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떡국 밥상에서 노인들의 삶의 지혜를 듣는다. 나이 먹기 의미가 새삼 다가온다. 성장기를 넘어서면 누구나 노화 여정에 들어선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데도 나이 먹기 거부를 뜻하는 ‘안티에이징’ 상혼이 넘쳐난다. 젊어지기 찬가를 부르는 나이 거꾸로 먹기 추세가 아무리 강력해도 노인의 고뇌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환갑잔치를 사라지게 한 수명 연장은 축복만은 아닌 빈부격차 문제로 아프게 터져 나온다.
청마해 설날, 망백의 노인 독거사 소식이 들려온다. 자녀가 있어도 폐지를 주우며 홀로 살아온 노인의 아픈 삶이 뉴스로 뜬다. 지난해 10월 어느 날, 트렌치코트에 영자신문 뭉치를 들고 노숙하다 세상을 떠난 노인의 소식도 오버랩된다. 특이한 행색으로 한국 청춘들에게 ‘맥도날드 할머니’로 불리웠지만, 유일한 친구는 외국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인터넷을 달구는 뉴스로 떠올랐다. 정이 메마른 사회에서 외국인의 정이 부각된 것일까?
뉴욕 햄버거 매장에서 한인 노인들이 쫓겨나기도
빈곤한 노숙자가 아니어도 한국의 노인들은 머물 곳이 없어 해외뉴스거리로 뜬다. 이를테면 지난 1월 중순, 뉴욕 한인타운에 위치한 햄버거 매장에서 한인 노인들이 경찰에게 쫓겨나는 소동극이 벌어졌다. 커피값도 저렴하고 앉아있기도 좋아 노인들이 사랑방처럼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한인사회에서 인종, 노인차별 항의했고, 결국 한국과 미국의 문화차이를 인정하며 화해로 일단락지었다. 오래 매장에 머무는 한인 노인들을 쫓아내려고 경찰을 출동시키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발표됐다.
노인들이 머물 곳이 없어 고단한 것은 한국 안이건 밖이건 닮은꼴이다. 아이도 노인도 모두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는 가족해결주의는 농경 중심 대가족제가 해체되어도 여전히 현재를 사는 한국인의 생활 습속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에서도 가족해결주의를 둘러싼 고뇌가 가득 묻어나온다. 자전적 다큐멘터리 <마이 플레이스>(박문칠)는 미혼모 동생의 존재를 계기로 가족이란 공동체와 함께 그리고 따로 자신의 자리를 모색하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가족중심에 헌신하는 윗세대, 또 다른 가족을 가지 치는 결혼 중심주의를 벗어난 자녀 세대의 갈등과 차이가 담담하게 표현된다.
자식들 용돈으로 살아가는 노부부와 2남1녀의 삶을 응시하는 <만찬>(김동현)에서는 가족을 지키려고 만신창이가 돼가는 장남의 책임과 아픔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이혼과 실직으로 역경에 처한 자녀세대, 대리운전을 하다가 우발적인 살인사건에 말려들어도 형제간의 우애로 풀어나가려는 가족내 비밀과 거짓말 … 식구끼리 오붓하게 밥상을 나누는 제목 ‘만찬’은 회고적 이미지에 집착하는 현실적 아픔의 반어법처럼 보인다.
노인을 위한 공동체는 불가능한가?
65세 미만 생산가능 인구가 부양해야 할 노인의 수가 40여 년간 3배 증가할 것이란 예상치가 발표되었다(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월 1일 발표). 이런 수치는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새해 특집 TV다큐 <늙어가는 지구>에 따르면, 급격한 고령화는 세계적 추세이다. 선진국 기준, 60세 이상 인구 비율은 1999년 10%에서 2050년에는 22%로 2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라고 밝히고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코엔 형제)가 노인 보안관의 무력함을 보여주듯이, 이미 세상은 노인을 위하지 않는다. 유럽에선 더 싼 나라에 가서 섬김을 받는 양로 이민 전략도 성행하고 있다. 빈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대가족이 해체된 시대를 살면서, 그 시절 형성된 가족중심주의를 넘어선 노인 중심 공동체 창조가 절실하다. 다큐멘터리 <록큰롤 인생>(스티븐 워커)가 보여주듯이 인생의 마지막 단계를 자유롭고 즐겁게 살기, 혈연가족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노인의 지혜와 베품을 나누는 인생길 가기, 아랫세대에게 봉사하고 같은 세대끼리 우애를 즐기기 등. 그런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노인 공동체문화가 발아하기를, 복지를 내건 나라에서 희망한다. |
첫댓글 현재 서울대생의 과반수 이상이 '자식들에게 부모 부양의 의무가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긴 받기만 하고 자란,,,누구에게 나눠주며 산다는 걸 배워본 일이 별로 없는 아이들이 대다수 일테니,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겠지만.../그래도 나름으로는 나눔을 가르치며 성당 마당에서 키워온 딸아이를 한 5년 서울에 보냈더니,,,아이와의 대화에서도 가끔은 '상류사회의 대한 마력'에 기우는 듯한 목소리가 들릴 때가 있어 속으로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 사회가 노인문제를 어떻게 헤쳐갈 수 있을지 많이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