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41] 김기영 (金基榮) - 나의 삶을 돌아보며 8. 졸업과 36가정 축복의 은사 - 1 1 1961년 2월 22일 이화여자대학 졸업식이 있었다. 선배인 명원회원들은 이화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1961년도 졸업생인 우리들은 한 학기를 남겨놓고 있었기 때문에 총동원 시기였지만 아버님께서 졸업을 허락해 주셨다.
2 그 졸업식에 아버님께서 여러 식구들과 함께 오셔서 사진도 찍으시고 축하해 주셨는데 졸업생은 나와 윤정은(36가정), 윤정혜(윤정은의 동생), 최영자(36가정), 장원순(36가정), 선우정숙(36가정), 우정순(72가정)의 7명이었다.
3 심정 좋고 활동적이던 같은 과 친구 전선자(72가정)는 개인 사정상 휴학하고 임지 발령을 받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4 다음날 아버님께 인사드리러 갔는데 “이놈의 대학생들은 콧대가 높아서 안돼. 발길로 뻥뻥 차서 아프리카에 보내야 돼. 그러더라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돼.” 하시면서 우리를 긴장하게 하셨다.
5 무슨 뜻인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어느 날 우리들에게 순회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졸업을 허락받은 우리는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6 순회를 떠나기 위해 집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그동안의 모든 활동은 재학 중이었기 때문에 학교 행사라는 이유로 무마가 되었으나 이제는 졸업을 하였으니 핑곗거리가 없었다. 7 학교에서는 학과장 교수님이 진학을 하겠느냐, 취직을 하겠느냐, 결혼을 하겠느냐고 여러 번 물었다. 모 고등학교의 교사로 추천을 해 주고 싶어서 물은 것이었는데 무조건 다 안 한다고만 했다.
8 고등학교 은사이시기도 했던 그 교수님은 내가 입교할 당시에 통일교인이 된 것을 알면서도 퇴학당하지 않게 하려고 학교에 보고하지 않으셨고 졸업 후 교사 추천까지 신경을 써 주셨는데 나는 모두 거부했던 것이다. 9 나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아버지를 만났다. 방학 때마다 특별활동으로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활동을 해 보았으나 열악한 학교가 많았기 때문에 보람된 일을 해보려 한다고 말씀드리며, 나와 함께 졸업한 친구 최영자와 장원순도 같이 가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였다.
10 사업상 바쁘셨던 아버지는 나중에 보자고 하시며 외출하셨는데 그 틈에 어머니에게 잘 말씀드려 달라고 하며 집을 나왔다. 11 교회에 짐을 가져다 놓고 다음날 아버님께 “집을 나왔습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