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목이 말랐다. 답답한 날들은 2년이나 이어졌다. 어린 양은 집 안에 갇힌 채 바깥으로 나오지를 못했다. 풀밭을 뛰어다닌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제 자식인 아기를 죽이고, 모녀를 살해하는 사건, 생각이 다르다고 틀리다며 서로 헐뜯는 일들, 가슴을 옥죄는 엄청난 뉴스들이 넘쳐난다.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올해 들어 두어달 사이에 고교와 대학, 대학원 동창 친구들을 여섯이나 천국으로 보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니 눈물만 인다. 나이를 탓하랴, 시국을 한탄하랴, 코로나를 원망하랴. 슬픔 뒤에 밀려오는 파도는 불안초조 공포감이다.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혹여 나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메마른 가슴을 적셔줄 샘물이 그리웠다. 마침 고 김재우 친구가 평신도사도직회 회장을 할 정도로 열심히 다니던 성당은 대구 계산성당으로, 대구교구의 주교님이 계시는 주교좌성당이었다. 그 친구 장례미사에 친구들이 함께 한다는 소식에 나는 대구로 가지 못해 미안함이 컸다. 그를 위한 기도의 장소로 절두산, 삼성산 성지를 찾았다.
두해 전 가을부터 친구와 함께 지방의 성지들을 대절버스편으로 합동 순례를 다녔었다. 올해 1월 천진암, 양근, 구산 성지를 끝으로 코로나는 순례를 끊어놓고 말았다. 4월 4일 부활절 전후로 나홀로 순례길에 들어섰다. 서울의 명동주교좌 성당을 시작으로 25곳의 순교자의 묘와 터, 유해가 있는 성당, 성지를 걸어서 순례했다.
김재우의 천국가는 길 기도를 위해 합정역 부근의 절두산 순교성지와 관악산 자락의 삼성산 순교성지에서 두손을 모았다. 아프게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 코로나로 인해 고통과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정치색깔로 분열이 심한 시국, 정신적으로 심한 충격에 싸여 힘든 삶을 살고있는 나의 아들을 위해 촛불을 밝혔다.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흐르는 가운데 기도를 이어갔다. 성지와 성당의 동산마다 펼쳐진 예수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기도로 마음을 다했다. 김재우의 영혼과 가톨릭신자가 아닌 친구들을 위해서도 묵주의 기도를 드렸다. 서울대교구의 성지 순례를 마치고, 의정부교구의 순례도 어제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 김포성당, 행주성당을 끝으로 완료했다.
지금 창 밖으로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아픔과 슬픔에 젖어만 있다가 걷고 운전하며, 순교자들의 성지를 찾아 기도하는 마음에 촉촉하게 비가 내린다. 체한 듯 막혔던 가슴이 뚫리기 시작한다. 코로나 비대면 속에 혼자 떠나는 순례의 길은 다음 인천교구의 성지를 향할 것이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굳은 믿음으로 순례 길을 이어주시는 그분께 더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