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첫 시집 ‘황토(1970)’를 보면 그가 시적 관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고된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궁핍한 농민들의 삶이거나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빈민층의 노동자 삶이다. 그는 이들의 삶을 통해서 현실의 모순을 그린다. 모순을 빚어내는 거대한 권력의 실체를 파헤치려 했다.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시 ‘오적’을 보자.
산업화 과정을 겪는 한국 사회의 계층 간의 갈등과 반목 속에서 거대한 권력의 비호 아래에 급성장한 일부 재벌의 횡포를 나무랐다. 갈등과 반목은 부당하게 재벌이 된 자들이 횡포를 부리므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작품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대상자들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 관료, 장성 등이다. 김지하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 상류층의 무능과 부정부채, 물질 만능주의의 태도와 호화 사치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부조리를 척결할 수 있는 방편은 민중들의 끈질긴 생명력이라고 하였다.
‘오적’은 시 형식에서도 파격적이다. 전통적인 운문 양식인 가사, 타령, 판소리 사설 등을 변용함으로써 새롭고 파격적인 장시(長詩)를 시도하였다. 이 시에는 시적 긴장이나 정서의 절제를 찾아보기 어렵다. 첫 줄부터 끝까지 풍자적이다. 그의 풍자는 운문 양식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경지를 시험한 것이다. 시를 보자.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 이래 으듬
으뜸 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겟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재 비록 도둑이라고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적이 났거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니
요순시절에도 사흉은 있었으나
아마도 성군 양상인들 세 살 버릇 도벽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 복판에 다섯 도적이 모여 살았것다
남녘은 똥 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 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 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 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개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악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구싶은 대로 솟구처리 삐끼번쩍
으리으리 꽃 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詩 ‘오적’의 서두 부분-
김지하의 시 ‘오적’의 풍자성과 격렬한 시대성 또는 상황성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지는 실천 의지가 나타난다. 그는 시어로 의성어, 의태어를 사용하여 추상성과 이념성을 제거하고 비어와 속어의 배치 등이 김지하 시어의 수사학적 특성이다. 이러한 수사적 장치는 권위에 대한 부정과 전복이다. 그러나 당시의 집권체제는 김지하의 시를 문학적 표현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반체제로 낙인 찍어 폭력으로 억압하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