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 잠깐 네이버를 비롯한 영화 관련 게시판에서 만나본 정보들은
관람하고 나오는 내겐 그닥 와닿지 않았다.
얼핏 기억나는대로 읊어보자면 홍상수의 변신이니
자신이 수컷 동물임을 부끄러웠다느니 하는 것들 말이다.
그저 문을 열고 나오니 조금 눈이 부셨고
또 가슴 한 켠이 조금 먹먹했다.
이래서 싫다. 홍상수 영화는.
말은 그러면서도 그 점 때문에 굳이 찾아보는 것 또한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홍상수 영화라는데는 동의한다.
15세 관람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를 향해 무섭게 돌진하고 있는 나름 섬세하고 여린 조카 녀석에게 이토록
직설적이고 우악스럽게 인간의 본질을 말하려드는 영화를 보여주고픈 생각은 들지 않는다.
18세미만 영화에서 정사신만 뺀다고 해서 15세 관람가가 된다고 생각하는
영등위의 심플한 사고방식에 경의를 표한다.
영화에 대한 지식이 별반 없는 나로서 가장 먼저 언급할 점.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어요."
김태우의 어눌한 목소리와 조금 억울해 뵈는 표정은 언제나 즐겁고
생뚱맞은 익살에서 능청을 오가는 김승우의 캐릭터도 변함없다.
송선미의 동선은 영화의 흐름을 가로지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약간은 넓적하고 퉁실해진 고현정의 뚱실맞은 연기가 압권이다. 할 수 없다.
홍상수의 힘, 고현정의 발견에도 찬성 한 표.
문제는 내용인데.. 굳이 감상평에 내용을 집어넣는 우를 범하지 않아도
네이버와 그의 친구들이 스틸컷까지 삽입해가며 상세히 가르쳐 줄 것이고,
먹먹한 느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심기가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 역시 수컷이다 보니 아무리 동행한 이성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매한 동족들(김승우와 김태우)의 행태를 보며 마음 편할리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뻔하지만 충분히 이해해 줄 수도 있는 동족의 행위에
때론 안타깝고 걱정스런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런고로 일단 성행위에 따른 그 전과 후의 남자의 변화라는데는 반대 한 표.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단지 내가 느낀 것은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것. 존재 자체가 쓸쓸한 것이라는 것이다.
성행위는 그 사실(진실이든, 가설이든, 한낱 특정 인간들의 사고 방식이든)을 잊기 위한
인간의 본능적인 몸부림 중 하나의 방식에 다름아니고, 그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나면
누구든 이해받을 수 없는 혼자라는 것이다. 그건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쓸쓸함에 남자는 사막같은 바닷가 길을 걷다 나무 앞에 엎어져 흐느껴 울기도 하고,
잡풀 우거진 저녁산을 헤매는 여자의 무섬증을 가시게하는 노래마저도 그치게 하는 것이다.
애초에 남자의 수작이나, 여자의 감정, 혹은 엇갈린 시선에 초점을 둔게 아닌 듯 싶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해변은 내내 사막처럼 느껴졌다.
그런 느낌들이 먹먹함의 원흉이지 않았나싶다.
2시간 남짓. 영화를 봤다기보단 좁고 눅눅한 술집에 있다 나온 느낌이었다.
나뒹구는 병에서 쏟아지는 술냄새와 검지와 중지를 누렇게 물들인 니코틴 냄새.
어제,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살아있는게 쪽 팔린거고, 쪽 팔려야 살 수 있다."는
대사를 듣고 한참 멍하더니, 오늘은 영화 내내 삼각형에. 육각형을 그려가며
본질과 이해에 대한 설명(결국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
이해라는 의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그 대상이 타인이든, 자신이든간에.)까지
듣고난 까닭에 그렇게 먹먹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세상은 어쩌면 그렇게 각박하고 모진 곳일지도 모른다.
어쩌면의 농도는 각자 생각해 볼 일이다. 하지만 그 농도가 어떻든간에
이렇게 모질고 독하게 인간의 본질에 대해 건드려보려는 영화를
일껏 조카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것도 게으름 지상주의자인 내가.
대신 커플에게는 권하고 싶다.
말리는게 보통이지 싶기도한데 곰곰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어차피 나는 솔로니까.ㅋㅋ
인간에 대한. 좀 풀어서 말하자면 인간 관계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기에 커플에게 권한다.
연인이란게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불안하고 위험한 관계가 아닐까 싶어서 굳이 커플에게 권했는데
뭐. 친구와 어깨동무하고 가서 보든가 혼자 가서 보든가 그건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여하튼 총평은 높게 주고 싶은 영화였다.
대체적으로 좀 지루하다는 평이 많은 것 같던데 개인적으로 괜찮았던 것 같다.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약간 글루미해진다는 부작용은 있지만.
밥도 먹기 귀찮아져서 그냥 들어오려다가 불법유턴해서 칼국수 한 그릇 먹었더니 왠걸.
먹먹한 기분 싹 날아가더이다.^^
각설탕, 천하장사 마돈나, 해변의 여인까지 세 편 모두 괜찮은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허접 영화평이었습니다.
꾸벅.
첫댓글 짝짝짝~ 우앙 길고 구체적으로 적으셨네요~ 님 감상평에 별 ★★★★★ 드리고 싶음 ^^ 앞으로도 영화 보시고 감상평 부탁드립니다~ 각설탕 보고 싶었는데~ 각설탕 평도 좀 올려주세요~~ ^&^
마치 영화를 직접 본 듯한 해설...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