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기차를 탄다
김형로
그 무렵 우린 통일호를 탔다
기껏 서울까지 가려고
거창하게 통일호에 올랐다
한반도의 반밖에 가지 않았지만
한 명도 빠짐없이 내렸다
누구도 다음 역을 묻지 않았고
아무도 통일호에서 통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서울이라는 가짜 종착역에 내려
아직 힘이 남은 듯 씩씩대는 열차를 남으로 돌려보냈다
그 열차 타고 감히
북으로 가자고 했던 사람이 있는가
이기형 시인은
백두산 귀향 표를 살려는 놈이 미쳤나
기어이 못 팔게 하는 놈이 미쳤나, 일갈했고
임수생 시인은 술 취해 택시 타면
기사 양반 평양 쫌 가입시더, 소리쳤다
기개 있던 시인들 가고
통일은 먼 나라에서 온 거짓말 같은 말이 되고
38선 한 번 뚫지 못한 채
쇳소리 산천을 울리던 철마는 퇴역했다
평양 개성 신의주 원산 함흥
이정표 사라진 역두에 우두커니 서서
미치지 않았으니
서울까지 가는 것도 고마워
휴대폰으로 표 끊고 조용히 기차를 탄다
당연한 최북단 서울까지만 간다
―《내일을 여는 작가》, 한국작가회의, 202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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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로 |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미륵을 묻다』. 제9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