니다.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압니다.
그리고 교만에 빠집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의 고백 한 번 읽어 볼까요?
고린도 전서 15장 9-10절 자막에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9절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아멘.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예수 믿는 사람 핍박했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 잡아 죽이고 잡아다가 감옥에 넘기고 법정에 넘기던 이런 사람이 사울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그가 어떻게 사도바울 거룩한 복음의 전파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 꿈이나 꿀 수 있겠습니까?
그거 불가능해요.
그런 살인자 사울이 그런 박해자 사울이 하나님의 사도가 되고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전 삶을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는 거 이거 꿈이 현실이 된 거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나는 무능한 자요. 나는 만삭되어 태어나지 못한 자요. 나는 작은 자중의 가장 작은 자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요. 내가 어떻게 사도라 칭할 수 있느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아마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삶을 부족하지만 이 짧은 아직 60도 되지 않은 58년의 생애를 한번 쭉 돌아봤어요. 이거 보니까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왔더라고요.
여러분이 저하고 한 15년 경험해 보니까 제가 똑똑하지 않은 것 잘 아시죠?
제가 좀 어수룩하고 기억력도 안 좋은 것 여러분이 잘 아실 거예요.
가끔 기도하고 나면 내가 딴 사람을 위해 기도한 것 같아. 이름을 잘못 부른 것 같아.
여러분 그게 제 모습 이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저를 사용해서 우리 영신교회 좋은 교회 목회자로 섬길 수 있게 하는 거 이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신학대학 졸업하고 첫 목회를 전남 해남군 계곡면 모동리 모동교회에서 시작했어요.
서울에서는 아무도 오라는 데가 없어. 오라는 데가.
저는 원래 감리교 출신이기 때문에 또 기장에는 아는 사람도 없지만 뭐 그래도 유능하고 뛰어나면 오라는 교회가 많았을 텐데 오라는 데가 없어.
그래서 저 밀려서 해남에 밀려서 다 쓰러져가는 교회에 갔어요.
거기서 제 목회가 시작되었어요.
그래서 이곳에 서기 까지 보면 하나님의 은혜예요.
제 목회 31년에서 절반은 영신교회에서 보내고 있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해요. 그렇잖아요.
좋은 교회에서 반 이상을 목회했으니 말이 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제가 목회 하면서 저에게 특별한 은사를 하나 주셨는데 그 은사가 뭐냐? 건축의 은사에요.
제가 무슨 건축학과를 나온 사람도 아닌데 저는 건축을 잘하는 목사중의 한 사람입니다.
부임한지 3개월 만에 건축을 시작했다니까요
제가. 얼마나 또 성격은 급한지. 시골교회 건축을 해냈어요.
참 놀랍지요.
2번째 건축은 양평장로교회 꼭 20년 전이예요.
그 교회도 예배당이 30년 35년 돼서 낡고 이거 언제든지 허물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예배당 이예요.
그래서 그 교회도 1200평을 건축했는데 정말 은혜가운데 건축했어요.
그리고 꼭 10년 전에 우리 영신교회를 건축해서 헌당했죠. 뭐 제가 한건 아니에요.
우리 교우들이 한 일이고 하나님이 한 일 이신데 제가 담임목사로 있을 때 했다는 이야기예요.
그냥. 이 모든 것이 감사한 거예요.
더더욱 가마한 것이 이 3개의 교회를 건축하면서 건축하는 것 때문에 동네에서 민원을 받아본 것이 별로 없어요.
공사가 중단 된 일도 없어요.
또 돈이 없어서 건축업자가 와서 난리를 친 일도 없어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다 채워주셨습니다.
좋은 건축위원장님을 세워주시고 좋은 장로님들 세워주시고 좋은 건축업자 만나게 해서 아무런 무리 없이 아무런 사고 없이 그것도 다 1년 안에 다 끝나요. 1년 안에. 1년 넘긴 적이 별로 없어요. 1년 안에 공사가 다 끝났어요.
그 큰 공사들이.
보통 어려운 교회들 보면 뭐 건축이 골조만 세워놓고 또 1년 벽 칠하고 또 1년 또 뭐하고 1년 돈이 없으니까. 그런데 한 번도 그런 것을 경험해 본적이 없어요.
정말 은혜죠. 제가 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도와주신 줄로 믿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저는 제 마음속에 단 한 가지 있어요.
학개서 1장 4절 말씀 한번 보실까요? 같이 읽죠. 시작.
4절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바벨론 포로이후에 돌아온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어요.
황폐되었어요.
그런데 예루살렘 성민들은 성전 건축은 할 생각은 안하고 자기 집들은 판벽한 집으로 화려하게 지었다는 거예요.
이건 말이 안 된다. 학개서의 고백입니다. 저에게는 그런 마음이 있어요.
우리는 비도 안 새는 집에 살면서 비새는 예배당을 방치해 두면 어떻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는가? 그 뒤로 내 마음이 뜨거워 지는 거예요.
그래서 건축하자. 그래서 건축을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한 대로 건축을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건축을 하고 나서 교회가 얼마나 복잡합니까?
교회가 분열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께서 부족한 저를 덮어주시고 지지해주셔서 여기가지 오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주 양평교회 창립 113주년 기념주일이어서 초청을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 지나간 목회자가 27명 정도가 있는데 그중 네 명이 생존해 있는 거예요.
제 앞에 앞에 계시던 원로 목사님이 생존해 계세요.
민영식 목사님이라고 평택에서 시무하시다가 은퇴하셨는데 훌륭한 목사님이세요.
제 후임으로 오신 목사님이 7년 동안 목회하고 강진에서 목회하고 계시고 지금 목회하시는 목사님까지 해서 10분씩 설교를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좀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여러분들이 이해하고 들으세요.
그 세 명의 목사님이 이야기가 이 양평교회가 지금의 양평교회가 된 것은 이영무 목사의 공이 크다. 여러분들이 믿든지 말든지 상관없어요.
그분들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제가 그 교회에 부임할 때에는 400명모이던 교회가 260여명이 모이고 있었고, 제가 떠날 때는 900여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건축도 하고. 그 때부터 교회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거예요.
지금은 1500여명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양평에 전철이 들어오고 뭐 아파트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서서 사람들이 매주 마다 10명 20명씩 오고 있다고 합니다.
목회를 잘하시기도 하시지만 양평지역이 발전하고 한번 토대를 갖추어 놓으니깐 소문이 잘나서 양평에 오면 양평장로교회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목사님들과 식사를 하고 돌아왔는데 그 민영식 목사님께서 메일을 보내주셨어요.
이런 내용입니다.
"이영무 목사님 감사합니다. 모처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 유익했고 즐거웠습니다. 이영무 목사님은 양평교회 100년 역사에 큰 획을 그으신 목회자이십니다.
앞으로도 큰 사역 잘 감당하시고 교단을 위해서도 큰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민영식 이렇게 보내셨습니다.
마지막 말은 무시하셔도 괜찮습니다.
그 목사님이 저보다 앞서 앞서 목회하신 한 10년을 목회하신 목사님이신데 이런 과한 표현을 해주셨습니다.
뭐 그것을 받을 공로가 아니죠 이는 하나님의 전적인 공로였습니다.
제가 양평교회 부임할 때 33살이었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 34살이었어요.
지금 교육전도사님들 중에 김경철 전도사님이 33살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하고 똑같은 나이었어요. 제가 그 나이에 무슨 목회를 했겠습니까?
어떻게 멋진 설교를 했겠습니까?
제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어마어마한 자리에 서있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꿈같은 일을 현실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막을 하나 같이 보겠습니다.
시편 126편 1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아멘
그렇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있다 그들이 돌아온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포로가 돌아옵니까?
그런데 오늘 시는 노래합니다.
마치 꿈꾸는 것 같았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너무 놀라운 일을 겪으면 "이게 꿈이야 생시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꿈같은 일도 이루십니다.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많이 경험합니다.
이 제단에 올라와서 우리 교인들이 무릎꿇고 기도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도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고 유대인 남자의 뜰, 여자의 뜰, 이방인의 뜰이 있고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강단에 올라와 십자가에 가까이 나아와서 기도하게 되면 지성소와 성소에 올라와 기도하는 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러한 절박함을 가지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올라와서 기도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박순애 전도사님이 와서 본인이 그렇게 기도했다고 하면서 앞에 나와 기도하자고 하니깐 여기 단번에 40~50명이 올라왔어요.
하나님의 방법은 아주 간단하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여러분들은 안 믿을 거예요.
그렇게 안 했을 거예요.
그런데 박순애 전도사가 이야기를 하니깐 단번에 되더라고요.
새벽에, 심야에 수십 명이 올라와 기도하는 것입니다.
양평교회에 가면 성가대석이 두 개입니다.
사실은 서다 보니 원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 하나를 밀고 무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니 제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장로님이 안 들어 그런데 이중표 목사님이 부흥회하시면 “왜 이걸 이렇게 섰냐고 이거 무대로 만들면 좋은데”라고 이야기하자 다음주에 단번에 바꿔 이게 제가 해도 안되고 하나님께서 이중표 목사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역사예요.
우리 힘으론 할 수 없는데...
저 죄송한 이야기 하나 할 테니까 이해하고 들으세요.
시험 들지 마시고.
제가 몇 년 전에 수련회에 갔다가 뭐가 찢어졌어요?
기억 못하시죠?
한 10년 전에, 바지가 찢어진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꿰매가지고 입고 왔던 기억이 제가 아직도 나는데, 옛날 건물에 있을 때예요. 10년 전이죠,
그러니까 아 근데 양평교회에 가려고 주일날 아침에 옷을 입으려고 깨끗한 양복을 입으려고 했더니 양복이 찢어져 있는 거예요.
뒤에가, 그러니까 찢어진 줄도 모르고 어제 하루 종일 입고 다닌 거예요.
내가 그걸, 어휴 안되겠다 해서 얼른 놓고 바꿔 입었어요.
여름 양복이 얇아요.
그리고 몇 번 세탁주고 하다 보면 얇아서 땀이 나니까 잘 찢어지더라고,
찢어지면 이게 수선이 안돼.
그냥 누비는 것 밖에 없더.
천 하나 대고 누벼야돼.
그래서 이제 몇 개를 누벼서 입고 다녀요.
그걸 또 버리기도 아깝고, 윗도리는 깨끗한데 밑에거 버릴 일이 없잖아요.
누가 또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그냥 누빈 것 사실 입었어요.
이렇게. 그래서 아침에 내가 식사하면서 집사람하고 “여름양복이 몇 개인데 그중에 벌써 세 개나 누벼가지고 이제 좀 바꿔야 되겠다. 근데 뭐 여름이야 그냥 지나고 가을되면 혹시 아들 결혼식 할 때나 한 벌 새로 사 입지.”이런 생각을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아 근데 놀라운 게 그날 저녁에 권사님 부부가 저를 찾아왔어요.
갑자기 만나겠다고.
왜 그러냐고 그러니까 자기가 늘 목사님 양복을 해드리고 싶은데 돈이 안 되 가지고 못했는데 돈이 오늘 생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목사님 만나러 왔다는 거예요.
내가 그걸 보고 소름이 끼쳤어요. 소름이.
내가 아침에 그 얘기 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이 권사님을 통해서 내 양복을 맞추라고 이렇게 가져오셨을까 정말 너무너무 기적 같은 일이예요.
아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시는구나. 우리가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안 해도 하나님이 때가 되면 다 사람들을 통해서 감동시켜서 이렇게 역사하시는구나.
이게 하나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꿈같은 일이죠.
“목사님 꿈같은 이야기 하고 있네. 저건 맞춰도 저렇게...”
아니 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적절 할 때에 정확하게 사람을 보내시고 필요한 물질을 주시고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주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바로 은혜입니다.
인간이 상상 할 수 없는 일들은 하나님은 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또 말씀드렸지만 교회건축 올해 헌금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우리 김옥기 사모님이 삼천만원 보내주시고, 아 두분 장로님이 또 생각지 못했던 돈이 생겼다고 또 삼천만원인가 헌금을 하시네, 얼마나 감사한지 그분들도 생각 못했던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필요할 때 생각나게 하시고, 또 생각나도록 감화 감동을 주시는 거예요.
아 놀랍구나.
교회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거구나.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다 은혜로 살아갔습니다.
다윗은 가장 작은 자였고 그의 환경이나 인맥이나 뭘 로 보면 이스라엘 왕이 될 사람이 아니 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을 들어서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혭니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왜?
자기의 가문으로 봐서는 왕이될 가문이 아닙니다. 그런 자리에 설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멋진 인맥을 쌓고 뭔가 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을 사귀고 뭐 이런 걸 열심히 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미련하거예요.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은혜 부을 자리에 서 계신 거예요.
비가 올 때 비를 맞으려면 마당에 나가 서 있어야지 우산 쓰고 있으면 비를 맞을 수가 있나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비올 때는 우산을 던져버리고 그냥 비를 맞으셔야 되요.
은혜 받을 자리에 여러분
우산을 치우세요.
그리고 비를 맞으세요.
은혜의 단비를 그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들어 쓰십니다.
이러 한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 날마다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