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긴 길마다 우물이 피어났다, 여자의 눈물을 성수라 믿는 사람들이 물통을 든 채 말라가고 있었다
잎 떨어진 계절마다 배설을 끝낸 평면들이 지하를 걸어나갔다
부풀지 못한 뼈들을 눕혀 물길을 만들면 사람들의 발목에도 실뿌리가 자랄까
안개가 사라진다 흰개미가 우물 입구를 닫을 시간이다
우물은 떠나지 못한 자의 피부다
[2015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정자나무를 품다 ㅡ염병기
내 고향
동구 밖 수백 살 나이에 지난 세월 움켜쥔 늙은 정자나무는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이다
고향 길에 어김없이 지나야 하는 그 곳은 돌담 길에 호박 엮이듯 어릴 적 추억들도 걸려 있다
옹기종기 모여 동네의 쉼터로 부초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풍문으로 떠돌던 이끼 낀 세월의 얘기도 묻혀 있고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으로 바라본다
만만치 않은 세상, 삶이 고달플 때 의연함으로 시절을 버틴 정자나무는 살아온 날에 대한 다독임 살아갈 날에 대한 묵묵함으로 속마음을 대신한다
한 움큼씩 안고 사는 시린 사연도 송두리째 흔들렸던 삶의 모습에도 지나온 세파에 견딘 세월의 약(藥)으로 그 앞에서면 살포시 봄눈 녹듯 치유가 된다
고향 정자나무에서 느끼는 바람결 한 자락 쓸어 담아 가슴에 품는다 말 없는 살랑거림은 존재 의미를 더 하고 굳건함은 의지에 다시 일어나 시작할 마음을 부추긴다
[2015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어머니의 계절 ㅡ 최영랑
빈집엔 봄이 오지 않고 여름도 오지 않고 빈집의 계절만이 서성거린다
빈집은 쉽게 들어갈 수 없고 대문 안에 들어서도 속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곳은 시끄럽고 어스름한 저녁 누구라도 거부하는 빈집만의 습관이 있다
그림자 없는 대문에서 빈집의 툇마루를 바라보면 그곳은 포근했던 무릎, 포근한 미소가 떠올라 헐렁한 하루가 부풀었다 사라진다 눈을 감고 나는 경직된 다리를 뻗는다
가끔 무릎을 내어주는 거기, 정류장처럼 너그럽다 잡초들이 슬그머니 들어와 영역 다툼에 휘말려도 장독대의 도깨비풀이 항아리 속을 욕심내어도 그냥 말줄임표만 사용할 뿐이다
빈집은 기다린다 밤나무가 뒷마당에 밤톨을 툭 툭 던지고 바람이 기왓장을 와장창 깨뜨릴 때도 빈집은 그냥 “좋은 날이야”라고 말한다 빈집은 어느 때보다 여유로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집이 자꾸만 멀어져 간다 그 집에 가까이 가야 한다 들어가 마당을 지나 툇마루에 가서 닳은 무릎을 위로해주어야 한다 어머니의 계절
[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갈매새, 번지점프를 하다 ㅡ 박복영
아찔한 둥지난간에 올라 선 아직 어린 갈매새는 주저하지않았다.
굉음처럼 절벽에 부딪쳐 일어서는 파도의 울부짖음을
두어번의 날갯짓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어미가 날아간 허공을 응시하며 뛰어내린 순간,
쏴아, 날갯짓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강하던 몸이 떠올랐다.
한 번도 바람의 땅을 걸어본 적 없으므로 가는 발가락은 오므린 채 가려웠다.
하강은 추락을 꿈꾸지 않는 법.
가슴 깃털을 헤집고 파고드는 처녀비행의 속도는 두려움이 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밀려와 절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꽉, 물고
허공에 길을 찾는 갈매새가 잠시 수평선을 읽었다.
굽은 부리에서 거친 파도의 현이 흘러나오자
휜 바람줄을 따라 기우는 날개가 다시 팽팽해졌다.
태어나서 처음 바람을 거스르는 동안 갈매새는 바람의 부피를 다 가늠할 수 있을까.
포물선의 꼭지점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슬아슬한 궤적이 허공에서 지워지고 바람줄을 따라가며
바람이 풀어놓는 행의 단서를 찾는 동안 가슴 가득 차오르는 생의 씨앗들.
의문들이 빠져나올 때마다 날개가 책장처럼 펄럭였다.
갈매새가 날개를 당기며 내려다 본 벼랑 끝엔
벗어둔 신발 같은 텅 빈 둥지 옆으로
누군가 방생한 키 작은 해국들이
코카콜라 병뚜껑 같은 머리에 노랗게 흰 뼈를 우려내고 있었다.
[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 당선작]
비커의 샤머니즘 ㅡ 김민율
굴러다니는 돌 하나 주워 주머니에 넣고 숭배한다
소원을 돌에게 말하고 우물에 던진다
대낮의 우물은 하늘을 번제하는 제단
저녁의 우물은 마력이 기거하는 당집
아이를 바쳤다는 소문에 이끼가 끼어 있다
물의 나이테를 열고 바깥을 엿듣는 누가 있다
두레박을 내려 몇 번이나 얼굴을 퍼올려도
제단에 바쳐진 아이가 사라지지 않는다
비커는 어린 시절의 설화
눈금에 다다를 수 없는 기억이 웅크리고 있다
수년 동안 던진 크고 작은 돌들이
내 뒤통수와 등짝을 닮은 기억을 보글거리며……
눈금 바깥을 초월하고 있다
물이 기포로 기포가 증기로 변하는 것은
아이의 주먹을 펼치는 주술일까
모든 손마디를 다 펼치면 ‘아무것’이란 게 우글거리는
이미 기억을 개종한 내가
한 손에 다른 비커를 움켜쥐고 있다
[2015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아령 또는 우리의 王 ㅡ 김분홍
이것은 두 짝, 권력에 관한 보고서이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당신은 스킨십을 좋아해
자르려는 자와 붙어 있으려는 자의 대립으로 각을 세우고
같은 말을 쫑알대는 손가락에 권력이 붙는다
살을 섞으며, 당신을 사랑했다
뼈를 추리며, 당신을 증오했다
같은 동작을 세뇌시키는 당신은
뼈대만 남은 마지막 자존심
당신의 부름에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12월의 볼륨까지는 고백이 필요하다
온몸을 좌우로, 상하로 굴곡 있는 성격을 만든다
당신의 몸에서 땀방울이 떠나고 있다
권력의 잔고가 쌓인다
가슴에 왕을 만들 때까지 밥그릇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아령을 찌그러뜨리며 근로자들이 첨탑 농성을 하고 있다
아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우리의 왕
당신의 권력에 군살 한 근 붙지 않는다
[2015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걸어가는 나무 ㅡ 정지윤
그들의 발소리는 너무 조용하여
먼 훗날 겨우 발견될 뿐,
아르볼 께 까미나(arbol que camina)
태양을 찾아가는 나무의 뿌리는
아마존의 고대 지도를 기억한다
끝과 시작이 맞닿은 유랑
기억을 더듬는 긴 촉수의 뿌리들은
수십 개월 느리게 이동한다
걷는 나무에게 숲은 한낮 궤도일 뿐
달과 달 사이로 시간이 흐른 뒤
숲은 파헤쳐졌다
나무들은 뿌리 앞에서 뒤틀림을 멈춘다
태양을 훔치는 뿌리들은
제 뿌리를 등 뒤에 남기며 다시 앞을 향해 걷는다
숲을 향해 숲이 되기 위해 걷는 일
아마존을 느린 걸음으로 가는 아마존의 나무들
언젠가 숲이 초원에 이르는 날
절룩거리며 걸어 나와
제 그림자와 뒤꿈치에 박힌 상처들을 전할 것이다
나는 잠시 멈춰선 채
먼지 같은 시간을 바라다본다
고통은 크기만큼 가벼워지는 것이어서 깔깔거리며
저마다 제 이름을 깊은 곳으로 불러들인다
아르볼 께 까미나(arbol que camina)
[2015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분홍잠 ㅡ 김겨리
고수레로 남겨 둔 홍시의 밀린 잠이 붉은 저녁이다
마당을 쓸던 노인이 허리를 굽히자 짧은 옷단 아래로 살짝 드러나는 등골,
그 깊은 계곡까지 노을이 들었다
무너지는 한쪽 벽에 봉창 달빛을 빚어 얽는 거미가
바람이 들지 않도록 거미줄을 암팡지게 엮는다
명아주 이파리 스적거림으로 창문을 단 집
구절초 꽃대로 세운 배흘림기둥에선 풍경(風磬) 소리가 향긋하다
노인이 굽혔던 허리를 펴면 가을볕이 어리광처럼 달려든다
도돌이표만 있는 가을볕은 노인의 십팔번이다
음정은 새털구름이고 박자는 떨어지는 은행잎,
아무나 풍월로 읊어도 진양조 장단*
지붕엔 말표고무신 한 짝이 노을로 배꼽만 덮고 누워 있다
갈기털 다 빠진 목덜미에 솟대 그림자를 괴고 잠든 말굽은
아직도 따스한 발걸음을 기억하며
지붕에 올라가 누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긴 한숨을 쉬는 노인의 호흡이 가늘게 떨린다
허공에 써 놓은 점자로 되짚어 가는 길에도
과속방지턱이 있는지 바람도 잠시 주춤하는 법인데
어느새 성성해진 백발과 그믐달만 뜨는 눈썹
슬하에 노을 닮은 은행나무 한 그루만 달랑 둔 노인의 가계(家系)
입술에 허옇게 일어나는 각질을 옷소매로 쓱 훔치니
노을이 찍 묻어난다
노인의 등뒤로 달이 뜬다 어쩌면, 오늘밤
은행잎 한꺼번에 다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뜻
노을의 끄나풀이 길다
*진양조 장단:판소리에서 가장 느린 박자
[2015 한라일보 신춘문예 詩 당선작]
오래된 신발 ㅡ 고창남
인도에는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면
떠올랐다 가라앉은 먼지들과
가볍게 부풀어 올랐을 세상의 호들갑이
풀어진 끈을 갈고리처럼 엮어 꽉 조여 맨다.
만년설처럼 쌓여만 가는 아득한 먼지 속에서
태양은 너무 용의주도하고
그림자는 자주 길 밖으로 흘러내린다.
인도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다.
바람만 불어도 가시가 돋쳐 구멍 숭숭 뚫리고
나는 다만 그날의 일기를 기록한다.
지구의 표면을 닦는 순례자의 발걸음
덜거덕거리는 신발이 몸 안의 길을 따라 걷는다.
때론, 갠지스 강이든가 어디든가 가닿지 못한 그리움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를 때
우리라는 존재는 우리가 소망하던 우리가 아니다.
오래된 신발에서 오래된 잉크냄새가 난다.
평생 써 내려가야 할 미완의 경전
어제 걷던 길을 오늘도 걷는다.
인도에는 부처가 있다.
신발장 문을 열 때마다 온 생이 몸을 뒤척인다.
[2015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신발 ㅡ 박진이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은 난전의 신발들
맨발보다 더 시려 보이는 저 표준의 사이즈들은
몇 번을 신어보고 몇 번을 돌아서 보고
몇 번을 벗어두고 나서야
발의 온도를 이해할까
오늘도 얇은 먼지와 흰 눈에게 제 크기를 내어준다
겨울, 한기를 견디던 힘으로 발을 기다리는 일
진열이 아닌 나열의 추운 발
그러나 아무도 저 시린 발은 사지 않겠다는 듯
지나가는 걸음들은 빠르다
맞춤이 아니어서 주인이 없는 발
몇 켤레의 신발을 신어 본 후에야
제 발의 온도를 고를 수 있나
나열의 난전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내내
신발이 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발이 신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몇 켤레의 신발이 들렸다 놓였다 신겨졌다 벗겨졌다
뒤꿈치 똑똑 딛고 싶은 저녁 무렵
누가 나열의 난전에 놓인 신발을 사고 싶을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유리 너머 진열의 신발들에 눈이 흘리는 날
퉁퉁 부은 저녁의 발에 난전의 신발 한 켤레를 신겨 보는데
그새, 벗어놓은 헌 신발도 좋다는 듯
흰 눈발 내려앉고 있다
[2015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선수들 ㅡ 김관용
전성기를 지난 저녁이 엘피판처럼 튄다
도착해보면 인저리타임
목공소를 지나 동사무소, 골목은 늘 복사된다
어둑해지는 판화 속에서 옆집이라는 이름을 골라낸다
옆집하고 발음하면 창문을 연기하는 배우 같다
보험하는 옛애인이 전화한 날의 저녁은
폭설과 허공 사이에서 방황하고
과외하는 친구의 문자를 받은 날 아침은
접시 위의 두부처럼 무심해진다
만약이라는 말에 집중한다
만약은 수비수 두세 명은 쉽게 제쳤으며
늘 성적증명서보다 힘이 셌다
얇은 사전을 골라 가장 극적인 단어를 찾는다
아름다운 지진이란
지구의 맨 끝으로 달려가 구두를 잃어버리는 것
멀리 있는 산이 침을 삼킨다
하늘에선 땅을 잃은 문장들이 장작 대신 타고
원을 그리며 날던 새들의 깃털이 영하로 떨어진다
원점은 어딘가 빙점과 닮았다
양철 테두리를 한 깡통처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트랙처럼
잠시라도 폼을 잃어선 안 된다
전광판이 꺼지더라도
경기가 끝나면 유니폼을 바꿔 입어야 한다
[2015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탕제원
詩 박은석
탕제원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릎의 냄새가 난다
용수철 같은 고양이의 무릎이 풀어지고 있던 탕제원 약탕기 속 할머니는 자주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냈었다 할머니의 무릎에는 몇 십 마리의 고양이가 들어 있었다. 가늘고 예민한 수염을 달인 마지막 약, 잘못 쓰면 고양이는 담을 넘어 달아난다.
밤이면 살금살금, 앙갚음이 무서웠다. 고양이를 쓰다듬듯 할머니의 무릎을 만졌다 몇 마리의 고양이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던 할머니들이 절룩거리며 나타났다 빗줄기가 들어간 무릎의 통증 등에 업힌 밭고랑 한가득 들어 있는 무릎
탕제원 오후는 화투패가 섞인다. 화투 패는 오래 달일 수가 없다 약탕기 안에 판 판의 끗발들이 성급하게 달여지고 있지만 가끔은 불법의 처방이 멱살을 잡기도 한다.
약탕기 속엔 팔짝팔짝 뛰던 용수철 몇 개 푹 고아지고 있는 탕제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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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015 년 신춘문예 당선 시 모음집 | 공유3
책 이웃추가 | 2015. 1. 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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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카페 > 시산문(詩散門)|날개
2015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면(面)
정현우
면과 면이 뒤집어질 때, 우리에게 보이는 면들은 적다
금 간 천장에는 면들이 쉼표로 떨어지고
세숫대야는 면을 받아내고 위층에서 다시
아래층 사람이 면을 받아내는 층층의 면
면을 뒤집으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복도에서, 우리의 면들이 뒤집어진다
발바닥을 옮기지 않는 담쟁이들의 면.
가끔 층층마다 떨어지는
발바닥의 면들을 면하고,
임대 희망아파트 창과 창 사이에
새 한 마리가 끼어든다.
부리가 서서히 거뭇해지는 앞면,
발버둥치는 뒷면이 엉겨 붙는다
앞면과 뒷면이 없는 죽음이
가끔씩 날선 바람으로 층계를 도려내고
접근금지 테이프가 각질처럼 붙어있다
얼굴과 얼굴이 마주할 때 내 면을 볼 수 없고 네 면을 볼 수 있다 반복과 소음이
삐뚤하게 담쟁이 꽃으로 피어나고 균형을 유지하는 면, 과 면이 맞닿아 있다
어제는 누군가 엿듣고 있는 것 같다고
사다리차가 담쟁이들을 베어버렸다
삐져나온 철근 줄이 담쟁이와 이어져 있고
밤마다 우리는 벽으로 발바닥을 악착같이 붙인다
맞닿은 곳으로 담쟁이의 발과 발
한 면으로 모여들고 있다
[심사평]
우리 시대 삶의 다양한 ‘면’을 성찰
남진우, 정호승
본심에 오른 응모작 가운데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면(面)’(정현우), ‘우산 없는 혁명’(고원효), ‘야간개장 동물원’(박민서) 세 편이었다.
‘야간개장 동물원’은 지상의 거울로서 밤하늘의 별자리를 헤아리는 상상력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낮에는 잠을 자다가 밤에만 나타나는 천상의 동물들을 통해 야성을 상실한 채 일상에 매몰돼 살아가는 현대인의 처지를 반어적으로 노래한 이 작품은 단아한 이미지의 직조가 인상적이었다.
‘우산 없는 혁명’은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올해 외신면을 달군 홍콩의 우산 혁명을 소재로 하고 있다. 쉽고 친근한 어조로 쓰였음에도 이런 유의 시가 빠져들기 쉬운 상투성에서 벗어나 있었고 우리 현실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재기와 사유의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면’은 평면 측면 얼굴 경계선 바닥 방향성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면이란 단어를 활용하여 우리 시대 삶의 다양한 ‘면’을 성찰한 작품이다. 인간이든 건물이든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면들의 만남과 어긋남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로부터 갖가지 문제가 발생한다고 이 작품은 들려주고 있다. 이 시에 담긴 지혜는 통속적 잠언을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서 오래 되새길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세 작품을 앞에 놓고 장시간 고민과 토론을 거듭하다 선자들은 ‘면’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다른 두 응모자의 경우 여타의 투고작들이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한 반면 정현우의 작품은 모두 고른 수준과 밀도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 본심에서 논의된 응모자로는 ‘바람의 혈관’의 김민구, ‘자백’의 김창훈 등이 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다른 응모자들에게도 건필을 기원한다.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쌈
조창규
나는 쌈을 즐깁니다
재료에 대한 나만의 식견도 있죠
동굴 속의 어둠은 눅눅한 김 같아서 등불에 살짝 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낱장으로 싸먹는 것들은 싱겁죠
강된장, 과카몰리* 등 다양한 <쌈장 개발의 기원>
봄철, 입맛이 풀릴 때
나는 구멍이 송송, 뚫린 배춧잎을 새로운 쌈장에 찍어먹습니다
달콤한 진딧물 감로를 섞어 만든 장
어떤 배설물은 때로 훌륭한 식재료가 되죠
두꺼운 것들은 싸먹기 곤란합니다
스치면 베이는 얇은 종잇장에도 누명과 모함은 숨겨있죠
적에게 붙잡히면 품속의 기밀을 구겨 한입에 삼켜요
무덤까지 싸들고 가는 비밀도 있습니다
어둠의 봉지에 싸인 이 밤
구멍 난 방충망은 경계가 소홀합니다
누군가 달의 뒷장에 몰래 싸놓은 알들
나는 긴 혀로 나방을 돌돌 말아먹는 두꺼비를 증인으로 세웁니다
사각사각, 저 달을 갉아먹는 애벌레들
수줍은 달을 보쌈해간 개기월식
삼킬 수 없는 과욕은 역류되기도 하죠
보름달을 훔쳤다는 나의 누명이 시간의 부분식으로 벗겨지고 있습니다
* 아보카도를 으깬 것에 양파, 토마토, 고추 등을 섞어 만든 멕시코 식 쌈장
[심사평]
▼자연의 변화와 삼투… 파노라마처럼 전개… 시인의 탐구 돋보여▼
황현산 김혜순
본심의 심사 대상이 된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 시들을 쓸 때 이 응모자들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어떤 간절한 욕구가 있었는가, 아니면 어떤 경로로 시를 쓰는 과정에 입문하게 되어 습관처럼 시를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질문해 보고 싶었다. 그만큼 장식과 조립에 치중한 시가 많았으며 재주나 재치에 기댄 시가 많았다. 응모작 전체가 고른 수준을 갖춘 예도 드물었다.
김태형의 ‘수상한 식인’ 외 3편은 일종의 은유 놀이로서 ‘노르웨이’라는 거처를 시에 등장시켜 자유자재로 그 거처의 경계를 입술이나 국경으로 늘려 잡으며 유희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집을 은유해서 ‘노르웨이’ 같은 이름으로 비유해 불러야만 할 것 같지 않은가. 시가 재미있는 지점들을 품고 있었지만 함께 응모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같은 시들에는 이 시를 쓴 시인의 역량을 의심케 만드는 거친 일면이 있었다.
김상도의 ‘졸립다가 마른’ 외 4편은 거미줄에 걸린 줄도 모르는 곤충처럼, 우리의 일요일 같은 휴식이나 평화, 그 뒤에 도사린 위태로움을 슬며시 혹은 경쾌하게 던지는 솜씨가 좋았다. 그런 상황을 ‘졸립다가 마르는’ 같은 형용 어귀로 눙쳐 버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뒤에 붙은 4편의 언어 실험적인 시들이나 나열, 조립의 시들이 이 시의 감동을 반감시켰다.
‘쌈’ 외 4편은 ‘쌈’을 ‘동굴 속의 어둠’, ‘스치면 베이는 얇은 종잇장’, ‘어둠의 봉지에 싸인 이 밤’, ‘구멍난 방충망’, ‘달의 뒷장’, ‘긴 혀’, ‘보쌈’으로 비유하고, 이 비유에 어울리는 쌈장을 ‘달콤한 진딧물 감로를 섞어 만든 장’으로 만들고 난 다음 이 모든 사물과 자연 현상을 흡입하는 나를 내세워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와 삼투, 세월과 일식을 파노라마처럼 전개하고 있었다. 유쾌한 유머가 있고, 축소와 확장이 화자의 입을 통해 전개되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시 속의 ‘나’는 쌈을 멋지게 비유해 낼 수 있지만, 과연 이러한 ‘쌈’의 현상들이 시적 화자의 감각들을 통과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럼에도 응모작들이 각각 다른 경향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5편 모두가 그 나름의 탐구가 있는 점을 높이 사서 ‘쌈’을 당선작으로 선하는 데 합의했다.
2015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로로
김성호
나는 너에 대해 쓴다.
솟구침, 태양의 계단, 조약돌이 되는 섬; 깊은 수심에 가라앉은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나는 너를 잊곤 한다.
로로, 네 빛깔과 온도를 나는 안다. 네 얼굴이 오래도록 어둠을 우려내고 있는 것을 안다. 더 이상 깊지도 낮지도 않은 맨살 같은 나날을 로로, 나는 안다.
네가 생각에 잠길 때 조금씩 당겨지는 빛과 무관한 조도를 안다. 마음에 마음이 부딪혔다. 소리가 났다. 그쯤은 네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어서 내 망각은 너의 미래에서 쑥쑥 자란다.
마을은 물에 잠기고 고통은 가장 가볍다. 로로, 내 한 살 된 부엉이를 로로라 부를 때 날개에 대해 적고 싶은
두려움도 모른 채 쿵쾅이는 마음을 너는 알까? 여긴 쓸려갈 거야,
온 마을의 고양이가 낮 동안 밋밋하게 비상하는 것을, 환호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너는 알까? 로로, 우리 모두는 네 내면과 살았다. 나는 그곳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한 형상이었다. 우린 오래도록 있어도 고요한 줄 몰랐지. 나는 오늘 온통
상처투성이여서 내일도 빛을 삼키고 반짝일까 무섭다. 사지를 갖추고 내일이 지상에 엎드릴까 무섭다. 로로, 나는 널 부르면서 여전히 네가 고스란히 피어오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동안만은 날 잊곤 하는 걸까. 로로, 네가 들린다. 언제일까?
로로, 나는 너에 대해 쓴다.
내면에 내면이 쏟아졌다. 카스트라토
구름, 비틀림, 작은 의식, 이런 것들을 떠올리곤 하다가 나는 다시 너를 잊어버린다
<심사평>
내면을 언어로 투시하는 힘… 음악처럼 다가와
문정희 김사인
우리는 어떤 새 시인을 기다리는가.우리를 두렵게 하는 동시에 매혹하는 시쓰기, 읽기 전과 후의 우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해방과 자유의 에너지를 내장한 시쓰기, 그러므로 쓰는 이뿐 아니라 읽는 이에게도 근원적 의미의 모험이어 마땅한 그런 시쓰기의 시인을 우리는 설레며 기다린다.
시라는 이름의 관행적 작문방식에 갇혀 오히려 생과 세계의 피 흐르는 실상으로부터 시 자체가 유리되는 자가당착을 돌파하는 패기의 글쓰기, 한국어의 갱신과 재구성이 그로부터 시발될 글쓰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것은 무조건 정당한가. 바로 이 오래된 물음을 또한 고통스럽게 치르는 가운데 일종의 시적 윤리성을 확보한 글쓰기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진정한 희망의 새로움이지 ‘새것 흉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시대 민중시풍의 단순 답습이 오늘의 문학적 대안일 수 없는 것과 똑 같은 이유에서 안이하고 나태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최종환, 맹재범, 김성호로 최종 후보를 압축한 다음, 김성호를 이견 없이 당선자로 확정했다. 최종환이 적출해내고 있는 생의 비극적 아이러니들은 진지하고 시의성 있는 것이었지만, 관점과 시적 사유에서 어떤 투식이 느껴졌다. 더 자신을 던져넣어 돌파해야 한다고 보았다. 맹재범은 생의 구체와 형상화의 신선함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어설픈 점이 있었다.
김성호는 내면을 언어로 투시하는 힘, 나아가 그것을 시적 문장으로 조직하는 감각과 내공으로 우리를 움직였다. 그는 확보된 관념이나 느낌, 사실의 서술로 시를 삼지 않고, 참 자체가 스스로 드러나는 언어적 형식으로 시가 기능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안이 비어있는 비인칭의 이름 ‘로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마음과 언어의 섬세한 탄주에 귀를 기울이면, 윤곽이 모호한 듯하나 매우 진실하고 예민한 한 벌의 심미적 긴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김성호의 언어사용이 구현하는 미감과 아우라를, 처음 듣는 음악을 만나듯 체험해 보기를 독자들께 권한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긴장이 견지되는 한에서만 이런 시는 유효하다는 것, 그렇지 않을 때 요령부득의 주관적 요설이나 겉멋의 함정에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일 수 있다는 우리의 우려가 기억되기를 바란다. 심사 또한 모험이다. 새 시인의 미래에 우리 자신을 걸고자 한다. 각고의 정진을 당부한다.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백지의 척후병
김복희
연속사방무늬 물이 부서져 날리고
구름은 재난을 다시 배운다
가스검침원이 밸브에 비누거품을 묻힌다
바닥을 밟는 게 너무 싫습니다
구름이 토한 것 같습니다
낮이
맨발로 흰색 슬리퍼를 끌면서 지나가고
뱀이 정수리부터 허물을 벗는다
구름은 발가락을 다 잘라냈을 겁니다
전쟁은 전쟁인거죠
그는 무너진 방설림 근처에 하숙하고
우리 집의 겨울을 측량하고 다른 집으로 간다
우리 고개를 수그려 인사를 나누었던가
폭발음이 들렸던가
팔꿈치로 배로 기어가 빙하를 밀고 가는 정수리
허물이 차갑게 빛난다 눈 밑에서 포복하던 생물들이 문을 찧는다
인질들이 일어선다
<심사평>
발명과 발견, 색깔 다른 두 신인 서로의 장점 배웠으면
남진우 황지우 이문재
시에서 발견과 발명은 구분된다. 발견이 낯익은 대상에서 낯선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면, 발명은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발견은 소통 가능성(서정시), 발명은 소통 불가능성(비서정시)과 직결되고, 다시 발견은 언어의 투명성(우리), 발명은 언어의 불투명성(나)과 연관된다. 우리 현대시는 발견과 발명 사이에 서식한다.
최종적으로 두 편을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발견인가, 발명인가. 한 작품은 습작기가 단단해 보였다. 방(가족)을 중심으로 대상을 장악하고 그것을 질서화하는 능력에 신뢰가 갔다. 동봉한 응모작 수준도 일정한 편이었다. 반면, 다른 한 작품은 앞의 작품과 대척점에 자리했다. 재난 상황이라는 대상을 넘어 낯선 이미지를 통해 이질적 세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전자는 발견의 시, 후자는 발명의 시에 가까웠다.
발견의 시가 윤종욱씨의 ‘방의 전개’였고, 발명의 시가 김희씨의 ‘백지의 척후병’이었다. 윤종욱씨의 경우 ‘방의 발단’이나 ‘숲’도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고, 김희씨의 ‘토마토라 한다’도 인상적이었다. 윤씨는 안정감이 돋보였고, 김씨는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커 보였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두 신인을 동시에 문단에 내보내기로 했다. 서로 다른 개성이 발명을 아우르는 발견, 발견을 아우르는 발명의 길을 열어나가면서 우리 시의 풍요로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인으로서 탄생 장소와 시간이 같은 두 신인에게 두 배의 축하를 보낸다.
최종심에 오른 나머지 두 편의 시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김유씨의 ‘성찬의 시간’이 갖고 있는 미덕은 가독성이었다. 일상적 언어를 능란하게 직조하는 능력이 깊이의 시학과 결합한다면 보다 성숙한 차원으로 올라설 것이다. 고동식씨의 ‘금단’은 진술(아포리즘)이 묘사를 압도하는 대목이 못내 아쉬웠다. 진술과 묘사 사이의 균형을 찾아낸다면 조만간 우리 시의 전면에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분발을 바란다.
2015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
선수들
김관용
전성기를 지난 저녁이 엘피판처럼 튄다
도착해보면 인저리타임
목공소를 지나 동사무소, 골목은 늘 복사된다
어둑해지는 판화 속에서 옆집이라는 이름을 골라낸다
옆집하고 발음하면 창문을 연기하는 배우 같다
보험하는 옛애인이 전화한 날의 저녁은
폭설과 허공 사이에서 방황하고
과외하는 친구의 문자를 받은 날 아침은
접시 위의 두부처럼 무심해진다
만약이라는 말에 집중한다
만약은 수비수 두세 명은 쉽게 제쳤으며
늘 성적증명서보다 힘이 셌다
얇은 사전을 골라 가장 극적인 단어를 찾는다
아름다운 지진이란
지구의 맨 끝으로 달려가 구두를 잃어버리는 것
멀리 있는 산이 침을 삼킨다
하늘에선 땅을 잃은 문장들이 장작 대신 타고
원을 그리며 날던 새들의 깃털이 영하로 떨어진다
원점은 어딘가 빙점과 닮았다
양철 테두리를 한 깡통처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트랙처럼
잠시라도 폼을 잃어선 안 된다
<심사평>
“균열·의외성… 자본의 시대, 시가 필요한 이유 증명”
이시영 황인숙 선자들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네 편이었다. “벚꽃은 지상에서 초속 5센티미터/ 속도로 떨어지고 있겠지”라는 빛나는 감성을 품은 ‘휠체어 드라이브’는 무리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직관을 형상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세계를 조용히 응시하는 이 시편은 시인의 상상력이 뜻밖의 시적 전개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간밤 느티나무 찻상이 쩍/ 갈라졌다”는 직핍으로부터 출발한 ‘느티나무 찻상’은 사물의 갑작스러운 붕괴로부터 빛과 향을 흡입하는 착상이 신선하고 발랄했다. 그러나 이 시인 역시 예상 가능한 상상력의 구도에서 비약하지 못한 채 익숙한 은유로 생의 비의를 드러내는 데 안주했다. 어느 병동에서의 남녀의 갈등을 바둑에 빗대어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결심을 가진 백과/ 그것을 초조하게 바라보는 흑 사이”로 묘사하며 사뭇 긴장감을 자아내는 ‘직선을 이탈한 두 남녀가 모이는 점’ 역시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아프게 드러냈으나 곳곳의 상투적인 시행들의 병렬로 인해 이른바 언어 자체가 살아있는 ‘물활’(物活)의 경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응모작들 중 가장 두드러진 작품은 김관용ㅡ‘선수들’이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도 그러했지만, 이 시인은 무슨 제재를 다루든지 일거에 대상을 장악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과 리듬으로 시를 운산(運算)하는 범상치 않은 솜씨를 보여주었다. 특히 표제작인 ‘선수들’은 언어와 언어가 충돌하며 파열하는 섬광 같은 것을 뿜어내면서 자기 시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삶의 트랙으로 밀어붙인다. 그리하여 이 시는 시적인 것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다른 시’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한치의 오차도 허락지 않는 이 주밀한 자본의 세계에서 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균열과 의외성이다. 트랙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결말을 짐작할 수 없는 것으로의 이 과감한 투신의 성과를 당선작으로 미는 데 우리는 주저하지 않았다.
김관용의 「바늘」 평설 / 지연
바늘
김관용
턴테이블
부풀어 있던 풍선을 터뜨리자 갇혀있던 비명이 쏟아졌다 풍선은 조용한 숲이었다 죄를 짓기 위해 기도하는 걸까 검은 빙판을 돌면 긁힌 상처를 만지고 싶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자세로 목이 길어진 침묵 발끝으로 서서 그녀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멀리까지 다녀온 낮은 음들을 항생제로 덮어주었다
시계제작소
안개의 흔적인 듯 아니면 어떤 눈보라인 듯 수술실을 나온 쓸쓸한 몸 자신의 낭떠러지를 목구멍 너머로 삼키며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의 턱선을 따라 비가 내렸다 심장이 아니었다 비가 오는데 남은 밥을 먹으려고 고개를 숙이다가 뜨거운 영혼과 마주친다 너를 생각했던 몇 초에서부터 나를 담았던 우주가 꺼지는 순간까지 목에 걸린 시간이컥컥거렸다
정든 수술실에서
나의 맞은편을 만나면 흰 솜을 꺼내 입술을 닦아줄 것이다 칼을 든 자에게 가슴을 내밀던 호수, 아니 뭉클한 달빛 아주 먼 옛날 침엽수림의 냄새 같은 거 한 때 우리는 캄캄한 방에 들어서며 녹슨 피의 지퍼를 열었다 녹색 테이블 위에서 더운 위장을 고백할 때까지, 너를 경험한 외지에서야 피를 터뜨렸다 밤의 내부는 흙먼지가 가득 날리는 음반 같은 거다 그렇게 믿는 거다 이유가 있어서도 목적이 있어서도 아닌 공원의 좁은 길처럼 벗어놓은 속옷에서 조금씩 희미해지는 냄새처럼 익숙한
조용한 숲
그녀가 선인장으로 보일 때가 있다 내부가 비어있는 철골을 바라보듯 제 몸의 열을 이해하는 일은 외롭다 내일이면 내일의 몸이 열리고 누군가 다녀간 문장은 공기로 채워진 수조 같다 그러나 끝내 귓속으로 들어간 베케트의 우울은 희극으로만 읽혔다 미친 듯이 웃으며 나는 벌써 깨어 있는데 악몽의 좁은 틈으로 링거액이 흘러들었다 6인실 병동이었다
⸻⸻⸻⸻⸻⸻⸻⸻ 김관용 / 1970년 서울 출생. 201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바늘을 쥔 자는 실을 바늘귀에 넣을 때 무엇을 꿰맬지를 생각하고 형상을 찌르면서 무늬를 만든다. 김관용 시인은 무늬의 확장과 축소를 독자에게 맡긴다. 「바늘」이라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물체를 통해 들어가는 새로운 통로, 그의 무늬는 어둡지만 축축하지 않고 아프지만 따뜻하다. 그 따뜻함은 어디서 오는가? 아픔을 응시하는 데 있다.
김관용 시인의 「바늘」은 물러나 있는 아픔이며 그 아픔을 응시하는 주체라 할 수 있다.「바늘」시를 거꾸로 읽어보면 1인실이 아닌 6인실 병동임을 진술한다. 바늘을 통해 링거액이 흘러든다. 조용한 숲이라고 말한다. 조용한 숲에는 수술을 마친 자가 누워있다.
우리는 정서적 암흑기를 지나면서 촛불이라는 준엄한 수술을 거쳤다. 시인은 “비명이 쏟아졌다”라고 표현한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진보한다. 뒤로 간 것 같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 우리는 불안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아프고 당신도 아프다. 우리는 서로의 열을 체크하며 이해한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손을 잡으면 원이 된다. 우리는 둥근 공동체다. 둥근 턴테이블 위에서 긁힌 상처를 만지고 둥근 시계 안에서 쓸쓸함을 만지는 바늘이다.
김관용 시인의 바늘 변주는 이렇듯 턴테이블-시계제작소-정든 수술실-조용한 숲으로 진행된다. 각자 아프지만 손을 내밀고 나와 너의 관계를 마주한다. 시인은 “나의 맞은편을 만나면 흰 솜을 꺼내 입술을 닦아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따뜻한 고백인가? 이유도 목적도 없이 있는 그대로 내 앞의 당신을 바라본다는 것, 그가 말한 아픔은 희미하지만 익숙한 것. 그러니 아픔을 억지로 포장하지도 위로하지도 않겠다는 것. 상처를 소독하듯 내 앞의 당신에게 흰 솜을 꺼내 입술을 닦아주겠다니……. 바로 그 지점에 시의 매력이 있다.
잠시 이성복 시인을 언급하고 싶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시집 중에서「정든 유곽에서」와 「다시 정든 유곽에서」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유곽에서 상처를 입었으며 때론 상처를 방관했다. 유곽은 불안한 세상이며 흔들리는 우리이자 너이면서 나다.
김관용 시인은 ‘정든’이라는 말을 넣음으로써 의도적으로 “또다시 정든 아픔”을 말하고 있다. 앞날을 제시할 수는 없으나 화답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 그런데도 “어느 날 다시 흙구덩이 속으로 추락할 것이다”고 말한 이성복 시인에게 수술을 마친 우리는 맞은편을 바로 보겠다고 말하며 위로하고 있다. 그리하여「바늘」이 건너가는 징검다리 이미지는 물비늘처럼 아릿하게 아름답다고 하겠다.
시인은 말한다. “제 몸의 열을 이해하는 일은 외롭다” “나는 벌써 깨어있는데 악몽의 좁은 틈으로 링거액이 흘러들었다 6인실 병동이었다” 나는 1인실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1인실이라면 벽에 절망을 박으며 허리를 구부렸을 터. 고통의 연대는 아닐지라도 고통을 함께 체험하면서 관계는 깊어지니“내일이면 내일의 몸이 열리고” 있다고 믿어보고 싶어진다. ‘6인실’에 있으니 아프지만 견딜 만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