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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선인 거룩과 포용 (스2-2)
2026년 7월 24일 (금요일)
찬양 : 주님의 숲
본문 : 에스라 2:1-70절
☞ https://youtu.be/62GoMbExoos?si=H6THgPxqQgt35z2F
오늘부터 나는 새로운 발걸음을 걷는다. 물론 내 삶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아울러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 스스로 오늘을 내 삶의 새로운 날로 이정표를 세우며 나아가련다. 주님 인도하소서.
어제부터 에스라서를 묵상하고 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에스라 서문에서 예배와 말씀을 이렇게 정의했다.
<예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전인적이고 포괄적인 행위이며,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선물인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 안에 깊이 새겨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따를 때에야 비로소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예배와 말씀으로 정체성을 찾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예배와 말씀으로 이 일을 해냈던 사람이다. 에스라의 이런 이야기를 다시금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리며, 나의 후반전이 그렇게 예배와 말씀으로 다시금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달려가는 삶 되고 또 그렇게 정체성을 회복시켜가는 삶 되기를 소망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 에스라 2장은 무려 70절에 걸쳐서 긴 1차 귀환자들의 명단과 통계를 기록하고 있다. 크게 네 가지로 명단을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1차 포로귀환을 이끈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비롯한 11명의 지도급 인사들이다. 2절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두 축이 왕과 제사장이었다. 그런데 포로에서 귀환하여 다시 회복하는 현장에 왕의 혈통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가문의 예수가 나란히 선 것은 다윗 언약이 계승되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회복이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울러 지도급 인사들을 통해, 5만에 가까운 백성들을 질서 있게 이끄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통치를 보여준다.
두 번째는 일반 백성들의 명단이 3-35절까지 이어진다. 여기에는 가문별로 총 18개의 가문이 나오고 지역 및 성읍 별로 총 19개의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하나님의 회복 비전을 이룰 1차 포로귀환의 핵심 인력들일 것이다.
세 번째는 36-58절에 걸쳐서 성전 직무자와 봉사자의 명단이 소개된다. 여기 주목되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과 느디님 사람들로 명명된 사람들이다. 58절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더라’
제사장과 레위 지파와 노래하는 자들을 비롯해 문지기 등 구체적인 임무가 정해진 지파의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예배를 세우는 자리에 참여한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을 주목하게 된다.
우선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이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다. 이들은 솔로몬에 의해 강제 동원되었던 이방인 일꾼이나 에속민들의 후손이다. 그런 이들이 포로로 끌려갔던 곳에서도 정체성을 유지한 채 포로 귀환의 행렬에 기꺼이 참여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에게도 이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기회를 열어주셨던 것이다.
또한 느디님 사람들은 히브리어로 주어진 자들, 헌신된 자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혀호수아 시대 이스라엘을 속이고 화친을 맺었던 기브온 민족의 후손으로 전해지는 이들이다. 이들은 성전의 허드렛일인 성전 청소와 제물용 나무 패기, 물 깃기 등을 감당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들의 이름을 기록해 주시며 영광스런 사역에 길을 열어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혈통이나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하셨을 뿐 아니라, 무너진 성전 앞에 서서 자신들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헌신하는 모든 이들을 정확하게 기억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네 번째는 계보를 증명하지 못한 이들을 기록하고 있다. 62-63절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멸망의 가장 큰 이유는 거룩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돌아온 이들의 명단을 작성하며 분명한 기준을 설정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계보를 증명하지 못한 이들>을 구별하여 직무에서 배제시켰다. 이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일꾼이 필요한 때에 "새로운 공동체는 인간적인 편의나 타협이 아니라, 엄격한 거룩함과 진실성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분명한 기준을 세워 일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초점은 완벽하지 못하고 증명할 길이 없어 당장은 직무에서 배제되더라도 그를 공동체에서 내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 회복의 때를 기다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하고도 공정한 은혜로 이들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 부분을 묵상하며 정말 힘겨운 시간에도 거룩을 지켜가기 위해 직무에서 배제시키되 또한 그들을 제외시키지 않고 함께하며 기회를 주었던 사건과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이 감동이 된다.
하나님은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성전을 세워가며 이들과 함께 시작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꿈꾼 새로운 이스라엘이 무엇인지를 보게 한다.
내 삶의 새로운 시작을 선포한 날 주님은 놀랍게도 그 기준을 지루한 명단을 통해 거룩이라는 기준과 포용이란 기준을 가지고 나아가게 하신다. 나의 후반전 키워드를 <거룩과 포용>이란 두 기준을 세워 하나님의 뜻에 순종되는 삶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주님, 이 종의 새로운 출발을 인도하소서.
한줄 묵상 :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은 인간적인 타협 없는 '엄격한 거룩'과, 소외된 이들을 품어 안는 '따뜻한 포용'이라는 두 날개로 세워진다.>
적용 질문 :
1. 내 삶과 사역의 자리에 인간적 편의나 타협으로 무너져버린 '거룩함'의 경계는 무엇이며, 다시 세워야 할 진리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2. 당장은 연약하고 증명되지 않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품고 기다리시는 영혼들을 향해 나는 어떤 '포용과 인내'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까?
3. 오늘 새롭게 세운 <거룩과 포용>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나의 일상과 사역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하며 살아갈 것입니까?