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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유익1:1~6
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피해야 할 악인 1:7~19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10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11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12 스올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같이 통으로 삼키자
13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리니
14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15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16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17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18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19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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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솔로몬의 잠언은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고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고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합니다. 악한 자를 따르지 말아야 함은 생명을 잃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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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유익1:1~6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성장시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기록하고 수집하게 하신 잠언은 인생에서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칩니다. 지혜는 정직하고 의롭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행동 방식을 알려 줍니다(3절). 지혜는 삶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서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고, 젊은이가 그 나이에 갖기 어려운 지식과 분별력(근신함)을 갖게 합니다(4절). 지혜에는 확장성이 있기에 지혜가 있는 자는 학식을 더하고, 명철한 자는 지략을 갖게 됩니다(5절). 이러한 지혜를 얻고 누리는 사람은 복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내 삶에 흘러 들어올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날마다 가져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유익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지혜가 내가 평소 생각하던 지혜와 다르다면,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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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야 할 악인 1:7~19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입니다(7절). 어떤 사람의 지혜와 지식이 거창해 보여도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다면, 오래지 않아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맙니다. 지혜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젊은이를 교훈합니다. 첫 교훈은 삶을 파괴하는 ‘악한 자’와 함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는 돈을 손쉽게 벌 수 있다고 유혹하며, 돈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쓰러뜨리고 해를 끼치는 부정과 폭력에 참여하라고 충동합니다(11~14절). 오늘날에도 부정과 폭력으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이 많은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유혹과 악에 빠지기 쉽습니다(딤전 6:10).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재물을 얻는 것이 지혜요 복된 삶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빠져드는 것이 왜 위험한가요?
재정 생활에서 내가 평생 기억하고 실천할 성경적 원칙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삶의 모든 순간에 가까이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경외함으로 지혜와 명철을 얻어,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악한 이들과의 관계를 과감히 끊고 생명 길을 걷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453 예수 더 알기 원하네)
1~7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임을 깨닫고, 당신의 말씀을 통해 당신을 알아가면서 삶 속에서 바르게 적용하고, 다음 세대를 말씀으로 바르게 인도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8~19하나님은 믿음의 부모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자녀들을 키우길 바라시고, 불의한 이익과 폭력을 조장하는 초대에 응하지 말며, 악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7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우리 삶의 기초가 되게 하고, 그 말씀을 삶으로 적용하면서 지혜를 얻고,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 회개하면서 주님의 백성으로 성장해 나가자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정의와 공평과 정직을 지혜롭게 실행하고,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면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우리의 다음 세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그 말씀 안에서 굳건한 심지를 가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돕고, 열심히 모범을 보이도록 하자
8~19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열심히 가르치도록 노력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불의한 이익과 폭력을 조장하는 무리에 가담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가르치자
믿음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않도록 바르게 판단하고,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열심히 훈계와 지도를 아끼지 말고, 말씀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도록 전하자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 ‘우리와 한 식구가 되어 이 모든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어 가지자' 할지라도 내 아들아, 너는 그런 자들과 함께 다니지 말고 그들을 멀리하라’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제비를 뽑는 것’은 탈취한 물건에 대한 동일한 분배를 말합니다. ‘
전대 하나만 두자’는 말은
그런 탈취한 물건들을 각자 가질 것이 아니라, 공동 재산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즉, 공동 소유, 공동 분배를 말하는 것으로 일종의 공산주의 이론과 흡사합니다. 결국 그 말은 물건을 탈취하여 함께 사용하자는 뜻으로, 그 때 재산은 우리 모두의 재산이니 ‘너는 이름만 걸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기입니다. 그 때 그 유혹에 넘어간 사람은 끝내 이용을 당하고, 재판장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이름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이름만 걸라’는 말은 전형적인 악한 자들의 수법입니다. 본문은 그런 악한 자에 대해 엄중한 경계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대개 나쁜 자들의 처음은 극히 평범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러나 그 끝은 필경 멸망의 함정이기 때문이죠. 일단 빠지게 되면 그 유혹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저술목적을 밝히자마자 저자는 이 말을 제일 먼저 언급합니다. 그 만큼 중요한 것으로서, 필경 그것으로 인해 망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막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미혹하는 자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여기에 투자하면 틀림이 없어’, ‘우리 사이가 막역하니까 그 비밀을 말해주는 거야’, ‘이는 망할 수 없는 사업이야’ 등등 확신에 확신을 주며 함께 동참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돈벌이라면 자기가 할 일이지, 왜 남을 끌어 들입니까? 사람이 필요하면 자녀나 친척을 동원할 것이지, 자기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는 나를 초대하는지, 그렇게 좋은 일이면 자기 이름만 걸지 왜 내 이름을 걸라고 할까요?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목적 없이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 목적이 정말 좋은 것이라면 자기가 먼저 희생하지 남을 희생에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남을 돕는 선행이라면 티내지 않고 하는 것이지 그렇게 침을 튀기기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악녀의 입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적인 것을 유혹하는 이미지로, 거기에 빠지면 파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자의 입술이 더 무섭다고 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몰락시킬 뿐만 아니라, 일가친척, 친구, 친척은 물론 지인들까지 물고 들어가는 물귀신과 같아 모두 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재물, 돈으로 미혹하여 결국은 사망에 빠지게 하는 함정과 같은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자들이 교회에도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절실한 것이 지혜입니다. 더 시급한 것이 명철입니다. 지혜는 사리가 밝은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명철은 그것에 대한 분별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교회도 성역이 될 수 없으니, 세상에 속해 있어 그렇습니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여..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의 저술 목적으로, 정말 우리에게 적중한 말씀입니다. 잠언묵상은 매우 귀합니다.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닥치는 문제를 판단하고 풀어나가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구비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잠언의 묵상 동안에 전심을 다하므로 우리 예수님의 말씀처럼,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세상을 헤쳐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잠언 1장. 잠언은 복음이다.
1. 잠언처럼 오해되고 오용되는 성경도 없을 것입니다. 잠언을 최고의 경영지침서나, 인생 지침서, 혹은 기독교 명심보감 정도로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잠언은 단지 ‘이 세상’을 잘 살도록 도와주는 지혜서나 자기계발서가 아닙니다. 잠언은 복음의 진리가 충만하게 드러난, 그리고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잠언은 기록자를 솔로몬이라고 밝힙니다(1). 다만 마지막 30장과 31장은 각각 아굴과 르무엘의 잠언이라고 불립니다.
2. 잠언의 목적은 이런 단어들로 대변됩니다. 지혜, 훈계, 깨달음, 명철, 근신함, 학식, 지략 등입니다(2~6). 이것들은 인생의 본질을 찾아가는 원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분명하게 붙잡을 때, 이 말씀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 가는데 놀라운 능력을 보입니다. 풀어서 말하면, 잠언을 주신 목적은 마음에 하나님 경외함과 하나님께 복종하는 마음을 주기 위한 것이며, 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심어주고, 삶의 목적이 견고해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든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 책망,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데 유익하다’라고 쓴, 말씀 그대로입니다(딤후 3:16~18).
3. 잠언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지혜에 관한 책입니다(7~9). 경외한다는 것은 예배를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예배라는 형식만은 아닙니다. 경외는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시간으로 보고, 모든 관계를 하나님의 기회로 보고, 모든 의무를 하나님의 명령으로 보고, 모든 복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는 삶의 경건한 자세입니다.
경외함은 삶을 보는 새로운 방식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방식 자체이며,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때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그리고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것처럼, 삶과 우리 자신을 보는 능력이며,
이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식(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의 교훈과 어머니의 가르침(8절)’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 가운데서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이 됩니다.
악한 자도 자식이 악행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은 그 부모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 자체가 하나님의 성품을 모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부모의 가르침을 가볍게 여기고 불법과 악행으로 나아가자고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는 성실한 방법으로 이룰 수 없다고 하고 세월을 통해 얻은 부모의 겸손한 지혜를 가볍게 여기게 하며 여호와를 부인하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그 짧은 부모님의 인생으로 체득한 지혜도 큰데
태초부터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경륜은 얼마나 더 깊고 넓고 높겠습니까?
오늘도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그 기록한 대로 행하여 영으로서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잠언이라"(잠1:1) 잠언은 히브리어로 "משל"(마샬)인데, "비유"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비유 곧 잠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13:34)
왜 그러셨을까요? 지혜가 생명이고 복입니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3:18)
그래서 이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비유가 깨닫게 하고 깨달을 때 생명의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잠1:2~6)
그래서 우리에게 비유를 들으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으라"(마13:18)
주께서는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
그래서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행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행하면 죽는 행위를 막아주는 것입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잠1:10~16)
또한 지혜가 행하면 사는 행위를 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잠2:20)
또한 지혜가 행하면 상 받는 행위를 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지혜롭게 행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삼상18:14)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도 비유의 잠언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시49:4)
그래서 지혜를 얻고 지혜롭게 행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따르지 말 것은 따르지 아니하고,
"그들을 따르지 말라",(눅21:8)
따를 것은 따르기 원합니다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9:9)
그리하면 주께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잠언으로,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고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여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고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위한 책입니다.
이를 위해 본문에서는 두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그 기록목적과 이 책의 전체주제인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녀에게 친구와 교제하는 지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잠언의 소개, 목적과 용도, 악한 자의 유혹, 유혹당한 자의 결과 등입니다.
잠언의 저자는 ‘내 아들아’ 혹은 ‘내 아들들아’라고 부르며 이 책의 1차 수신자를 거명합니다. 여기서 내 아들들은 문자 그대로 혈통을 말하는 것 보다는, 그것보다는 넓게 제자와 백성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스승이 제자들에게 보통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내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가정에서의 교육은 실제적인 생활 지침은 아버지가 기타 일반적 교훈이나 율법 등의 가르침은 어머니가 담당합니다.
악한 자의 꾐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화는 육체적인 편리를 가져다주는 물질적 재산이라고 볼 수 있고, 빼앗은 것은 전쟁 중에 탈취한 전리품 등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자는 말은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이야기이지만 고대에는 매우 솔깃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는 약탈 경제의 시대였으므로 힘이 있는 사람이 많은 부를 축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합법적인 대안이 전쟁입니다.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 무릇, 새가 보는 앞에서 그물을 치는 것은 헛수고라는 말로, 나쁜 짓을 일삼는 악인들의 결말은 궁극적으로 실패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말입니다. 아울러 악한 자의 유혹에 빠져 망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물이 처진 것을 보고도 달콤한 미끼에 미혹되어 덫에 결려드는 미련한 새들처럼, 미혹에 빠지는 자 역시 탐욕에 눈이 멀어 악한 자들의 함정에 스스로 결려들어 패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악한 방법과 과도한 욕심으로 재물을 얻거나 얻으려는 자는 그 재물로 인해 결국 몰락하는 것에 강조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은 어떤 삶입니까?
➲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를 소망하는 삶입니다(1절).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1절)..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되며, 다윗의 아들이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고 다윗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솔로몬 왕의 정통성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잠언’ 즉 ‘마샬’은 삶에 본보기가 될 만한 귀중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격언이나 명언을 함축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마샬은 듣는 자나 읽는 자로 하여금 곧바로 이해하게 하고 자신의 행위나 상황에 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허공에다 대고 선포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구체적인 인물을 통해 삶의 현장 가운데서 선포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솔로몬이라는 지혜로운 왕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혜로운 삶에 대한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내 자신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삶 가운데 실천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세상 가운데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르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한계를 가지고 있는 지극히 세상적인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를 소망함으로 주 안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혜를 갈망하는 삶입니다(2~6절).
잠언이 기록된 목적은 ‘...알게 하고 깨닫게...’(2절)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알고 깨달은 삶의 원리를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하..’(3절)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곧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그리고 의롭게, 공평하고 정직하게 행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심함을 주기 위한 것...’(4절)이고,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하도록 그리고 명철한 자는 지략을...’(5절)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즉 잠언은 삶의 진리를 주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고 그 오묘한 말을 깨닫게 하기 위해...’(6절)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한 삶의 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내 자신의 삶이 아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알고 깨달은 원리를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고, 내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면 결코 바른길로 갈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이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훈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 갖는 판단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내 느낌이나 생각을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푯대가 되어 바른 길, 바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내 자신의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지혜를 갈망하므로 주 안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간구하는 삶입니다(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거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7절).. 이 구절은 잠언 전체의 주제성구라 할 수 있습니다. 구조상으로 잠언의 시작과 마지막 부분(31:30)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잠언 전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에 대해 교훈하는 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잠언 전체에서 ‘여호와 경외’라는 말이 스무 번이나 기록된 것을 통해 여호와 경외사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경외’라는 뜻은 ‘두려워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가지는 거룩한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노예가 주인에게 가지는 수동적 두려움이 아니라, 자식이 아버지를 향해 갖는 능동적 두려움 곧 공경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자로 인정하며, 그분만을 절대적으로 섬기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대의 사람을 ‘미련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왕’입니다. 그는 사십 세에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이 년...‘(삼상 13:1)만에 언약 백성 됨을 거부해 버렸습니다. 여호와 경외사상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에 속한 자 같이 세상적인 가치나 삶의 풍요를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함으로 얻는 영적인 지혜를 갈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올바른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경외할 때, 하나님께 넉넉하게 부어 주시는 은혜 아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훈계를 가벼이 여겨 하나님의 책망 가운데 거하지 말고 지혜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더욱 간절히 간구하므로 주 안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할 수 있도록 말씀을 통해 참 지혜를 소망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세상에 속한 사람같이 세상적인 가치나 삶의 풍요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온전히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잠 1: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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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은 대부분 솔로몬의 글입니다. 메시지에서는 잠언이 지혜로운 말이라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잘 묻어나는 글입니다. 이 글의 목적은 메시지 성경을 보면 잘 드러납니다. ‘어떻게 해야 바르게 잘살 수 있는지 가르치고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며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리려고 기록한 말이다. 이것은 옳고 정의롭고 공평한 것이 무엇인지 알리고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이들을 가르치고 젊은이들의 현실을 파악하게 해줄 삶의 지침서다.’
잠언은 삶의 지침서라는 것입니다. 바르고, 잘살 수 있는 길,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평과 정의, 세상의 이치를 알리고 무엇보다 현실을 파악하게 해줄 삶의 지침서라는 것입니다. 비록 솔로몬이 말년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지만,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의 정수가 이 잠언에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경험 많은 이들도 얻을 것이 있고, 노련한 이들도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잠언을 통해 뭔가를 배우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는 잠언의 주제구절이 7절에서 나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쉬운 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즉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것! 이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지에서는 지식의 첫걸음은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 이라 번역하였습니다. 왜 엎드립니까?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지혜를 인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참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이 지혜와 지식을 업신여긴다고 합니다. 왜 업신여기겠습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지혜, 자기 지식이 하나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태도를 통하여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고, 자신의 경험, 생각, 지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자들의 모습이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오늘의 잠언은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 이것은 7절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부모의 가르침 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 신명기 6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한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들의 가르침은 곧 하나님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의 말은 그저 인간의 걱정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훈계를 들으며 법을 떠나지 말라.’는 자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듯이 따라야 할 명령이었습니다. 물론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녀에게 부모의 지혜는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라고 잠언 기자는 이야기 합니다. 즉, 그 가르침을 경청하며 따르는 자녀에게는 형통하고 안정된 삶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우선 그것은 악한 자들로부터의 보호입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달콤한 거짓으로 선한 자를 꾀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입니까? ‘우리와 함께 가자’라는 말입니다. 강도들, 악을 일삼는 자들이 즐겨하는 말입니다. 동료애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동료애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되고 그들로부터 필요가 없게 되면 처참히 버리는 것이 악한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죄 없는 자를 죽이고 약한 자들의 것을 빼앗는 것을 즐겨하는 자들입니다. “빼앗은 귀중품들을 차에 한가득 싣고 집으로 가져가게 될 거다. 같이 가자. 다시없는 기회가 될 거야! 물건은 모두 똑같이 나누게 될 거다!” 얼마나 달콤한 유혹입니까?
그러나 그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종말은 참혹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비참한 최후를 향해 질주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악으로 빼앗은 것들을 선한 곳에 쓰지는 않습니다. 유흥에 쓰며 취하는 곳에 쓰고 또 다른 악을 도모하는 곳에 쓰는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자들입니다. 자신들이 파놓은 무덤이 결국에는 그들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악한자의 말에는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게 되면 결국에는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전략 안에 포함되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친구여, 그들을 두 번 돌아보지도 말고 한순간이라도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마라.” 이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악을 피하는 것이 지혜롭다
솔로몬은 젊은이들에게 악을 피할 것을 강조한다. 악한 사람들의 실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죄를 짓는일에 발 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들은 피를 흘리는 일을 즐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련한 새처럼 자신이 파멸할 줄을 알면서도 끝 없이 절제 없이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이 그렇게 정신없이 악을 도모하는 이유는 절제되지 못한 탐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 악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힘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무찌를 수 있는 힘을 가지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오히려 그 악의 자리를 피하고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악의 자리를 멀리하고 있는가?
2.어리석음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것은 잘못된 곳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가 소리를 높여 불러도 그곳으로 향하지 않습니다. 지혜의 소리를 듣고 돌아설 때 하나님의 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신다고 말합니다.(23절)
사람들은 이 지혜의 소리를 듣기 싫어하였고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지 아니하였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고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령께서 그의 지혜로 우리를 부르실때에 그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돌이키게 될 때 하나님의 신령한 복들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잘못을 깨달았을 때에 즉시 돌아서는 자인가?
3.지혜를 소홀히 다루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어긋난 길로 내동댕이 쳐 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순간 우리를 향하여 지혜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인내하심으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지혜로 부르실 때 끝까지 응답하지 않으면 나중에 사람이 간절히 불러도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부지런히 찾아도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지혜로 부르실 때에 그 소리에 민감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소홀히 여기지 말고 성령의 부르심 앞에 겸손히 순종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지헤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고 있는가?
<악한 자를 따르지 말라>
본문/ 잠언 1:8-19
오늘 본문은 정의보다는 이익을 탐하는 악인에게 동조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1.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
우리 주변에는 많은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10절) 그들은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자주 우리를 악한 길로 꾀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악으로 끌어들이려고 할 때 그들의 생각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선과 악은 모두 전염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악은 더욱더 강한 전염성이 있습니다.
약하면 우리도 모르게 그들의 생각에 전염됩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악으로 우리를 꾈 때 강한 면역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말씀과 기도를 열심히 함으로 건강한 영적 체력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악한 사람들은 뿔을 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죄인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이익만을 탐하기 때문입니다. ‘이익을 탐하는 자’(19절)로서 그들은 쉬운 이익 내지 과한 이익을 얻고자 다른 사람을 해코지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행하는 나쁜 짓을 작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이 얻게 될 것을 크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을 쉽게 생각하고 그들이 얻게 될 보화를 크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리니”(13절)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사람이 그렇게 온갖 보화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할 때 그것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온갖 보화는 상상만 해도 가슴을 뛰게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꾀는 자가 말합니다.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14절) ‘전대(가방) 하나만 두자’는 것은 강도질한 것을 공평하게 나누자는 말입니다. 악한 꾀를 만들어 낸 사람이 더 많이 가지지 않고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자고 하니 어리석은 사람은 그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악으로 기울어 그와 함께 악의 길로 들어서기 쉽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해롭게 한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이 남의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악한 길로 들어서는 지름길입니다.
2.자기의 피를 흘리는 사람
악한 자를 따라 행함으로 얻는 자기 이익은 실제로는 자기 손해가 됩니다.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17-18절) 새를 잡기 위해 그물 아래에 먹을 것을 놓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물을 새가 보게 된다면 새는 그 아래의 먹이를 먹으려고 달려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이익만 봅니다. 악한 영이 쳐 놓은 그물을 도무지 보지를 못합니다. 그 이익을 취하는 것이 자기를 사지로 몰아넣는 것인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이익을 찾아 기어 들어갑니다.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피를 흘릴 때 실제로는 자기의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남의 생명을 해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억울하게 피 흘리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속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의 피를 흘리면 그것은 자기의 이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피 흘림이 됩니다. 단지 그 사람은 어리석어서 자신의 피흘림이라는 것을 모를 뿐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은 결코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게 해꼬지를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단지 우리는 극단적 이기주의로 인하여 나에게 작은 이익을 크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큰 손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교회에 이웃의 교회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나님 나라가 100의 크기로 확장되면 그 교회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만약 그로 인하여 다른 교회에 500의 피해가 된다면 그 교회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는 마이너스 400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교회가 플러스 100이 되었다고 좋아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날 스타 목사나 광고로 인하여 한 교회로 성도가 모이는 것은 좋지 못한 현상입니다. 그 이익이 다른 이들에게 해가 된다면 오히려 자기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19절)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다가 생명을 잃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남의 피를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피를 흘리면 실제로는 자기의 피를 흘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악한자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잠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악한 자의 논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자의 논리(생각,잠언)는 오직 자기 자신의 이익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의 눈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남의 이익이 나의 이익이 되고, 남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됩니다.
악한 이의 꾐에 빠져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잠언 기록의 목적(1:1~7)
잠언은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솔로몬의 잠언을 편집한 것입니다(25장 1절). 실제로 성경은 솔로몬이 잠언 3천을 지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왕상 4:32). 잠언 30장에서 등장하는 아굴의 잠언 때문에 잠언을 솔로몬 이외에 여러 잠언을 모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굴의 정체에 대해서는 어느 학자도 추정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름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모르는 미련한 자'라는 의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잠언의 저자가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구약의 시대에 당대의 사람을 통해서 지혜의 빛을 조명하셨다는 것입니다.
"4~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심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여기서 '지식(다아트)'은 체험적 지식을 말합니다. 즉 세상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은 신중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기에 이들에게 체험적 지식을 통해 교훈을 준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이론이 아닌 삶의 경험으로 농축된(검증된)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5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여기서 '학식(레카흐)'은 '받다'라는 의미로 대대로 내려오는 축적된 지식을 말하며, '지략(타흐블라)'은 항해 용어로서 '줄을 당기다', '조종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자는 잠언의 말씀을 통해서 생명에 이르는 지혜가 풍성해질 것이며, 세상적으로 똑똑한 자는 그 지성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의 키를 올바로 조종하는 데 사용하는 원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에게 주는 교훈(1:7~19)
"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이 구절은 잠언의 주제 성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앞으로 언급될 모든 잠언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잠언에서 13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경외(야레)'는 부정적 의미의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과 자신의 차이를 알고 하나님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경건한 두려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크기는 크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천지창조에도 의심을 갖는 믿음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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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자
거만한자
미련한자는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고 명령하시고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돌아보지 아니하며
교훈을 멸시하며
책망을 받지 아니하면
재앙을 만나고
두려움이 임하고
근심과
슬픔이 임하게 되며
이때는 하나님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시며
찾아도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를 죽이고
미련한자는 자기를 멸망하나
여호와를 듣는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고
평안한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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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경외하라(1-7)
본문은 잠언의 서문입니다. 이 서문에는 이 책의 목적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는 단순한 지적인 지식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그것은 삶의 자세나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곧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나 해석의 능력이 지혜인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에 있어 윤리는 본질적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지혜 없이는 의로울 수도, 공평할 수도, 정직할 수도 없습니다. 반대로 의와 공평과 정직함이 없다면, 지혜 또한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 또는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없는 지혜는 허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 또는 지혜를 얻고자 하는 자는 세상과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 역할 등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는 비로소 세상과 삶에 대한 바른 통찰과 이해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에게서 시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까?
악한 자의 길을 좇지 말라(8-19)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훈계합니다. 그것은 악한 자의 길을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결국 생명을 잃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길은 삶의 방식과 선택에 대한 은유적 표현입니다. 우리 앞에는 여러 길들이 놓여 있습니다. 길의 선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 길의 결국을 보는 것입니다. 단지 순간적인 이익이나 즐거움에 현혹되어 길을 선택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또는 어떤 길을 선택하려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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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를 돌아보시고 저는 다리를 위해 바른길로 걷도록 인도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하늘의 진리에 닿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반석 위에 굳게 서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복음 들고 땀 흘리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쉬지 않고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여호와의 지식을 존귀히 여기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