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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건설합시다 원문보기 글쓴이: heaven
2007.02.04
2007.12.16
2007.05.01
2007.01.27
조중동, '구원파' 도배.. '박근혜 구하기' 시동 거나
유씨가 정치권 인맥을 갖게 된 것은 출신지역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41년 일본 교토에서 출생한 유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대구지역에 정착했다. 구원파의 뿌리도 유씨의 장인인 권신찬 목사가 대구에 만든 칠성예배당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유씨의 이름은 1979년부터 등장한다. 종이비누·완구류를 만드는 삼우트레이딩의 대표 직함이다. 주로 불우이웃 돕기에 유씨가 얼마를 쾌척했다는 단신 기사다. 눈에 띄는 기사는 1979년 9월, 유씨가 ‘공장새마을운동’을 주제로 한 기업경영개발연구원에서 개최한 세미나의 강사진으로 참여했다는 기사다. 정동섭 소장은 “1980년대 초반 한국녹색회를 만들면서 ‘자연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전에는 ‘자연보호가 새마을운동이다’라는 발언을 자주 했었다”고 밝혔다.
유씨가 ‘새마을운동’을 강조한 1970년대 후반은 박근혜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 사후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할 시기다. 당시 그는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여성봉사단을 이끌면서 새마을운동의 후속 운동인 새마음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유씨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은 1980년대다. 전 구원파 관계자는 “1980년대 초반은 유씨가 설교에서 의사나 교수, 연예인, 정부 고관, 부유층 등 사회지도층에 대한 ‘구원’을 강조하던 시기”라며 “언론에 발명가, 자선사업가로 보도가 되면 그것을 발판으로 다시 사회지도층 특히 TK 출신 정·관계 인사들을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연예계나 방송계 인맥과 관련, 5월 2일 기자회견에서 탈퇴자 김씨는 “구원파 신도로 알려진 탤런트 전양자씨 이외에도 MBC 아나운서 김모씨, SBS 작가 송모씨, 기타 유명 드라마 작가도 안성집회에서 자주 봤다”고 주장했다.
유씨의 활동이 정치권과 연계되는 데는 유씨가 1980년대 초반 한국기독교멸공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전국 순회 친정부 집회를 연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의 전 구원파 관계자는 “정통성이 부족한 신군부 실세에게 유씨가 반공과 사회정화, 안정 등 새정부 기조에 적극 부응하는 성격의 집회를 여는 동시에 자선사업가로 알려진 것, 출신지역 등이 어필했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유씨는 1984년께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목사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사장님이라고 불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181626222&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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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회는 순수한 자연보호 단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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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 녹색회 회장의 박준홍은 박근혜의 사촌 오빠 입니다. 유병언 측근이 녹색회에 대거 포진해 있다는 정황을 보면 유병언이 자금책인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