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선택한 이유>
1년 전, 부산에 있는 어느 한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서점에 가족과 함께 방문했던 때였다. 건물의 모습에 신기해하면서도, 읽을 책을 찾던 나는 어렴풋이 이 책을 집고 몇 줄 읽고 있었다. 사실, 난 이런 장르의 책을 읽는 것이 처음이라, 이 책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2180년부터 시작하는 이 소설은 로봇 공학과 우주선 개발이 발달하며 일어난 문제들과 그것들의 나비 효과로 일어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품고 있었다. 워낙 내가 읽었던 소설들과는 결이 달랐던지라 이번에 이런 기회로 이 책에 대해 소개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질문 1>
질문을 하기 전에, 세계관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해야겠다. 우주여행이 유행하던 시절, 목성의 행성인 유로파에 방문한 사람들이 의문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그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5개월 정도로 매우 길었고 전조 증상도 없었기에 예방할 방법이 없었고,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못하는 35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머무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 히말라야공동체의 머리는 사회 이슈 등을 토론하고 더 나은 결과와 정책을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사람들을 1단계에서 7단계 시민으로 나눈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그들이 토론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커졌으며, 실제 투표의 수도 1단계가 1표면 2단계는 2표, 5단계는 100표...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직 다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공동체를 철저한 민주 사회라고 말한다.
질문:히말라야공동체의 사회 질서는 과연 옳은 것일까? 동등한 발언 기회가 주어진다면 발언의 무게가 달라도 괜찮은 것일까?
<대답 1>
겉으로 보기에는, 이 히말라야공동체의 사회 질서는 정돈되고, 민주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철저한 민주 사회로서, 누구라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할 수 있고, 모든 발언이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열심히 토론에 참여하고 사회에 기여한다면, 단계도 올라가서 더욱더 공동체를 위해 힘쓸 수 있다. 참으로 좋은 체제지 않은가? 이 공동체의 사회 질서는 가장 민주적인 공동체에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모순이 발생하는 공동체이다. 취지가 좋았든 말든, 실제로 작용하는 이 '단계'는 공동체의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나누며, 내려갈수록 환경의 열악함과, 올라갈수록 사생활의 침해를 '보장'하는 멋진 질서이다. 실제로, 글 중반부에 나오는 사건에서도 계급 체계가 사회의 악영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저 계급자가 고 계급자를 살해하는 사건으로.
<질문 2>
주인공의 부모, 김명준과 반혜민은 PAP(Peace for All People)이라는, 지금으로 따지면 자선단체에 속해 있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주로 빈민촌 5구역에서 살고 있는 티베트인들을 돕고, 저지대 사람들의 인권을 챙기는 일이었다. 그와 달리 정부는 강경한 방식으로 국경에 들어오는 저지대 사람들을 제압, 여의찮을 시 사살까지 하고 있다. 한편, 이런 PAP에 반대하는 히말라야 퍼스트라는 단체는 PAP 본사에 테러를 저지른다. 그러나, 이 단체의 대부분의 사람은 5구역 티베트 출신 주민들이었다.
질문:과연 히말라야 퍼스트가 한 행동은 옳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유는?
<대답 2>
사회통념상 테러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가 맞다. 여기서도 그랬다. 하지만, 정부와 시민들은 오히려 히말라야 퍼스트를 두둔했으며, 대부분의 사람이 PAP를 비난했다. 그 이유는 히말라야 공동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이다. 히말라야 공동체는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구상에서도 매우 안전한 곳으로, 3500m 이상의 티베트고원, 히말라야산맥 옆에 자리를 잡고 있다. 먼저 이주했던 초기의 히말라야 공동체와 원주민 티베트인들은, 밀려오는 저지대인 들을 막기 위해 강경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그 방식은 단연코 비윤리적이었지만, 공동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5구역의 티베트 사람들은 히말라야 공동체의 제일 낮은 곳에 있다. 저지대 사람들이 올라오는 고충을 가장 앞에서 느껴야 했던 그들에게, 알량한 인권을 운운하며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이상만을 추구했던 PAP는, 결코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특수한 환경 속에서, 절대 정당하지 않았던 이 행동은, 옳은 것으로 공동체에 인정받았다.
<질문 3>
국민 투표율이 50%가 넘는 안건은, 공동체 제일 꼭대기인 최고위원회가 맡는다. 얼마 전 최고위원회로 승격된 주인공 선영은 그동안은 열람하지 못했던 감성 정보라는 것에 열람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AI의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쓸데없는 감성팔이를 걸러낸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감성 정보는 그녀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랐다. 그 정보는 탁아소에 아이들을 맡긴 죄 없는 부모들을 죽인 미친 연쇄살인범을, 불우한 어린 시절과 PTSD를 가진 어린아이의 마지막 발악으로 보게 해주었다. 그 감성 정보가 옳든 옳지 않든, 실제로 있던 사실을 이성에 기반한 투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은폐한다는 것은 옳은 것일까?
<대답 3>
히말라야 공동체의 대부분 사람은 그것이 공정한 투표를 방해하기 때문에, 이성을 지향하는 공동체로서 감성 정보를 제한하는 것을 지지한다. 그러나, 실제로 책에 보인 감성 정보는 그러한 것과는 결이 달랐다. 쓰잘머리 없는 감성팔이 따위가 아닌, 사람의 윤리와 정상참작과 관련된 문제였다. 사람들이 감정에 격양되어 투표하게 되는 원동력이 아니다. 현실이었으면 판결을 바꿀 수도 있었던 여지였다. 그리고 애초에, 공정한 판결을 위해 사실을 은폐한다니? 난 그런 어불성설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내 감상은 이렇다.
나의 히말라야는 그런 이야기이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서마저 각자만의 방식으로 희망을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 책을 얼핏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 글과 해석을 보고 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우선, 이 소설의 간단한 배경부터 설명하고 천천히 이야기하자. 22세기, 발전된 미래.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서 건너온 펜타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는 위기를 겪었고, 현재 지구상에서 살 수 있는 곳은 히말라야산맥-티베트고원 부근의 히말라야 공동체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속에서 히말라야 공동체의 최고위층은 사회의 원활한 문제 해결을 위해 이슈에 관해 토론하는 시스템과, 토론을 얼마나 잘하냐에 따라 계급을 분류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일이 있고도 몇십년 후에, 우리의 주인공 선영은 최고위원으로 승격되었고, 각자의 이념이 충돌하는 이곳에서 나의 히말라야를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책의 내용은 대충 요약하면 이 정도이지만,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던 여러 사건, 배경들도 많다. 통일한국과 일본, 그것들을 둘러싼 미국, 중국의 갈등,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 사회의 자연적인 계급 발생, 차별(인종이든 뭐든지 간에), 화성인 문제 등 말할 게 어마어마하다. 사실 이 수많은 문제는 다섯 글자로 표현할 수 있다. 이념의 문제. 넓은 시각에서 보면 이 책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질서가 먼저냐, 인권이 먼저냐로 싸우고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행동이 공동체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나의 히말라야인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구절 중 하나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히말라야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생물 무기 공격이 아니라 더한 공격이라도 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뭐지요? '피에이피'요? 당신들은 저지대 사람들도 아니란 말입니다. 이 공동체에서 태어나 이 공동체가 제공하는 모든 혜택을 누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저지대인 들과 내통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 공동체를 배신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히말라야 공동체, 이 소설 속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객관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PAP는 당연히 옳은 것이다. 그들이 구조하는 저지대인 들도 공동체의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니까. 이들을 벌레 다루듯이 억압하고 사살하는 공동체가 악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히말라야 공동체 속 사람이었다면? 히말라야 공동체에 있는 모든 혜택을 누리고, 이 공동체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의 맥락 상황을 이해하며, 끊임없이 밀려오는 저지대인 들의 수요를 좀비 떼가 오는 것처럼 막아내야 했던 당시의 사람이었다면, 내가 정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당장에도 밀고 들어오려고 하는 그들이, 우리의 시스템은 개나 줘버린 듯이 밀려오는 그들이 애초에 같은 인격체로 보이긴 할까? 그런 자들을 옹호하는 PAP를 헛된 희망과 인권을 찾는 머저리들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두 관점 다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기에 나는 쉽게 말을 못 하겠다. 주인공 선영처럼 중간에서 갈등하고 조금 더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부분에서 이 책의 평가가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SF 소설이 아니다. 판타지도 아니다. 우주여행, 바이러스, 얼핏 보면 평범한 SF소설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것들은 간단한 배경일 뿐, 소설의 중심은 아까 말했던 이념의 차이이다. 그리고 사실, 이 책에 있는 수많은 사건, 해프닝, 문제들...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 보면 지금 21세기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까 인용한 그 말이 현실의 이념이 그러한 것처럼, 쉽게 납득가지도, 거부감이 생기지도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이야기 때문에 마음 놓고 소설처럼 편히 볼 수 없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다가도 뜨끔하고 찔리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생각할 부분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런데도,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마저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각자만의 희망으로 나의 히말라야를 지키고자 한다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평가를 하자면, 이 책은 내가 원했던 재미있는 공상 과학 소설은 아니었지만, 현실의 갈등과 이념의 차이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좋은 소설이었다.
오랜만에 책을 읽어서 여기 한 번 와봤다. 그 때는 한 주마다 글을 뽑아서 이렇게 잘하진 못했던 거 같은데 오랜만에 제대로 써보니까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