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신앙인들 가운데 참 변덕스러운 사람들을 만난다. 신앙이 좋을 때는 순교라도 할 것 같다가 토라지고 삐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독스럽기가 찬바람이 쌩하니 날 것 같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을 원칙에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서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감정의 기복이 클수록 변덕은 더욱 심하다.
사울은 변덕이 죽 끓듯 한 인물이었다. 자기 마음에 확고한 원칙이 없다 보니 감정에 따라서 춤을 추듯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전투하다가 갑자기 금식을 선언하기도 하고 기분에 따라서 딸을 전리품으로 내놓기도 한다.
본정신이 돌아오면 멀쩡한 것, 같다가도 사탄이 마음을 점령하면 갑자기 돌변하여 사람을 죽일 듯이 달려들기도 한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게 된다.
(삼상 19:9)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삼상 19:10)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다윗에 대한 그의 질투심은 자기에게 매우 충성스러운 신하요 사위인 다윗을 갑자기 창을 던져서 죽이려는 폭력성으로 나타났다. 다윗은 놀라서 달아났고 그를 죽이려는 사울은 신하들을 보내서 다윗의 집에서 그를 잡아 오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다윗은 미갈의 도움을 받아서 숨어버린 뒤였다.
다윗은 그 길로 선지자 사무엘이 있는 라마 나욧으로 달아나서 선지자와 함께 지냈다. 그리고 그런 다윗의 행적은 사울에게도 전해져서 사울이 친히 다윗을 잡으려고 군대를 이끌고 라마 나욧으로 찾아갔다.
(삼상 19:22)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도착하여 물어 이르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르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삼상 19: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삼상 19:24)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사울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는지 보여주는 구절이다. 그는 옷을 벗은 채 꼬박 하루 동안 누워있었다. 하나님의 간섭이 없었다면 그는 다윗을 잡아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제어했고 사울은 성령의 인도하에 다시 예언하게 되었지만, 사탄의 영이 사울을 사로잡기 위해 격렬하게 저항했다.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은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지 못함으로 마음의 주인이 쉬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변덕이 심하고 감정의 변화도 심해서 도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사울처럼 예언했다가 때론 악한 기운이 뻗쳐서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받치지 않은 사람이다. 마음의 쟁탈전이 치열한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사울을 생각합니다. 변덕이 심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하여 온전히 우리 마음을 주님께 드리고, 마음 문을 활짝 열어서 주님을 모시게 하소서. 그리하여 변치 않는 믿음 강철처럼 단단한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만을 모시길 원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