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삼상17:32-49)
갈등
1. 오늘 본문은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에요.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크게 위협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블레셋이 일시에 쳐들어왔으면, 이스라엘 모두가 덤벼서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골리앗은 이렇게 싸우지 말자고 했어요. 대신에 8-9절,“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결판을 내자”고 했어요. 블레셋 군대의 대표인 골리앗과, 이스라엘 군대의 대표 한 명만 내보내라고요. 둘이 싸워서 골리앗이 이기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종이 되고, 이스라엘 대표가 골리앗을 이기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섬길 것이라고요. 우리가 이 싸움의 결과를 알고 있기에, 당시 상황의 긴박함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이 편견을 버리고 말씀에 집중해봅니다.
골리앗의 위협이 이스라엘을 곤란하게 했어요. 골리앗의 위협은 이스라엘 군대가 놀라고 두려워하게 했습니다. 심리전에서 이스라엘이 크게 위축되었어요. 이것을 알고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조롱했습니다. 10절,“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이렇게 모욕하면, 이스라엘의 대장군 중에서 한 명이 나가서 멋지게 싸워줘야 했어요.“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영화‘베테랑’에 나오는 경찰관 황정민의 말입니다. 재벌 3세와 싸우며, 경찰관들이 위축될 때 한 말이에요. 경찰이 돈은 없지만, 경찰다운 모습은 있어야 한다고 동료들을 격려한 말입니다. 황정민이 재벌 3세를 끝내 때려눕히고 체포하여, 경찰의 체면을 살려주는 통쾌한 영화입니다.
2. 이 통쾌함으로 관객 1,34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골리앗의 위협 앞에 황정민처럼 군인의 가오를 말하며, 나가는 이스라엘 사람이 한 명은 있었어야죠? 이런 가오가 있는 군인이 한 명도 없었어요. 오히려 두려워 떨었을 뿐입니다. 골리앗은 4절, 키가 여섯 규빗에 한 뼘이 더했습니다. 여섯 규빗은 270cm, 한 뼘은 약 13cm, 합하면 283cm입니다. 보통 사람보다 1m 이상이나 크니, 섣불리 골리앗을 향해 나가지 못하는 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갑옷이 57kg, 그가 들고 있는 창 날의 무게만 7kg)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앗 앞에 떨고 있을 때, 다윗이 전쟁터에 있는 형들을 면회하기 위해 아버지 심부름을 왔어요. 타이밍이 딱 맞았어요. 다윗이 형들을 면회하고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알았어요. 24절,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하고 도망하였어요.
이스라엘은 모두 두려워하는데, 다윗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25절,“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골리앗-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하게 하시리라.”사울 왕이 골리앗이 위협하고, 이 위협에 대항하는 군인이 없자 상금을 내걸었습니다.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공주를 아내로 주겠다고.(부마로 삼겠다) 또 그 집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해주겠다고 했어요. 상금은 탐이 나지만,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용기는 쉽지 않았어요. 이때 다윗이 전면에 나섭니다. 아무도 골리앗의 위협에 나서지 못했는데, 다윗은 어떻게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감히 나섰을까요? 부마가 되고 세금을 면하려는 상금이 탐이 나서 그랬을까요? 다윗이 허영심 속에서 만용을 부린 것인가요?
갈등 심화
3.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하자, 이 말이 사울 왕에게 들렸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불렀습니다. 사울 왕을 만나 다윗이 하는 말을 보세요. 32절,“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입니다.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만용처럼 보이는 말이에요. 사울 왕이 다윗의 말을 듣고 33절,“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다. 너는 어린 소년이고 그는 백전노장-베테랑이다.”사울 왕이 말렸지만, 다윗은 36절,“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하고 고집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이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버리지 않자, 자기 군복과 투구, 갑옷 등을 입히고 칼까지 군복 위에 차게 했습니다. 사울 왕의 군복이 다윗에게 맞지 않았어요. 다윗이 사울보다 키가 훨씬 작고, 아직 젊어서 허리 싸이즈도 맞지 않았어요.
다윗도 이런 복장이 익숙하지 못하니, 자기가 싸우던 방식으로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목자의 제구-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에게 나아갔습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보자, 웃음이 터졌습니다. 키도 작고 군복도 입지 못한 어린 소년이 나오니 그럴만했습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업신여기고,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를 가지고 나왔느냐고 하며 자기 신-다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까지 했습니다. 골리앗은,“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고 위협했어요. 다윗은 골리앗의 장대한 몸에도 위협받지 않았어요. 또 이스라엘 모두가 골리앗이 위협하는 말에 주눅이 들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골리앗과 대항하여 담대히 싸울 수 있었을까요?
실마리
4.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나가 싸우고자 한 것은 그의 허영심이나 만용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생애에는 허영심이나 만용을 찾아볼 수 없어요. 18:23에 다윗은,“왕의사위가 되는 것을 너희는 작은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다음에, 사울 왕은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았어요. 골리앗을 죽인 자에게 큰딸 메랍을 주기로 했으나 다른 남자(아드리엘)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고 하자, 다윗이 다시 공적을 세우면 미갈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 공적을 세우러 가서 다윗이 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는 여인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사울이 그를 시기)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허영심이나 만용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려고 했던 것은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고 조롱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를 36절,“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라고 표현했어요. 그에게서 이스라엘 군대는 수나 전력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다윗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군대의 수와 전력과 관계없이 이길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는 일찍이 성전-the Holy War, 거룩한 전쟁, 하나님의 전쟁-을 경험했어요. 다윗은 우상 신-다곤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말을 들을 때, 기가 막혔습니다. 그는 이 모욕을 들을 때 견딜 수가 없었어요. 골리앗과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앞에 주어진 최우선 순위였어요. 목숨을 잃더라도요.
5. 다윗에게는 만용이 아니라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가 성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34-35절, 다윗이 경험한 성전은 사람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짐승과 싸운 것이었어요. 그가 목동 생활을 했었는데, 광야에서 양 떼를 치다가 야생 동물들과 마주친 일들이 있었어요. 사자나 곰이 양 새끼를 물어가면, 다윗은 보기만 하지 않고 짐승을 따라가서 사자나 곰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냈습니다. 짐승들이 다윗을 해하려고 공격하면, 다윗이 짐승의 수염을 잡고 쳐죽인 적이 있었어요. 이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타잔이 아니었어요.
사자와 곰과 싸우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스스로 죽고자 하는 일이에요. 다윗은 왜 짐승들과 싸웠을까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고 지켜 주심-성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주실 때, 순간 사자나 곰의 급소를 찔러서 죽였습니다. 이제는 싸움의 대상이 짐승이 아니라 거인 골리앗이었어요. 다윗이 가진 자신감은 사자나 곰에 비해서 골리앗이 쉽게 보였습니다. 거인이라고는 하지만, 사자와 곰과 상대할 때보다는 쉬웠습니다. 36절,“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이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골리앗이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될 것입니다.”
6. 이런 경험과 자신감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군인들 모두가 골리앗 앞에서 떨고 두려워할 때 다윗은 홀로 담대하게 골리앗에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으로 나아가자, 골리앗은 다윗을 업신여기고 조롱했어요. 그때에도 다윗은 심리적으로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어요. 보통 군인 같으면, 오금이 저리고 벌벌 떨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45절,“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이 말은 성전을 경험한 사람만이 선포할 수 있는 말입니다. 다윗은 지금 성전이 시작됨을 감지했어요.
46절,“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내가 아닌 네가 오늘 공중의 새와 들짐승이 먹게 될 것이다. 이 일로 온 땅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할 것.”이라고 선언했어요. 다윗의 성전 개념은 명확했습니다. 47절,“여호와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음을 오늘 전쟁을 보는 이스라엘과 블레셋 군인들이 알게 될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의 손에 넘기실 것이다.”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 편에 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에요. 군대의 수나 힘으로 이기지 못해요. 다윗의 말대로, 골리앗은 다윗의 물매 돌에 맞아 쓰러졌어요.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골리앗의 목을 베었습니다.
복음 제시
7.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겉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의 싸움이지만, 내용을 보면 다곤 신과 하나님과의 전쟁입니다. 신들의 전쟁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잘 알고,“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선언했어요. 전쟁사에서 무기로는 이길 수 없는 전쟁들이 실제로 있었어요. 대표적인 것이 6.25(한국 전쟁)입니다. 이 말은 이 전쟁에 참전했던 구 소련 장군의 증언이었어요. 미국이 베트남과 아프카니스탄에서 철수한 것도 그렇고요.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쉽게 이기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기로만 전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도 그랬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잘 알았고, 알기만 하지 않고 실제 승리를 누렸어요. 전쟁의 승패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전세가 열세라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거룩한 전쟁-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치하시는 증거에요.
다윗 시대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다윗은 목동생활을 할 때부터, 골리앗과의 싸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것과 같이, 다윗도 평생 한 번도 전쟁에 진 적이 없습니다. 그는 매번 성전을 경험했어요. 다윗의 승리는 곧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였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편에 있는 자들이 승리합니다. 미국 남북전쟁이 한참 진행 중에, 링컨 대통령의 참모가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남군의 편입니까? 우리 북군의 편입니까? 링컨은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 되면 이긴다고 했어요. 링컨은 성경을 통해서 성전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그는 온 국민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1863년 4월 30일 목요일에) 링컨이 하나님의 편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링컨-북군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기대
8. 우리 인생 여정에는 우리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항상 전쟁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이순신 장군처럼 모든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전쟁은 다윗의 선언처럼,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보여준 본보기를 보면서, 우리도 항상 전쟁을 준비하고, 훈련하며 살 수 있어야 해요. 우리 교회는 선교지 신학대학 순회사역을 하면서 영적 전쟁을 경험해요. 이번에 탄자니아에서도 그랬습니다. 낮에는 신학교육(역사 신학-교회사, 일곱 주제를 강의-고대 교회사부터 현대교회사까지)을 하고, 저녁에는 부흥회를 했어요. 나흘 밤낮을요. 그리고 주말과 주일에는 교회 부흥회를 했습니다. 신학교 부흥회를 하든지 교회 부흥회를 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세요. 간증이 늘 나옵니다. 육신의 질병만이 아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나가지 않던 귀신이 나타나요.
자연스럽게 귀신과 싸우는 영적 전쟁을 경험을 합니다. 2012년부터 반복되는 일이에요. 이 일 때문에, 제가 선교지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순종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 전쟁은 아무나 할 수 없어요. 아무나 골리앗에게 나갈 수 없듯이요. 성전을 경험한 다윗만이 골리앗에게 나가듯이, 우리 교회는 성전을 경험하고 사탄의 권세와 싸워 이기는 교회입니다. 이런 영적 전쟁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성결하게 살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와 신뢰를 유지해야 합니다. 선교지에 해마다 가면서, 이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어요. 엄청난 유익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영들과의 싸움-영적인 전쟁입니다.(엡6:20) 다 같이 일어나서 찬송하며 다윗처럼 오늘 우리도 승리하며 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슬픈 마음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