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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강원매거진 2005년 1월호 기고문)홍 다 구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커다란 백화점 현관을 들어섰다. 봄이 완연하게 무르익은 주말이라 그런지 백화점 안팎에는 각양각색의 화사한 옷차림을 한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 날 또한 내 사무실 직원의 결혼식이 인근 교회에서 거행되는 날이라 그런지 화려한 차림새의 젊은이들이 부쩍 눈에 띄었다. 나 역시 정장에 꽃무늬 넥타이를 고쳐 매고 직원들과 무리를 지어 결혼선물 준비 차 백화점에 들르게 된 것이다.
선물용품 코너에서 화려한 색깔로 단장된 원앙 한 쌍과 은색 도금의 잉꼬 한 쌍으로 만들어진 예물을 사들고 선물포장 코너로 향했다. 그 예물을 사게 된 이유는 오늘 결혼하는 한 쌍이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동료들의 뜻을 따라 한참을 고른 끝에 정하게 된 것이다. 여느 결혼식이든 주례사에서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평생을 두고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덕목의 말씀을 빠뜨리지 않는 것이 지금의 세상인지라 오늘 선물 하나는 참으로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형님! 저는 정말 결혼하기 싫어요. 어떻게 하죠? 도망갈 수도 없고…”
하면서 눈물 글썽이며 다가온 신랑은 내게 뭔가 어떻게 좀 해달라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교회 현관문에 기대며 애원했다. 하기야 동갑내기 두 사람이 나이 스물하나에 동거를 시작하여 두 해가 지나는 동안 행복이라는 단물 다 빨아 먹고 이제 지겨운 권태기로 들어선 것이리라.
“이보게! 나도 아직 결혼을 안했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결혼이란 언젠가는 꼭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일세. 아무리 지금의 신부가 싫증난다 하더라도 지난 2년간 동거생활해온 책임은 져야할 것 아닌가? 지금 뱃속에 아이도 들어섰다는데 그 아이는 누가 책임지고? 그러니 마음 단단히 고쳐먹고 빨리 신랑입장 준비나 하게.”
정말이지 나는 결혼식이 시작되어 끝나는 순간까지 숨도 제대로 쉬질 못했다. 행여 결혼식 도중 신랑이 뛰쳐나가는 일이라도 벌어질까봐 잔뜩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 사실 결혼식 도중에 웬 남자가 뛰어들어 신부를 낚아채간다든지 아니면 신랑이 갑자기 뛰쳐나가 결혼식이 무산되는 그런 영화를 가끔 봐온 터인지라 정말이지 영화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별 탈 없이 결혼식을 마치자 그들의 앞날이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의 앞날을 위하여 무얼 어찌 할 수가 있으랴? 그저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잘 살아주길 마음속으로 바랄 뿐이었다. 피로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직원들은 내 등을 떠밀며 백화점으로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결혼예물을 사가지고 포장코너에 갔을 때이다. 영화배우 김지미처럼 예쁘게 생긴 한 아가씨가 예물포장을 하는데 초보도 그런 완벽한 초보가 없었다. 포장지를 뒤집어서 싸질 않나, 테이프하나 제대로 붙이길 하나, 개발 새발 포장지를 아무렇게 싼 예물상자에 마지막으로 꽃 모양의 리본을 하나 테이프로 떠억 붙이더니 돈 지불하고 가져가란다. 나 뿐 아니라 포장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직원들도 어이가 없었는지 입술이 들쭉날쭉 꿍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커다란 키의 한 아가씨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헐레벌떡 가게로 뛰어들며,
“뭘 도와드릴까요?” 한다. 바로 포장코너 주인이었다.
그 주인은 계산대 앞에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멋쩍은 표정을 하고 서있는 아가씨와 우리 일행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내 손에 들려 있던 결혼예물을 빼앗아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이 예쁜 포장을 해주었다. 그리고 친구가 잠시 가게를 보는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나는 그때 엉터리 포장으로 허둥대며 멋쩍어 하던 그 모습에서 너무 귀엽고 소담스러운 아가씨라는 느낌을 가졌었다. 결혼식장으로 가면서 직원들에게 그 느낌을 이야기 했더니, 기왕지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 프로포즈를 해야 한다고 하여 다시 그곳으로 등을 떠밀어 가게 되었던 것이다.
“저어! 커피 한잔 하시겠어요? 아까 제가 포장을 못한다고 너무 무안을 준거 같아 미안한 마음에 커피라도 한잔 사려고 다시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저는 시간이 없는데요?”
“딱 한 시간만 시간을 내 주신다면 제게 그런 영광이 다시는 없을 겁니다.”
“그럼 딱 한 시간만…?”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광장 모퉁이 이층 찻집에 들어섰다. 테이블이 여섯 개 밖에 없는 아담한 분위기를 한 그 찻집의 스피커에서는 마침 ‘솔베이지의 노래’가 구성지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창가 쪽으로 비어있는 테이블로 가서 마주앉았다.
“‘솔베이지 송’이군요. 혹시 이 음악에 대해 좀 아시나요?” 하고 내가 물었다.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네요.”
“그럼 커피주문하고 이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드릴까요?”
“그러세요.” 그녀는 이렇게 좀 퉁명스런 대답을 했다. 나랑 함께 커피 마시러 온 게 영 못마땅하다는 의사표시였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이 오고 또 봄은 가고…, 오 우리 하느님 우리를 보호하소서…, 뭐 이런 내용의 가사로 된 음악인데 노르웨이에서 물 건너온 노래입니다.”
“노르웨이요?” 이 복잡한 공업도시에 노르웨이라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냐는 듯 상당히 떫은 표정이다.
“'페르귄트 조곡' 이라는 음반이 있지요.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가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작가 헨릭입센의 의뢰에 의해 작곡을 했다는데요. 전주곡, 행진곡, 춤곡, 독창, 합창 등 23곡이지만 이중 18곡을 극의 흐름에 맞추어 제작한 음반인데, 세월이 지나다보니 이 저잣거리까지 흘러나오게 됐나 봐요. 그 중에 한 음악이 방금 나왔던 ‘솔베이지 송’입니다. 내용을 보면…, 극중 주인공인 페르귄트는 청년시절 사귀던 처녀 솔베이지를 뒤로하고 잉글리드라는 다른 처녀를 데리고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평생을 방황하다가 검은 머리 파뿌리 되어 고향에 돌아와 보니 솔베이지가 그때까지 페르귄트를 기다리고 있질 않겠어요? 페르귄트는 너무 기쁜 나머지 솔베이지의 무릅을 베고 안식의 잠을 청하게 됩니다. 평생을 처녀로 늙어가며 페르귄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솔베이지는 그가 돌아오자 감격에 겨워 이미 폐인이 다된 페르귄트의 머리를 무릅에 묻고 재회의 기쁨과 한 맺힌 인고의 세월에 대한 슬픔이 어우러진 노래를 부르고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함께 죽음을 맞이하지요. 바로 그 노래가 방금 나왔던 '솔베이지 송' 입니다."
“듣고 보니 은근히 재미있네요. 계속하세요.”
퉁명스럽기 그지없던 이 아가씨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는 품새가 ‘솔베이지 송’ 이야기에 이미 마음이 동하기 시작한 게다. 이 기회를 놓칠소냐. 나는 여세를 몰아 페르귄트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이때 이 사건(?)의 귀추를 주목하던 직원들이 밖에서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우르르 찻집으로 밀려 들어왔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슬그머니 치켜세워 일이 잘 되고 있으니 간섭하지 말라는 뜻을 전했다. 입구를 등지고 있던 이 아가씨는 그런 눈치도 못 채고 내 이야기에만 푹 빠져 있었다. 썰물 빠지듯 직원들이 사라지자 나는 긴장감을 늦추고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펼쳐 나갔다.
‘솔베이지 송’ 덕분에 그렇게 만나게 된 두 사람은 그 후 여러 달 연애 끝에 그 이름도 유명한 명동성당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서 주례 신부님이 물으셨다.
“두 사람은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사랑하며 살겠는가?”
“예!”
이제 50줄을 바라보게 된 당시 그 아가씨는 검은머리 파뿌리 되어가듯 희끗희끗한 머리를 검붉은 색으로 염색하는 동안에도 연신 바가지를 긁어대는 평범한 나의 아내가 되었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감격에 겨워 재회의 기쁨과 슬픔의 한이 어우러진 노래를 부르던 솔베이지의 감동은 이미 딴 나라 이야기가 된 듯하다. 우리 부부도 이제는 중년을 넘어 ‘로맨스그레이’를 외치며 살아가는 노인세대로 과연 넘어가고 있는가? 춘원 이광수의 소설 '무정' 에 보면 '김장로는 이제 사십오륙 세 되는 깨끗한 중노인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 시절만 해도 40대 중반이면 노인으로 우대받는 시절이었던 것으로 보아 지금 굳이 나이 들어감을 탓할 필요도 없겠다.
며칠 전 신문에서 ‘노인부부자살시도’ 라는 자그마한 박스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너희 네 형제가 한 마음으로 우리를 도와줘서 이날까지 무사하게 잘 지내왔구나. 우리 두 사람은 부모질도 못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네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할 것 같다. 같이 가기로 했으니 섭섭해 하지마라. 용서해다오.”
갑신년 한 해도 다 저물어가는 12월 중순 경기도 동두천에서 일어난 노부부의 자살기도 사건에서 발견된 유서의 내용이다. 부인은 사망하고 목을 맨 남편은 병원에서 가까스로 생명을 유지하게 됐다는데, 그들이 동반자살을 하게 된 상황을 생각하면 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살아온 그들은 한날한시 함께 천당에 가고자 자살을 기도했는데 그만 부인만 남편에게 살해당한 격이 되었다. 자식들 편하게 해준다고 시도한 것이 결국 끝없는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이 되고야만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만들고 또한 이끌어가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헤게모니 또는 이니셔티브라 불리는 기득권을 앞에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동안, 우리 고유의 효도문화는 힘을 미처 쓰지도 못하고 이미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거추장스럽고 경제적으로도 쓸모없는 처지로 전락해 버린 노인들은 설자리를 점점 잃어 가고 있다.
이혼율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는 지금,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잘 살아야 합니다." 라는 주례사는 큰 의미가 없다. 그 말은 어쩌면 결혼에 대한 회의적 냉소가 섞인 패러독스 일 수도 있다. 사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파뿌리 머리로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길을 나서는 노부부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이미 우리나라 노년층의 '로맨스그레이' 도 상당히 발전(?)하여 부부지간에도 서로 다른 방향에서 해결책을 찾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노부부의 자살기도 사건이 더욱 애처로워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리라. 기성세대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결혼을 한 이후 자신이 걸어온 길을 한번 뒤돌아보고, 그리고 위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가 뭔지를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나 역시 다시한번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으며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평생을 아내와 함께 잘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첫댓글 홍다구님 정말 감동입니다 그렇게 예쁜 부인을 맞으셨군요 넘 잼나게 사실것같아요 두분 행복하게 오래오래 멋진 인생 살아가시길 바라며, 나 자신의 행복에 빠져 이웃의 슬픔을 망각하지는 않는지 저 또한 다시한번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것 같네요 건강하세요.
홍다구님! 정말잘살고싶은데...아잉..협조가안되고있어서.. 더 노력해야겠지요...끙..
좋은 말씀 ㅎㅎㅎㅎ
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