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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의 해석학적 렌즈로 본 잠언 12장 연구
김희석 박사(총신대 신학대학원의 구약신학교수)
I. 들어가는 말
본 연구의 목적은 잠언 12장의 히브리어 원문을 잠언의 해석학적 렌즈인 잠 1-9장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논문에 앞선 선행연구로 잠언 전체의 해석학적 틀을 제시했다. 잠언의 해석학적 서론인 1-9장을 연구하였고, 해석학적 결론인 30-31장의 기능에 대하여 살폈으며, 이러한 선행연구에서 얻어진 결론을 잠언 10장과 11장에 각각 적용한 바 있다. 잠언 1-9장은 여호와 경외의 인식론적 세계관을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특별히 잠 10:1-22:16 및 잠 25-29장에 수집되어 있는 개별잠언 모음집에 속한 개별잠언들을 해석하는 도구가 된다고 본다. 잠언 1-9장은 여호와 경외의 신앙적 태도를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부각시키는데, 아내와 음녀를 대조시킴으로써 지혜와 미련을 분별하게 하려 하며, 이 분별의 원리로 여호와 경외 사상이 주어진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잠언 4-7장의 흐름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내 곧 지혜여인을 선택하지 않고 음녀를 선택하게 될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고, 8장은 지혜여인의 1인칭 연설문을 통해 어떻게 음녀를 버리고 지혜를 선택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데, 그 지혜의 본질적 특성은 지혜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런 후 잠 9:10에 이르러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를 얻는 첫걸음’이라는 명제가 1-9장의 메시지를 완성하게 된다. 잠언 1-9장을 읽고 나면, 잠언의 본론부에 속하는 개별잠언을 해석하는 원리가 ‘지혜 자체를 찾기보다 여호와를 경외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개별잠언을 해석하는 것’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이런 1-9장의 해석학적 원리를 10:1-22:16 및 25-29장에 적용하는 데에는 일련의 작업과정이 필요하다.
본문을 읽어나가면서 1) 각 절의 해석, 2) 전후 문맥에 대한 고찰, 3) 잠언 1-9장의 주제, 어휘와의 연결성 고찰, 4) 1-9장이 가르치는 여호와 경외 원칙의 해석학적 적용 등이 차례대로 실천되어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최근 이런 해석의 과정을 잠언 10장 및 11장에 각각 적용시켜 연구한바 있다. 잠언 10장 및 11장은 기본적으로 신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잠언 1-9장에서는 지혜와 미련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배워야 하기에 지혜와 미련 혹은 아내와 음녀가 대조되어 등장하였는데, 10장 이후의 잠언 본론부에서는 지혜와 미련 자체를 주요한 대조개념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의인과 악인에 대한 대조를 우선시하여 가르친다.
왜냐하면 잠언의 본론부인 10장에 들어오게 되면, 더 이상 지혜를 가지라고 가르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지혜를 가진 자는 의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지혜를 선택하지 않은 자는 악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해석학적 흐름 가운데 의인과 악인, 지혜와 미련함의 관계가 어떻게 제시되고 있는지는 10장 이후의 각 장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이러한 해석학적 관점을 가지고 12장의 본문을 귀납적인 방식으로 연구할 것이다.
II. 잠언 12장 번역 및 해석
1. 히브리 원문 및 번역
히브리 원문에 대한 필자의 사역을 먼저 소개하고, 그 이후 본문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1 훈계를 사랑하는 자는 지식을 사랑하지만, 꾸짖음을 미워하는 사람은 짐승이다.
2 선한 자는 여호와께로부터 은총을 얻게 되지만, 꾀를 부리는 사람은 악한 삶을 살게 된다.
3 사람이 악으로 인하여 굳게 서지 못하게 되지만, 의인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4 현숙한 여인은 그녀의 남편의 면류관이지만, 수치를 끼치는 여인은 남편의 뼈에 썩는 것과 같다.
5의인의 생각은 공의이지만,악인의 꾸짖음은 속임수이다.
6 악인의 말은 피를 흘리기 위해 숨어기다리지만, 바른 자의 입술은 그를 구원한다.
7 악인이 엎드러짐은 그의 소멸이지만, 의인의 집은 일어서게 된다.
8 사람은 그의 지혜를 따라 칭찬을 받게 되지만, 마음이 굽어진 사람은 멸시를 당하게 된다.
9 무시를 당하지만 종을 거느린 사람이 스스로 높은 척 하면서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보다 낫다.
10 의인은 자기 육축의 생명에 대해 알고 있지만, 악인의 긍휼은 무자비함이다.
11 자기 땅을 경작하는 사람은 음식으로 만족하게 되지만, 헛된 것을 좇는 자는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12 악인은 악한 자들의 그물을 탐하지만, 의인의 뿌리는 열매를 맺는다.
13악한 덫은 입술의 죄에 있으나,의인은 재앙으로부터 벗어난다.
14 사람은 자기 입술의 열매로 인해 풍족하게 만족하게 되고, 자신의 손의 수고가 그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15 미련한 자의 길이 자기 눈에 올바르겠으나, 조언을 듣는 자가 지혜롭다.
16 미련한 자, 그의 분노는 즉시 알려지지만, 슬기로운 자는 수치를 덮어 둔다.
17 그는 진실을 내뱉고 의를 고하지만, 거짓 증인은 속임수를 내뱉고 고한다.
18 칼로 찌르는 것처럼 말하는 자가 있으나, 지혜자의 혀는 치유한다.
19 진실된 입술은 영원히 세워지겠으나, 거짓된 혀는 잠시 동안일 뿐이다.
20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수가 있으나, 평강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다.
21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주어지지 않겠으나, 악인은 악으로 가득하게 된다.
22거짓말하는 입술은 여호와께서 싫어하시나,진실을 행하는 자는 그의 기쁨이 된다.
23 슬기로운 사람은 지식을 감추어 두지만, 미련한 마음은 미련함을 외쳐댄다.
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다스리게 되지만,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게 된다.
25 사람의 마음에 근심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것을 없애도록 하고, 좋은 말로 그 근심을 기쁘게 하도록 해야 한다.
26 의인은 그 이웃을 인도하지만, 악인의 길은 자신을 방황하게 한다.
27 게으른 사람은 잡은 것도 내버려두지만, 사람의 귀한 부는 부지런함이다.
28 의인의 길에는 생명이 있으니, 길, 길에 죽음이 없게 된다.(계속)
2. 본문의 거시적 구조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잠언 12장의 구조는 아래와 같이 이해될 수 있다.
서론 (1-3절): 지혜, 여호와, 의로움의 3중 구조
본론 I (4-13절): 의로운 삶과 지혜로운 삶 I
본론 II (14-23절): 의로운 삶과 지혜로운 삶 II
본론 III (24-27절): 의로운 삶과 지혜로운 삶 III
결론 (28절): 의로운 삶의 길
12장의 구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징은 지혜의 주제와 의로움의 주제를 연결시키되,지혜로부터 출발하여 의로움으로 연결시킨다는 사실이다.이러한 점은12장을 시작하는 렌즈와도 같은1-3절에서 잘 드러나며,본론I (4-13절),본론II (14-23절),본론III (24-27절)에서 더 세밀하게 서술되고,결론(28절)에서 정리된다.본론I,본론II,본론III을 나누는 특별한 구조가12장 자체에서 발견되지는 않는다고 여겨지는데,그렇지만 각 본론이 가지고 있는 주요 주제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본론I은 지혜로운 여인으로부터 주제가 시작되어,여러 상황 속에서 의인과 악인의 대조를 설명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진전시키며,풍요함과 부족함이라는 일상의 주제와 연결시킨다.본론II를 시작하는14절은 반의평행법을 제시하지 않는데,이는12장의 맥락에서 매우 특별하게 생각이 된다.그러므로 우리는14절이12장의 흐름에 기여하는 바를 고려해야 하며,이 사실이14절부터 새로운 단락이 시작된다는 사실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본론 II 역시 의인과 악인의 주제를 지혜와 미련함의 대조와 연결시키며, 또한 언어생활이라는 일상의 주제에 적용한다. 본론 III은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대조시키는 구절들로 묶여 있으므로 독립된 하나의 문단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본론 III은 지혜와 미련의 주제는 드러내지 않고 의인의 주제만 드러내기에 독특한 해석의 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지혜와 연관된 지점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필자가 잠언10장 및11장의 선행연구에서 밝힌 바와 같이,의로움의 주제와 지혜의 주제를 연결시키는 흐름은 잠언 전체의 해석학적인 틀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잠언1-9장은‘지혜와 우매’를 대조시키면서,여호와를 경외함으로써 지혜를 얻고 우매를 거절해야 함을 가르쳐준다. 1-9장에서는 의로움과 악함의 대조는 가끔씩만 등장한다.이에 반해, 10-15장은 의로움과 악함의 대조를 매우 뚜렷하게 설정하고 있다.필자는 잠언1-9장이 제시하는‘지혜와 우매’의 대조가10장부터 등장하는‘의인과 악인’의 대조를 향한 해석학적인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12장의 본문을 살펴보면서, 과연 이러한 해석학적 연결고리들이 12장에도 등장하는지, 또한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과 어떠한 메시지로 그러한 연결점들이 형성되어 있는지를 연구해보도록 하자. 12장 본문의 내용들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문맥의 흐름이 있다면 함께 고찰하고, 주제 및 어휘가 잠언 1-9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경우 그 연결성도 동시에 통전적으로 고려하도록 할 것이다.
3. 본문 해석
1) 서론 (1-3절): 지혜, 여호와, 의로움의 3중 구조
1절은 훈계를 사랑하고 꾸짖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언급한다.특별히‘지식’이 언급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식’은 잠언1-9장에서 사실상 지혜의 유사어휘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즉1절은 지혜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지혜를 사랑하는 삶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절이 보여주는‘지혜의 필요성’은2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언급으로 이어진다. 2절 상반절은 선한 사람은 여호와께로부터 은총을 받는다고 언급한다.여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개별잠언들이 모인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매번 등장하지는 않기에,여호와에 대한 언급은 문맥의 흐름에 있어서 요긴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절 하반절에 나타나는‘야르쉬아’라는 단어는‘라샤’동사의 히필3인칭 형태이데,번역부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여호와를 주어로 해석하여‘그가 저주하신다’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꾀를 부리는 사람’을 주어로 하여‘그가 스스로의 삶을 악하게 만든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필자는 후자의 번역을 취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2절의 의미는 ‘선한 사람은 여호와께로부터 은총을 받지만, 꾀를 부리는 사람은 스스로 악한 삶에 이르게 되고 만다’로 이해되는 것이 유익하다. ‘저주’라는 의미보다 ‘악함’이라는 상태를 뜻하는 말로 번역하여, 3절에 나타나는 ‘악함’과의 연결고리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3절 상반절에는 ‘랴샤’의 명사형태인 ‘레샤’가 나타나는데, ‘사람이 악으로 인해 굳게 서지 못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2절 하반절과 연결해 보면, 꾀를 부리는 자는 결국 악한 삶에 정착하게 되고, 결국 그 악함
으로 인해 굳게 서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의 흐름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절 하반절에는‘의인’을 뜻하는‘짜디킴’이 등장한다.의인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고1-3절의 결론이 맺어지는 것이다. 1-3절의 흐름을 정리해보면, 1절은 지혜/지식의 삶이 꼭 필요함을 언급하고, 2절은 그러한 지식의 삶을 살 때 여호와로부터 은총을 얻게 되지만 사람의 꾀를 따르게 되면 악한 삶에 정착하게 될 뿐임을 말함으로써,그 악으로 인해 결국 든든히 서지 못하는 인생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3절 하반절은 사실상의 소결론이다. 여기서 ‘의인’이란 1절에서 말한대로 지혜를 사랑하여 추구하고, 2절이 말한대로 여호와께로부터 은총을 받아, 3절 하반절이 말하는대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1-3절은 우리가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여 여호와께 은총을 받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며, 그런 사람이 바로 ‘의인’인 것을 알려준다. 지혜로부터 출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의 삶에 이르게 되는 순서를 차근히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혜로부터 의로움에 이르게 되는’ 이러한 패턴이 12장에 어떻게 나타나게 될지 본문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본론 (4-13절): 의로운 삶과 지혜로운 삶
① 4절: 현숙한 여인
4절 상반절은‘현숙한 여인’을 언급한다. ‘현숙한 여인’으로 번역한 원문은‘에쉐트 하일’이다. ‘하일’은 힘,유능함,실력 등을 뜻하는 용어이다.즉4절 상반절은 실력있고 유능한 아내가 남편의 면류관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반면4절 하반절은 남편에게 부끄러움을 끼치는 여인이 남편의 뼈를 썩게 한다고 말한다.이렇게 보면4절 상반절과 하반절을 어떤 아내를 얻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아내’에 대한 내용이 잠언 전체에 전반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잠언 1-9장은 솔로몬이 아들에게 어떤 아내를 얻을지를 권고하는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지혜를 아내로 얻을 것인지 우매를 아내로 얻을 것인지’ 사이에 선택해야 함을 가르친다.
또한 ‘에쉐트 하일’이라는 용어는 잠언의 해석학적 결론부에 해당되는 잠언 31:10-31에서 ‘현숙한 여인’을 지칭하는데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잠 31:10). 그렇다면 12장의 흐름에서 4절은 단순히 어떤 아내를 얻을 것인지만을 말하고 있다기보다는, 좀 더 깊은 의미에서 ‘지혜를 얻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4절은 우리가 인생에서 어떤 아내를 선택할 것인지, 즉 잠언의 맥락에서 보자면 ‘어떤 삶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하여 질문하면서 지혜를 추구해 나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된다.
② 5-7절: 의로운 삶과 악한 삶의 대조
5-7절은‘의인과 악인’에 대한 대조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구절들이다. 5절은‘의인의 생각은 공의의지만 악인의 꾸짖음은 속임수라고 말하면서 의인과 악인의 삶을 대조하고 있다. 5절은12장에서‘악인’과‘의인’이 명시적으로 대조된 첫 구절이며,그 내용 역시 매우 명확하다.다만 의인에게 해당되는 공의와 악인이 추구하는 속임수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그 내용은6절과7절에서 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된다.
6절은 의인과 악인의 대조를‘언어생활’에 적용한다.악인의 말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기 위해 숨어 기다리는 것과 같아 사람을 해하지만,바른 자의 입술은 그를 구원한다는 것이다.여기서 구원을 받는 존재가 바른 자 자신인지 아니면 악인에게 피해를 당하게 된 사람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다만 의인의 언어는 사람을 건지고 악인의 언어는 사람을 해친다는 것만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6절은 의인과 악인의 대조가 아닌 바른 자와 악인의 대조를 사용한다.
이어지는 7절은 의인과 악인의 대조가 다시 드러내어, 그들의 삶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한다.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될 것이나, 의인은 그 후손까지 든든히 서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정리해보면, 5-7절은 의인과 악인의 대조를 보여주면서, 그 대조를 ‘언어생활’로 적용시켜서, 12장의 이어지는 본문에 계속하여 등장할 ‘언어생활’ 주제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4절에서 시작된 지혜에 대한 주제는 5-7절에서 의인과 악인의 대조, 특별히 언어생활에 대한 대조로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③ 8-11절: 풍족함과 부족함
8-11절은5-7절에 나타난 의로운 삶과 악한 삶에 대한 대조를 풍족함과 부족함의 대조로 발전시켜 나간다.이런 흐름 속에 지혜의 주제와 의로움의 주제가 함께 등장한다.먼저8절을 살펴보자. 8절 상반절은‘사람은 그의 지혜를 따라서 칭찬을 받게 된다’라고 말한다.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여기서 지혜로 번역되는 단어는‘세켈’로서, ‘지혜롭게 행하여 얻게 된 좋은 결과’를 의미한다.
즉 8절은 지혜를 얻게 된 삶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12장의 흐름에 있어서 새로운 맥락을 형성한다. 8절 하반절은 상반절과의 대조를 위해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당하게 된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여기서 우리는 ‘마음’을 뜻하는 ‘레브’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이 단어가 풍족함과 부족함의 주제로 11절까지 이어져 나가는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8절은 이렇듯 지혜의 주제를 제시한다.
이어지는9절은12장의 맥락에서 조금 독특한데,왜냐하면 상반절과 하반절의 대조를 위해 사용하는 반어법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반어법 대신‘∼보다∼가 좋다’라고 말하는 비교잠언(better-than saying)의 형식을 취한다. ‘무시를 당하지만 종을 거느린 사람이 스스로 높은 척 하면서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보다 낫다’라는 내용을 살펴보면,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모양새보다는 실제적인 삶에서 필요한 것을 소유한 것이 더 좋다는 의미인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먹을 것이 부족하다’라고 번역된 원문은 ‘하사르 라헴’인데, ‘하사르’는 ‘부족하다’라는 의미의 형용사이다. 9절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음식이 소중함을 말한다. 8절과 9절을 연결해보면, 우리의 삶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지 그 결과가 중요함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10절-11절로 이어지는 흐름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10절은 의로움과 악함의 주제를 다시 등장시킨다. ‘의인은 자기 육축의 생명에 대해 알고 있지만,악인의 긍휼은 무자비함이다’라는10절의 내용은 풍족함이나 부족함에 대한 주제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의로운 삶과 악한 삶에 대해서 언급함으로써, 11절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해주고 있다. 11절은8-10절의 흐름을 정리한다.먼저11절은10절을 내용적으로 이어받는다. 10절이 말한 육축에 대한 관심이 무엇인지11절에 드러나는 것이다.
11절은‘자기 땅을 경작하는 사람은 음식으로 만족하게 된다’라고 말한다.여기서 땅을 경작한다는 것은 단순한 농사작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함축적으로 가리킨다.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이다.이 구절에서‘음식’으로 번역한 단어는‘레헴’으로, 9절 하반절에 나왔던‘하사르-라헴’의‘라헴’과 같은 단어이다.즉9절 하반절은 먹을 것이 부족한 지혜없는 삶을 말했다면, 11절 상반절은 먹을 것이 풍족한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11절 하반절은‘헛된 것을 좇는 자는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제시하는데,여기서‘분별력이 부족하다’라고 번역된 어구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이 표현의 원문은‘하사르 레브’로서,직역하면‘마음이 부족한 자’이다. ‘부족하다’라는‘하사르’는9절 하반절의‘먹을 것이 부족함’에서‘부족하다’는 의미로 나왔던 단어이며, ‘분별력’으로 번역한‘레브’는8절의‘마음이 굽은 자’에서‘마음’으로 번역되었던 단어이다.
특별히, 이 ‘하사르 레브’는 잠언 1-9장에서 음녀의 유혹에 넘어갔던 젊은 청년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던 표현이며(잠 6:32; 7:7; 9:4, 16), 따라서 지혜와 대조되는 미련함을 가리키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11절은 상반절의 풍족함과 하반절의 부족함을 대조시키면서, 결국 이 풍족과 부족이 지혜와 미련함의 결과임을 사실상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8-11절은 지혜와 의로움의 주제를 함께 사용하면서, 지혜로운 삶은 곧 의로운 삶으로 이어지게 되며, 이러한 삶은 풍족함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참 풍족함이란, 9절 하반절과 11절 상반절에 의하면 먹을 것에 대한 풍족함이지만, 이 흐름의 결론부인 11절 하반절에 의하면 진정한 풍족함은 ‘마음이 부족하지 않아야 함’ 곧 ‘마음의 풍족함’임을 알게 된다. 지혜를 얻으면 의로움에 이르게 되고, 그것은 진정한 삶의 풍족함의 결과들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처럼 8-11절은 지혜의 주제와 의로움의 주제를 동시에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다.
④ 12-13절: 의로운 삶과 악한 삶
12-13절은4절 이후의 흐름을 마무리하는데, ‘의로움’의 주제를 사용하여 의로운 삶과 악한 삶을 선명하게 대조시킨다. 12절은‘악인은 악한 자들의 그물을 탐하지만,의인의 뿌리는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한다.상반절은 악인이 악한 자들의 그물을 탐한다고 말하면서 결국 악인은 아무 것도 진정으로 얻게 되지 못함을 설명한다. 12절 하반절은 의인의 뿌리에 대해서 언급하는데,이‘의인의 뿌리’의 원문인‘쉐레쉬 짜디킴’은12장의 서론의 결론부인3절 하반절에 나왔던 표현이다.
3절에서는‘의인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12절 하반절에서는‘의인의 뿌리는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한다.즉12절은 의인과 악인의 삶의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앞선8-11절이 지혜/의로움과 미련/악함의 결과에 대해서 말한 것과 동일한 논의를12-13절이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13절 역시 의로움과 악함을 대조시킨다. 13절 상반절은‘악한 덫은 입술의 죄에 있다’라고 말하여‘언어생활’에 대한 주제를 언급한다.
이 언어생활에 대한 주제는 6절 및 13절에서 언급되어 다음 문단인 본론 II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게 된다. 즉 13절 상반절은 다음 문단을 위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13절 하반절은 본론 I을 총체적으로 요약하기 위해 ‘의인은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게 됨’을 말한다. 의로운 삶의 결과는 재앙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즉 잘못됨이나 해악 등의 결과가 아닌 좋은 결실을 얻게 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12-13절은 본론 I의 결론부로서 의로운 삶과 악한 삶을 대조시키면서, 그 삶의 결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⑤ 소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본론I은 지혜의 주제를 나타나는 현숙한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하여(4절),의로움과 악함의 주제(5-7절),풍족함과 부족함의 주제(8-11절)를 거쳐,의로움과 악함의 대조(12-13절)로 종결된다.우리는 여기서 네 가지 함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첫째,본문의 흐름 안에는 지혜의 주제와 의로움의 주제가 함께 연결되어 있다.지혜(4절)-의로움(5-7절)-풍족함(8-11절)-의로움(12-13절)의 흐름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둘째,풍족함과 부족함을 다루는8-11절에는 지혜와 의로움의 주제가 함께 통전적으로 어우러져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이러한 사실은 지혜와 의로움이 함께 연결되어 통전적으로 이해되어야 함을,다시 말해 지혜의 삶이 의로운 삶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참된 풍족함이란 단순한 삶의 물질적 모습 정도가 아니라, 지혜로부터 발생하게 되는 삶 전체의 풍족함임을 기억해야 한다. 넷째, 본론 I에는 이런 흐름 가운데 ‘언어생활’에 대한 언급들이 등장하였다. 6절에 악인과 바른 자의 언어생활에 대한 대조가 나타났고, 13절 상반절에는 악한 덫은 입술의 죄에 그 본질이 있음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언어생활에 대한 주제는 본론 II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3) 본론 II (14-23절): 의로운 삶과 지혜로운 삶 II
① 14절: 참된 만족함과 언어생활
14절의 내용은‘사람은 자기 입술의 열매로 인해 풍족하게 만족하게 되고,자신의 손의 수고가 그에게로 돌아가게 된다’이다.상반절은 바른 언어생활로 인해서 풍족함이 오게 된다고 말하여,앞선 본론I에 나타난 만족함 및 언어생활의 주제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본론I과 본론II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하반절은 자신이 일한 것을 그대로 받게 된다고 말하여 상반절의 내용을 보다 넓게 일반화한다. 14절은12장의 흐름에서 매우 특별한데,상반절과 하반절이 대조되지 않기 때문이다.
12장에서 반어법의 흐름이 끊기는 두 번째 경우이다(9절, 14절). 9절의 경우는 비교 잠언으로, 반어적 대조는 아닐지라도 상반절과 하반절이 비교되어 사실상 대조되었다. 하지만 14절은 상반절과 하반절이 사실상 같은 것을 말하는 유사평행법을 사용하여 대조적인 형태를 전혀 드러내지 않기에 12장의 흐름에서 매우 특별하다. 14절은 언어생활 및 손의 수고라는 주제를 통해서, 자신이 선택한 삶의 모습이 자신의 삶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15절 이후에는 지혜의 주제 및 언어생활의 주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에 앞서 14절은 ‘바른 선택이 바른 결과를 낳는다’라는 점을 강조하여 15절 이하의 본문 해석을 위한 기초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② 15-19절: 지혜로움과 언어생활
15-19절은 잠언12장에서 지혜의 주제가 가장 강조되고 있는 부분이다.그 첫부분인15절과16절은 미련함과 지혜를 직접적으로 대조시킨다.먼저15절은 지혜로움과 미련함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제시하는데, ‘미련한 자의 길이 자기 눈에 올바르겠으나,조언을 듣는 자가 지혜롭다’라는 내용이다.지혜자는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잠언1-9장의 해석학적 함의의 관점에서 보자면,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여호와 경외를 자신의 삶의 선택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조언을 듣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15절이 잠언 12장에서 가지는 흐름의 함의는 무엇인가?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16절을 계속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6절은 지혜로움과 미련함의 주제를 분노/수치를 드러내느냐 숨기느냐의 문제로 구체화한다. 미련한 자는 분노를 드러내지만, 슬기로운 자는 수치를 숨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드러내고 숨기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실천되는가? 필자는 그 부분이 17절로 연결되어 설명된다고 본다.
17절 상반절은‘그는 진실을 내뱉고 의를 고한다’라고 설명한다.사실17절 상반절은 주어를 특정화하지 않고 있어서 누가 동사의 주어인지 알기 어렵다. ‘진실을 내뱉는 자는 의를 고한다’라고 번역할 수는 있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본문의 두 동사가 모두 미완료형이라는 사실로 판단해보면,오히려17절 상반절의 주어는16절 하반절의 주어인‘슬기로운 자’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즉 슬기운 자는 수치를 숨기고,진실과 의로움을 내뱉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게 되면, 15절부터 시작된 지혜로움과 미련함의 주제는 17절에 이르러서 ‘언어생활’의 주제로 이어지게 된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17절 하반절이 ‘거짓 증인은 속임수를 내뱉고 고한다’로 번역된다는 점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지혜로운 자는 조언을 들으며, 수치를 숨기고, 진실과 의를 말한는 것이다. 여기서 17절에 ‘의로움’이 언급되었음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15-19절은 의로움/악함의 주제는 17절 상반절에 한번 언급이 되는데, 바로 ‘의로운 말’인 것이다.
18-19절은 17절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언어생활에 대한 주제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간다. 18절은 ‘칼로 찌르는 것처럼 말하는 자가 있으나, 지혜자의 혀는 치유한다’라고 말함으로써, 언어생활을 어떻게 하느냐가 곧 지혜로움과 미련함이 일상생활에 투영되는 결과임을 설명한다. 지혜자의 혀는 진실과 의로움을 말하기에, 사람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19절은 ‘진실된 입술은 영원히 세워지겠으나, 거짓된 혀는 잠시 동안일 뿐’임을 제시한다. 19절 자체에는 의로움/악함의 주제나 지혜/미련함의 주제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17-18절로 이어져온 흐름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말하는 진실된 입술이란 지혜자의 입술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③ 20-22절: 의로움과 언어생활
20-21절에서는 지혜로움/미련함의 주제 대신 의로움/악함의 주제가 다시 부각된다. 20절은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수가 있으나, 평강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다’라고 말한다. 15-19절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언어생활에 대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절에서 ‘속임수’라고 번역된 ‘미르마’가 17절에서 ‘거짓된 증인은 속임수를 내뱉고 고한다’라고 할 때 언급되었던 동일한 단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20절 역시 언어생활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악을 꾀하는 것과 평강을 의논하는 것 역시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21절은‘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주어지지 않겠으나,악인은 악으로 가득하게 된다’라고 말하면서 의로운 삶과 악한 삶의 결과가 어떠하게 될 것인지 결과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이렇게 결과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것은 우리가 본론I에서 자주 지켜보았는데,본론II에 다시금 등장한다.그렇다면,이러한 의로운 삶과 악한 삶의 결과는 무엇일까?특별히 언어생활에 드러나는 의로움과 악함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가?그 내용이22-23절에 소개된다.
22절은‘거짓말하는 입술은 여호와께서 싫어하시나,신실함을 행하는 자는 그의 기쁨이 된다’라고 말하면서 언어생활의 주제를 이어나간다.우리가22절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여호와’가 언급된다는 점이다. 12장에서‘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는 두 번째 용례이다.
첫 번째 언급은 서론(1-3절)인2절에 나타났었고, 22절에서 두 번째 언급이 나오는 것이다.거짓된 언어생활이 여호와께서 싫어하시는 바가 된다는 것이며,신실함을 행하는 자는 그의 기쁨이 된다는 것이다.여기서‘신실함’으로 번역된 단어는‘에무나’로서, 17절에서‘진실을 내뱉고’에서‘진실’로 번역된 원어이다.
즉22절 하반절에서 신실함을 행한다는 것은 신실함으로 행한다는 것이며 다시 말해 자신이 말한 것을 행함으로 옮기는 것 즉 언어생활의 신실한 실천을 뜻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22절은 언어생활의 주제 가운데 여호와를 언급하면서 본론II의 논의를 사실상의 절정으로 이끌고 있다.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판단하실 것이다.그분 앞에 의로움과 악함이 언어생활의 측면에서 다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④ 23절: 지혜의 소중함
23절은 본론II를 마무리하는 구절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지식을 감추어 두지만,미련한 마음은 미련함을 외쳐댄다’라는 내용인데,사실 지금까지의‘언어생활’에 대한 주제와는 사뭇 다르다.지혜로운 자는 진실과 의를 말하여 여호와의 은총을 얻고,미련한 자는 분노와 거짓을 말하여 여호와의 싫어하심을 받게 된다.
그런데22절은 지혜의 주제로 복귀하여,참된 지혜가‘감추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한다.슬기로운 사람이 지식을 감춘다는 것은 지식 곧 지혜를 모른척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즉,여기서‘감춘다’라는 말은 숨긴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소중히 간직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23절은 지혜자는 자신의 지혜를 감추는 것처럼 소중히 간직하지만 미련한 자는 그의 미련함을 마구 드러낸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지혜자가 가진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설명하려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23절은 본론 II의 마지막 지점에서 지혜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⑤ 소결론
본론II (14-23절)은 본론I처럼 지혜로움과 의로움을 연결시켜서 다룬다.본론I이 지혜와 의로움을 연결시켜 만족함/풍족함이라는 삶의 주제로 풀어냈다면,본론II는 지혜와 의로움을 연결시켜서 언어생활이라는 삶의 주제로 풀어내었다.
먼저14절은 언어생활의 주제를 도입하면서 본론I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고, 15-19절은 지혜로움의 주제를 언어생활 측면에서 풀어내었고, 20-22절은 의로움의 주제를 언어생활 측면에 적용시켰다. 23절은 이러한 언어생활 측면이 언어생활 자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지혜의 소중함을 아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본론II역시 지혜의 주제가 의로움의 주제로 연결되어 일상생활의 모습 속에 투영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
4) 본론 III (24-27절): 의로운 삶과 지혜로운 삶 III
본론 III(24-27절)은 본론 I(4-13절) 및 본론 II(14-23절)보다 적은 분량인 네 절로 이루어져 있다. 본론 I이 풍족함/부족함이라는 주제를 다루었고 본론 II가 언어생활의 주제를 다루었다면, 본론 III는 부지런함/게으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24절 상반절과 27절 하반절에 부지런함의 주제가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24절 하반절과 27절 상반절에 게으름의 주제가 언급된다.
① 24-27절
24절은‘부지런한 자의 손은 다스리게 되지만,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게 된다’라는 내용을 통해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대조시킨다. 24절의 전후 문맥에서 지혜로움/미련함이나 의로움/악함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지는 않지만,부지런함과 게으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25절은‘사람의 마음에 근심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것을 없애도록 하고,좋은 말로 그 근심을 기쁘게 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본론II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던 언어생활의 주제와 연결이 되기는 하지만,언어생활 자체가25절의 핵심은 아니고,오히려 마음의 근심을 잘 다루고 돌보아야 한다는 데 핵심이 있다.
24절과 25절을 연결해서 생각해 본다면, 마음의 근심을 잘 다루면 부지런한 자가 될 수 있고, 마음의 근심을 잘 다루지 못하면 게으른 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26절은‘의인은 그 이웃을 인도하지만,악인의 길은 자신을 방황하게 한다’라고 말한다.여기서 우리는26절이 의로움과 악함의 주제를 언급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그동안 잠언12장 전체의 흐름 가운데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며 살펴온 의로움이나 지혜로움의 주제가 본론III에서 처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여기서 의인/악인은 어떤 자들인 것일까?
24-25절과 연결을 시켜보면, 26절이 말하는 의인은 자신의 마음을 잘 돌보아서 부지런하여 다른 이들을 다스리게 된 자들이며,그 다스림을 통해서 이웃을 바른 길로 인도하게 된 자들일 것이다. 26절이 말하는 악인이란 자신의 마음의 근심을 돌보지 못하여 게을러짐으로써 다른 이들을 이끌기는커녕 자신조차 멸망의 길로 가게 된 자들일 것이다.
27절은 이 모든 내용들을 요약하면서 24절이 명시적으로 언급했던 부지런함/게으름의 주제를 다시 명확하게 드러낸다. ‘게으른 사람은 잡은 것도 내버려두지만, 사람의 귀한 부는 부지런함이다’라고 말하면서, 부지런함 자체가 귀한 부이며, 게으름은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게 될 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② 소결론
본론 III는 부지런함/게으름의 주제로 시작하고(24절) 마친다(27절). 지혜로움/미련함의 주제가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의로움/악함의 주제는 명확하게 26절에 언급되어 있다. 25절 하반절에는 언어생활의 주제가 간단하게나마 다루어진다. 그렇다면, 왜 본론 III는 지혜로움/미련함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 것일까? 이 문제는 12장 전체의 결론인 28절과 연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5) 결론 (28절): 의로운 삶의 길
이제 우리는 12장 전체의 결론이며 12장의 마지막 구절인 28절에 이르렀다. 28절의 원문을 번역하면 ‘의인의 길에는 생명이 있으니, 길, 길에 죽음이 없게 된다’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28절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28절은 반의평행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12장에서 반의평행법을 사용하지 않는 구절은 오직 세 개뿐인데(9절, 14절, 28절), 9절은 비교잠언으로서 사실상 상반절과 하반절을 대조하고 있으므로,사실상 상반절과 하반절이 대조되지 않는 것은14절과28절이다.
28절의 경우, 상반절은 의인의 길에는 생명이 있음을 말하고, 하반절에는 그 길에 죽음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데, 생명과 죽음이 대조가 되기는 하지만 상반절의 의미와 하반절의 의미가 대조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대조가 아닌 강조를 위한 배열로 보는 것이 좋겠다. 즉 28절은 의로움의 주제를 한껏 강조하면서 12장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며, 지혜/미련함의 주제는 다루고 있지 않다.
둘째, 그런데 이러한 의로움의 주제를 근접 문맥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28절의 상반절에 나오는 ‘의인’은 26절의 ‘의인’의 주제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본론 III이 지혜로움/미련함의 주제를 다루지 않았는데, 결론부인 28절에서도 의인의 주제만 다루고 지혜로움/미련함의 주제는 다루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28절을 조금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28절은 의인/악인의 주제를 ‘길 이미지’와 연결시킨다. 의인의 길은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길 이미지’는 잠언 1-9장에서 매우 상세하게 사용되었던 주제이다. 잠언 4장에서 지혜의 길과 악인의 길의 대조가 나타났으며(잠 4:10-19), 지혜의 길에서 벗어날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였다(잠 4:20-27).
또한 이러한 지혜의 길과 음녀의 길은 각각 생명과 죽음으로 연결하는 길이라는 사실이 강조되어 설명되었다.지혜는 생명나무요(잠3:18),지혜를 찾은 자는 생명을 찾은 것이며(잠8:35),지혜를 만나면 생명을 얻게 된다(잠9:6).
반면,음녀의 유혹을 받아들이거나 미련함을 선택하게 되면 죽음으로 나아가게 된다(잠5:5, 23; 7:27, 9:18등).다시 말해, 12장의 결론인28절이 생명과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잠언1-9장의 해석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곧 지혜와 미련함을 언급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즉28절은 의인의 길을 생명의 길인‘지혜’와 연결시키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지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오히려 지혜를 얻은 결과를 뜻하는‘생명’을 상반절에 언급하고 지혜를 얻지 못한 결과인‘죽음’을 하반절에 언급함으로써,지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비유적이고 함축적인 방식으로‘지혜로운 삶’의 중요성을 강조해 낸 것이다.
그렇다면, 28절은 매우 특별하고도 강력한 시적인 함축성을 동원한 방식으로 지혜로움의 주제와 의로움의 주제를 연결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잠언 1-9장이 지혜와 미련함을 대조시키기 위해 생명과 죽음의 대조를 사용한 것과 동일하게 12장은 의로운 삶을 강조하기 위해 생명의 주제를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잠언 12장의 결론인 28절이 지혜를 선택한 자가 의인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해석학적 함의를 얻을 수 있다.
III. 잠언의 해석학적 렌즈로 본 12장 분석의 함의
우리는 이제 위에서 연구한 내용을 종합하여12장의 특성을 고찰한 후,그 특성을 잠언서 전체의 해석학적 렌즈라는 관점에 적용해보려 한다.
먼저 12장의 특성을 고찰해 보자.
첫째, 12장은 한 개의 서론, 세 개의 본론, 한 개의 결론으로 분석된다.서론(1-3절)은 지혜-여호와-의로움의 흐름으로 패턴을 보여주면서,지혜/미련함의 주제로 의로움/악함을 해석해야 함을 알려 준다.본론I(4-13절)은 지혜로운 여인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여,의로운 삶과 악한 삶을 대조시키는데,그 삶의 결과로서 풍족함과 부족함이 도래하게 됨을 말했다.
결국 지혜로운 삶을 살아 의인이 되어 풍족한 삶을 살아야함을 보여준 것이다.이는 잠언의 해석학적 결론부인 잠31:10-31의‘현숙한 여인’이 자신의 남편의 삶에 많은 축복을 가져다 주었음과 동일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론II(14-23절)은 의로운 삶의 주제를 언어생활에 적용하였다.본론I보다 더 구체적인 삶의 모습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먼저는 지혜로움을 언어생활에 적용하고(15-19절),그 후에 의로움을 언어생활에 적용하고(20-22절), 23절에서는 지혜의 소중함을 강하게 제시하였다.
본론 III (24-27절)은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대조하였는데, 지혜의 주제는 직접적으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의 주제는 12장의 결론인 28절에서 다시 드러나게 된다. 28절은 의로운 삶을 강조하는데, 잠언 1-9장의 중요한 메타포인 생명과 죽음의 대조를 사용함을 통해서 지혜로움의 주제를 사실상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전체적 흐름은 지혜로움이 의로움으로 어어진다는 서론(1-3절)의 패턴이 잠언 12장 전체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론 I에서는 지혜가 의로움으로 연결된 삶의 결과가 풍족함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본론 II에서는 그러한 지혜로운 삶이 언어생활에서 의로운 삶으로 드러나야 함을 역설하고, 본론 III에서는 그러한 지혜로운 삶은 더 이상 지혜로운 삶을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분명하게 의로운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부지런함의 주제를 통해서 표현하였다. 결론은 이 모든 사실을 ‘의로움’의 삶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잠언12장의 흐름을 앞선11장의 내용과 연결해보도록 하자.필자는 잠언11장이“잠언1-9장의 지혜/어리석음의 대조를 의로움과 지혜의 대조로 전환시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32특별히 잠11:29-31에서“지혜/어리석음의 대조가 의로움과 악함의 대조로 전환된다”고 주장하였다.
잠언1-9장은 독자들에게‘지혜자가 되라’라고 가르치는데 반해, 10장 이후의 본문들은1-9장을 통해 지혜자가 된 독자들에게‘이제 의인으로 살라’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일상생활의 삶을 통해 이제는 자신이‘의인’인 것을 드러내야 한다. ‘지혜’가 해석학적 렌즈이며 세계관이라면, ‘의로움’이란 해석학적 렌즈인 지혜를 가진 사람이 맺게 되는 일상생활의 열매인 것이다.필자의 선행연구인10장과11장이 이러한 점들을 보여주었다.
본 논문에서 연구한 잠언12장도10장과11장과 유사한 흐름을 보여준다. 지혜를 가진 사람은 의로운 삶이 열매를 드러내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다만12장은 지혜로운 삶과 의로운 삶의 여러 가지 연결고리들을 앞선 장들보다 더 구체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본론I에서의 풍족함의 주제,본론II에서의 언어생활의 주제,본론III에서의 부지런함 등의 주제를 통해 지혜자의 삶은 지혜의 결국인 의로운 삶으로 드러나 풍족함은 누리고 바른 언어생활을 하며 부지런한 삶의 열매를 결실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12장의 결론인 28절을 통하여, 이러한 의인의 길은 생명으로 연결되며 곧 이러한 삶이 지혜의 삶임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지혜는 의로움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의로움은 지혜로움의 진정성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는 지혜의 렌즈를 통해 의로움에 이르게 된다. 잠언 10-15장에 의로움과 악함을 대조시키는 개별잠언들이 집중적으로 수집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하며, 우리는 남은 13-15장의 본문 연구를 통해 이러한 지혜와 의로움과의 관계를 더 탐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