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과거를 반추할 때, 무심코 흘려버렸던 기억들이 조금 더 자란 지금에 와서야
무게감 있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순시기를 보내고 부활의 기쁨 속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는 우리에게
수난을 앞둔 예수님의 당부 말씀들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세상의 미움을 받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상에 발붙이고 있으면서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소명을 가진 이들이
불가피하게 부여받는 신원적 숙명일 것입니다.
같은 말의 반복이지만 둘째 이유는 그 어조가 더욱 강합니다.
세상 속에서 당신께서 뽑아 세운 까닭이 바로 박해의 이유가 됩니다.
뽑았다는 말은 ‘박혀 있던 곳에서 밖으로 빼내어지다’라는 장소 이동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피동적 선택을 받은 ‘뽑힌’ 제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딛고 서 있는 기반을 세상에 둘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앙인은 세례성사와 함께 부여받은 사제직, 예언직, 왕직의 세 가지 소명을 완수하도록
이 세상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속의 흐름에 역행하여 다른 길을 만들고, 모른 척 지나치고 싶은 사람들을 불편함으로 초대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미움을 받는 일은 정말 두렵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먼저 가신 그 길에 나를 뽑아 세웠기 때문입니다.
* 교회는 현세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현세질서를 완성할 의무를 갖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제5항 중에서)
류지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