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드로전서 2:4-10
나의 보배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쓰고 버리는 시대'입니다.
이것은 소비만이 아닙니다.
요즘은 지식과 정보의 가치 유효기간이
아주 짧아졌습니다.
유행은 물론이고 예술 사조와 경향까지도
급속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 영속성의 미덕이 무너지고
단순하고 저급한 일시성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유행어의 교체도 빨라지고,
인스턴트형 명성도
잠깐 사이에 오르내립니다.
심지어 베스트셀러조차
한 달 이상 가는 일이 드물 정도입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집니다.
사람들은 인터넷과는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지만,
사이버 공간 어느 한 곳에서도
편안하게 머물지를 못합니다.
많은 사람은 유튜브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기도 하지요.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영상을 보며
욕설을 내뱉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를 볼 때 세상 것들은
인간에게 참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이제 사람들의 내면에는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사라졌습니다.
단지 형이하학적인 삶에
몰두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초래된 고독의 큰 원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미 인생의 정답이 무엇인지를 알고
진지하고 심도 있게 살아갑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그냥 쓰고 버리는 분이
아닙니다.
한 시대에 유행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분입니다.
히브리서 13:8에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것이 본문 4-8절에 나오지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려죽으신 예수님을
택하셔서 보배로운 산 돌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건축자가 버린
쓸모없는 돌과 같았으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아름다운 모퉁이 돌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도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령한 집이 되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배가 되시고
모퉁이 돌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훗날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버린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산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부끄러운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참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아름답고
향기 나는 인생을 살게 해 주십니다.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현대 사회가
갈등과 혼란에 빠지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모든 현대인이 너무나 깊게 이기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현대인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수용지향적 성격의 인간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만 찾아다닙니다.
돈이나, 권력에 쉽게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둘째, 탈취 지향적 성격의 인간이 있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불법을 행해서라도
꼭 갖고 마는 사람입니다.
셋째, 저장 지향적 성격의 인간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평생 재물을 모으는 일에
전념하면서도
도무지 물질을 쓸 줄 모릅니다.
넷째, 시장 지향적 성격의 인간이 있습니다.
이런 인간은 무슨 일이든지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며 삽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손해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애사 지향적 성격의 인간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으로
죽기 전에 관광, 스포츠, 성적 쾌락,
오락이나 실컷 즐겨 보자는 태도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나의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영원한 천국을 지향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일에 올인하지 않고
주님의 손을 붙잡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주님께 영광 올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저는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갑니다.
지난 주에도 많이 바빴습니다.
노방 전도를 하느라 여기저기 장소를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습니다.
길거리에서, 전철에서, 음식점에서,
병원에서, 자건거를 타고 다니며
부지런히 전도했습니다.
벌써 몇 년째 이렇게 전도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가 귀찮지를 않습니다.
부담이 되지도 않습니다.
쉽게 싫증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일이기 때문에
가장 큰 보람이 있습니다.
제 전도 글을 페이스북과 단톡방에서
3만 명 이상이 보고 있습니다.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이 전도사역을 통해
한국 교회에 전도의 불이
재점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그런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번 주까지 전도하면 정확하게
700회째 노방 전도를 하게 되고
전도 후기를 공유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천국에 갈 때까지
이런 전도 생활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전도가 예배보다 어렵고,
기도보다 힘이 들고, 다른 어떤 것보다
부담이 되지만
다른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은 전도 사랑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옥에 갈 영혼을 천국으로 이끌어주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내년 5월 수원 노회 목회자 부부 수련회가
일본에서 있습니다.
저는 이때 일본인 전도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일본어 전도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전도문을 번역해 주실 분은
이또 히로에 라는 일본 여성인데
10년이 넘게 한국에서 살고 있고
하나님께서
이 분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번역비는 제 여동생 집사가
지불하기로 했고요.
여동생은 오래 전 목사님들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가 심장병을 고침 받는
은혜를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어 전도문을 받게 되면
몇 개월 동안 부지런히 암기해야 합니다.
특히 일본어 발음을
완벽히 익혀야 합니다.
영어 전도문도 외워서
외국인을 전도하고 있으니까
일본어 전도문도 노력만 하면
충분히 숙지할 수가 있겠지요.
일본에 가서도 예수 복음의 향기를
뿌리고 와야죠.
그런데 조금 우스운 이야기가 있답니다.
일본에서 가장 마음이 약한
여자 이름이 '우짜꼬'랍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도
우짜꼬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우짜꼬 우짜꼬 하면서
갈등과 번민이 가득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전도해야 하는데 우짜꼬.”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만 의지하고 용감하게 전도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도
보배 중의 보배이신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우리 교회 부흥과는 상관이 없어도
좋습니다.
전도를 통해서 불신자들에게
복음만 듣게 해 주면 됩니다.
전도는 아무리 많이 해도
후회가 없습니다.
언제나 만족하고 즐겁습니다.
제 아내가 앞으로
세 곳의 개척 교회에 가서
버스킹 전도 찬양을 해 주게 되었습니다.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요?
제게 감사의 글까지 보내셨더군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제가 췌장암에 걸리기 전
오랜 세월 개척 교회를 순회하며
노방 전도를 해 주었는데요.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시고
그 교회들의 요청에 의해
다시 재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참으로 값진 존재들이 됩니다.
이것이 9-10절에 나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소유가 된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빛의 세계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긍휼을 얻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을 보배 같은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도 보배로
삼으셨습니다.
요셉도 보배로 삼으셨습니다.
다니엘도 보배로 삼으셨습니다.
에스더도 보배로 삼으셨습니다.
베드로도 보배로 삼으셨습니다.
바울도 보배로 삼으셨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도 보배로 삼으셨습니다.
시편 33:12에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우리 모두 복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인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자녀도 보배와 같은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보배와 같은 자녀가 되어
큰 신앙의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보배와 같은 자녀가 되어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배 인생이 되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서양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 문제는
그동안 받은 축복을
세어 보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감사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감사를 깨닫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존재가 누구입니까?
마귀입니다.
우리를 저주의 세상으로 끌고 가려는
마귀 때문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서
감사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나의 보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
얼마나 귀하고 귀한 일입니까?
세상의 헛된 것에 욕망을 품고
살아가지 마십시오.
보배와 같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과 위로가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외국에서 일어난 사건이
신문 기사로 실렸습니다.
아주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남편도 잘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녀 셋을 태우고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트럭과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남편과 두 자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아내와 갓난 아기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했던 가정에 생각지 않았던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사고 후 아내는 고통 중에
신음하듯이 말했습니다.
"내 인생이 바뀌는데
단 5초도 걸리지 않았어요."
여러분, 이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지금 행복해도 앞으로 행복하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마가복음 8:36에 말씀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예수님은 온 천하보다 귀하신 분입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를 보호하시는 예수님 안에 있어야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세상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참 만족과 기쁨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화 대학을 다니던 아가씨가
23세 나이에 자동차 7중 추돌 사고로
큰 화를 입었습니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온몸이
숯처럼 까맣게 되었습니다.
매일 피부가 뒤집히고 진물이
뒤덮이는 고통으로
서른 번 넘는 수술과 재활을 거듭했습니다.
아마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지선 양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고백이 감동적입니다.
"희망의 꽃을 피울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희망이 있습니다.”
이지선 양은 인생을 덤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람에게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온몸에 흉터를 입고 있음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 특유의 밝음과
사랑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발산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후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지금은 한동대학교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요.
누구든지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환경을 초월하여 가장 가치 있고,
가장 복되고,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값지고 보람 있는 인생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의 전도 편지를 읽고 마치겠습니다.
성도님들도 이 글을 지인들에게 보내셔서
전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한때는 세상일로 많이도 설레었죠.
공부하는 일,
돈 버는 일,
자식 혼인시키는 일,
여행 가는 일,
인생의 향기가 진한 듯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만 못합니다.
대신 온갖 일로 인한 가슴앓이가
우리를 답답하게 합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인생의 전성기.
더는 내 가슴이 뛰지도 않습니다.
벌써 어두움이 깔리는 저녁이 되었네요.
이젠 예수 별빛 아래로 들어가서
전혀 몰랐던 새로운 기쁨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 곁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속히 구원해 주시려고요.
이 세상은 저만치 가고
저 세상은 이만치 다가옵니다.
그래서 세월의 무상함이
더 허무의 늪에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 인생을
젊음의 계절로 되돌려놓으십니다.
백만송이 장미꽃을 안겨 주심으로
내 얼굴에 미소가 살아나게 해 주십니다.
지금이 예전보다 더 즐거우니까요.
지금이 더 싱싱하고 힘이 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