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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재무가 쓰는 '신경림' << 이전 00 다음 >> 우리시대의 민족시인 연보 선택
이 글은 30년 전 웅진닷컴 출판사에서 간행한 책 (우리시대의 시인 신경림을 찾아서)에 들어있는 약식 신경림 평전 서문이다.
01 거제와 구례에서 연하리 상입장까지
02 노은국민학교에 입학하다
03 충주사범학교 시절
04 충주고등학교 시절, 불타는 시심(詩心)
05 서울에서의 궁핍한 대학 생활 그리고 하향
06 서울로 재입성, 제 2의 문단시절
시인 신경림의 본명은 신응식(申應植)이다.
신응식과 그의 부인 이강임(李康妊) 사이에는 아들 둘 딸 하나를 두고 있다.
큰아들 신병진(25세)은 동국대 산업공학과에 재학 중이며, 외동딸 신옥진(23세)은
출판사에 근무 중이고, 둘째 아들 병규(21세)는 홍익대 국문과에 재학 중이다.
그 누구보다도 이 땅의 밑바닥 인생들을 온몸으로 사랑했던 시인 신경림.
그는 결코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의 목소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울림이 크다.
그의 잔잔한 목소리는 강의 하류처럼 부드럽고 섬세하지만 결코 약하지 않다.
그의 글과 말속에서는 언제나 낮게 낮게 봄비가 내린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불의 앞에서는 불꽃이 튄다.
사람의 길이 아니면 그 무엇하고도 타협을 거부하는 시대의 양심.
그의 글을 읽고 있거나 그의 구성진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우리는 어느 사이 자신도 모르게 그의 글과 말의 봄비에 흠뻑 젖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대체 그의 그러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추측건대 그것은 그의 육화된 인간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가장 가까이 살을 맞대고 살아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외유내강의 힘 앞에서 약한 자는 힘을 얻고, 강한 자는 한없이 부드러워지게 마련인 것이다.
세상에서는 그의 글만큼 정직하고 성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아름다운 글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의 글 못지 않게 정직하고 성실하고 고운 것이 그의 인간성이다.
그를 만나본 사람이면 누구 나가 예외 없이 이 점을 공감할 줄 믿는다.
그만큼 그는 글과 사람됨의 차이가 없는 시인인 것이다.
그의 취미는 바둑두기와 여행이다.
여행이라고 하니까 좀 사치스런 느낌이 없지 않으나 여기서 말하는 그의 여행은 성격이 다른 것이다.
여가를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그의 여행은,
월 2-3회에 걸쳐 전국 경향 각처를 맨발로 떠돌며 그곳 밑바닥 인생들의 삶의 애환에
기꺼이 동참하는 살신으로서의 여행이다.
그의 바둑 실력은 대단치 않지만 바둑 광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바둑두기를 좋아한다.
그의 바둑 상대는 민족예술인총연합 사무총장이면서 화가인 김용태와 문학평론가이면서
영남대 독문과 교수인 염무웅 그리고 역시 평론가이면서 수원대 교수인 구중서 등인데,
그는 이들과 더러 만나 종종 내기 바둑을 두곤 한다.
그의 노래 솜씨는 그리 월등한 편은 못 된다.
민요회 회장을 수년간 역임한 이력에 비해 그의 민요 가창력은 그리 신통치가 못하다.
그러나 그는 민요를 자신의 몸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취흥이 올랐을 때 그가 즐겨 부르는 대중 가요는「고향역」과「삼포로 가는 길」등인데,
그의 애창곡이라서인지 이 노래들만큼을 2절까지 정확히 가사를 외고 있다.
그가 즐겨 만나는 이들로는 소설가 현기영, 김성동, 희곡작가 안종관, 문학평론가 유종호, 염무웅,
시인 민영, 황명걸, 조태일, 이시영, 송기원, 이은봉, 윤중호, 박나연, 이경철, 박철, 양문규 등이다.
또 문단 바깥으로는 그의 스승이자 현재 재야 변호사이신 정춘용,
그의 고교 동창이자 전 외교관 출신인 이근호, 현 대전지법원장 이재화 등이다.
생존경쟁에 시달린다는 핑계로 사람들이 하나같이 교언영색으로 자기 보신에 급급한 요즈음,
오십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십오 세 소년의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남아 있음은 행운을 넘어 큰 복이다.
그래서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누구보다 그를 좋아하고 따른다.
그가 있는 술자리는 언제나 흥겹고 즐겁다
(그는 중학교 시절 처음 배운 술로 지금까지 두주불사의 주량을 유지하고 있는 애주가이다).
자신의 슬픔과 고통에는 한없이 인색하면서 타인의 아픔과 신산은 자신의 일로 챙겨
함께 아파할 줄 아는 민중·민족 시인 신경림의 생애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

첫댓글 아~~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2024.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