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老人)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년(老年)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있다.
일생의 한 주기로서 노년을 더 이상 여생으로 받아 드리는 이는 없다.
그러나 정작 삶의 마지막 부분에 서있는 이들이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며 변화하는 세대의 갈등기로
(葛藤岐路)에 서 있다.
노년을 행복하고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지난날에 얼마나 거두었느냐?
보다 남은 이생의 가치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느냐? 에 달렸다.
지나온 삶이 비록 슬픔과 상실, 실패의 세월이었다 해도 남은 삶의 가치는
남아 있는 것이다.
남은 삶에서 훌륭한 가치를 찾는 것이야 말로 노년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가장
현명한 삶의 자세이며 지혜이다.
남은 삶에서의 훌륭한 가치란 자기 손에 쥐고 있던 것 들을 언제 놓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며, 오래된 원망을 키우기보다 관용과 용서가 보다 성숙하고 훌륭한
삶의 자세임을 아는 것이다.
지금 어떠한 여건(與件)에 서있건 노년의 삶은 외롭고 쓸쓸할 수도 있고 즐겁고
보람일 수도 있다. 그것은 당신의 의지와 선택이 결정짓게 될 것이다.
사람은 늙을수록 고집과 이기심만 남는다.
추억과 자존심으로 버티는 노년은 고독의 외골목길이다.
얻을 것이 없다면 무엇이든 버릴 수 있는 도량(度量)을 보이라!
그것이 여유로운 노년의 삶을 보이는 것이다.
몸 따라 마음도 늙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도리(道理)다.
용기를 잃게되고 이기주의적이 되며 의타성(依他性)과 수동적(受動的)이 된다.
내성적(內省的), 순응주의적(順應主義的) 성향(性向)을 보인다.
독단적(獨斷的) 성향으로 경직(硬直)되기도 한다.
자기애(自己愛)가 강해지며 사회성을 상실하여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노인이 될수록 개성이 강해지는 것을 표현한 말들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내면적으로 상당한 갈등을 거치면서 형성된다..
본인의 흔들림 없는 가치관과 부단(不斷)한 노력이 아니고는 이 죽음에 이르는
고립의 골짜기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이생(이승: 지금 살고있는 세상)을 감사하고 내생(來生)을 기대하는 깊은
신앙심이 몸과 마음의 노쇠(老衰)함으로부터 자유를 갖게 할 것이다.
"품위를 지키며 살자!" 하면 누구나 대뜸 "돈이 있어야지!" 하고 나오기
십상(十常)입니다. 돈이 있으면 체면과 품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요.
그러나 돈으로 품위를 살수는 없습니다.
품위란 재물을 모으듯 경쟁속에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젊은이의 모습이 자신감 있어 보이는 젊은이라면 가장 이상적인
노인의 상(像)은 편안(便安)함이 있어 보이는 노인입니다.
남은 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마음가짐이 달라 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삶과 죽음을 알고있지만 그것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이 인간에게 처방해주신 명약인지도 모릅니다.
삶과 죽음을 늘 되새기면서야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겠는가?
얼마나 달려 왔는지 얼마나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지!
그 길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이 노년의 지혜다.
아름다운 노년생활이 가능하다.
늘 한발 물러서 겸손 할 수 있고 너그러울 수 있으며, 당당할 수 있다.
원숙(圓熟)한 노년의 멋을 보일 수 있다.
일을 찾아서 하라! 돈이 되는 것만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인가를 이루어 보겠다는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가치를 설정한다.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 사랑으로 산다. 의리로 산다.
그러나 처절(凄切)한 지경(地境)에 서본 사람은 인간은 역시 먹는 것으로
산다는 것을 안다. 진리는 그렇게 심오(深奧)한 데서 발견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깝고 단순한 곳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다이아몬드가 돌멩이와 같음을 아는 순간에나 터득하게 되는 진리이다.
그러면 노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인은 약(藥)으로 산다. 노인일수록 복용하는 약의 종류가 늘어난다.
일주일은 왜 7일일까?
원래 동양에서는 7일을 한 묶음으로 해서 시간을 구분하는 관습이 없었으며,
고대 중국인들도 이집트나 그리스인들 같이 열흘을 단위로 날짜를 끊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전래되어 열흘 단위 풍습이 생겨났고, 그 흔적으로 지금도 초순, 중순,
하순이라 할 때 그 순(旬)이 바로 한 달을 열흘 단위로 끊어서 센 시간의 단위입니다.
시간을 7일씩 끊어 사회생활에 리듬을 삼는 관습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유태교- 기독교적 전통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이 엿새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레째 에는 쉬었다고 합니다)
그 관습이 3세기에 유럽에 도입되었고 이제는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일주일 중 첫번째 요일이 무슨 요일 일까요? 모두가 월요일이라 생각하지만
일요일입니다. 달력을 보시면 일주일 맨 앞에 요일은 일요일이지요.
기독교에서 일요일은 주님의 날, 즉 주일(主日)이라 하지만 기독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각 요일의 어원을 찾아보면 일주일의 이름은 모두 태양계 행성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습니다.
일요일은 태양계 중심인 태양을 가르켜 태양계의 으뜸인 일요일이 첫번째 요일이 된 것이고,
하늘에는 태양(日)이 하루에 한번씩 지구를 돌며 비춰주어 낮과 밤을 만들고 또 밤이면
달(月)이 밤하늘을 밝히면서 지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리하여 태양과 달이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쳐 우리의 일상에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 외 수성(水星), 금성(金星), 화성(火星), 목성(木星), 토성(土星) 다섯 별도 함께 다닌다고 생각하여, 이 행성들이 우리가 사는 지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준은 그 당시 이 일곱 별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큰 별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인들의 생각에는 이 일곱개의 별이 무척이나 중요했던 것이며, 그래서 이 일곱의 별을
칠요(七曜)라 불렀으며 이 일곱개의 빛나는 별을 날짜의 주기를 정하는 요일(曜日)로
삼았던 것입니다.
일요일은 태양(日), 월요일은 달(月), 화요일은 화성(火星), 수요일은 수성(水星)
목요일은 목성(木星), 금요일은 금성(金星), 토요일은 토성(土星)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일곱별을 가지고 일주일 (7일)을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7일
일주일제를 몇 나라가 바꾸어 보려 한 적이 있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합니다.
1792년 프랑스에서는 자기들이 고안한 미터법과 같이 10진법의 1주 10일제를 실시해
보았으나 노동자들의 반발로 나폴레옹이 폐지하였고, 1929년 소련은 1주 5일제를,
1932년에는 1주 6일제를 시도해보았으나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곡절을 거치면서 1주 7일제는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이제는 전세계인들의 일상 생활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