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만납시다』(작사 전 우, 작곡 박춘석)는 1964년 인기 절정
이던 가수 「금호동」의 히트곡이자 그를 대표하는 곡입니다.(중간의
백 코러스는 '쟈니 브라더스'가 담당했습니다)
「금호동」(본명 서문석, 1936년생)은 1963년 혜성처럼 나타나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던 가수로 일본에서 태어나 전남 광주에서
성장하였으며, 어려서 상경하여 구두점에서 일하던 시절 작곡가
'박춘석(1930~2010)'의 눈에 띄어 19살의 어린 나이(1957년)에
데뷔를 하지만 군악대 생활을 끝내고 제대후, "고향 하늘은 멀어도"
라는 곡으로 재 데뷔를 하는데, 당시 미성 (美聲)에 미남인 「금호동」은
13주간 1위를 하며 수직 상승하게 됩니다.
당시로서는 젊은 미 청년의 등장으로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가요계에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기 절정 이던 1965년
돌연 은퇴 성명을 내는데, 이유는 "극성 여성 팬들의 등살과 이를
제지하려는 남편들이 깡패를 고용한 테러 위협으로 가요계에 환멸을
느껴 은퇴를 결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작곡가 '박춘석'의 동성애(同性愛) 때문이라는
당시로서는 놀랄만한 「금호동」의 폭로가 있있고,(사실 '박춘석'은
여성 가수 '백일희'를 무척 사모하여 '백일희'가 미국으로 떠난 뒤로
실망하여 독신을 고집했었다) '박춘석'은 급속 성장한 「금호동」이
년 말 10대 인기 가수에 선발되지 않은데 실망하고 은퇴를 거론하여
다툼이 있었다는 진술을 하였습니다. 결국 연예 협회는 조사하여
음주 중에 언쟁 끝에 '박춘석'이 「금호동」을 구타하여 얼굴에 상처를
낸 것으로 결론 냈습니다.
「금호동」은 가요계에서 제적 처분되었고 '박춘석'은 근신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금호동」은 다음 해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을
하다가 1967년에는 다시 앨범을 내는 등 재기하려 노력 했으나,
그 후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1972년에는 가수 협회 회장 선거에도
출마하여 아깝게 선출되지 못하자 가수 생활을 청산 하고 이후
농장 경영, 부동산업, 요식업 등을 했다고 합니다.
『내일 또 만납시다』는 당시에도 퇴근 무렵 거리의 '전파상' 마다
틀어 주던 단골 노래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
하루의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거리엔 사람의 물결 하늘
별이 하나 둘 반짝이면
가로등 하나 둘 꽃 피네
허공을 스치는 바람은 차고
흐뭇한 마음은 에드밸룬
가벼운 발길 헤어질 때
인사는 내일 또 다시 만납시다
허공을 스치는 바람은 차고
흐믓한 마음은 에드밸룬
가벼운 발길 헤어질 때 인사는
내일 또 다시 만납시다
내일 또 다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